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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기 전에

1.

어제밤 꿈.

아침엔 정말 생생했었는데

그 때 기록해둘걸. 아깝다....ㅜㅜ

 

영화제 개막식 뒷풀이 분위기에

웬일로 초등학교 동창들이 대거 모여있었다.

그들은 내게 그동안 소원했던 것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고

나는 어떻게 그들이 영화제에 왔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애써 예를 갖춰서 응대하고 사과하고.....그랬다.

그들 중 한명이 내게 말하길

"이제 이 모임에서도 세미나같은 걸 하려고 하는데

페미니스트를 선생으로 모시고 싶은데

000 선생을 아니? 혹시 연이 닿니?" 하고 물었다.

000 선생은 논문만 몇 번 읽었던 사람이라 나와 연이 닿을 가능성은 없었고

@@@선생님은 000 선생님을 잘 알기에 @@@선생님께 부탁을 하면 되었지만

꿈 속에서도 나의 고민은 너무나 세심하고 또 강렬하기를

1. 내 고향 초등학교 동창회는 페미니즘과는 결코 연관이 없는 곳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2. 내가 000선생님과 몇 사람을 건너서라도 연이 닿는다고 하면 동창들이

    "역시 너는 출세했구나"라는 분위기로 변할 것같은데

   @@@ 선생님의 덕을 봐서 내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고 결심!

결국 나는 모른다, 연이 닿지 않는다고 했고 담당자는 무척 낙담한 표정.

 

갈 곳이 없다는 심리적 부담감이 꿈에도 스몄나?

꿈 속에서도 나는 강화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막차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집엘 갈 수 없다는 위기감에 내내 시달리며

차 시간을 알아보고 한 편으로는 어디 잘 데가 없을까 고민하는데

웬일로 동창회에서 멋진 숙소를 마련해두었고 나는 그 곳에서 자도 되었는데...

그래도 나는 집에 가야한다고 결심하는 순간 꿈은 끝!

 

꿈이 참.... 현실적이라서 꿈에서 깨고나서도 어리둥절.

그리고 내가 많이 좋아하고 믿고 따르던 어떤 사람을

이젠 무의식에서도 떠나보냈다는 것을 실감.

그렇게 아침을 맞았다.

 

2.

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이어서 영화를 만드는 방식을 고수해왔다.

나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고 나도 기획이라는 거 많이 해봤다.

수익사업을 할 땐 열심히 취재하고 구성안을 짜고 그 구성안에 맞춰서

촬영해서 적절한 음악과 해설을 잘 써서 나름 행사도 빛냈던 경험이 있다.

없지 않다, 정말.(안 믿겨져요? 내가 만들었던 영상을 본 사람들이

펜클럽 만든 적도 있었어요.가난한 동네의 그 사람들은 지금 뭘 하시나...)

 

<가리봉>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가리봉'이라는 장소를

조선족 혹은 이주민이라고 통칭되는 그 사람들의 장소라고 인장을 찍는 듯한 통쾌함에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환호하고 감동하고 질투하던 그 영화.

내가 정말 부러우면서도 이해가 안되었던 건

저렇게 내밀한 공기를 담아낼 수 있는 관계로

어떻게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휙~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나.....

저 감독은 어떻게 저렇게 욕심이 없나...하는 감탄이었는데....

관객과의 대화 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99% 도촬(말하자면 몰래카메라)라고 하는 충격적인 발언을.

 

나는 다큐멘터리감독이다.

이미지메이킹과 이미지테이킹의 분류로 따지자면

나의 작업은 이미지테이킹이겠지만

이미지를 메이킹한다는 것과 이미지를 테이킹한다는 것이

무우 자르듯, 혹은 두부자르듯 경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순간을 포착해서 한 사람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건

이미지테이킹이겠지만 크게 봤을 땐 이미지메이킹이라는 거....

이 바닥에서 알 사람은 다 알지.

내가 저번주에 주저리주저리 <가리봉>에 대한 불편함을 늘어놓았을 때

선배감독님은 "우리 하는 작업은 얼마나 다를까?" 하고 물어서

나는 그 때.... 좀 화가 났었다.

 

다르잖아, 감독님.

내가, 지금, 현실의 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을 내 영화에 세우기 위해서

몇 개월동안 설득하고, 촬영영역을 제한하고....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노력하고 있잖아...

그런데 몰카 기술의 발달로, 찍히는 사람이 찍히는 줄도 모른 채로 찍은 화면을 가지고

그 화면으로 만든 영화를 익명의 대중들에게 튼다는 것이 

왜.....왜.....내 작업이랑 같은 건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돌아나와서 그렇게 찍히는 거 싫어하는 사람들을

내 작업 영역에서 제외시켰다.

3개월동안 노력했지만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

 

다큐멘터리에서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사이의 권력관계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고민이었지만(나만의 고민이었을리는 없겠지)

 <가리봉>을 보던 그 날 그 자리의 관객들은

감독이 몰카라고 고백했음에도 전혀 그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래, 그 유려한 촬영술과, 덕분에 포착된 가리봉의 그 공기,

카메라가 있음을 몰랐기에 찍힐 수 있었던 해방구로서의 가리봉

그 미덕만이 칭송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정말 너무 화가 났다.

아니...화가 났다기 보다는...

이런 거야? 내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거야? 당황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림자라서 아이들에게 원망을 받으면서 그것을 감수하면서 나의 비인간성을 고민하는데

그런 나의 고민이 유의미하긴 한 건가?

3년을 쉬었고

새로운 영화들을 많이 보고 있고

그리고 푸른영상 영화들은 올해 부산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dmz다큐영화제에

몽땅 다 떨어졌다. 

아마 내 영화도 앞으로 그러기 쉬울 거다.

극영화를 하던 사람들, 미디어아트를 하던 사람들이 다 다큐멘터리로 몰려든다는데

나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옛날 방법만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괜찮거든.

아마도 나의 영화는 내년에 아무 데서도 틀어지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 것들

그것만으로도 이 작업은 충만하다.

하지만... 관객을 만나지 못하면 영화는 의미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

이 변화 앞에서 나는....무엇을 변화시키고 무엇을 고수해야하는지

좀더 깊이 고민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 상태.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또 새로운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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