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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태프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영화 스태프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

 

 

"문화.예술.스포츠 분야 비정규직 인권상황 실태 토론회"(2011.12.21) 발표문

 

 

1. 문제제기


한국의 영화산업은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거치며 다소간 위축기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국내 개봉작의 상당 부분을 국내 제작 영화가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국제영화제에서의 수상과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등을 통해 국제적인 위상 또한 제고되었다. 그러나 한국 영화산업을 현장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영화 스태프들은 전근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제작환경 속에서 단속적인 실업과 취업의 반복, 전근대적인 현장통제 등으로 인해 노동권을 비롯한 기본적 인권을 침해받는 등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와 노동시장 특성, 영화 스태프의 노동실태와 노동자성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영화 스태프의 인권상황 개선방안을 도출하고자 한다.


2. 영화산업 개요


한국 영화의 시장규모는 1990년대 말부터 급속 성장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중반에는 국내 개봉작 영화 중 국내 제작영화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50%에 이를 정도로 팽창해 왔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서 드러난 바 있듯, 영화산업의 글로벌화라는 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국내 제작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점차 하락하는 등 다소간의 위축기를 맞이하고 있다(<표 1> 참조). 지난 2006년 스크린쿼터가 146일에서 73일로 축소된 이후 한국영화의 수익률은 급감하였고, 이에 따라 한국영화 제작편수도 감소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4-5억 수준의 비교적 저예산 영화들의 제작이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제작편수 및 예산규모 감소는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 감소 및 고용기간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표 1] 한국 영화산업 주요 지표, 2003-2010 (단위: %, 개, 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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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볼 때, 영화산업 종사자 규모는 14,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취업자는 약12,400명, 실업자는 약1,500명 규모로 집계된다. 그리고 다시 취업자 가운데에서는 임금노동자가 약8,300명 규모로 파악되며, 나머지는 자영업자 형태로 파악되고 있다. 영화산업 노동력 구조에서 특징적인 것은 영화산업의 특성상 영화 스태프의 상당수가 집계에서 누락되고 있을 것을 감안하더라도 실업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국내 제작 상업영화의 경우 작품당 부서별 필요인력은 비교적 일정한 수준인 것으로파악된다. 장편 상업 영화를 기준으로하면, 촬영 현장에 모인 직원의 인원 규모는 일반적으로 50-60명 내외이다. 연간 제작편수를 60-70편으로 볼 때, 영화산업노동조합의 계산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하는 영화 스태프의 규모는 약4,000명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반복적 실업이라는 노동시장 특성에 더해 연출 및 제작과 같은 특정 부서의 노동력 과잉을 고려하면 쉬고 있는 스태프들의 규모는 현장 스태프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영화 스태프의 규모를 약12,000명으로 추산할 수 있다.


1) 직무 및 경력구조


영화제작 중 영화감독과 기사/감독급을 제외하면 스태프들이 분포하고 있는 주요 부서는 제작, 연출, 촬영, 조명, 미술, 음향 등이다. 제작 및 연출 부서에서 부분적으로 독특한 요소들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각 부서 내에서의 경력구조와 숙련형성구조는 대부분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경력구조 면에서는 방송산업과 유사하게 퍼스트급-세컨드급-서드급 이하 등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으나, 숙련형성 측면에서는 도제식 숙련형성 과정의 특성이 방송산업에 비해 보다 강하게 나타난다.


각 부서의 팀은 상당히 위계적으로 조직되어 세컨드급 이하의 스태프들은 감독/기사급의 의사를 거스르기 어렵다. 이는 제작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각 부서의 감독/기사급에 부여된다는 영화 제작과정 전반의 특징과 긴밀한 연관을 갖는다. 한편, 감독 및 기사급과 팀원들 간의 관계는 위계적이기도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는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진다. 상당한 비용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수익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제작사나 감독 중 누군가의 독단적 의견이 지배하는 구조 형성이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급이 낮은 스태프에 대해서도 직무수행에 일정한 숙련이 요구되고, 그 숙련수준이 최종 결과물인 영화의 질적 수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입직 및 채용


영화 스태프 채용은 대부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팀 단위의 네트워크 형성은 입직 단계에서부터 이루어지며, 이후에도 스태프들의 경력과정에 걸쳐 지속된다. 채용시에는 퍼스트급에 해당하는 팀장이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통해 팀원들을 모집하며, 채용공고의 경우에도 팀장이 직접 내는 사례가 상당하다. 감독/기사급이 팀을 구성하면 동일한 인적 구성의 팀이 평균적으로 3-4년간 지속된다.


3) 고용계약


다수의 영화 스태프들은 제작대상인 영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도급계약 형태를 빌려 계약을 맺고 일한다. 영화 스태프 계약은 특정 사업체와의 고용계약이 아니라, 작품당 계약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계약의 단가를 조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전형적인 프리랜서 계약방식이다. 프로젝트를 기준으로 하는 계약비율이 높지만 자신의 계약을 고용계약이라고 생각하는 스태프들의 비중이 높은 가운데 하위직급에서 도급 계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요컨대 최근에는 개별 계약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으나 팀별 계약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엔지니어와 스태프 계약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으로, 전체적으로 개별 계약이 행해지고 있는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고, 아직 개별 계약과 팀 계약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작부 및 연출부에는 개별 계약이 많이 적용되는 데 반해, 촬영부와 조명부, 미술부 등에서는 여전히 팀별 계약이 지배적이다.


4. 영화 스태프의 노동실태


1) 반복적 실업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화산업 노동시장의 가장 큰 특성은 작품 단위의 ‘프로젝트형’ 노동시장이라는 점과 도급계약 형태의 계약관행에서 드러난다. 특히 제작방식의 특성상 상당한 몰입이 요구되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작품에 참여할 수 없고, 연간 2개 작품 이상에 참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영화 스태프들은 상당한 실업 기간을 갖게 되며([표 2] 및 [표 3] 참조), 이 기간 동안에 생계를 위해 광고 등의 분야에서 단기간의 일을 하거나 영화 및 영상 분야와 무관한 아르바이트에 종사하기도 한다.


[표 2] 영화 스태프의 지난 1년 중 쉬었던 기간이 있는지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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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영화 스태프의 지난 1년 중 쉬었던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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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금형태 및 임금수준


영화 스태프들의 임금형태는 포괄임금제 형태로, 보통 3개월에서 5개월 사이의 영화 제작기간 동안 계약금액을 두세 차례에 나누어 받는 방식이다. 영화 스태프들의 연간 임금수준은 월100여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임금인상 또한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제작사들의 자금조달 환경 악화와 맞물려 종종 축소되기도 한다.


영화 스태프 설문조사 응답자들의 월평균 보수 계약액은 192만 4천원으로 나타났다([표 4]). 이를 작품 참여기간에 해당하는 평균 계약기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연간 885만원에 해당된다. 요컨대 영화 스태프들의 연간 월평균 임금수준은 73만 8천원에 불과한 것이다.


[표 4] 영화 스태프의 평균 계약기간 및 월평균 보수계약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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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참여를 통한 임금소득과 실업기간의 부수적 임금소득을 모두 포함한 스태프 소득을 파악해본 결과 월평균 96만 6천원으로 나타났다([표 5]). 연간 월평균 22만 8천원을 단기간의 아르바이트 등 부가적인 수입으로 보전하고 있는 셈인데, 이를 포함해도 월평균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준이다.


