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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이 되려다간 '과로사'한다

직장의 신이 되려다간 '과로사'한다

 
드라마 <직장의 신>과 관련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직장'의 재현을 둘러싼 문제점들 중 다른 문제들보다 그러한 재현이 집단적 노사관계라는 가능성의 영역을 지워버린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 바 있는데, 그렇다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연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체현한 '자발적' 비정규직"의 모습이 보기 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직장 내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한 설정이라고는 하나, '미스 김'의 당당한 존재는 현실에서 그녀처럼 살다가는 '과로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과잉노동과 관련하여 일 중독이나 장시간 노동 문제에 관한 논의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들은 고용의 질 또는 '일 다운 일(decent work)'의 추구라는 문제의식에서부터 '노동사회로부터의 탈피'라는 문제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시도되고 있다. 한편, 한국과 유사헤게 장시간 노동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일본의 경우, 장시간 노동체제 일반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과로사'에 대한 문제제기가 두드러진다. 과잉노동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은 단순히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가장 근본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생애주기에 따른 비교적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의 죽음이란 죽은 자와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 즉 사회적 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는 사건이다. 더욱이 한 개인을 '노동자'로 본다면 그의 죽음은 노동-자본 관계를 떠나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람들의 대응도 마찬가지이다.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대응에도 죽음이라는 한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한 개별적 접근이 있는가 하면, 그 죽음의 배경에 놓인 사회관계에 대해 보다 폭넓게 접근하는 집단적 접근이 있다.

 

일본의 경우 과로사 문제는 일찍부터 제기되어서 1970-80년대부터 몇몇 사례들이 과로사 인정을 받고 그에 따라 유족들이 보상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것이 개별적 접근이었다면 이후 발전해 온 과로사방지법 제정운동은 그러한 사회적 문제의식과 대응이 집단적 접근으로 확장된 결과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노동자의 죽음은 셀 수 없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여전히 수많은 중공업 사업장에서 계속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대표적으로 조선이나 철강 등의 산업부문에서 산재 및 산재사망이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며 "위험은 물론 죽음까지 하청된다"는 문제제기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노동-자본 관계에 관련된 노동자의 죽음으로는 정리해고를 배경으로 한 노동자 자살이 2000년대 초반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를 비롯하여 최근의 쌍용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싸운 노동조합에 대한 기업측의 손배가압류 등을 통한 탄압이 노동자들의 절망을 더욱 깊게 만들어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생산직 여성노동자들의 돌연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무노조 기업인 삼성에서 노동조합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문제제기와 대응이 이루어져 '반올림'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이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한편으로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떠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처럼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장시간 노동문화 속에서 과잉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이 '과로사'라는 형태로 법적 대응이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과로사 문제가 사회과학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일본에서는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이 사회운동과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과로사'라는 용어 또는 개념으로 비로소 포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과로로 인한 돌연사와 같은 죽음이 없을 리 없다. 오히려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사실 한국의 경우가 더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OECD 노동통계만 보더라도 한국은 일본을 일찌감치 제치고 가장 노동시간이 긴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논의가 없을까?

 

거칠게나마 추론해 보자면 ... 한국에서는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기업이나 국가를 대상으로 한 개인이 '권리'나 '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고, 이처럼 법적 소송을 중심으로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기회의 평등 중심의 자유주의가 폭넓게 자리잡지도 못했으며, 어느 정도는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민주화 이후에도 그러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조직된 노동이나 조직된 시민사회 정도일텐데, 가시적인 재해가 아니라 입증이 어려우며 특히 화이트칼라 직무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과로사가 사회적인 문제로 제기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그간 대기업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 중심이었다. 게다가 워낙 화이트칼라와 생산직 간의 임금격차가 컸다. 여기에 경제위기 이후 정리해고와 고용불안이 문제가 되면서 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확보로 연결짓는 논의가 제기되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 사업장들을 중심으로 교대체 개편 논의가 제기되어 최근 피크를 이루고 있으나, 아직까지 '시간기획'의 문제가 중심적으로 제기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정교한 논의를 위해서는, 먼저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장시간 노동관행을 보다 세부적인 측면 및 요인들로 분해하여 비교 분석해 보고, 그것을 넘어 한국에서는 왜 과잉노동으로 인한 죽음이 포착되지 못하고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 못한가를 탐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장시간 노동자체는 물론, '일'의 반대 개념으로 규정되곤 하는 여가, 휴가, 생활 등을 둘러싼 이른바 '시간의 정치'에 대한 고민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일과 여가(휴가, 생활) 간의 이분법 자체가 무엇을 은폐하고 있는지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장시간 노동 문제 외에도 개별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와 대응, 달리 말하면 '죽음의 정치' 또한 다른 차원에서 일본의 '과로사'를 둘러싼 정치와의 비교 분석의 대상이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중요한 문제이다.

 

 

 

덧붙임: 한국과 일본의 장시간 노동 연구

 

장시간 노동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노동시간 문제를 다룬 논의는 특히 경제위기 직후인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급증하였는데, 당시의 논의들은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이슈이기도 했던 정리해고 도입 이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후 장시간 노동의 주체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주목할 만한 논의들로 '일 중독'의 문제를 제기한 강수돌의 <일 중독 벗어나기>(2007)을 비롯하여 김왕배의 연구 등이 있다. 장시간 노동문화를 다룬 보다 최근의 논의로는 김영선의 <잃어버린 10일>(2011)이 있다. 그는 흥미롭게도 '휴가정치'를 통해, 그것도 경영담론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장시간 노동문화의 핵심을 꿰뚫는다. 그의 <과로사회>가 곧 출간될 예정이라 하니 매우 기대된다.

