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나의 투쟁

제목을 이렇게 거창하게 달아도 되려나 모르겠다.

지난 2개월동안 많이 싸웠다.

가장 큰 싸움은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아서 제외하고

(언급하는 순간 머리 속에 그 이름이 머무는 비극을 피하고 싶어서)

열거를 해보자면

엄마, 채무자, 오빠

 

엄마는 학교를 다니는 2년 반 내내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었다.

엄마는 끊임없이 내가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얼마나 무능하고 이기적인가를

끝없이 설파했으며 나는 열심히 듣는 척 하며 다른 귀로 흘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몇 번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맞기도 했지만

늘 다음 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8월의 졸업식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가 말했다.

"눈물이 나더라. 내가 그렇게 구박을 했는데 졸업을 하다니"

나는 그냥 하하 웃으면서 그래 내가 생각해도 내가 장해... 하고 말하긴 했지만

어쨌든 졸업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다.

엄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밭의 작물을 봐야해서 등등의 이유로

여전히 수, 목에 집에 오시는데

월, 수 저녁시간은 내가 쓰고 화,목,금 저녁시간은 남편이 쓰는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수요일에 자주 약속이 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해야할 일을 엄마가 하고

엄마가 그 불만을 나한테 돌리는 문제는 여전하다는 말씀.

남편이 부럽다.

 

두번째 싸움은 채무자.

더 말하고 싶지 않다.

가족간의 돈 거래는 피하라고 세째언니가 말해주었는데

얼떨결에 돈거래를 했고

약속된 시간으로부터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돈은 다 받지 못했고

50만원, 100만원 그렇게 받을 때마다

나는 여러 번의 문자와 여러 번의 전화를 하고

늘 굽신굽신 미안해하며 돈을 받아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식에게 비싼 교정을

(내가 보기엔 미용을 위한, 담당전문의도 그렇게 말했다. 꼭 필요하진 않아...라고)

시키는 걸 보고서 돈을 받아야겠다고, 아니 받아내야겠다고 결심.

주말에는 문자로 아주 긴 설전을 벌이고

오늘 백만원을 받았다.

나는 수전노에 빚쟁이 취급을 받았지만 어쨌든 돈을 받음.

기분이 정말 나쁘다.

하지만 강의가 없는 방학엔 돈이 늘 부족하고

원고료나 출연료로는 부족한 돈을 메꾸기 쉽지 않고

특히 지난 달 졸업식 때문에

한정식집에서 나름 만찬을 치렀고

그 전에 또 강화에 오신 손님들 치르느라

이번 달 카드대금은

온 집안의 돈을 다 끌어 모아도 50만원 정도가 모자른 상황.

평소보다 나는 돈을 더 못 벌었고(방학중이니까) 추석준비도 해야 해서

돈이 꼭 필요했다.

다른 이에게 돈을 빌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카드는 연체되었는데

다음 날 돈을 채워넣으면 다시 빠져나가는 건가? 잘 모르겠네.

예전 20대 때에는 술값으로 자주 카드가 연체되곤 했었는데

기억이 나지않는다니....20년동안 충실하게 잘 살았군.

 

그리고 오빠.

오빠와의 갈등은 엄마와의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오빠는 악착같이 영화 만들고 공부하는 나를 이기적인 인간으로 본다.

특히 자식들한테 너무 못한다고.

몇주 전 아버지 제사날 나는 지나가는 우리 조카(방학 때 우리 집에서 놀다 갔었다)를 불러 세워서

"아무개야, 너 우리 집에서 잘 먹고 잘 놀지 않았니?" 하는 확인 인터뷰까지 한 후에

오빠한테 내가 가정주부로서도 유능하다는 것,

그런데도 오빠의 태도 때문에 서운했다는 것,

그래서 늘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같다..

왜 오빠는 내 편을 들지 않고 남편 편을 드는가.

남편이 자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동안

나는 12년 동안 단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고

그것도 아기키우는 얘기로 방향전환을 한 거라서 어렵게 살아남은 건데

왜 그렇게 나한테 이기적이라 책망하는가 물었다.

물론 나는 그날 술을 마셨고(물론 오빠도 술을 마셨지만)

기분좋게 제례의식을 마치고 기분 좋게 시작한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두고두고 죄의식에 시달려야했다.

적당한 자리가 아니었다는.

 

그런데 그저께 벌초가 끝나고 술을 마시는데

오빠가 작은 아버지 앞에서 내 칭찬을 했다.

오빠는 제사 때의 내 하소연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오빠는 그동안 나에 대한 책망은 몇 마디 안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늘 가족모임에 가면 나는 늘 핀잔을 들었고

그 핀잔에 대한 리액션으로 미안함을 담은 어색한 웃음을 짓곤 했었던 것이다.

(그래야 조용히 넘어가니까)

 

그날 밤에 동생도, 동생의 부인도, 언니들도 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특히 둘째언니가 그랬다.

"나는 네가 우리 자매들 중에 가장 존중받고 가장 예쁨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니...."

오빠는 참 많이 놀랐는지 그날 카톡 가족모임방에 씁쓸함을 아주 길게 토로했었다.

그 긴 글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 미안함은 때를 잘못 골랐다는 거였지

내 입장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빠가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오빠. 그날 오빠가 79.1.27일이라고 쓰여져있는

가족녹음테이프를 발견하고

내내 우리한테 비밀로 해두었다가

제사가 끝난 후에 짠~ 하고 내놓아서 무척 반갑고 고마웠어.

그런 좋은 자리를 내가 망쳐버린 것같아 미안해."

이건 못한 말.

 

어쨌거나 죄의식과 미안함과 스산함과...

늘 느끼는 바지만 세상에 혼자인 것같다는 고립감 같은 것에 빠져있다가

며칠 전에 작은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오빠가 내 칭찬을 해주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나는 감동하여 고맙다고 말하고 자꾸자꾸 소주를 마셨고

다음날 오빠는 술 좀 그만 마시라 하고 떠나셨다.

 

좀더 부드럽게 표출하는 건 더 연습해야할 사항이지만

어색한 미소로 그냥 넘어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계속 느끼는 바지만 나는 좀 변해간다고나 할까.

마음이 더 단단해지고

결단력이 생겼다.

더이상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상황은 맞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좋은 일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