[표 5] 영화 스태프의 연간소득 및 월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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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금체불 문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영화 스태프들의 임금형태는 포괄임금제 형태로, 보통 3개월 정도로 정해지는 영화제작 기간 동안 계약금액을 두세 차례에 나누어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제작기간은 제작환경상의 이유로 연장되며, 이 과정에서 임금체불이 빈번히 발생한다([표 6]). 이 문제는 계약방식에도 기인한다. 도급계약 형태가 여전히 지배적인 환경에서는 임금체불 등의 문제가 발생해도 보호받기 어렵다. 이에 영화산업 노사가 표준근로계약서를 개발하고 보급하려 하고 있으나, 영화 스태프들은 단속적 노동의 특성상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생계형 채무상황에 놓이는 일이 흔해 고용계약 형태보다는 현금거래 형태의 기존 계약관행을 불가피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고용계약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실업부조 형태의 복지 대책을 병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표 6] 영화 스태프의 평균 임금체불 기간 및 임금체불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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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이 체불임금을 좀처럼 받지 못하는 배경에는 스태프들이 임금체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임금체불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임금체불을 경험하는 스태프들은 대부분 그냥 기다리는 등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거나 개인적으로 대응하는 데 머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배경에는 차후에 겪게 될지 모를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놓여 있다. 하위 직급의 스태프가 아닌 감독/기사급들의 경우에도 임금체불에 법적?제도적 대응을 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앞으로도 계속 제작사와 작업을 해야 하고 그런 일들이 경력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노동시간


국내 영화제작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제작사들은 한정된 자금으로 가능한 한 짧은 기간 안에 작품을 완성할 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제작 현장에서는 밤샘촬영이 빈번하며, 촬영장 간 이동 등까지 고려하게 되면 영화스태프들의 연속 노동시간은 24시간에서 심지어는 48시간을 넘는 일도 많다. 한편, 영화산업 위축에 따른 제작사들의 비용절감 흐름 속에서 고정된 예산 중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건비인데, 제작사들 사이에서는 부족한 제작비를 보완하기 위해 몇 회차에 찍을 분량을 한 회차로 몰아넣는 ‘회차 줄이기’와 같은 관행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도한 촬영분량을 소화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장시간 촬영에 혹사당하고 있는 것이다.


5. 영화 스태프의 노동자성 및 노동자 정체성


영화 스태프의 경우 일단 계약이 이루어진 뒤에는 전속성이 인정된다는 점, 출근시간과 장소가 지정되고, 지시 없이 퇴근할 수 없다는 점,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고될 수 있다는 점, 연장노동 및 야간노동 또한 비자발적인 사유로 행해진다는 점, 보수가 제작사 또는 감독 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 대다수가 제작사, 감독/기사급 등으로부터 작업지시를 받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는 없다는 점, 일단 지시받은 업무를 독자적 판단에 따라 변경할 수 없다는 점, 작업도구를 제공받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근로기준법상의 노동자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 스태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배제의 근저에는 이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 적용에서 배제되어 있는 법제도적 구조 외에도 투자환경과 수익구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진흥법, 그리고 이에 근거를 둔 영화진흥위원회가 영화진흥기금 운영 등에 있어 실질적인 영화 제작인력인 스태프들의 기본적 인권상황 개선과 숙련향상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운영되는 등의 제도적 문제점들이 있다.


문화산업 분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이러한 차별과 배제를 재생산한다. 다시 말해 ‘좋아서 하는 일이니 힘들어도 참아라’ 식의 사회적 인식 또한 영화산업의 제작환경을 둘러싼 문제들 가운데 노동자들과 그들의 권리라는 문제를 도외시하게 만들고, 문화산업 노동자들 자신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노동자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기본적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 스태프들은 스스로를 어느 정도로 ‘노동자’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해 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통해 스스로를 어느 정도나 노동자로, 예술인으로, 자영업자로 인식하고 있는지 1점에서 10점 사이의 척도로 물어보았다.


[표 7] 영화 스태프의 노동자/예술인/자영업자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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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을 분석해 본 결과, 노동자 정체성이 8.4점, 예술인 정체성이 6.9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노동자 정체성은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표 7]), 이는 응답자의 75%가 영화산업노동조합의 조합원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퍼스트급 이상과 세컨드급 이하의 두 개 범주의 직급별로 분석해 본 결과 평균값의 차이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6. 영화산업 인력구조 개선과제 의견


설문조사 분석 결과, 열악한 작업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 생계에 위협을 주는 보수 수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응답, 계약 특성에 따른 고용 불안정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응답이 1순위에서 3순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그중에서도 1순위에서 생계에 위협을 주는 보수 수준이 해결되어야 한다는 응답의 비율이 57.1%로 매우 높았다([표 8]).


[표 8] 영화산업 인력구조의 개선과제에 대한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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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화 스태프들의 집합적 대응과 제도개선 추진과정


본 조사에서 검토한 학교 운동부 코치, 방송산업 보조인력 사례와 달리 영화산업 분야에서는 2003년 4부 조수연합으로부터 발전하여 지난 2005년 설립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영화제작환경을 둘러싸고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며 노사관계 형성을 주도해 왔다. 이후 영화산업노동조합과 사용자측인 영화제작가협회에 더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참여하는 형태로 영화산업협력위원회라는 일종의 산업 단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사관계 및 노사정 관계에도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영화제작가협회의 경우, 협회로 조직되지 못한 중소규모 제작사들이 매우 많아 노사관계를 통한 산업적 규제력을 발휘하는 데 한계를 지닌다. 영화진흥위원회 또한 그간의 파행적 운영에서 드러나듯, 영화제작환경과 영화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부족하다.


한편, 영화산업노조의 문화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제도 확충 요구에 힘입어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반복적인 실업에 놓이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예술인들의 상황 개선에 대한 요구가 부상하며 2009년에 처음으로 예술인복지법안이 제출되었으나, 정부의 부정적 반응 속에서 계속하여 통과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에도 동 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여 본회의에 상정되었으나 역시나 부결된 바 있다. 결국 2011년 10월에 본회의에서 통과된 예술인복지법안은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을 핵심으로 한 애초의 법안에서 다시금 후퇴하여 고용보험을 제외한 산재보험만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계약서 체결을 적용 대상 기준으로 삼는 등 실효성에 대한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가운데 영화산업 부문에서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 노사관계 속에서 자체적으로 산업 차원의 실업부조 도입을 시도하였다. 영화산업노동조합과 영화제작가협회는 2008년 영화산업실무교육센터를 설립, 운영하면서 영화 스태프 교육 사업을 진행해 왔다. 이 과정에서 2011년 사단법인 형태의 영화산업고용복지위원회를 설립하여 휴직기간에 처한 스태프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그들에게 실업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도, 즉 훈련 인센티브 제도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영화 스태프들의 교육훈련은 주로 현장에서 팀 단위 작업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직무교육은 한편으로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단점을 지닌다. 스태프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면 직무에 대한 전문성이 향상되고, 이를 토대로 팀 단위의 실습까지 이어지면서 산업 안에서 인력 제공이나 배치에 관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영화산업 노사는 훈련 인센티브 제도 도입의 기본적인 방향에 의견을 모으게 되었다. 영화산업협력위원회에서도 훈련 인센티브 제도 도입의 기본 방향은 합의된 바 있으나,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발전기금을 통한 재정지원 등 본격적인 도입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8. 개선방향


1)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자성 인정


영화 스태프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들을 검토해 보더라도 부분적으로 사용종속성이 약하게 나타나긴 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노동자로서 판단된다는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노동자성 판단과 관련한 최근의 논의들이 사용종속성 중심의 법원 판단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조직종속성 및 경제종속성을 균형 있게 고려할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 때,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자성은 명확해 보인다.