 

일본의 경우 장시간 노동, 과잉노동, 과로사 등에 대한 최근의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사회정책학회가 엮은 <과잉노동: 노동-생활시간의 사회정책>(2006), 쿠마자와 마코토의 <과로로 쓰러지다: 과로사와 과로자살의 노동사>(2010), 모리오카 코지의 <과로사가 없는 사회를>(2012)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간사이대학 교수인 모리오카 코지는 꾸준히 과잉노동과 과로사 문제를 연구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며, 항상 현장 및 운동과의 끈을 놓지 않는 모범적인 연구자이기도 하다. 쿠마자와 마코토 또한 일찍이 <일본의 노동자상(像)>(1993)을 통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이 책은 미국의 탁월한 일본 연구자인 앤드루 고든에 의해 1996년에 Portraits of the Japanese Workplace라는 제목으로 영역 소개되었다.), 노동문제와 노동운동을 폭넓게 연구하는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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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을 둘러싼 논의들의 불편함

 

어제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직장의 신>이 직장 내 권력관계를 잘 다루고 있다는 그분의 말씀에 입이 근지러워 한 마디 했더랬다. 한편으론 참 불편하다고. <직장의 신>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물론 긍정적인 현상이다. 매회마다 드라마 속 사건이나 스토리가 대중적 관심사로 부각하면서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들은 그에 관한 의견을 묻는 언론의 인터뷰 전화로 바빠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한 선생님의 말씀대로 <직장의 신>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주관성과 직장 내 인간관계를 잘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장의 신>은 그 설정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들의 지형에 있어서도 많은 불편함을 준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연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체현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라니. 여성 비정규직 일자리 선택의 자발성이라는 게 어느 정도 강제된 자발성이거나 체념적 자발성이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대다수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직무 성격이 주변적이거나, 핵심적이더라도 보상 수준이 낮아도 너무 낮다. 그런 건 다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직장의 신>을 모두 챙겨보지는 않았고, 원작인 <파견의 품격>은 몇년 전 보았던 기억이 있긴 해도 한국판과 일정 부분 다르다고 하니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두 드라마 모두 작업장 내 사회관계를 '개별적 근로관계'에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이 가장 불편하다.

 

변화한 고용체제 하에서의 직장 내 인간관계를 잘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효과는 직장 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하고 보장되어야 하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조합을 등장시켜 기업뿐만 아니라 이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한다거나 '정규직 이기주의'를 비난할지라도, 작업장 내 사회관계의 핵심 축이 집단적 관계라는 점이 드러난다면, <직장의 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의 방향도 달라졌을 거라 본다. 물론 테레비 드라마 가운데 노동조합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지만 말이다. 이 모든 배경에는 한국 자본의 극렬한 반노조주의와, 특히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화 시도에 대한 강도 높은 이념공세 및 물리적 탄압이 자리 잡고 있다.

 

어제 저녁 한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다른 누군가는 나의 답답함과 불편함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긁어 주는 칼럼을 쓰고 있었던 듯하다. 천정환 교수는 "직장의 신은 어디 있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타당하게도 진정한 직장의 신은 노동조합이라 지적하며, "2012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7%, 정규직은 14%를 기록했다 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통이 이 낮은 수치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고 결론짓는다.

 

* 덧붙이자면 ... 보다 정확히 말해 그 '선생님'은 <직장의 신>이 직장 내에서의 복잡하게 얽힌 '갑을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했다. 물론 동의하지만, '갑을관계'라는 말 또한 불편하다. 요즘 어디서든 '갑'과 '을'이라는 말을 부쩍 많이 쓰는데, '직장생활'에 관한 한 이런 표현이 좀 자제되었으면 한다. 안그래도 고용관계에 자꾸 민법상 계약관계 개념이 끼어들어와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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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직장의 신은 어디 있나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한국일보 2013년 5월 7일

 

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다 인기 높은 웹툰 <미생>은 인턴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장그래를 비롯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은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인턴일 뿐인데, '스펙' 뿐 아니라 벌써 대기업이 자기들 정규직사원에게 요구하는 마인드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그러려고 분투한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지, 또 <미생>이 그리는 회사가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다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생겨난 인턴이라는 제도가 싸고 편하게 젊은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착취의 명목을 '산학협동'이니 '스펙'이니 '현장실습'이니 치장하지만 듣기 좋은 허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런 현실을 바꾸지 못할 뿐이고, 모든 '절대 갑(甲)'의 자리를 자본과 고용주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바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고생스런 인턴 생활을 몇 개월씩 하고 그냥 '버려진' 대학생들의 실화를 나도 여러 번 들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 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최근 편의점 학원 미용실 등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73%가 최저임금 4,860원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시간외수당은 꿈도 못 꾼다고 응답했다.(노컷뉴스 2013.4.30) 청소년이나 학생들을 착취하고 인격을 침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관행과 일상으로 만든 이 문화는 죄가 많다. 이런 일은 내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학 조교들의 상당수는 사무직 풀타임 노동자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지만, 아주 싼 임금을 받는다. 그 임금은 대개 장학금 명목으로 되어 있고 신분을 '학생'으로 분류해두었기에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문제제기하거나 해결책을 찾고 싶지만, 젊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업계에서 찍힐까봐"이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순진한 그들은 고용주나 어른들의 엄포나 술수에도 쉽게 진다. 기성세대의 죄가 정말 크다. 나 또한 공범인지 모른다. 이 사회가 누리는 번영은 여전히 부끄러운 갈취와 억압의 문화 위에 구축돼 있는 것이다. '싸움의 철학'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누가 대신 싸워주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실에서는 <직장의 신> '미스김씨'가 없다. '미스김'은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사실 속도 깊은 '진짜 동료'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나설 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까지도 해결해준다. 그야말로 그녀는 '직장인'의 신이다. 이 인기 드라마는 잘 된 드라마의 원리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 같다. 디테일이 살아있고 '현실'을 반영한다. 그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원망을 담아내고 위로한다. 그러나 '레알' 세계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며 기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초과근무 정리해고 회식 시간외수당 생리휴가 등 노동자들이 늘 맞닥뜨리는 현실과 차별 전반을 문제 삼고 시원한 멘트를 날려주기는 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말 못한다.

