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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죽박죽 꿈

1.

과 아이들을 인솔해서 어린이공원같은 데로 소풍을 갔다.

애들은 다 어디선가 놀고

JH교수님과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있는데

교수님이 최근에 아이를 낳은 게 기억나서

"잠 잘 자나요?" 물었더니

잘 잔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기념품 가게에서 수묵화 같은 걸 한 장 사주심.

자세히 보니 그 수묵화는 골동품 장식장 같은 데에 붙여서 감상하는 게 풀세트인데

교수님은 내게 그림만 사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풀세트를 산 교수님은 장식장에 그림을 붙이고 있었고

나는 그걸 보면서 '저걸 어떻게 들고 가려고. 차에도 안들어갈텐데' 

하고 혼자 걱정함.

선물로 받은 내 그림을 보니 동그랗게 말려져있었고

한 쪽이 조금 찢겨있었다.

 

2.

누군가의 집에 온 가족이 초대를 받아갔다.

그런데 정식 초대가 아니라 어딘가에 갔다가 갑작스레 하룻밤 신세지게 된 상황.

산 속에 자리잡은 그 집은 무척 컸다.

아침이 되었는데도 조용했다.

집주인들은 원래 아침 식사는 안한다고 했다.(현실에서 그 사람은 아침은 꼭 먹으라고 했는데!!)

늘 바빴던 그 사람의 파트너는 곤히 자고 있고

그 사람은 파트너가 깰세라 조심조심하며 침대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위해 조용조용히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3. 

고등학교 교실같은 곳에서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 기획서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말을 안 듣고 너무 떠들었다. (대학생애들인데!!!!)

그 중 가장 떠드는 아이에게 

"너는 50분동안 우리의 시간을 방해했어.

우리가 30명이니 50곱하기 30을 해보자"

하면서 칠판에 수식을 썼는데

갑자기 숫자가 막 늘어나더니 계산이 잘 안됐다.

'아! 휴대폰이 있지!'

하고 휴대전화 계산기에 복잡한 숫자를 다 쳐넣고서 엔터를 눌렀다.

엔터를 누르면 칠판 앞에 있는 기계가 작동하면서 액정에 답이 뜨는데

그 기계의 구조를 설명하자면

떡볶기 통 같은 게 있고 떡들이 부딪치는 수만큼 답이 뜨는 기계였다.

그런데 내가 입력한 숫자가 너무 큰 숫자라서

엔터를 누르는 순간 떡들이 다 튀어나와버렸다.

 

목이 찢어져라 수업을 하면서

머릿속에는 '아, 왜 이렇게 답이 안나오는 거야'

이런 생각이 가득차서 좀 당황스러웠다.

내 학생 중에 변영주 감독님이 계셨는데....

변영주감독님이 나를 도와주고 싶어서

학생들에게 좀 앉으라고, 앞에 선생님 힘드신데 좀 말 좀 들으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드디어 수업시간이 끝나가고 있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러분, 이 수업은 기획안 제출과 피칭으로 최종 평가를 합니다.

2주 후에 최종 평가니 다음 주까지 개요서 및 기획서를 내시면 피드백 드리겠습니다.

알렌 로젠탈의 '다큐멘터리 제작론', 마이클 래비거의 '다큐멘터리 만들기'

이 두 권을 참고하셔서 개요서 틀을 짜보세요.

메일로 개요서 틀 주시면 피드백 드립니다.

좀더 진행이 많이 된 학생은 기획서를 곧바로 제출하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디벨롭된 자료를 보내주면 그만큼 양질의 피드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고서 수업을 끝냄.

이미 계산이 틀려서 당황스런 나는 마지막에는 좀더 카리스마있게 수업을 정리하고 싶어서

저 말을 한 번도 더듬지 않고 하고 싶어서 머리를 빠르게 굴림.(그래서 정확히 기억함!)