프랑스의 문화예술 노동자 복지 지원제도인 앵떼르미땅 지원제도는 2000년대 초반 영화 스태프들의 기본권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할 때부터 대안적 제도방안으로 국내에서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인들을 기본적으로 노동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반면, 국회에 제출되어 왔던 예술인복지법안들은 구체성이 매우 낮은 수준인데, 그러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방향이 앵떼르미땅 지원제도와 비교할 때 어떠한 수준인지 검토해 보고, 앞으로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한 입법방향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2) 영화산업 주체들의 과제


이상에서 살펴본 영화 스태프들의 노동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사, 제작사, 영화산업노동조합, 영화제작가협회, 영화진흥위원회 등 영화산업 내 각 주체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우선, 시장환경 변화에 따라 투자관행과 수익분배구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개입 필요성 또한 나날이 커지고 있는 만큼, 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관련 정부부처는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실사를 바탕으로 최소한의 합리적 투자 및 제작관행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투자사들의 경우 무엇보다 총 제작비용 중 많게는 30%에 이르는 부분을 제작사들이 자체적으로 조달하도록 떠넘기는 투자 관행을 바로잡을 것이 요청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 스태프 인건비 지원 사업이 제시하고 있는 예산의 25% 기준으로 스태프 인건비 예산을 포함시키고 영화 스태프의 사회보험 적용을 비롯한 스태프 복지 예산을 포함시킨 작품에 투자하는 ‘사회적 책임 투자’ 관행이 영화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요 제작사들은 영화제작가협회의 대표성 제고를 통해 노사관계를 통한 문제해결이 보다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화산업노동조합에는 무엇보다 조직률 제고가 요청된다. 훈련 인센티브제도가 정착되고 클로즈드 샵이 체결된다면 이러한 측면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도 노동조합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인력양성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작가협회,
영화산업노동조합과 더불어 영화산업협력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영화 스태프 훈련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영화발전기금 등을 통한 재정지원 또한 포함된다. 나아가 영화 스태프 인건비 지원 사업의 실효성을 높이고 지원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밖에도 영화 제작현장에서는 영화감독으로의 통제력 집중과 도제식 숙련형성구조로 인해 폭력, 폭언, 인격적 모독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영화 스태프들이 영화제작 현장이라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서 인격적 존중을 받을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영화산업노동조합을 비롯한 노사정 차원에서 제작현장 인권보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9. 영화 스태프 노동실태: 문제와 개선방안 요약


1) 문제


먼저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과 노동시장 변화의 메커니즘을 요약하면 다음의 [그림 1]과 같다.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화 스태프 노동시장에서는 숙련노동자들의 이탈에 따른 전문인력 부족과 관련 교육기관 졸업자 급증에 따른 신규진입인력 과잉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림 1]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과 노동시장 변화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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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글로벌 영화시장 변화와 스크린쿼터제 등 제도변화에 따른 국내 영화 시장환경 변화, 영화산업의 제작과정 및 노동과정의 특성을 포함하는 산업적 특성이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영화 제작사들은 비용절감을 추구하게 되고 영화산업 제작구조 상에서 가장 하위에 위치한 스태프들에 대한 부당처우를 지속하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는 투자사들의 관행도 개입한다. 결국 영화 스태프들은 반복적 실업으로 인한 고용과 생활의 불안정, 임금체불과 장시간노동이라는 노동권 침해를 겪으며 노동조건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것이다.


2) 개선방안


다음으로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을 요약하면 다음의 [그림 2]와 같다.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반복적 실업과 그에 따른 저임금과 고용불안, 고질적인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이다.


[그림 2] 영화 스태프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정책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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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자 및 제작관행에 대한 규제, 노동자성 인정과 실업급여 수급 등 사회보장 적용 확대, 관리감독 강화 등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된 주체들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련 정부부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산업협력위원회 등이 있다.

 

한편, 보다 상위 법제들에 대한 검토 또한 중요하다. 문화예술 종사자의 양성과 지원을 규정하고 있는 문화다양성협약이 국제법으로서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예술인복지법은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이들의 노동자성 인정을 전제로 고용보험 등의 적용방안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영화진흥법의 영화산업 관련 조항들에 영화산업 인력의 복지증진에 대한 내용들이 포함되도록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노사관계 측면의 요소들 또한 중요하다. 무엇보다 영화제작가협회 측에서는 임금단체협약 위임사 범위를 확대하고 영화산업노동조합은 스태프 조직률을 제고함으로써 스태프 임금단체협약 적용범위가 확대될 수 있도록 공동의 노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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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현 아라카와에 바다표범 아라짱 출현

지난 10월 중순 사이타마현 아라카와에 나타난 바다표범 아라짱 ... 2004년 타마가와에 모습을 드러냈던 '타마짱' 출현 이후 7년만에 수도권 하천에 출현한 바다표범이란다.

 

아라짱을 보려고 연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라카와 상류의 취수장으로 몰려들었고, 아라카와를 끼고 있는 도시인 시키시에서는 명예 주민등록증을 배부했단다. 한동안이나마 관광명소가 되었으니 시키시 측에서는 세금이야 이미 충분히 뽑아냈을 터이고, 이참에 좀더 홍보에 투자해 보자는 생각이었겠구나 싶다. 뭐, 내가 사는 동네에선 심지어 상상 속의 동물(?)인 둘리도 주민등록 시키는 마당에 아라짱이 시키시 주민이 되었다는 데 딴지걸고 싶지는 않다.

 

사실 좀 부럽기도 하다. 아라카와 천변 낚시꾼들 왈, 그 근방에 은어떼가 올라오고, 또 은어떼를 쫓아 가마우지 떼가 몰려드는 시기라고 한다. 우와 ... 한국으로 치면 굴포천쯤 되는(굴포천은 바다가 아니라 한강 하류로 흘러들어가긴 하지만) 하천인데, 굴포천이 은어는 고사하고 당장에라도 에일리언이 튀어나올 것 같은 하천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러울 따름이다. 수도권에도 후쿠시마발 방사능 영향이 없지 않을텐데 아라짱, 잘 놀다 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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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짱 동영상 찾아보니 헤엄치다가 하품(?)하는 모습이 짱 귀엽다. 또 아라짱 귀여워서 여기저기 뒤지다가 누군가가 웹에 올려놓은 한 컷 만평이 눈에 띠었다. 아라짱을 보려 몰려든 강둑 위 인파들을 등 뒤로 하고 "거참 시끄럽구만 ..." 하며 뻘줌해하는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다시 한 번 짚어보면, 아라짱은 도쿄만 해역에서 아라카와를 거슬러 올라왔다!! 아마도 먹이떼를 쫓아서겠지. 일본의 하천 관리는 (물론 '토건국가'의 원조로서 여전히 '댐 마피아'들이 건재하지만) 그래도 한국처럼 '각 잡기'와 '틀어막기'를 기조로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한국에선 일찌기 각카와 그 일당들이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물마저 콘크리트로 '각'을 잡으신 바 있고, 이후로도 영월 동강을 비롯한 수많은 하천들을 말아먹으려 했던 사람들이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돌고 돌아 크게 한 판 벌여보자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배경에는 토지-물관리 정책도 있다. 군사독재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토지-물관리 정책은 대규모 토지개발을 진행한 다음에 거기에 필요한 물을 대기 위해 대형 댐 건설을 추진하는 식이었다(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물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대한 정책적 접근 없이 일단 물을 잔뜩 가두어 놓고 그저 뿌듯해 하는 식이었던 것이다. 댐의 홍수조절이나 가뭄해소 효과가 사실상 미미하다는 수많은 조사연구 결과에도 그저 '흥'이었다. 그럴진대 야생 동식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이들의 길이 끊긴다는 말이 씨가 먹힐 리가 없다.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한국의 정부와 대기업들은 정말 무서운 존재들이다.