 

현실에서 '미스김' 같은 '직장인의 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대로 된 노조뿐일 텐데, 많은 사람들은 노조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을'들이 노조라는 미스김을 동료를 두지 못하는 것은, 권력자와 사장님들이 노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7%, 정규직은 14%를 기록했다 한다. 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통이 이 낮은 수치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각고의 노력 끝에 청년유니온이 드디어 전국 단위 법내 노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을 주된 가입대상으로 하는 청년유니온 같은 노조가 30개, 50개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또 거기 강사나 조교들이 대거 가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10,20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과 대학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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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그곳에 있던 작은 ‘희망’ : 1985년 부산 공단지역 노동자 투쟁

이미 그곳에 있던 작은 ‘희망’ : 1985년 부산 공단지역 노동자 투쟁

 


노동자역사 한내 뉴스레터 52호
2013년 4월 <이 달의 역사> 기고글

 


최근 들어 1985년은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그 기억의 중심에는 대우자동차 투쟁과 구로동맹파업이 놓여져 있다. 1980년대 초반에 걸쳐 군사정권에 대항하여 이루어진 학생운동과 노동법 개정투쟁은 1984년 들어 이른바 '유화 국면'을 맞이하였고, 이에 따라 민주노조운동은 신규노조 결성 및 노동쟁의의 급증이라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듬해 4월에는 구로지역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공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곧이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였다. 뒤이어 6월에는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구로동맹파업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이 시기의 민주노조운동은 기업 단위를 넘어서 지역 수준에서의 연대 투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 들어 노동조합운동이 현장은 물론 전국 수준에서도 구심점의 '공동화' 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다시금 많은 이들이 '지역'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1985년의 경험은 재발견되어야 할 전통으로서 여전히 중요하다. 이 시기의 민주노조운동에서 새롭게 발견되어야 할 것은 그 내용뿐만이 아니라, 이 시기의 투쟁들이 구로공단이나 인천지역에 국한된 특수한 경험이 아닌, 매우 광범위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5년 4월 부산 지역의 노조결성 및 노조민주화 투쟁, 같은해 8월 성남과 안양의 공단지역 연대투쟁 등이다.

 

이들 중 부산 지역은 식민지 시기 공업화를 거치며 해방 이후로도 수도권 지역과 더불어 핵심 공업지역이었다. 1985년 당시 약350만명의 인구 가운데 제조업 노동자가 35만여명에 달하여 동남권 공업지역의 중심을 이룩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35만여명 가운데 약3분의 1이 사상공단에 집중되어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간헐적으로나마 계속되었다. 1980년 4월 동국제강 노동자들의 투쟁 이후, 1983년에는 금성알프스와 대우정밀 등에서 노조결성 시도가 있었다. 1984년 6월에는 직전에 일어났던 대구지역 택시 파업을 뒤이어 택시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1985년 봄, 노동자 투쟁의 물결은 부산 곳곳의 공단지역으로 이어졌다. 물론 부산 지역 노동자 투쟁은 서노련이나 인노련과 같은 조직을 남기지 못하였고, 이에 따라 1987년과 이후의 민주노조운동으로 그 성과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 투쟁은 지역적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집합적 경험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이후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부산 지역의 노동조합 결성 및 노조민주화 투쟁의 다양한 사례들 가운데, 특히 부산 지역 민주노조운동이 미약하나마 기업수준을 넘어선 연대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사례로 1985년 4월 세화상사와 삼도물산의 해고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신민당사 농성을 들 수 있다. 세화상사 해고자 7명과 삼도물산 해고자 3명은 1985년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신민당 박찬종 의원 사무실을 점거하여 해고자 복직과 최저임금 월13만원 보장, 민주노조 인정, 노동부 장관의 사과, 노동부 장관 및 부산시장 면담 등의 요구와 더불어 상급단체인 화학연맹과 섬유연맹에 대한 규탄 메시지를 제기하였다. 세화상사와 삼도물산의 해고노동자들은 당시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부상하였던 신민당의 지구당 당사에서 진행된 이 농성을 통해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였고, 학생운동 및 지역 사회운동과의 연대투쟁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이 투쟁은 성공을 거두지도, 광범위한 대중투쟁으로 확산되지도 못하였으나, 이후 지역 내 곳곳의 사업장에서 여론을 환기하고 일상적 투쟁을 자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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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부산 지역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전설의 여공>(박지선 감독, 2011)의 주인공들.
      출처: http://meditory.tistory.com/

 

세화상사의 경우 1985년 초 사측의 강제저축에 따른 임금수령액 감소를 계기로,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부당해고 철회 요구를 중심으로 2월에 노동조합을 설립하였으나 나흘 뒤 설립신고서가 반려되고 사측의 탄압이 계속되며 핵심 간부들이 해고되었다. 이후 신민당사 농성 등을 통해 일부 간부들은 복직되었으나, 민주노조 결성은 성공에 이르지 못하였다. 삼도물산 영도공장의 경우 1970년대 공장새마을운동을 배경으로 설립되어 가부장적 통제를 발전시킨 업체이다. 1984년 9월, 몇몇 노동자들이 인근 사업장의 노동조합 간부들과 만나면서 노동조합 결성을 모색한 결과, 노동조합 결성이 시도되었다. 이에 사측은 조합원들의 개별면담과 방문을 통해 노조탈퇴를 종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 가운데 삼도물산 부설 영도 남여상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게는 제적 처분의 위협을 가하기도 하였다. 결국 지역사회 수준으로 문제가 확산되자 10월에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노조인정 직후부터 노조활동에 대한 사측의 탄압은 본격화되었다. 1985년에 접어들면서 주요 간부들에 대한 일방적 부서이동, 3월에는 간부 3명에 대해 해고통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배경 하에 세화상사와 삼도물산 노동자들은 공동투쟁을 모색했던 것이다.

