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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한

글 쓰는 게 너무 형편없습니다. 어떻게 글을 좀 더 쉽게 쓸 방법이 없을까요, 라는 어느 대학원생의 질문에 하루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자신의 글이 형편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스텐리 엘린 같은 천재작가도 하룻밤에 원고지 여섯 장 이상을 채우지 못했으며 그마저도 형편없다 생각한 대목을 삭제하고 나면 고작해야 세 장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의 뛰어난 점은 여섯 장을 썼다가 세 장으로 줄이는 작업을 매일매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매일매일’이라는 대목이 중요한 게 아닐까.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그는 ‘쓴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에세이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작 디네슨은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쓴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언젠가 나는 조그만 카드에 그 말을 적어서 내 책상 옆 벽에 붙여 놓을 생각이다.”

카버 같은 대천재가 강조한 대목 역시 '매일매일’이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나는 레이먼드 카버의 말을 듣고 이런저런 책에서 읽은 아래 문장을 생각 날 때마다 마주한다.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자극이 된다.

1
일급의 시나리오 작가인 구로사와 아키라는, 초보 감독 시절 시나리오를 잘 쓰기 위해 책을 읽을 때마다 노트를 옆에 두고 감명을 받은 부분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을 적어가면서 읽었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무조건 원고지 1장을 채우는 걸 목표로 했다. 비록 하루에 원고지 한 장밖에 쓰지 못하더라도 1년이면 원고지 365장이니 그러면 영화 한 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잠이 오면 잠자리에 누워서라도 하루에 원고지 1장을 채웠다.

2
추리소설가 조르주 심농은 글을 쓸 때면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걸고, 사무실 차양까지 내렸다. 미리 파이프 대여섯 개에 담배도 채워 두었다.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후로 프로 권투선수처럼 체중을 쟀다. 1989년에 세상을 뜰 때 그가 펴낸 책은 400권이 넘었다.

3
마쓰모토 세이초의 집필량은 한 달에 약 2천 수백 장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컴퓨터로 세이초의 하루 일과를 통계 내면, 식사에 1분 20초, 볼일을 보는 데 십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작가 생활 40년 동안 그가 쓴 책은 번역서와 공저까지 포함하면 700권에 달한다.

4
글쓰기 중독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1분에 90단어씩, 하루 열두 시간 글을 썼다. 거의 휴가를 떠난 일도 없는 그는 슬럼프를 경험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살아갈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쩌시겠습니까?”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타자기를 더 빨리 두드려야지.” 그는 400권 이상의 책을 썼다.


스물일곱에 데뷔하여 매년 한 편 이상의 장편소설을 써내는 미야베 미유키는 작가생활 20여 년 동안 딱 한 번 슬럼프를 겪었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단편소설을 하나씩 쓰다 보니 슬럼프가 사라져 버렸어요.”

6
글이란 그리 쉬이 써지는 것이 아니니 한 줄도 못 쓰는 날도 있다. 쓰고 싶은데 도무지 제대로 써지지 않아 짜증이 나서 내던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설령 한 줄도 못 쓴다 해도 책상 앞에 앉아 있으라고 레이먼드 챈들러는 말한다. 아무튼 책상 앞에서 두 시간을 꼼짝 말고 있으라고. 그동안 어떻게든 글을 쓰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멍하니 있어도 된다. 대신 딴청을 피워서는 안 된다. 책을 읽거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고양이와 놀거나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눠서도 안 된다. 쓰고 싶어지면 언제든 쓸 만한 태세를 갖추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한들 쓸 때와 똑같이 집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얘기다. 그러고 있다 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날이 온다. 이것이 챈들러 방식이다.

덧)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읽어두면 도움이 될 만한 책.
1) 레이먼드 챈들러, http://goo.gl/mqeejl
2) 거장처럼 써라, http://goo.gl/aZqTxf
3) 마쓰모토 세이초, http://goo.gl/cSy6or
4) 복안의 영상, http://goo.gl/hf4KHM
5) 미야베 미유키, http://goo.gl/zGDk5u

 

         북스피어 페북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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