 

뚱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럽게 은어를 잡아먹으며 유유히 놀고 있는 아라짱을 보니

살 곳을 잃고 쫒겨다니기 바쁜 수달이며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들에게 갑자기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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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들지 않는 비정규직, 해소되지 않는 임금격차

줄어들지 않는 비정규직, 해소되지 않는 임금격차


- 2011년 8월 비정규노동통계

 


통계청의 2011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원자료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고용형태 분류기준에 근거하여 재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이 지난 3월 48.5%에서 다시금 상승세로 돌아서 49.2%를 기록하였다. 비정규직 비율은 2010년 8월 50.2%로 절반을 넘긴 이후 절반 수준에서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나아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및 노동조건 격차 등 차별 심화와 양극화 또한 해소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862만명으로 약6만 9천명 증가하였고(전년 동월 대비 0.8% 증가), 정규직 노동자는 39만 3천명 증가하였다(전년 동월 대비 4.6% 증가). 전체 임금노동자 내 비정규직 비중은 49.2%이며, 정규직의 비중은 50.8%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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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형태별로 보면 정규직이 일정하게 증가한 가운데, 비정규직 내에서는 일반임시직이 20만 4천명 감소하여 지난 3월에 이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으며(전년 동월 대비 6.5% 감소), 파견노동 또한 1만 4천명 줄어들어 일반임시직과 비슷한 비율의 감소세를 보였다(전년 동월 대비 6.6% 감소).

 

동시에 용역, 호출노동 등 간접고용과 기간제 고용, 특수고용의 증가가 눈에 띤다. 전년 동월 대비 용역노동은 6만 4천명, 호출노동은 6만 6천명 증가하였고, 기간제는 11만 3천명 증가로 비정규직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증가폭을 보였다. 특수고용 또한 그간의 감소세로부터 돌아서 1만 6천명 증가하며 전년 동월 대비 2.8%의 증가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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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간접고용은 전체 11만 7천명이 증가하여 7.2%의 증가율을 보였다. 임시직 가운데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에 해당하는 일반임시직은 비정규직임이 분명함에도, 통계청 집계는 이들의 상당 부분을 ‘정규직’으로 분류하고 있어 본 분석결과와 대조적인 양상을 보인다. 문제는 비정규직법의 직접적인 대상인 기간제 고용이 상당한 규모로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그간의 비정규직 비율 감소를 기간제 고용 감소가 주도해 왔음을 고려할 때, 최근 2년간의 비정규직 비율 정체가 의미 있는 감소세로 돌아서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파트타임 고용의 경우 임시 파트타임이 증가세로 돌아선 데 더해, 상용 파트타임이 비정규직 내에서 가장 큰 폭의 증가율을 보이며 전년 동월 대비 1만 5천명 증가하였다. 이처럼 지난 3월에 이어 계속되고 있는 상용 파트타임 규모의 증가는 파트타임 고용의 상시화를 중심으로 노동시간 유연화를 꾀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국가고용전략 추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경향들을 포함하여 이번 비정규노동통계 분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주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간 감소세를 보여 온 기간제와 특수고용이 증가세로 돌아선 가운데, 비정규직 내에서도 열악한 일자리인 파트타임과 간접고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둘째,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불평등은 물론 사회보험 혜택에서의 격차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셋째,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어 온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비율 정체와 고용구조의 악화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광의의 공공부문에서는 비정규직 비율이 40% 내외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고, 가장 협의의 공공부문인 ‘공공행정국방’ 부문에서는 정규직 증가와 비정규직 감소가 노동시장 여건 개선보다는 격차 확대로 이어지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1. 계속되는 비정규직 규모 증가와 정체되고 있는 비정규직 비율

 

비정규직 규모는 2004년 이후 800만명 규모를 하회한 적이 없으며, 최근 들어서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비정규직 비율 또한 2007년 이후 꾸준히 감소해 오다가 근년 들어서는 50% 언저리에서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여년 간의 추세를 보더라도 비정규직 고용은 그 증가세가 둔화되었을 뿐, 아직 뚜렷한 감소세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비정규직은 여전히 전체 노동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간 비정규직 비율 감소를 주도해 온 기간제 고용규모가 다시 증가하고 있음을 볼 때, 노동시장 여건 개선을 기대하기에는 이르다. 더구나 최근의 비정규직 규모 변화가 비정규직 가운데에서도 종사지위상 ‘임시․일용직’에 해당하는 유동적 일자리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에는 더더욱 어렵다.

 

특히 비정규직 내 열악한 일자리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임시 파트타임 일자리 규모는 110만명 규모를 넘어섰고, 상용 파트타임 일자리 또한 2007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질 낮은 일자리인 호출노동, 용역노동 등 간접고용은 근년 들어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최소한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특수고용노동자 규모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60만명 수준으로 집계되었다는 점은 비정규직 규모 및 실태 파악에 있어 체계적 배제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레미콘, 덤프트럭, 굴삭기 등 건설기계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는 건설산업과 화물기사들이 집중되어 있는 운수산업 등에서 특수고용노동자 규모가 비현실적으로 과소추정되고 있다. 제조업 부문의 사내하청 노동자 규모의 과소추정 문제 또한 여전하다. 이처럼 통계청의 비정규직 집계 방식의 한계로 포착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숫자가 상당하여, 비정규직 비율의 감소를 감히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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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노동력 구조를 살펴보면, 통계청의 집계기준에 따를 때 경제활동인구가 42만 1천명 증가한 가운데, 실업자가 6만 9천명 감소하고 취업자가 49만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자 내에서도 비임금노동자 증가(전년 동월 대비 0.4% 증가)에 비해 임금노동자의 증가(전년 동월 대비 2.7% 증가)가 두드러졌다. 임금노동자 가운데에서는 독립도급 노동자가 지난 3월에 이어 3%대의 증가율을 보였다. 종속적 노동자 내에서는 간접고용이 11만 7천명 증가하며 7.2%의 증가율을 보여 가장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2. 임금차별의 지속과 물가상승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 심화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 비율은 48.5%로 2010년 3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한 46.2%에 비해서는 다소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전히 5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수준 격차는 좀처럼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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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73만원 정도였으나 2011년 8월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140만원으로 절대적인 금액에서 차이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비정규직 비율 감소와 정규직 비율 증가가 완만하게 꾸준히 진행되거나 정체되는 양상을 보인 데 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는 급속히 커져 왔다.

 