 

그밖에도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이 빈발하였다. 1985년 3월부터 4월 초에 걸쳐 사상공단 내 최대 섬유업체인 국보직물에서는 체불임금 확보 투쟁이 이루어졌고, 5월 중순에는 나이키 신발을 주문생산하던 풍영에서 '30분 임금 확보 투쟁'이 일어났다. 풍영 노동자들은 "우리의 30분을 돌려달라"는 구호 아래 하루 30분간의 초과수당 미지급분에 대한 지급과 더불어 충분한 점심시간 확보를 요구하며 투쟁하였다.

 

이 시기 투쟁의 요구조건들은 비슷한 시기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던 투쟁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부산의 공단지역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특히 신발 산업과 섬유산업에 집중되어 있었고, 여성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았으며, 노동자 평균임금 수준도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작업장에서의 일상적 투쟁의 초점은 종종 부산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셰파드'(개)로 통했던 중간관리자들에 의해 ‘안전관리’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욕설, 구타, 폭행, 몸수색 등 인격적 모욕에 대한 반대였다. 노동시간 또한 주당 60시간을 넘어서며 부산 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긴 평균 노동시간을 보였다. 이에 따라 최소한의 식사 및 휴식시간의 확보에 대한 요구가 많았으며, 임금인상 요구와 더불어 "최소한 명절 때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수준의" 상여금에 대한 요구도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노동조합 조직률은 여타 지역에 비해 높았음에도 임금수준은 낮았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부산지역의 노동조합은 친기업적 한국노총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항운노조와 화학노조가 그 중심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민주노조운동 사례가 삼도물산과 세화상사였다. 두 사례 모두 한국노총 부산시협의회의 지원 아래 노조 결성이 시도되었으나, 어용화를 겪었던 사례들이다. 삼도물산은 1983년 8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나, 사측의 개입 아래 어용화되었고, 이후 노조민주화 투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세화상사의 경우 1985년 2월 노조결성을 시도하였으나 신고필증을 교부받지 못한 채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이 시기 투쟁들이 미약하나마 기업수준의 경제적 요구 중심의 투쟁을 넘어서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배경 또한 비슷한 시기 다른 지역 사례들과 유사성을 지닌다. 학출 노동자들의 활동과 종교단체의 지원, 당시 부산 지역에 10여곳 존재했던 노동야학의 역할, 여성노동자가 제조업 노동자들의 다수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여성평우회 등 여성운동의 역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도 다수의 사례에서 농성 노동자들이 <부산일보>를 방문하여 호소하였던 점 등을 통해 볼 때, 많은 노동자들이 지역 수준의 여론 형성에 민감하였음 또한 알 수 있다.

 

한편, 이 시기 집중적으로 발생한 신발산업 등 경공업 부문의 노동자 투쟁은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에 의해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산업이었던 신발산업은 산업공동화가 진행된 국내의 대표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산지역의 신발산업은 OEM 생산을 중심으로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여 발전을 이루어 왔으나, 1990년대 들어 중국 및 동남아 지역으로 생산이 이전되면서 공동화가 발생한 것이다. 신발산업이 주문하청생산을 벗어나지 못하고 쇠퇴하는 가운데 많은 노동자들에게 실업이라는 희생이 강요되었다.

 

이와 같은 산업구조조정의 여파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부산과 더불어 나이키 신발이나 조선소를 떠올리기보다는 말끔히 새단장을 한 해운대를 떠올린다. 그러나 부산 곳곳의 공단과 거리들은 이 시기 노동자 투쟁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2011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희망버스가 노동운동에, 나아가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면, 그것은 전국 곳곳에서 버스를 타고 온 희망들뿐만 아니라, 이미 그곳에 있던 희망이 되살아나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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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게 찰스 바클리의 농구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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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Finals Chicago vs Phoenix Game 6 (1993.6.20)

 

 

내게 단 한 명의 스포츠 스타를 꼽으라면, 그 대답은 20년째 찰스 바클리이다. 그는 농구란 무엇보다 즐거운 것이고, 즐거워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 올 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슬램 덩크> 라든지 <쿠로코의 농구> 같은 만화들을 보면서도 언제나 주인공들의 불타는 승부욕보다는, 무언가에 몰입하며 맞게 되는 '환희'에 나도 몰래 주먹을 꼭 쥐게 되곤 했고, 그럴 때마다 1992-93년 시즌 NBA에서의 피닉스 선즈의 플레이들을 떠올리곤 했던 것 같다.

