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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래치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났다.

낯선 숙소의 수도꼭지는 깨져있었고

세수를 하려고 물을 틀다가 날카로운 단면에 엄지손가락이 찢겼다.

약간 따끔거리는 느낌은 있었지만 상처까지 난 줄은 몰랐는데

피가 실금처럼 새어나오는 걸 보고 하던 세수를 얼른 마치고 휴지로 닦았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 다쳤어요" 하는데 

어째 그런 일이? 하고서는 하던 일 한다.

집이라면 애들이 막 달려나와서 피 난다고 난리를 쳤을텐데.

아이들하고 살다보니 아이들 감정주파수에 나도 맞춰져있는 듯.

집으로 돌아와 리퀴드폼으로 막을 만들어 하루를 보냈다.

따끔거림은 사라졌지만 아직 상처가 벌어져있어서 물이 들어가면 안될 것같다.

 

마음에 미세한 스크래치가 났다.

손가락처럼 단 한 번에 날카롭게 따끔거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가끔씩 걸리적거리며 존재감을 알리던 작은 뾰루지같은 것을

충동적으로 짜냈다고나 할까.

 

어제는 두 개의 회의를 했고

그 중 한 회의에서는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어떤 요소들을 내어놓고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훌륭하게 해결되었다. 

과거같으면 나의 예민함이라 생각하면서 주저했을지도 모르지만

며칠 전 나는 주저할 틈도 없이 나의 입장을 말했고

그래서 회의가 한 번 더 있었고

새로운 출발의 좋은 계기가 된 것같다(고 나는 느낀다. 구성원들도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책임자 자리에 있는 어떤 분의 나에 대한 껄끄러운 시선을 여전히 나는 느낀다)

 

늘 문제가 그렇게 훌륭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는 문제제기 자체가 무의미할 때가 있다.

뾰루지를 갑자기 짜내는 방식으로 해결? 표출?된 그 일은

어쩌면 내가 뾰루지같은 존재라서 그리 된 것같다.

상명하복식의 조직운영방식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그런 걸 견뎠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다른 자리에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 거다.

내가 살아온 시간 어디쯤에서 나는 여러번 비슷한 모습을 만났고

그 때마다 나는 비슷한 태도를 취했던 것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다.

어떠한 조직이든 장점과 단점은 있기 마련인데

100중에 99가 장점이고 그 중 1인 단점이 비민주성이라고 할 때에도

나는 99의 장점을 포기하면서까지 1에 집착하는 인간인 거다.

그걸 깨달았고 하지만 일의 효율성을 위해 참고 견디다가

어느 새벽 잠에서 깨어

몇 시간을 고민하다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마음의 스크래치는 어쩔 수 없다.

이럴 때, 자꾸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애써 패스해야 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니 지금은 눈 앞에 산적해있는 일들을 

바닥만 보며 하나씩하나씩 해결해가는 거다.

한치 앞만 보며

간다.

그러다보면 이 스크래치는 곧 아물 것이고

어쨌거나 나는 지금보다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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