2011년 8월 정규직의 평균임금은 272만원이며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32만원으로 나타났다. 또 전체 임금노동자의 평균임금은 203만원이다. 매년 전체 임금노동자들의 월평균임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이 작년 동월대비 6만 4천원 증가한 가운데 비정규직은 7만 7천원이 증가한 데 머물러 그간 확대되어 온 격차를 다시 좁히기에는 비정규직의 임금상승폭이 매우 부족하다. 더구나 최근 계속되고 있는 물가상승은 일정 수준의 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들어 매월 전년 동월 대비 4%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속되어 왔고, 2011년 10월에 들어서야 3.9%로 겨우 3%대에 진입하였음을 고려하면, 전년 동월 대비 전체 임금노동자의 임금 증가율인 4.3%는 물가상승폭을 겨우 따라잡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은 적극적인 분배 및 재분배 정책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배경으로 한 양극화 확대에 대한 대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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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내에서는 전년 동월에 비해 기간제, 특수고용, 파견노동이 비교적 높은 월평균 임금 증가율을 보였으나, 상용 파트타임의 경우 상당한 임금수준 저하가 나타났고, 임시 파트타임, 호출노동, 용역노동 등 비정규직 내에서도 열악한 일자리의 임금 증가율이 낮아 중층적인 임금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편, 통계청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에 관해서는 통계개발원의 분석결과를 참고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임금격차를 살펴보는 데 있어 성별ㆍ연령ㆍ학력ㆍ경력ㆍ근속기간ㆍ근로시간 등 근로자 개인의 특성차이가 고려되지 않았으므로 월평균임금간의 단순비교를 통해 임금격차를 산정하는데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계청이 소개하는 통계개발원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분석결과는 단시간 노동자를 포함할 경우 11.1%, 단시간을 제외할 경우 9.5%다. 이에 따르면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은 90%를 상회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제시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석의 방법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격차가 나타나기에 앞서 특정 성별, 연령대, 기업규모에 속한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일자리에 집중되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의 표에서와 같이 정규직의 경우 월평균 임금이 100만원 미만에 해당하는 비율은 8.3%에 불과하나,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48.7%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계청이 밝히고 있는 분석방법을 적용할 경우 임금격차가 과소추정될 수 있다. 문제는 월평균 임금액의 격차뿐만이 아니다. 정규직과는 달리 비정규직의 경우 월평균 임금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비율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는 상대적 임금격차뿐만 아니라 절대적 임금수준 또한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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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저임금 노동에 개입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장치인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2010년 4,110원에서 2011년에는 4,320원으로 210원 인상되는 데 그쳤다. 여전히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으로서의 현실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적이지 못한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달하는 노동자들이 다수라는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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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임금노동자들 중 월평균 임금수준이 최저임금(2011년 최저임금 4,320원을 월 단위로 환산)에 못 미치는 노동자들이 16.7%에 이른다. 더욱이 정규직의 경우 98.6%가 최저임금 이상을 받고 있는 데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들의 비율이 1/3에 가까운 32.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시간 노동자들을 제외할 경우에도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 비율이 비정규직의 경우 23.8%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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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격차 외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사회보험 혜택의 격차 또한 여전히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직장가입 비율이 정규직은 97.3%에 이르는 데 비해, 비정규직은 32% 수준인데다가 절반 이상인 56.5%가 아예 적용을 못 받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정규직의 직장가입비율은 98.6%, 비정규직의 경우는 37.1%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중 고용보험에 해당사항이 없는 경우는 1%에 불과하나, 고용보험에 가입된 비율은 35.6%에 머물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이 이처럼 낮음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 수급권 확대, 실업부조 도입과 같은 고용보험 운영 개선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 및 생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이 개선되기는커녕 최근에 이르기까지 적용률이 낮아지거나 정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복잡한 고용형태별 구성 변화 이면의 격차 심화

 

산업부문별로 고용형태 변화를 살펴보면, 건설업, 운수업, 도소매업에서 고용규모가 증가하였고, 제조업과 숙박음식업에서 고용규모가 감소하였다. 건설업과 운수업의 경우 정규직은 감소한 가운데, 일반임시직의 증가가 이를 상쇄하며 고용규모 증대를 주도하였고, 도소매업의 경우 반대로 정규직의 증가가 일반임시직 및 기간제의 감소를 상쇄하며 고용규모 증대를 주도하는 양상을 보였다. 제조업의 경우에는 기간제 일자리가 소폭 증가하는 가운데 정규직, 일반임시직, 임시파트타임의 감소가 전체적인 고용규모 감소로 이어졌고, 음식숙박업에서는 정규직이 상당 규모 증가하였음에도 일반임시직의 대폭 감소로 전체적인 고용규모가 줄어드는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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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고용규모가 감소한 제조업과 음식숙박업에서 고용규모 감소를 비정규직, 그중에서도 일반임시직의 감소가 주도하고, 전체 고용규모가 증가한 건설업과 운수업에서는 정규직의 감소를 상쇄하며 일반임시직의 증가가 고용규모 증가를 주도하는 등 고용 증감이 임시․일용 비정규직 규모 변화에 좌우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한편, 그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어 온 공공부문의 현황을 살펴보면, 비정규직 비율 정체와 고용구조의 악화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가장 넓은 범위에서 공공부문을 정의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분류에 따라 살펴보면, 전체 비정규직 비율이 2000년 비정규직 통계 집계 시작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약10%p 줄어든 데 반해,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비율은 2000년 이후 계속 38%에서 42% 사이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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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공공행정국방산업과 더불어 공공성이 강한 교육서비스업과 보건사회서비스업을 광의의 공공부문으로 정의하는데, 이에 따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공공부문 고용규모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교육서비스업에서는 고용규모 감소가 나타나고 있으나, 공공행정국방산업에서는 소폭의 증가가, 보건사회서비스업에서는 상당한 고용규모 증가가 이를 상쇄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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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행정국방 부문과 보건사회서비스업에서는 일정 규모의 정규직 증가가 나타났고, 교육서비스업에서는 일반임시직의 감소가 고용규모 감소를 주도하였다. 이처럼 일자리 감소가 발생하는 부문에서는 비정규직 고용 감소가 두드러지고, 일자리 확대가 이루어지는 부문에서는 정규직 고용 증대가 두드러지는 것은 비정규직 일자리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로 전환되기보다는 구조조정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편, 가장 큰 고용 증가를 보인 보건사회서비스업의 경우 열악한 일자리인 임시 파트타임이 약2만 3천명 증가, 간접고용이 약7천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 하락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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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행정국방 부문의 경우 정규직 고용증가 주도로 전체 고용규모가 커졌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산업부문들을 위의 표와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가장 큰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전기가스수도업 부문(272만원)과 더불어 공공행정국방 부문(238만원)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가장 큰 산업부문으로 나타난다. 동시에 공공행정국방 부문은 비정규직 평균임금 또한 가장 낮은 수준(75만 8천원)을 보여 정규직 고용증가와 비정규직 고용감소가 고용상황 개선이 아닌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4. 노동조합 조직률

 

비정규직법을 비롯한 제도개선 시도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비정규직 규모의 증가와 비정규직 비율 정체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전년도에 이어 올해에도 전체 임금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의 지속적인 하락세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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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 동월 대비 임금노동자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5%p 감소한 10.9%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정규직은 1.2%p 하락한 19.9%를 보인 반면, 비정규직은 0.1%p 하락한 1.7%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지속적인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률 하락의 배경에는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반노동 정책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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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고용 현황과 고용정책의 과제 - 고카 카즈미치

* 가나자와 대학의 고카 카즈미치 선생께서 최근에 쓰신 글이라며 보내주셨다.

  대지진 참사 이후 일본의 고용상황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정책적

  시사점 또한 크다는 생각에 옮겨 둔다.
 

 

일본의 고용 현황과 고용정책의 과제

 

 

고카 카즈미치(伍賀一道)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약15년 사이, 일본의 고용과 실업의 상황은 큰 변화를 겪어왔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층이 감소하고 방대한 규모의 비정규고용, 실업자, 반실업자 층이 형성되었다. 이는 장시간노동이나 불규칙노동, 과로사로 대표되는 열악한 노동환경의 확산을 수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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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용정책의 과제는 고용과 노동방식 및 노동환경의 양면에 걸친 개혁(‘일다운 일’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실업시기의 생활보장을 비롯한 복지국가 정책의 실시가 필수적이다. 이번 대지진 참사 이후의 현실은 그 필요성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림1은 일본의 고용과 실업, 반실업의 현황을 개괄적으로 보여준다(다만 원의 크기는 해당 범주의 규모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정규고용이 감소하는 한편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고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양자 모두 부분적으로 중첩된다. 비정규고용 가운데에는 반실업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이 적잖이 존재한다. 실업에는 반실업 외에도 현재적 실업과 잠재적 실업이 있으며, 각각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고용과 실업을 둘러싼 구조변화에 따라, 평범한 직장생활을 통해 자립하여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아 기르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사회경제적 재생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고용과 노동방식의 변화를 개괄하고 그 요인을 파악해본 뒤 개혁의 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기본적인 관점은 일본헌법이 정하고 있는 생존권 및 노동권의 보장이다.