 

1993년 6월 20일 열린 시카고 불스와 피닉스 선즈 NBA 파이널 6차전은 많은 농구팬들에게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히며, 특히 '마지막 3분'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가운데 내게 가장 잊을 수 없는 플레이는 화려한 에어워크나 더블 클러치도, 슬램 덩크나 3점슛도 아닌, 4쿼터 1분 4초를 남겨둔 상황에서의 피닉스 선즈의 찰스 바클리의 타임아웃이다. 4쿼터 1분 11초를 남겨둔 시점에서 댄 멀리가 던진 3점슛이 림을 맞고 튕겨나오자 찰스 바클리는 스코티 피펜과 호레이스 그랜트 사이를 뚫고 점프해 리바운드를 잡아낸다. 그러나 착지와 동시에 균형을 잃고 넘어지게 되었다. 바로 그 때, 찰스 바클리는 엎어진 상태에서 볼을 끌어안고 1미터쯤 앞에 있던 심판에게 눈을 맞추고 타임아웃을 불렀다.(사진)

 

바로 옆에 있던 시카고 불스의 필 잭슨 감독은 황당(?)해 소리를 질러댔고, 반면 초조해하던 폴 웨스트팔 감독은 호쾌한 탄성을 질렀다. 아쉽게도 이어진 플레이에서 케빈 존슨의 슛이 불발로 끝나며 찬스를 살리지는 못했다. 96대 98로 선즈가 앞서가던 상황에서 마지막 쿼터 3.9초를 남겨두고 작렬한 존 팩슨의 3점슛만 아니었다면 선즈가 이후 게임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인상적인 플레이였다. 결국 6차전 승리로 시카고 불스는 챔피언을 거머쥐었다.

 

1992-93 시즌 NBA 파이널 6차전은 수많은 명장면들을 쏟아냈지만, 그중에서도 코트에선 직설적인 화법과 더불어 악동의 면모를 보이면서도 항상 여유있고 신사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고, NBA의 전설로 남게 된 마이클 조던과 절대 단순비교를 허용치 않는 독특하고 재치있으면서도 뛰어난 플레이를 보인 "Sir Charles" 찰스 바클리가 적어도 나에겐 최고의 농구선수로 마음속에 새겨지게 된 경기였다. 뭐 '만약에' 라는 말만큼 공허한 말도 없지만, 만약에 당시 '걸어다니는 냉장고'라 불렸던 바클리가 10Kg만 체중을 감량했었더래도 '무관의 제왕'으로 물러나지는 않았을거야 ...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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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유행하는 이유

 

철지난 시편의 한 구절을 읊조리는 일 따위에 자본주의 운운하기가 참 민망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면 기업가 정신이 없는 인간은 상처받게 되어 있지 싶다.

'숨은 신'께서 그리 세상을 설계하셨더랬다. 혹은 우리의 욕망의 매개자가 그리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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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안산도시공사비정규직노조의 입장

[펌] 성명서: 12.4 안산시 비정규직 대책에 대한 안산도시공사비정규직노동조합의 입장

 

 

안산시는 졸속적인 생색내기용 비정규대책 말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하라!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노동자 무기계약 전환, 반인륜적인 3, 6(5), 12개월 계약제도 철폐, 정규직과 차별되는 특별휴가·공휴일 무급 등 차별제도 시정, 민간재위탁 반대, 정년보장을 통한 안정적인 일자리, 노조인정을 통한 열악한 근로조건 및 반봉건적인 노무관리 개선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일 안산시는 “상시·지속업무로 판단된 7개 직무 47명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다른 직무도 상시·지속 여부를 판단해 순차적으로 해당직무 종사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산도시공사에서 상시·지속업무인 상수도 검침업무를 담당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추운 겨울에 길거리로 내몰려 있는 상태에서 안산시가 이같은 방침을 낸 것은 ‘생색내기’용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일 서울시가 6,465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발표와 비교해도 그 규모와 내용에서도 졸속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우리 안산도시공사비정규직노동조합(이하·노조)은 안산시와 안산도시공사가 졸속적인 ‘생색내기’ 비정규직 대책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진심어린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안산시, 도시공사, 노조, 전문가, 지역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가칭) ‘안산시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이 문제를 풀어갈 것을 제안한다.

 

또한 우선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1. 안산시와 안산도시공사는 상시지속업무를 수행하는 1천여명 규모의

   안산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전환 대책을 수립하고

   해고된 조합원들을 우선 재고용하라.

 

2.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3, 5(6), 12개월 단위로 재계약하는

   반인권적인 계약체계를 철폐하라.

 

3. 정규직과 차별되는 수많은 불합리한 차별처우를 개선해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특별 휴가, 공휴일 무급휴가 제도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4. 우리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민간으로 재위탁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므로

   ‘민간재위탁’과 같은 형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꼼수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 안산시와 안산도시공사 비정규직노동자 중 비정규직보호법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고령자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고령자에 대해 정년을 보장하여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6. 시와 공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동조합과 교섭을 통해

   ‘열악한 근로조건 및 반봉건적인 노무관리제도’를 개선하라.

 


2012. 12. 10 안산도시공사 비정규직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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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질문과 답변

 

질문

 

스페인은 유럽연합 국가들 가운데에서도 비정규직, 특히 임시직 비율이 매우 높다. 그러나 파견노동 비율은 1% 미만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이는 유럽연합 평균과 유사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파견노동 비율이 이토록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스페인의 파견노동 규제에는 법적 규제와 단협체협약을 통한 규제가 있고, 그 가운데 단협 규제가 유의미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그 핵심은 정규직 의무고용 비율의 강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단협 규제가 임시직 비율에는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인가? 스페인의 임시직 비율은 여전히 높지만, 그 증가세가 억제되고 있고 그 핵심에는 정부의 사용사유 제한 재도입이 있다. 그렇다면 단협 규제의 임시직 활용에 대한 영향은 어떠한가?

 

답변
 
스페인에서 파견노동은 별도의 파견업 산별협약 체결을 통해 규제되는 반면, 임시직은 별도의 산별협약 체결이 없다. 따라서 직접고용 임시직의 경우 정규직과 동일한 단체협약이 적용되고, 동등처우가 보장될 뿐 임시직 사용에 대해 법적 규제 이상의 규제는 부과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정규직 의무고용 비율과 관련해서는 이미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그런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없고, 노동조합들은 임시직 비율이 높아지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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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섬뜩한 과학실험(?)