두 책의 제목을 얘기하는데 셰일라 커런 버너드의 '다큐멘터리 스토리텔링'이라는 책 제목이

자꾸 튀어나올 것같아서 조마조마함.(그건 다음 학기 추천 도서임)

 

3-1

그렇게 한숨 돌리고 다른 교실로 갔다.

그 교실에서는 푸른영상 회식준비가 한창이었다.

"얘들아 8시 아니었니? 왜 이렇게 빨리 준비해?

 나 수업 끝나자마자 와서 같이 준비하려고 했는데 

 먼저 준비하고 있으니까 미안하다"

하니 후배들이 "아니어요. 6시예요" 했다.

어? D선배가 수업때문에 8시라고 하지 않았어?

하니 "아니오. 6시에  먼저 시작하래요" 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열심히 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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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해설가는 꿈에서 깨는 순간 떠오르는 것들이 꿈의 이유이다,

그러니 직관적으로,  자신을 믿어라,라고 말해주었었다

 

1.

JH교수님과는 작년에 영화들을 교환하면서 약간 친해졌고

최근에 출산선물로 <아이들> DVD를 선물하면서 약간 더 친해진 것같다.

정규직 교수가 새로 오면 나같은 시간강사들은 좀 불안해짐.

실제로 JH교수님 오신 다음에

워크숍 수업을 진행하던 내 친구 MOON이 그만두게 되었다.

JH교수님이 워크숍을 맡게 되었기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남았다. 

원래 D선배의 학생을 함께 가르쳤었는데

JH교수의 합류로 내가 필요없어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선배가 안식년에 들어갔고

D선배가 쉬는 1년 동안 JH교수님이 우리의 수업을 담당하게 되심.

그리고 작년에 D선배가 복귀하고  

동시에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지금은 셋이서 그 수업을 맡고있는 상황.

 

처음 JH 교수님이 오셨을 때 좀 긴장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다정하고 무척 좋으신 분이었음.

아이들에 대해서도 역할분담이 잘된다.

내가 기초를 닦는 역할을 해서 일정정도의 틀을 만들어놓으면

JH교수님이 쑥쑥 끌어올려주신다.

지금은 안정적이다.

그래도 불안한 게

D선배가 곧있으면 정년인데

또 새로운 교수가 오면 나는 일자리를 잃을 것같다. (아마 백프일 걸)

아마 1~2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다.

요즘엔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꾸 이런 말을 한다.

새로운 교수가 오면 일자리를 잃겠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작업에 전념할 수 있잖아.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기뻐할 수있는 마음을 갖자.....라고.

그렇게 생각하자고 주문을 외우듯이 자꾸자꾸 내게 말한다.

그래도 쓸쓸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이 학교를 참 좋아하고 학생들을 참 좋아한다.

지난 2년동안 시민들과 다큐멘터리 제작 실습을 하면서

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내게 큰 자극이 되는지

비로소 실감했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똑똑하고 빛난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보면 마음밭 깊숙이 묻혀있던

내 안의 영민함과 반짝거림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의연하고 자연스럽게 변화를 준비하자.

JH교수는 풀세트로 골동품 장식장을 꾸미는데

내겐 그림밖에 없다. 가끔씩 꺼내보는 그림 밖에.

그는 정교수이고 나는 시간강사니까 그런 듯.

 

2.

꿈을 꾸는동안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파트너가 있고 함께 편안하고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내게도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는 왜 이 사람을 이제사 만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과 나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20대를 보냈다.

그 때 우리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또다른 나를 만났다는 생각에 기뻤을까?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각자의 사람들과 함께 꾸려왔고

그것을 되돌릴 수도, 가로지를 수도 없다.

친밀하고 배타적인 관계가 될 수는 없지만

이제라도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것이다.

이 만남이 끝나고 나면

이 안타까움도 곧 사라지겠지.

 

3.

금요일은 정말 바빴다.

11시 35분에 중2학생들과 진행하는 진로 콘서트가 있었고

2시 30분부터 강화에서 촬영이 있었다.