 

 1. 고용과 노동의 변화

 

1990년부터 2010년 사이의 20년간 정규고용은 3,488만명에서 3,363만명으로 125만명 감소한 반면, 비정규고용은 같은 기간 동안 1990년 881만명에서 2010년 1,708만명으로 두 배 늘었다. 비정규고용의 비율은 ‘임원을 제외한 고용자’의 5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증가하였다(표1 참조). 이 기간 동안 ‘자발적 선택형’, ‘가계보조형’의 비정규고용은 감소하였고,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유형’과 ‘자립형’의 비정규고용으로 변화하였다.(주1) 비정규고용은 청년층 가운데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고, 신규졸업자의 상당수가 비정규노동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고용형태 변화는 정규고용의 노동방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표1. 고용형태별 노동자, 완전실업자의 추이 (단위: 만명, %)

 

구분

임금노동자

정규고용

비정규고용

비정규직

비율

완전실업자

1990년 2월

4,369

3,488

881

20.2

142

1995년 2월

4,780

3,799

1,001

20.9

199

2000년 2월

4,903

3,630

1,273

26.0

327

2005년

(1-3월 평균)

4,923

3,333

1,591

32.3

294

2010년

(1-3월 평균)

5,071

3,363

1,708

33.7

332

주: 1990년에서 2000년까지와 2005년 이후의 조사집계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시계열

      비교는 불가능함. 2005년 완전실업자수는 평균치.

출처: 1990년에서 2000년까지는 ‘노동력조사 특별조사’(연2회 실시), 2005년 이후는

      ‘노동력조사’(상세집계) 자료에 의거함.

 

(1) 비정규고용의 증가가 의미하는 것

 

비정규고용의 증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저임금노동자의 증가이고, 둘째는 고용조정을 하기 쉽고 당하기 쉬운 노동력의 증가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셋째인데, 사용자의 책임이 공동화됨에 따라 위험을 떠안게 된 노동자들이 증가한 것이다. 이러한 고용형태들은 공통적으로 생존권과 노동권의 형해화를 낳고 있다.

 

① 저임금노동으로서의 비정규노동

 

비정규고용의 약4분의 3의 연간 임금소득이 200만엔에 못 미친다(노동력조사 세부집계, 2010년 평균). 300만엔 미만까지 넓혀보면 그 비중이 약90%에 이른다. 103만엔, 130만엔의 벽을 의식하여 스스로 노동시간을 조정하는 파트타이머도 적지 않지만, 반대로 연간 2,000시간의 노동을 해도 수입이 200만엔 정도로 독신자 기초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노동자가 다수 존재한다.

 

증가하는 비정규고용 안에서도 약30%는 주40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는 ‘풀타임형 비정규고용’이다. 이 중에서도 연수입 200만엔 미만의 노동자가 약15%를 차지한다. 이들 풀타임형 비정규고용 중에는 단시간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를 겸직하는 사람들(투잡, 쓰리잡)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주49시간 이상의 장시간노동을 하는 비정규노동자도 66만명에 이른다(노동력조사 세부집계, 2010년 평균).

 

② 유기고용: 고용조정이 용이한 노동력

 

비정규고용의 대부분은 고용계약기간이 한정되어 있는 유기고용계약 노동자이다. 그 규모를 정확히 집계하는 통계도 없다. 표2는 노동력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고용형태와 고용계약기간을 제시한 것이다. 2010년 비정규고용(1,730만명, 다만 비농림업고용자에 한함) 중 739만명(42.7%)이 ‘임시․일용직’인데, 유기고용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같은 조사의 ‘상용직’ 정의는 ‘고용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자’, 또는 ‘1년 이상의 고용계약 하에 일하는 자’로 되어 있다. 상용직 가운데에 유기고용이 어느 정도를 점하고 있는지는 통계로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표2. 고용형태와 고용계약기간의 현황 (단위: 만명)

 

구분

비농림업고용자

정규고용

비정규고용

 합계

상용

임시

일용

 합계

상용

임시

일용

합계 

상용

임시

일용

2002

4,907

4,137

770

3,471

3,444

26

1,437

693

743

2003

4,908

4,135

773

3,422

3,390

32

1,485

745

742

2004

4,975

4,165

774

3,393

3,367

26

1,547

798

749

2005

4,976

4,188

786

3,358

3,336

22

1,618

853

765

2006

5,049

4,275

774

3,390

3,366

24

1,659

909

751

2007

5,127

4,354

773

3,415

3,395

20

1,712

960

753

2008

5,112

4,348

764

3,372

3,354

18

1,739

992

747

2009

5,047

4,291

757

3,350

3,330

20

1,696

959

738

2010

5,053

4,295

758

3,323

3,304

19

1,730

991

739

주: 고용자는 임원을 제외한 수치.

출처: 후생노동성 편, “2011년판 노동경제백서”, 원자료는 ‘노동력조사’(세부집계).

 

비정규직 중 상용직은 991만명(57.3%)이지만, 이 가운데에 실제로는 유기고용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고용계약기간의 정함이 없는 파트타이머의 경우 유기계약 파트타임과 비교하면 고용은 안정되어 있지만, 그것도 상대적 의미에 불과하다. 막상 기업이 고용조정을 하는 단계가 되면 정규고용보다 먼저 대상이 되는 것은 유기고용 파트타임, 뒤이어 상용 파트타임일 것이다. 기업 형편에 따라 손쉽게 고용관계가 단절될 수 있는 노동자가 비정규고용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표2에서 눈에 띠는 것은 비정규고용 가운데 상용직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약300만명이 증가하였으나 그것은 1년 이상 유기고용의 증가를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반면 정규고용 중 상용직은 같은 기간 동안 140만명 감소하였다.

 

한편, 노동력조사의 설문 문항에 따라, 1년 이내의 고용계약을 반복적으로 갱신함으로써 1년 이상의 기간 동안 고용된 노동자도 상용직으로 파악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서 후생노동성이 실시한 ‘2009년 유기고용계약에 관한 실태조사’(개인조사)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기계약 노동자의 계약기간은 1년 이내가 80%를 점하고 있는데(6개월 초과 1년 이하가 40%, 3개월 초과 6개월 이내가 22.5%, 2개월 초과 3개월 이내가 17.5%), 갱신을 반복함에 따라 유기계약 노동자 중 60%의 통산 근속년수가 1년을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3년을 넘는 경우도 30% 가까이 된다(3년 초과 5년 이하 15.3%, 5년 초과 10년 이하 13.4%).

 

유기고용 노동자는 계약갱신의 불안을 끌어안고 일한다. 사용자의 불합리한 요구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일본의 노동법제에는 유기고용의 활용에 대한 규제가 매우 부족하다. 기업이 유기고용을 활용하는 사유를 제한할 것은 물론, 일정 기간을 넘은 유기고용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계약으로 간주하는 등의 규제 도입이 필수적이다.

