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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거리

 

 

 

 

조직은 너무 작아서인지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을 조직화했다.

89학번부터 세개로 분과가 되었고 나, m, y는 그 세 개 과의 여학생들이었다.

내 이름 첫 자와, y의 이름 두 번째자를 합하면 m의 이름이었으므로

단과대 사람들은 우리 세 사람의 이름을 헷갈려했다.

이름을 헷갈려할만큼 우리 셋은 비슷한 모습으로 열심히 활동을 했던 것같다.

밖에서 봤을 땐 같은 조직이었으니 비슷한 모습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셋은 좀 달랐다. 

 

y의 아버지는 고위공무원이었다던가.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자취를 시작한 집이 2DK였음.

집들이를 하고 나왔는데

술에 취한 m이 아파트단지의 화단에 쪼그려앉아 오줌을 싸며

욕을 했다.

"애 혼자 사는 집이 온 식구가 사는 우리집보다 더 커."

 

y는 감성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학시절의 우리에게 풍부한 감성은 독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랑 친해질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애가 싫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쉼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후배들 세미나 간사를 하고 집행부활동을 하느라

나는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아니, 마음을 들여다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때의 나에겐 마음같은 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쉼없이 걸었고 쉼없이 움직였고 쉼없이 일을 했다.

틈이 나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나 '닥터 노먼 베쑨'이나 '붉은 바위'같은 책을 읽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y는 늘 힘들어했다.

같은 조직에서 활동하던 남친이 군대에 간 후에는

내가 지도하던 세미나팀의 남자애와 사귀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반응은 그 애를 차갑게 대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차갑게 대하려 노력을 해도 y는 눈치를 채지 못한 건지

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밥을 먹자고 하고 차를 마시자 했다.

 

m은, 재수를 해서 나보다 두 살이 많은 m은

우리 언니와 이름이 같은 m은

늘 나를 챙겨주었다.

학교와 교회만 다니다 대학에 들어온 나에게는

동년배들의 음악도, 옷도, 농담도 다 낯설었다.

그런 나에게 하나하나 알려주던 사람이 m이었다.

m은 우리학교 법대 선배와 사귀었는데

그 집안이 참 대단했는지

m의 뒷조사를 다 해서

탐정같은 사람들이 과 사무실을 찾기도 했다.

 

m의 아버지는 삼양동 재개발 지역의 한 집에 그냥 정물처럼 앉아있다고 했다.

m은 "우리 아버지는 말이 없으셔"라고 해서 그냥 그런 걸로 알았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얘기로는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던가.

m의 엄마는 도박이며 사기며 뭐 그런 일들을 많이 해서

m이 번 돈도 다 가져가곤 했다고 한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법대 선배네 집에서는 두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무실에 사람들을 보내어 탐문을 하고  감시를 하기도 했다한다.

나중에 m은 선배와 애정의 도피때문인지 노동현장 투신때문인지 울산으로 내려갔다.

29살에 다시 만난 m은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으러 캐나다에 있는 언니에게 가려고 했는데

법대 선배네 집에서 주민등록을 말소 시켜서 출국을 못했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들려주었다.

 

 

이 노래는 m의 자취방에서 들었다.

외풍이 심한 구옥을 얻고서 m은 무척 흡족해하며 집 자랑을 했었다.

"이건 흙집이라 집이 호흡을 한대"

그 애의 집에 자주 갔었을까.

그 애의 방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었던 기억은 난다. 

 

나는 3학년때부터 외부활동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과 세미나를 하고 조직의 일을 논의하고

그리고 다른 학교 사람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가명을 쓰며 활동을 했다.

그 시간이 나를 변하게 했을 거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들과는 개인적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운동을 시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나 뭐 그런 것보다 더 큰 이유는

마음을 나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누구에게도 마음을 보이지 않고 살아야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같다.

 

그래도 학교에 있을 때엔

싫든, 위로가 되든

나의 이름을 알고 나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받으며 살았던 것같다.

그 시간 안에 있던

푸른하늘의 이 노래. (149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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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글 쓰는 게 힘들다.

더 깊이 내려가지 않으려하는 나를 느낌.

아마도...... 이 분류는 곧 없어질 것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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