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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마음의 여유가 어떤 거냐면

감정이라는 게 가운데에 놓여있고

말랑말랑한 젤리같은 게 그 주변을 동그랗게 싸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동그란 경단 안에 팥알이 들어있는 것처럼.

여유가 없는 게 어떤 거냐면

젤리액이 다 빠져나가버려서 감정의 완충지대가 없어져버린 거다.

내가 요즘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회의에 갔는데 구성원들이 안와있어서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회의가 열리는 곳은 남의 사무실의 회의실이었는데

나는 구성원들이 안와서 회의실이 어딘지도 모른 상태에서 

남의 사무실에서

그 구성원들이 농담하거나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을

애써 못 들은 척 하며 

정물처럼 앉아있다가 그러면 안될 것같아서 <금요일에 돌아오렴>을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다이어리 정리를 하다가....그러다가 겨우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회의 구성원 문제로 큰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사건에 대해서 1시간 30분 늦게 시작하는 회의에 와서야 들었다는 것,

뭐 그런 저런 상황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데.

결정적으로는 회의 구성원 중에 한 명이 나갔고

나 또한 따져보면 그가 나간 이유와 같은 존재조건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원칙이 중요한 때이니 나도 나가는 게 맞다"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고

다른 구성원들이 말렸고...

어찌됐든 원칙적이면서 공정하게 일이 해결될 것같긴 하다.

그래도 나는 까칠하다는 표딱지를 얻게 된 것같다. 

내 마음에 젤리층이 좀 풍성했다면

좀더 웃으면서 따뜻하게 말할 수 있었을텐데.

젤리층이 다 빠져나가버려서 나는 여유가 없는 채로

누군가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하지만 나간 사람만 할까(이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며칠 후에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났다.

인터뷰를 위해 먼 길을 갔는데

앞에 인터뷰가 안 끝나있었고

또 1시간 30분 가까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런 나와 내 동료를 보다못한 다른 사람이

또다른 사람을 섭외하고....

뭐 그러면서 필요한 인터뷰 명 수는 채우긴 했는데

정확히 섭외된 사람들이 아니라서

편집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정말 고민이다.

앞선 인터뷰가 계속 길어지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가자 

내가 동료에게 말했다.

"우리 30분 쯤 후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 인터뷰 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동료는 조용한 눈짓으로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했다.

아마 나 혼자 있었으면 

애써 웃으면서 "저는 이만 갈게요. 다음 기회에 뵈어요"  말하고

돌아와버렸을 거다.

다행히 급히 섭외된 다른 사람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안경에 얼룩이 졌는데

안경을 닦을 천이 없어서 몇 시간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듯한 상태로 세상을 보았다

차분한 나의 동료가 없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내 마음에 젤리층이 다 빠져나갔다는 것을 자각했으니

뭐든 한 박자 늦추어야 하는 시기.

생활의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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