 

③ 간접고용: 사용자책임의 공동화, 중간착취의 리스크

 

간접고용(파견노동, 용역노동)의 경우, 직접고용인 유기고용에 비해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크다. 노동비용의 절감에 더해 사용기업(파견처, 발주처)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고 고용조정을 손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재서비스 사업자(파견업체, 용역업체)는 저렴한 비용, 고용조정의 용이함, 사용자책임의 회피를 상품으로 내걸며 사용기업측에 판매공세를 펼친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상시적인 고용불안을 떠안게 된다. 이른바 상용형 파견과 같이 사용기업과 상시고용관계에 있는 파견노동자라 하더라도 고용조정의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2008년부터 2009년에 걸친 ‘파견해고’ 시기에는 상용형 파견노동자도 계약해지나 해고의 대상이 되었다. 등록형 파견이나 일용파견의 경우에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더욱 증대한다. 한편, 노동자파견법에는 ‘상용형 파견’이나 ‘등록형 파견’이라는 용어가 없다. ‘특정노동자파견사업’을 정의함에 있어 ‘해당 사업의 파견노동자(사업으로 행해지는 노동자파견의 대상이 되는 자에 한함)가 상시고용 노동자들로만 이루어진 노동자파견사업을 말한다(노동자파견법 제2조5항)’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주2)

 

파견노동은 직업안정법이 금지하고 있는 노동자공급사업의 일부가 노동자파견법 제정에 따라 합법화된 것이나, 그 주변에서는 인재중개업자(일명 ‘수배사’)에 의한 위법한 노동자공급사업이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현재,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처리 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노동자의 상당수가 수차에 걸친 하청구조를 통해 배치된 간접고용 노동자인데, 그 노동실태는 블랙박스 속에 가려져 있다.(주3) 후쿠시마현 이와키시의 와타나베 히로유키(渡辺博之) 시의원의 보고에 의하면 중층적 하청구조가 6차, 7차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동경전력 측은 노동자 1인당 5-10만엔의 일당을 지급하고 있는데도 말단의 노동자가 받는 것은 6,500엔에서 12,000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가혹한 환경 속에서 피폭당하며 일하는데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들 한다(아카하타 신문 2011.8.13). 그밖의 언론들도 이와 유사한 실태를 보도하고 있다. 현장작업원의 다수는 4차 하청보다도 하위에서 고용된 일용노동자나 개인도급 노동자로서, 말단으로 갈수록 ‘삥땅’을 당해 일당이 적어진다. 가장 위험한 원자로 건물 안에서 작업하는 노동자의 경우에도 일당은 1만 수천엔 정도에 불과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선데이 마이니치 2011.9.18).

 

비정규고용은 2008년에서 2009년 불황 하의 파견해고, 비정규직 해고에 의해 일시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2010년에는 다시금 증가세로 돌아섰다. 고용의 질 저하(저임금노동, 고용조정의 용이함, 사용자책임의 공동화, 중간착취 등)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것이 일본의 고용과 노동방식의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이나 의료, 복지, 공무원 분야에도 비정규고용화의 물결은 밀려들고 있다. 이상과 같은 현상은 내수확대에 의한 안정된 경제의 실현에 역행하여, 더욱 대외의존적 체질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 정규고용은 괜찮은가

 

① 주변적 정규직, 이름뿐인 정규직: 불안정화되는 정규고용

 

정규직이라고는 이름뿐인 ‘주변적 정규직’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도 오늘날의 고용의 질 저하의 상징이다. 정규고용(2010년 3,355만명) 가운데 427만명(12.7%)는 연수입 200만엔 미만이다. 그중 상당수가 여성으로서, 이들이 여성 정규노동자 1,046만명 중 약4분의 1(267만명)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짧아 임금수준이 낮기 때문인 것이 아니다. 33만명(12.4%)은 주49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고 있다. 연수입 200만엔 미만의 남성 정규노동자도 160만명이며, 더욱이 37만명(23.1%)은 주49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정규직이라고는 하지만 남녀 합계 70만명이 주49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연수입은 200만엔 미만이다. 정규고용임에도 추가적인 취업을 희망하는 노동자가 98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노동력조사 세부집계, 2010년 평균). 그림1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실상의 반실업 상태인 것이다.

 

② 정규고용 노동방식의 빈곤

 

비정규․불안정취업의 확대는 정규고용의 노동방식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직장 내 정규직이 감소하고 이제껏 정규직이 담당해온 일을 파견사원이나 계약직 사원, 파트타임이 담당하게 되면, 당연히 남겨진 정규직은 더욱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 비정규고용을 경유하여 어렵게 확보한 정규직 자리라면 그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도 스스로 장시간노동에 매달리게 되는 상황이 된다.

 

노동력조사에 의하면, 남성 정규직(연간 250일 이상 취업) 가운데 주6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의 비율은 최근 4분의 1에 달하고 있다. 주65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도 12.5%에 이른다.(주4) 특히 20대, 30대 장시간 노동자가 두드러진다. 성과주의 인사관리(성과주의 임금체계)는 스트레스가 강한 노동환경을 조성하며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2011년 4월 후지츠종합연구소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공서열 임금체계에서 성과주의 체계로의 전환에 따라 기업내 임금격차(특히 동일 연령 내 임금격차)가 확대됨과 더불어 노동자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시금 기업내 임금격차와 장기휴업률 및 사망률 간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해준다.

 

2. 실업․반실업으로부터 본 오늘날 고용의 특징

 

이상에서 살펴본 고용과 노동의 현황을 실업․반실업의 시점에서 다시 살펴보자.

 

(1) 반실업: 고용과 실업의 중간형태

 

비정규직 및 주변적 정규직은 반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그림1 참조). 그러나 일하고 있는 한 노동력조사상의 완전실업에 포함되지 않는다. 비정규고용은 고용의 안정성이나 임금수준, 사회보험 적용의 측면에서 정규고용에 가까운 층부터 현재적 실업에 까까운 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따라서 정규고용과 비정규고용(불안정취업) 간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비정규고용과 실업 간의 경계도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실업기간 중 생활보장이 매우 부족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완전실업자 가운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이들의 비율은 70%를 넘는다. 생활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구직활동에 시간을 쏟을 여유는 없다. 따라서 열악한 조건의 일자리에서라도 다른 수가 없으니 일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투자해 구직활동을 할 권리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반실업이 확대되는 기반이다.

 

그렇다면 반실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앞서 살펴본 비정규노동자는 상당수가 반실업 상태에 놓여 있으나, 전부가 그러한 것은 아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임금수준이 낮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형태로의 전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우선 반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생노동성의 취업형태 다양화에 관한 종합실태조사(2007년)에 의하면, 정규직 이외의 형태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가운데 ‘다른 형태로의 취업을 원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약30%다. 그 가운데 90%는 정규직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 정규직 취업을 원하는 주된 이유는 ‘정규직 쪽이 고용이 안정적이므로’, ‘임금수준이 보다 높아서’ 등이다. 따라서 오늘날 비정규고용 가운데 최소한 30%를 반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2010년 비정규고용 1,755만명 가운데 반실업자는 520만명(그림1의 A, D, G에 해당)으로 볼 수 있다. 다만,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통계로 파악되지 않는 노동자가 상당 규모로 존재하므로 반실업자는 이러한 추계치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2) 현재적 실업

 

통계상의 ‘완전실업자’는 현재적 실업자를 말한다(그림1의 B에 해당). 노동력조사의 조사기간(매월 마지막 일주일간) 중에 단 몇 시간이라도 일에 종사하면 완전실업자가 아니라 취업자(그림1의 D에 해당)로 파악된다. 그러나 실상은 현재적 실업자와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완전실업자수 및 완전실업률만으로 실업문제를 논할 수는 없지만, 이들 지표가 실업문제를 둘러싼 주요 지표임에는 변함이 없다.

 

완전실업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하여 1999년에는 300만명을 돌파, 완전실업률 4.7%에 이르렀다. 이는 1998년부터 1999년에 걸쳐 진행된 대규모 정리해고에 의해 정규고용 100만여명이 급감한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 규제완화 정책(대형 소매점 관련법 폐지, 편의점 영업규제 완화 등)에 의해 도태된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 급감 또한 관련이 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양자는 324만명 감소하였고,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에는 303만명이 감소하였다. 20년간 627만명이 감소한 것이다. 그간 자영업 세대는 한편으로 실업자층의 저수지 기능을 해 왔으나, 규제완화 정책은 그 저수지의 제방을 무너뜨려, 이들이 노동시장으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다수는 노동자가 되었고, 나머지는 완전실업자 또는 잠재적 실업자가 되었다.