뉴라이트 신문인 뉴데일리에서 독특한 기사를 보았다.

어디서 라이브사이언스라는 미국의 B급 취향 신문의 기사를 보고 또 그걸

기사의 소재로 삼은 독특한(?) 흥미 위주 기사인데, 어쨋든 내용은 흥미롭다.

 

이 기사에서 소개되는 실험들을 보면

과학실험이라 해도 말이 '과학실험'이지 사실상 무기개발 실험들인데,

입자가속기를 통한 반물질 추출 시도 역시 최근의 힉스입자 발견,

마요라나 입자, 윔프 등을 둘러싼 관심 등으로 그 배경을 잊기

쉽지만, 원래는 냉전구도 하에서 핵무기 개발 경쟁이 자극한 것이었다.

아무튼 가장 흥미롭고도 황당한 실험은 '좀비 개' 실험인 듯하다.

 

기사가 언급하고 있는 라이브사이언스의 기사 원문은 여기

 

주로 양차대전을 전후로 이루어진 군사적 목적의 실험 외에,

20세기 초엽에도 지금 돌아보면 독특한 발상이라고 할 만한 실험들이

많이 행해진 듯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매우 진지했던 것 같다.

대기권 아래의 지구 표면은 물론 우주가 비어 있는 '공간(space)'이

아니라 '에테르(aether)'로 가득차 있다고 보고 그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

19세기 말 마이켈슨과 몰리의 실험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들의 실험에는 '빛'이 이용되었고, 이후 과학자들 사이의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에 관한 논의 속에서 종종 이 실험이

 언급되곤 하였다.)

 

...............................................................................................

 

[펌]역사상 가장 섬뜩한 과학실험, 그럼 이런 실험은?

 

美'라이브 사이언스', 블랙홀 생성기, MK 울트라 등 꼽아

 

뉴데일리 2012. 11. 2

 

美온라인 과학뉴스 '라이브 사이언스'가 꼽은 '역사상 가장 섬뜩한 과학실험'이 화제다. 여기에는 초대형 입자가속기를 통해 '인공 블랙홀'을 만들어 내는 실험과 CIA가 실시했던 MK 울트라, 구 소련이 실시한 '좀비 개' 실험,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추진했던 '박쥐폭탄' 등이 거론됐다. 초대형 입자가속기 실험은 사실 블랙홀이 목적이 아니라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입자를 발견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사상 최대의 입자가속기로 반물질을 생성해 이를 물질과 부딪혀 소멸하게 만들어 '이론 상 입자'의 존재를 밝힌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한 음모론 단체가 '입자가속기로 블랙홀을 만들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성공적으로 힉스입자를 발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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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좀비 개'로 알려진 소련의 실험은 이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러시아가 실험했다는 '좀비 개'는 사실 소련이 무기개발을 위해 시도한 것이었다. 사람 말을 잘 듣는 동물을 산 채로 머리와 신경만 분리해 로봇 안에 집어넣는다는 계획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실험에서 개는 계속 살아 있었지만 로봇 조종 등 현실적인 기술 장벽 때문에 끝이 났다. 이 실험은 과거에도 '프랑켄슈타인 개' 등으로 불렸다. MK울트라 실험은 언론 보도와는 달리 '최면 실험'이 아니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LSD 등 마약을 피실험자에게 먹게 한 뒤 각종 이상한 실험을 벌였다. 그 결과 자살하는 사람부터 묻지마 살인을 벌이는 결과까지 낳았다. 결국 실험은 종결됐다. 그런데 이 보다 섬뜩한 실험들은 더 많았다. 주로 미·소 양국이 냉전시절에 벌인 과학기술 경쟁의 결과였다. 그 중에서도 핵 실험과 인체의 상관관계 연구, 기상무기 개발, DNA를 활용한 생물학 암살무기 등은 중간에 중단됐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은 핵 개발 경쟁에 돌입했다. 이들은 핵무기가 인체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핵무기가 터졌을 때 몇 km 밖의 사람까지 생존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위해 당시 현역 군인들을 핵실험장에 배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천 명 이상이 암, 백혈병 등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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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기상무기 시스템으로 의심받고 있는 HARRP 기지. 미국 알래스카에 있다.
 

기상무기 개발은 적국에 해일이나 태풍 등을 일으켜 상대방 국민을 몰살시키겠다는 의도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미소 양국은 기상무기 개발을 서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적국 뿐만 아니라 주변국의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죽을 수 있다는 결론 때문이었다. DNA를 활용한 암살무기는 최근까지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DNA의 특성을 활용한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이 무기를 개발하게 될 경우 적국 국민들이 가진 DNA를 활용한 무기도 만들 수 있어 비난이 컸다. 이 밖에도 무의식을 활용한 세뇌공작, 자기복제가 가능한 나노로봇 개발, 전자기파를 활용한 방어막, 복제인간을 활용한 군인 등 기괴한 실험들이 과거에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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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 MBC 50일 파업, 그 후 20년 ... 무슨 일이 일어났나?

1992년 9월 MBC 50일 파업, 그 후 20년 ... 무슨 일이 일어났나?

 

 

노동자역사 한내 뉴스레터 45호
2012년 9월 <이달의 역사> 기고글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방송사의 파업이 아닌가 싶다. 2012년 들어 무려 6개월간 <무한도전>을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계속되어 온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가 공영방송의 제작 자율성 침해로 심화되면서 상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던 언론사들의 대규모 파업에는 MBC, KBS, YTN, 연합뉴스, 국민일보의 5개 언론사가 참여하였는데, 그러한 흐름을 주도한 것이 MBC 노조의 파업이었다. 그리고 이번 파업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20년 전 MBC 노동조합의 50일 파업투쟁을 떠올렸다.