그리고 6시에 시작해서 7시 25분에 끝나는

노인영화제 한 섹션의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해야 했다.

진로콘서트는 이번에 세번째였는데 선생님들이 아무도 없었다.

첫번째콘서트는 교장선생님이 진행하셨고 각반에서 뽑힌 아이들이 질문을 준비해서

말 그대로 콘서트처럼 진행되었다.

두번째콘서트는 교감선생님이 옆에 있어주셨고 나 혼자 다 했다.

세번째 콘서트는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역시 나 혼자 다 했다.

첫번째 때에는 아이들이 떠들다가  교장선생님께 혼나서 너무 조용했다.

두번째가 제일 좋았던 듯. 선생님이 계시니 아이들이 떠들더라도 집중은 했다.

금요일 세번째 콘서트는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은 막 돌아다니고 뒤를 보고 얘기하고....그랬다.

마이크를 썼는데도 목이 찢어질 듯 아픔.

그래도 오른쪽 앞에서 두번째 남자애 한 명이 어찌나 열심히 듣던지.

나중에 끝나고나서 너는 뭐하고 싶어? 했더니 "저는 수학이 재밌어요" 했다.

뉴타운의 혁신학교라서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았다.

케빈 카터의 사진을 안다. 그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도, 나중에 자살을 한 것도 안다.

강의대본을 준비하면서 중간중간 질문을 준비했는데 애들이 적절하게 호응을 해준다.

모두가 강의에 집중하는 건 아니지만 군데군데 그렇게 집중하고 호응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어렵게 어렵게 강의는 끝냈다. 

질의응답시간이 있었는데 늘 나오는 질문(돈은 잘 버냐?)이 또 나왔다.

마치는 시간이 12시 20분이었는데 12시 10분 쯤에 다 끝나버리고

아이들이 나가려고 해서 10분만 더 기다리라고 하면서

자꾸자꾸 시계를 보았는데

꿈 속  나도 자꾸자꾸 시계를 보면서

언제 끝나나 조바심을 쳤다. 

어쨌든 끝났다, 진로콘서트!

 

월요일부터는 소년원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아이들을 만난다.

아마도 비슷하거나 더 힘들거다.

그래도 만날 수 있다는 게 고마운 거지.

예민이 나오는 <인간극장>을 잊을 수 없다.

자기 돈 들여 소규모 콘서트를 하는 이유를 예민은 이렇게 말한다.

"탄광촌에 갔다가 거기 사는 아이들 중에 우편배달부가 꿈인 아이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일상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아보이는 직업이 그거였나보다.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나를 만나서 새로운 꿈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올 초, 영상대안학교에 갔을 때에도

파주의 아이들을 만날 때에도

나는 예민의 저 말을 자꾸 떠올린다.

내게는 여러 교육 중 하나일 지라도

나를 만난 누군가가 나를 통해서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면

나는 아주 기쁠거다.

몇 년 전, 동국대 영화과 학생이 나를 찾아와서

"중학교 때 <친구-나는 행복하다2>를 보고 나서 다큐멘터리감독이 되기로 했어요"

라는 말을 했을 때 무척 기뻤던 적도 있었으니까 가능성이 없진  않다. 

 

독립다큐멘터리감독이란 존재를 모르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TV출연화면을 먼저 보여준다. (이건 진로콘서트를 부탁한  교장선생님이 제안하신 거)

어리고 순진한 애들이라 확실히 효과가 있다.

그렇게 적절하게 유명세(?!! 하하;;;;)를 활용하면서 강의를 하다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하고.....마음은 편치 않다.

그래도 이 일이 돈은 못 벌어도 나름의 의미는 있다는 것을

처음 만나서  한 시간을 못 보낼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타협하고 응용하며 나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다.

만날 것이다.

 

3-1

다음 주 수요일, 오랜만에 푸른영상엘 간다.

사무실을 정리하겠다는 JOON을 설득하러 간다.

가능할까.........

모르지. 그저 최선을 다할 뿐.

(4046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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