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애도

민쫄이가 죽었다.

 

금,토에 봉천동 맑은샘공부방 아이들이 집에 왔다.

공교롭게도 하니샘네 민쫄이가 아파서 매일 약을 먹어야했기에

나는 민쫄이를 태워오기로 했다.

반려동물을 버스에 태우는 건 위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합정동에 갔는데 민쫄이는 없었다.

민쫄이의 언니 민영이가 민쫄이를 위해 강화행을 포기하고 집에 남기로 한 것이다.  

금,토의 강화집은 즐거워하는 아이들 소리로 가득했다.

가끔 하니샘은 민영에게 전화를 걸어 민쫄에 대해 물었다.

 

금요일에 듣기로는 민쫄의 자궁에 염증이 생겼다 했다.

하지만 토요일, 민쫄이 위급해져서 응급실에 갔는데....

심장사상충이 원인이었다 한다.

보라매동물병원.....

예전에 내가 길에서 만난 쫄쫄이 데리고 갔을 때에도 별로...라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도 오진을.

당곡사거리의 보.라.매. 동.물.병.원. 나빠.

 

하니샘 말씀으로는 병원에 가기 전날

민쫄이 계속 눈으로 뭔가를 말해서 안고있었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시키니 거친 호흡이 진정되어서 하니샘네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제, 병원으로부터 민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화장을 했다고 한다.

한줌도 안되는 뼛가루를 두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당분간은 집에 두고서 천천히 이별하기로 했다고 한다.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붙을 정도가 되었다는 민영이는

"살아있을 때에도 집에 혼자 있었는데 죽어서도 집에 혼자 둬야해" 하면서

나가질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별은 항상 아프다.

어떤 이별이든....

이별은 아프다.

안녕 민쫄아.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함께 있어줘서, 또 하니샘네한테 마지막 이사를 하게 해줘서..

고마워 민쫄.

하은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민쫄 소식을 전해야하는데.....

어떻게 하나.....

 

 

  1997년 5월 5일의 글

친구가 노동절 집회 때문에 먼 데서 올라왔다.

잘 곳이 없어서 우리가 형이라 부르는 학교 선배 집에서 자기로 했다.

노동절 아침, 집에서 싸 간 김치로 아침을 먹고

노동절 집회에 간다는 친구를 배웅하는데 골목길에 강아지가 있었다.

누군가 버린 장롱과 벽 사이에 더러운 얼굴을 하고 끼어 있었다.

친구는 "피부병 옮을라"하며 아이를 안고 내려갔다.

친구를 보낸 후 돌아오는 골목길에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강아지를 보며

한참을 망설이던 우리는 집으로 데려왔다.

 

형은 라면상자를 뜯어 강아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고

나는 목줄을 풀었다.

목줄이 헐렁한 걸 보니 오랫동안 굶은 것 같았다.

배가 고파서 힘이 없는 것이라는 내 말에

형은 "병이 들어서 주인이 버렸을 거야"라고 했다.

설마…. 

형이 하이텔에 들어가서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

'미지근한 보리차'를 만드는 동안

나는 볕이 잘 드는 마당 가운데에 강아지를 놓았다.

컹컹 짖는 주인집 개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강아지는 졸기만 했다.

보리차를 입에 대주었더니 물에다 코를 박아서 헉헉댔다.

봄볕은 다사로운데….

 

강아지는 정신이 들자 갑자기 일어나 마당을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다

상추가 심어진 화단에 머리를 얹고 한참을 서 있다 쓰러졌다.

같이 지켜보던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약을 사오셨다.

집의 큰 개도 그렇게 아픈 적이 있었다며

영양제와 항생제같은 캡슐 몇 개를 사오셔서 주사를 놓았다.

살 수 있을 거라며, "아무 것도 먹이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볕이 잘 드는 곳에 강아지를 두고 다큐스터디를 위해 밖으로 나온 우리는

개가 나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한참을 얘기했다.

계속 길러야 한다는 내 말에 형은 병이 나으면 기를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집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쌀이 떨어지면 라면을 먹는 처지에

강아지한테 라면을 먹일 수는 없다고 했다.

한참을 얘기하다 낫고 난 뒤로 결정을 미루기로 하였다.

스터디를 끝내고 돌아오니 강아지는 누워 있었다.

실낱같은 생명이어라.

미약한 경련이 오는 자그마한 몸뚱이를 보며

병보다 키울 일을 걱정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형은 집엘 잠깐 다녀왔다.

어머니께서는 개한테서 병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도 야채수프를 주셨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 강아지는 죽어 있었다.

형은 사람이 안 다니는 공터에 신문지에 싼 강아지를 묻었다.

삽이 없어서 손으로 땅을 파고 묻는 것을

어떤 아저씨가 물끄러미 봤다고…….

이상하게 보여서였겠지.

내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형은 땅을 파고 강아지를 묻었다.

그렇게 어린 생명은 하루 동안의 인연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처음 강아지를 주워왔을 때

상자에서 쏟아낸 라면을 한쪽에 쌓으면서 형이 말했다.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내가 말했다. "우리 눈에 띈 건 강아지 운명인가 봐. 살아날."

나중에 강아지를 묻은 얘기를 들으며 친구가 말했다.

"원래 죽을 몸이었어. 그러니까 주인이 버린 거야."

 

우리는 풍장과 초분의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새에게 시체를 맡긴다는 먼 사막의 장례풍습을 얘기하며

오래오래 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막걸리 집의 문 밖에 있는,

신문지가 깔린 라면상자를 보고 주인에게 물었다.

"이건 개 집인가요?"

집주인이 말을 못 알아 들어 우리는 세 번을 물어야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