1992년 9월 MBC 파업은 여러 면에서 20년이 지난 올해 파업투쟁과 닮아 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정부와 여당의 방송 장악을 위한 시도에 맞선 파업이었다는 점, 다수의 해고, 징계가 발생하였다는 점, 노동자들의 파업이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1992년 당시 파업의 결과로 최창봉 사장이 물러나고 제작 3국장 추천제와 관련한 노동조합의 요구안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된 것에 비해 2012년 파업의 결과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2012년 9월 현재 KBS 김인규 사장은 여전히 버티고 있고, MBC 김재철 사장도 현재 방송문화진흥회에 해임안이 제출된 상태이지만, 정부-여당측 이사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임안 처리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1992년 MBC 파업의 배경에는 1990년 초 3당 합당 이후 본격화된 정부와 여당의 방송장악 시도가 있었다. 1990년 6월부터 MBC 사측은 공정방송협의회 개최를 거부했고, 방송제작에 대한 개입이 시작되었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처남인 손주환이 공보처 장관에 취임하면서 최창봉 사장을 통한 통제가 시도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로 농촌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우려를 담은 <PD수첩>의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 편이 예고편까지 방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창봉 사장의 지시로 결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에 담당 PD들과 노동조합 간부들이 사장실을 방문해 항의하였으나, 사측은 이를 문제삼아 안성일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을 해고하였다.


더구나 1992년 4월부터 시작된 MBC 임금단체협상에서는 사측이 지난 1988-89년 투쟁의 결과로 단협에 명기된 보도-편성-기술국장 등 제작 3국장 3배수 추천제를 백지화 하겠다고 선언하여 파업투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노동조합 길들이기를 통해 선거보도를 장악하겠다는 정권과 사측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이에 1992년 9월 2일 MBC 노동조합은 해고자 2인의 복직, 제작 3국장에 대한 3배수 추천제 재협상, 회사측의 일방적 임금인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하였다. 곧이어 조합원 500여명이 파업 출정식을 갖고 본관 로비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으며, 19개 중 11개 지방방송이 연대파업에 돌입하였다. 1990년 5월에 공영방송 최초로 방송 민주화를 내건 파업투쟁을 진행한 바 있던 KBS 노동조합도 연대파업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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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9월 파업투쟁 당시 농성중인 조합원들 (출처: MBC 노동조합)


파업의 핵심 요구였던 제작 3국장 추천제를 둘러싸고 서울 지방노동위원회는 사장 임명제라는 안을 들고 직권중재에 들어갔으나 노동조합은 이를 거부하였다. 머지않아 MBC 사측은 이완기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15명을 검찰에 고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방송문화진흥회는 노조의 직장복귀 촉구 결의문을 발표했고, 정부는 공권력 투입 방침을 시사했다. 손주환 공보처장관도 MBC 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다. 당시 투쟁이 진행중이었던 한국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대한 탄압 일변도의 정부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대응이었다.


파업 31일차였던 10월 2일에는 공권력이 투입되어 농성중이던 조합원들이 전원 연행되며 강제 해산되었다. 그러나 MBC 노동조합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파업을 계속하였다. 이에 사측은 PD수첩을 비롯한 14개 프로그램을 잠정 폐지하는 대응을 통해 파업 장기화를 시사하였으나,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연대와 지지가 정부와 사측을 강하게 압박하였다.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지원이 계속되었고, 언론노련 또한 ‘문화방송 파업 지지 및 공정방송쟁취를 위한 전국언론인 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전노협은 MBC 파업을 지지하는 전국 노조 대표자 결의대회를 소집하였다.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던 것은 KBS 노동조합이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동조파업 찬반투표를 가결시켰던 일이었다. 결국 파업 50일차인 10월 21일 MBC 최창봉 사장과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회 측이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며 파업이 마무리되었다. 기존 단협의 3국장 추천제는 삭제되었지만, 단협상의 공정방송협의회 관련 조항에 3국장 보직변경 의결권을 명시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후 사회적인 압력 속에서 최창봉 사장이 퇴진하였다.


이로부터 지난 2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2년 7월 8일 언론노조 KBS본부는 95일간의 파업을 마무리지었고, 열흘 뒤에는 언론노조 MBC본부도 파업을 잠정 중단하고 170일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핵심 요구였던 KBS의 김인규 사장 퇴진과 MBC의 김재철 사장 퇴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구나 파업 종결 후에도 양대 공영방송 사측은 파업 지도부와 참여자들에게 징계를 남발하고 있다. 더구나 KBS 이사회와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친정권 이사들이 선임되면서 그나마의 파업 성과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변치 않은 것은 정권의 방송장악 시도와 공영방송 사측의 제작 자율성 침해의 양상만이 아니다. 언론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대한 노동운동의 연대와 대중적인 지지가 변함없음에도 오늘날의 공영방송 공공성 투쟁이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에는 언론노조운동의 쇄신이 지체된 것 또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방송사의 ‘핵심’을 이루며 상대적으로 내부노동시장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기자와 PD들이 언론노조운동의 중심을 이루면서 기업별 노조운동 관행을 넘어서는 데 한계를 보였고, 더욱 확대되어만 가는 ‘주변’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1992년 9월의 파업투쟁을 되돌아보면 외주보다는 자체제작 중심의 방송제작 관행, 공중파 중심의 방송시장에서 상대적 비중이 컸던 공영방송의 지위라는 환경은 물론 기술직까지도 폭넓게 파업에 참여하였다는 점이 파업투쟁의 영향력을 강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방송제작 외주화와 방송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포함한 방송산업 차원의 노동자 내적 연대 강화 없이는 이번 파업 성과의 완성을 위한 투쟁은 물론 다시금 찾아올 방송 공정성 확보 투쟁에서 더욱 수세를 면치 못할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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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둘러싼 지상논쟁

