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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

 

자비님의 [고려대학교 의학대학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학내 대학생 운동권 대응 평가]

푸우님의 [학내 반성폭력 운동 -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집단성폭력을 중심으로]

              고대반성폭력연대회의

 

93년도에 학교에 큰 일이 있었다.

의과대 한 여학생이 MT에서 어떤 남학생한테 성추행을 당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친구한테 그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남자는 동일인이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힘을 얻은 두 여학생은 또 다른 여자 선배와 함께 은밀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의 결과는 참혹했다.

술자리에서 주정을 핑계삼아 성추행을 했던 건 다반사였다.

심각한 추행을 당한 사람만 여덟 명이었고 네 명은 강간을 당했다.

모두가 동일인의 소행이었다.

모든 피해자들은 꽁꽁 숨기고 살았던 것이다. 없었던 일이라고, 잊어버리자고, 그렇게.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시끄러워졌다.

마지막 논쟁은 그 학생에 대한 처벌문제였는데 여학생회와 학교측의 입장은 퇴학 대 자퇴로 갈렸다.

그리고 그 남학생은 자퇴로 처리되었다.

그때 누군가한테 물어봤다.

그게 무슨 차이지?

누가 말해주었다.

퇴학하면 다시 못 돌아오는데 자퇴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거든.

우린 사립학교니까 돈만 내면 돌아오는 거야. 알았어?

 

그 남학생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의사가 되었을 확률이 크다.  

그 남학생에 대한 기억보다 더 강하게 남아있는 건 92학번 여자후배와의 대화였다.

대자보를 읽으면서 분개하고 있는데 그 애가 내 옆에서 그랬다.

"저런 게 무슨 소용이예요? 얼마 지나면 또 똑같아질텐데…"

내게는 그 애의 그 말이 더 충격이었다.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말이었다.

 

술자리에서 꽃같이 여겨진다거나 야한 농담에 얼굴을 붉히는 그런 시간을 거쳐

술자리에서 더이상 꽃이 아닌 술친구가 되고 야한 농담을 더 야한 농담으로 받아치고

'씨발'이나 '좆같다'라는 욕을 스스럼없이 지껄이게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그리고 수많은 '나'들이  밟아온 길이었으니까...

 

94년도에 떠나온 후에 절대로 찾지않는 그 곳.

안암동이라든지 고려대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나.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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