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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7

1박 2일 기행을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빡빡한 하루 일정이 끝나고 길지 않은 잠을 자야하는 그 시간에도

새벽까지 깨어서 일을 하는 분들이 있었던 거다.

잠결에 화장실 가다가 일하는 사람들을 본 나는

많이 놀랐다. (물론 너무 졸려서 금방 잠들었지만. 처음엔 꿈인가도 생각했음)

정해진 시간 안에 할 일을 끝내는 것.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내가 오랫동안 못하고 있는 일.

지금도 나는 월요일이 마감이었던 두 편의 글 때문에 허덕이다

잠깐 글이 안풀려서 이러고 있다.

글을 제 때에 못 보내서 굽신굽신 하는 거, 그만 하고 싶은데

매번 그런다.

일을 줄이거나 좀더 부지런해지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하는데

아는데 잘 안된다.

 

엄마는 나보고 '맺고끊는일이 확실해야한다'고 늘 타일렀는데

요즘 들어 엄마가 왜 그런 말을 그렇게 끊임없이 반복했는지 확실히 알겠다.

현재 나의 문제는 지나치게 다양한 종류의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일을 맡게 되는 과정이 가장 큰 문제.

부탁을 받으면 거절을 못한다.

장애관련 영화를 소개하는 연재 지면을 맡게 되었는데

처음 소개했던 분은 1년에 네 편 쓰면 된다고 했던 것같은데

알고 보니 2개월에 한 번, 분량도 4p. 그러니까 28매 정도 되는 듯.

정확히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맡고

(늘 그런다니까.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 고료는 늘 묻지도 못하고)

쓰려고 보니 4p.

헉!

할 틈도 없이 <트라이브>는 영화공간주안에서밖에 상영을 하지 않음.

그거 보러 또 주안까지 갔다 왔고.

영화는 글쎄.... 4p를 쓸만큼 내가 이해는 못했고

그래서 또 며칠을 괴로워하다가 기획을 두 번이나 바꿔서 글을 어렵사리 보냈는데

약속한 시간을 두 번이나 어기는 동안 안절부절 못하며 문자로 통화로 양해를 구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사나...한숨만.

담당자분에게 언어장애가 있는 듯해서

대화를 통해서는 어떤 감정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더 조바심이 났던 것같다.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글을 넘기고 한숨 돌리다 보니 두 개가 마감을 지나버린 상태였다.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촬영하다 독촉문자를 받고서

또 굽신굽신 모드로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깨어서 일할 수 있었던

그런 때가 나한테도 있었던 것같은데.

잘못된 습이 배어버렸다.

아, 그래도 태도교정은 나중에 생각.

하나하나 미션클리어,라고 혼자 외치며 나아간다.

지금 몸이라도 아프면 큰 일.

어쨌거나 이 시간도 곧 지나걸 것이고.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춥다.

 

*근데 확실한 거 하나는 이런 내가 좀 좋아진 나라는 거다.

아주 예전에 약속은 칼같이 지키고

할 일은 꼭 제 때에 해내던 나는

똑같은 기준을 다른 이에게 요구함으로써 누군가를 질리게 했다.

그게 나빴다는 게 아니라

최소한 나의 철저함으로 다른 이를 숨막히게 했던 그 시간으로부터 

멀어져있는 건 사실. 

자신에겐 철저하면서 다른 이에겐 너그러운 태도를 가졌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그런건 못함.

14년을 지켜본 남편이 얼마 전 인터뷰를 하면서 나에 대해

눈앞에 하나의 목적지를 상정하면 그거만 보고 쌩 달린다는 평을 했을 땐 

그게 충고인지 잔소리인지 몰라 모른척 했으나

어쨌거나 내가 좀 변해가는 건 사실.

30대 초반에

"나는 영화는 잘 못만들지만 최소한 열심히는 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

이제는 성실마저도 없어진 것같아 너무 괴롭다"고 말하는 내게

D선배는, "나만큼 나이들어봐라. 더하다"라는 말을 해줘서 전혀 위로가 안되었었는데

40대 중반이 되고나니 선배말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흐리멍텅해지면서 하나 좋아진 게 있다면 겸허해졌다는 것.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너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런 내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한다.

그리고 감히 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나의 진실을 은폐하고 너의 진실을 훼손하지 않았는지 두렵다.

아마 나는 실패하리라.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를 하려는 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람의 실험 143p

 

땅에서 1cm쯤 발을 떼고서

상황에 빠지지 않은 채

그 공기를 차갑게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는 일.

나의 시간과 경험과 감정을 영화에 담는 일.

매혈같은.

그것이 나의 첫번째 숙명.

 

오늘 두번째 숙명을 옮겨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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