[펌]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둘러싼 지상논쟁
 

"정규직 전환 촉진이 우선 과제" vs. "기업경영 부담에 고용質 더 악화"

 

한국일보 2012년 8월 21일, 정리: 이성기 기자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
한국 노동시장 경직성 낮은 수준… 정규직 과보호 탓 아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정규직화는 정년 퇴직 자연감소분 충원에 불과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
외국에는 없는 퇴직금 등 해고비용 감안 땐 경직성 높아
2년 미만 근로자 포함하라는 것은 하청고용 하지 말라는 말과 같아

 

 

19대 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다. 이례적으로 여소야대(여당 7명, 야당 8명)로 짜여진데다, 노동전문가 출신 야당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탓이다. 지금 이 곳에선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입법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최대 현안이자 가장 오래된 현안이지만, 사실상 정부와 정치권이 방치해 온 측면도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경제민주화 흐름과 역대 최강성의 환노위 출범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이제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대로,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사활을 걸고 비정규직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은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기 위해 정부와 대기업이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경기변동에 민감한 기업현실과 노동시장에 가져 올 파장을 잘 따져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들의 경제력 집중과 남용에 대한 규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경제민주화와 어떻게 연결되나.


이상호: 경제민주화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경제영역에서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세워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해 재벌지배구조를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로 바꾸는 게 필요하듯, 노동시장의 차별과 배제를 극복하고 공정한 고용계약과 정의로운 보상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민주화의 중요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


변양규: 공정과 정의의 원칙을 세우자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근로자 보호방식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 정규직 보호는 그대로 둔 상태에서 파견근로자 규제 같은 비정규직 보호를 더 강화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편한 또 다른 고용형태를 찾게 될 것이다.


 

-통계청 고용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30%가 넘는다. 실제로는 절반에 육박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비정규직이 많은 건 사실인데, 사용자측은 정규직 고용시장의 경직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늘릴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상호: 사실과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보호에 대한 조사지표인 고용보호입법지수(EPL)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경직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반면 비정규직 고용보호는 최저수준에 가깝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는 고용시장 문제가 아니라, 고용 관련 법제도의 미비점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전략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변양규: EPL이 그렇게 나타난 것은 각국마다 다른 사정을 감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나라에는 외국에 없는 퇴직금 같은 '해고비용'이 있다.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 시카고대 교수가 해고비용까지 포함해 고용 경직성 수치를 만든 게 있는데, 우리나라는 남미 국가들보다 더 상위에 랭크 돼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고용경직성은 국제적으로 봐도 아주 높은 수준이다.


이상호: 퇴직연금 부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유럽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또 해고 보상금, 전직 및 재취업 알선 등 안전망이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고용안전망은 유명무실할 정도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상호: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을 '좋은 일자리'인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한다. 그걸 촉진하는 정책과 입법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동안 수많은 정규직 일자리가 비정규직 일자리로 대체돼 왔다. 그만큼 고용의 질은 떨어졌고, 노동자의 처우는 악화됐다. 정부와 대기업들은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해야 한다.


변양규: 큰 틀에서는 공감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기업이든 근로자든 특정 그룹만을 위하는 입법은 굉장히 위험하다.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만해도 애초 의도자체와 달리 혜택이 고르지 않았다. 비정규직 중에서도 기간제 근로자들은 상당 부분 수혜를 받은 반면에 파견이나 용역 같은 비전형 근로자들은 고용이 악화되고 소득도 감소하는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나. 입법화를 할 때는 기대효과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8,000명 사내 하청근로자 가운데 3,0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사측은 만만치 않은 인건비 추가부담에도 불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조측은 핵심을 비켜간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상호: 현대차는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고 주장하지만, 대상자들은 이미 근속년수가 7~10년 되는 30대 초ㆍ중반의 근로자들이다. 비노조원인데다 친기업적 성향인 이들을 신규채용 형식으로 하는 거로 봐야 한다. 더 문제는 정년퇴직자로 인한 자연감소분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인데, 이렇게 되면 청년 신규채용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변양규: 현대차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실천했다는 것 자체도 평가해줘야 한다. 어떻게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화한다는 말 인가. 하청 근로자를 써 온 자체가 잘못이기 때문에 2년도 안 된 근로자 전체를 정규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들에게 하청고용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모든 근로자가 정규직이 되어 해고 없이 높은 급여와 복리후생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현실상 그건 불가능한 것 아닐까.


이상호: 현재 대기업들은 '사용사업주-고용사업주-근로자(하청노동자)'로 이뤄진 3각 관계를 악용하고 있다. 현대차만해도 사내 하청 근로자 1인당 2,0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할 때 1,500만원 정도가 근로자에게 임금으로 지급되고, 나머지 500만원은 하청업체 사장에게 사례비로 간다. 일반적으로 총 사내하청 인건비의 30% 이상이 소개비로 빠지는 거다. 비용 탓이 아니라 결국 직접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사측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변양규: 경기가 좋아 일감이 많으면 채용을 늘려야겠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일자리를 줄일 수 밖에 없는 게 경영현실이다. 줄이지는 못하고 늘리라고만 한다면 기업들이 어떻게 버티고 글로벌 경쟁을 하겠는가. 만약 사내하청에 대해 파견 사용 사유 제한 등 강경 입장만 내세우면, 기업은 아예 사외하청을 준다든지 하는 더 열악한 고용을 찾게 될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현실과 부작용을 고려한 입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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