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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는 자주 내게 그런다.
"선생님, 왜 보고만 있어요? 나 좀 도와줘요"
몇 번 반복되니 원망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제 나는 드디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바라던 바다.
카메라가 한 몸이 되는 것.
그런데 이게 인간적으로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게 하는 일인지 또 내가 안다.
그런데 H야,
E도 맞고 J도 어려움에 처해있는데
너한테만 도움을 주면 그애들이 슬퍼해.
차라리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게 나아.....
어제는 선생님들과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그렇다고 깊은 얘기를 한 건 아니다
단지 영화감독만이 아닌 복잡한 나의 위치는
선생님들에게도 이런 저런 고려를 하게 만들었겠지.
점점 투명한, 단색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행이다.
카메라를 들면
안 보이던 것이 많이 보인다.
어디든, 누구든 그럴 것같다.
다큐멘터리감독은 참 좋은 직업임.
그런데 온 몸이 삐그덕거리고
팔이 얼얼해서 숟가락 든 손이 떨린다.
"난 하는 일이 육체노동이야" 라고 그래서
"왜 운동을 해?"했었지만
그럼 안된다는 거 알겠다.
나도 이제 마흔이 넘은 거고
몸이 더이상 예전같지 않다.
강화는 춥고 애들은 재빠르다.
그래도 작업할 수 있다는 게 축복.
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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