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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9

***매일매일 2천자 쓰기

1.

어제 밤에 남편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나의 상황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 라디오방송 정기개편이 있었고
내 다음 순서에 나오던 연사는
다른 분야 연사로 교체되었다.
피디가 바뀌면 늘 있는 일이다.
 

 

나도 2000년 <내일은 푸른하늘>에서 영화소개하다가
둘째 출산 직전에
"애 낳고 쉬고 있으면 부를께"라는 
작가언니의 말을 믿었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부르지 않아서 잘렸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때 좀 이상하긴 했었다.
큰애 낳을 때에는 한달 분을 미리 녹음했었으니까.

 

그 후 다른 프로그램의 작가언니가 픽업해주셔서
지금까지 열심히 방송을 하고 있다.
언니는 내가 녹음하는 동안 아기 한별을 봐주기도 하심.
보은해야할 분. 
그래도 개편 때에는 늘 조마조마하다. 
말이 빠르고 발음이 좋지 않은 내가
근근히 살아남는 건 작가언니의 배려 덕분인 듯.

 

 

잡지글 연재도 연말이 되면 늘 전화를 받는다.
"계속 쓸 수 있냐?"는 말이
진정 계속 쓰겠냐는 말인지
그정도 했으니 이제 저희가 교체를 해도 될까요,
라고 묻는 말인지
세심하고 예민하게 살펴야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내게 "당신은 생각이 너무 많다"
라고 했었다.
그냥 단어 그대로 문장 그대로 이해하라고 했다.
어떤 한 사건에 대해서 너무 골똘히 생각하면서
나의 해석과 추측을 집어넣음으로써
현실 자체를 왜곡되게 인식한다는 거다.
그 사람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도 예전엔 아주 단순하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늘 잘릴지 모르는 일 때문에 조마조마해하는 상태, 
그러니까

 

 

개편 다음에도 내가 방송을 할 수 있을까,
다음 회에도 기고하는 잡지사에서 나에게 연락할 것인가,
다음 학기에도 수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와 같은 물음을 2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오히려 예민하지 않아서 
깊이 상처받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됨.
잔잔한 근심과 고민으로 지뢰를 피하듯 조심하는 게
예상치못한 폭탄을 맞는 것보다는 낫다.

 

아픈 남편은 딴 방으로 가고
양 팔에 아이들을 안고 자려는데
막내가 묻는다.
둘째와 막내은 늘 우리의 대화를, 행동을 
유심히 듣고 깊게 생각한다.
나는 어제 써야할 글이 세 개 있었고
그런데 아픈 남편, 아픈 막내 때문에 글을 다 쓰지 못한 상태였다.

 

늘 마감에 허덕이면서 걱정하고 근심하니 
아이들이 "엄마, 글 다 썼어?"라고 묻는 게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다.

 

 

막내:엄마, 엄마는 할 일이 많아서 잠도 못자고 그러는 게 좋아, 아니면 다 잘려서 할 일이 없어져서 엄마가 일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좋아?
나:잠 못 자고 걱정해도 할 일이 있는 게 좋아. 그렇게 일을 해야 일이 또 생기는 거거든. 하고 싶을 때만 일을 하면 할 일이 없어져. 벅차더라도 일을 해야 일이 또 생겨. 
막내:일을 해야 일이 생긴다는 게 뭔 말이야?

(잠시 침묵)

막내:엄마, 내가 한심해? 내가 이해성이 좀 떨어지지?
둘째:이해성이 아니라 이해력이야.
나:아니야. 엄마가 쉽게 설명하려고 잠깐 생각한 거야.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국에서 장애인이 나오는 영화를 소개하잖아. 그러면 그 방송 때문에 신문이나 잡지사에서 글을 써달라고 부탁이 오거든. 그게 일을 열심히 해야 일이 생긴다는 뜻이고,

 

엄마가 매주 있는 방송을 하기 싫어서 안해버리면 그 다음 주에는 방송국에서 엄마를 안 부르거든. 그러면 엄마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더 못하게 되는 거야. 열심히 일을 해야 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그런 뜻이야.

 

막내 알아들었을까 고민하며 열심히 설명하는데
둘째가 <좋아해줘>에 강하늘이 청각장애인으로 나온다는 것
그리고 <엑스맨>에 장애인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려줬다.

엑스맨은 벌써 했지, 했더니

엑스맨 시리즈는 여러 편인데
그거 다 소개하면 한달은 하겠다고 또 알려준다.

나:그러다가 잘리는 거야.
둘째: 그래? 이제 자자.

어젯밤 일용직 엄마에 대한 아이들과의 심도깊은 대화 끝!

 

 

2.

몇 주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내 뒤의 연사가 또 바뀌었기 때문.

저번에 밥 먹자는 제안을 거절해서인지

피디한테서 찬바람이 쌩쌩 분다.

그런 일로 잘리지는 않겠지...

 

 

3.

인천영상위원회에 제작기한 연장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함.

이젠 정말 앞뒤 안보고 죽도록 달려야함.

데이터 소실은 의욕 소실을 불러오는데

이젠 마음상태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졌다.

정말 죽도록....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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