 

완전실업률은 2002년 피크(5.4%)에 도달한 뒤,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걸쳐 떨어졌으나, 2009년과 2010년에는 연달아 5%를 넘었다. 특히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연령대에서 완전실업률 상승이 두드러진다(2010년 평균 남성 10.4%, 여성 8.0%). 전연령대 실업률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청년층의 완전실업률 상승요인 중 하나는 신규졸업자의 취업란이다. 문부과학성의 학교기본조사연보에 의하면 올 봄 대졸자(55만2,794명)들의 취업률은 61.6%(34만546명)에 머물고 있다. 졸업 시점에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이들이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졸업자의 19.4%(10만7,134명)에 이른다(니혼게이자이 신문 2011.8.15).

 

청년층의 완전실업률 상승 요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단 취업’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이직 및 전직을 반복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보다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직업훈련을 받을만한 조건도 이젠 여의치가 않다. 청년들의 노력부족에서 그 요인을 찾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번 대지진 재해에 의해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 3개 현의 피해지역에서는 현재적 실업자가 대폭 증가하고 있다. 총무성은 조사체제가 정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3개 현에 대해 노동력조사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노동력조사를 통해 지진 재해로 인한 실업 증가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후생노동성의 집계로는 고용보험가입자 가운데 이직증명이나 재해시 휴직증명을 받아 실업급여를 신청한 이들의 규모가 지진 발생 시점부터 올해 8월 21일까지 합계 15만3,173명(미야기현 6만6,576명, 후쿠시마현 5만4,285명, 이와테현 3만2,32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해 같은 기간 동안 실업급여 신청자수가 8만2,763명이었으므로 지진 재해로 인한 실업자는 7만명을 상회하는 것이 된다(마이니치신문 2011.9.6).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진 재해에 의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해도 이 수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신규졸업자 중 취업을 내정받았던 직장이 사라지게 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3) 잠재적 실업

 

취업을 희망하면서 적당한 일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직활동을 단념한다면 완전실업자로 파악되지 않는 잠재적 실업자에 해당하는데, 이들의 규모 또한 상당하다(노동력조사 세부집계 2010년 평균 165만명으로 그림1의 C, E, F에 해당). 이 가운데 자신의 지식, 능력에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는 이들은 20만명에 이른다.

 

노동력조사의 조사기간 중에 사정이 있어 구직활동을 하지 못하였지만 취업을 희망하여 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취업하고자 하는 이들은 현재적 실업자와 별 차이가 없다(그림1의 F에 해당). 평소에 단기간의 아르바이트 등에 종사하고 있지만 노동력조사의 조사기간 중 일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은 이들은 통계상 비경제활동인구로 파악되지만 실제로는 잠재적 실업인 동시에 반실업 상태이기도 하다(그림1의 E에 해당). 더욱이 현재 취업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취업을 희망하여 실제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임원을 포함한 고용자 가운데 104만4,000명, 비정규고용에 한하여 보면 61만7,000명이다(그림1의 G에 해당).

 

이상을 바탕으로 반실업, 현재적 실업, 잠재적 실업을 합산해 보면 다음과 같다(2010년 평균). 먼저 그림1의 A, D, G의 합이 약520만명, B가 334만명, C, E, F가 165만명, 합계 1,019만명이 된다. 노동력인구 6,510만명을 기준으로 이들 전체 실업자의 비율은 15%에 이른다. 이는 완전실업률 5.1%의 약3배에 해당한다.

 

3. 고용․실업 구조변화의 요인은 무엇인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용의 질 저하, 노동방식의 빈곤, 실업․반실업의 증가를 가져온 요인으로 우선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 의해 생산 및 유통과정의 자동화가 가속화되어(주5) 생산 및 서비스에 필요한 노동량의 상대적․절대적 감소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단축에 의해 노동자 1인당 노동량의 감축을 추진하지 않는 한 다수의 노동자들에게 고용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어렵게 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현실은 이에 역행하여 장시간․과밀노동, 심야․불규칙노동이 만연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이윤의 극대화를 기본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계가 있으나, 특히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경쟁의 격화를 이유로 대기업들이 비용절감 명목으로 노동자 1인당 노동량의 증가를 요구하면서 이러한 경향에 박차를 가했다.

 

노동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과 노동시간단축 및 과밀노동 규제에 의해 고용기회를 늘리는 것의 중요성이 논의되어 온지는 오래지만, 전체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운동으로 추진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36협정’ 체결에 의해 노동시간 규제의 공동화를 가져온 노동기준법 제36조의 폐지 요구를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본격화가 요구된다(역주: 일본에서는 사업장 내 과반수를 조직하고 있는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대표가 사업주와 협정을 체결하고 협정서를 행정관청에 제출하는 것이 시간외근로 및 휴일근로 허용 조건 중 하나다).

 

둘째, 글로벌 경쟁의 격화를 이유로 경쟁력 강화 논리에 따라 고용유연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고용전략에 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정부는 노동자파견법 개정을 통해 기업의 고용전략을 지원해 왔다. 유기고용에 대한 규제도 방치된 채이다.

 

인재서비스 사업자(파견업체와 용역업체)가 시장확대를 목표로 영업을 확대한 것 또한 간접고용의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의 간접고용의 증가속도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ILO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노동자파견사업 시장규모는 두 배로 증가하여 2007년에는 341억달러에 달했다. 또한 미국(28%), 영국(16%), 일본(14%), 프랑스(9%), 독일(6%), 네덜란드(5%)의 6개국이 세계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의 시장확대는 현저하여 2000년부터 2007년까지 147억 달러에서 433억 달러로의 증가세를 보였다.

 

셋째, 실업부조 등 실업시의 생활보장 제도를 본격적으로 정비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시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실업자들을 열악한 일자리로 내모는 압박이 강해지기에 불안정고용이 증대된다. 대량실업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고도성장기로부터 저성장경제로의 전환기에 일본은 실업보험법에서 고용보험법으로의 전환(1974년)을 통해 기업에 의한 고용보장에 중점을 둔 실업대책을 선택했다. 불황기에는 고용보험재정으로부터 사업주에게 고용조정급부금(현재의 고용조정조성금, 중소기업긴급고용안정조성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잉여노동력’을 기업 내에서 포용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고용보험 가입요건을 ‘1년 이상의 고용 지속 예상’으로 함으로써 고용계약기간을 의도적으로 짧게 하여 사용자가 고용보험료 납부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열어두었다. 2001년 4월에는 이직에 의한 실업급여 지급일수에 격차를 두고 지급기간을 단축하는 제도 개악을 행하였다. 실업급여액은 이직직전의 반년간의 임금수준에 의해 규정되어 있기에 저임금노동자는 실업급여액 수준도 낮게 된다. 이처럼 실업시 보장체계의 미비는 직업경험과 능력에 걸맞는 구직활동을 일정한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여유를 실업자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지진 재해 이후 실직한 피해자들이 대피소에서 고용지원센터로 쇄도했던 일이 이러한 현실을 상징한다.

 

넷째, 비정규고용, 반실업 상태의 노동자(특히 청년층)를 고용하는 서비스 부문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산업별 취업 구조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도소매업, 숙박업, 음식업 부문의 취업률이 높은 반면, 교육, 보건, 행정 부문의 취업률은 낮다. 표3에서와 같이 북유럽 복지국가들과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난다.

 

 표3. 취업자의 산업별 구성비 (2008년) (단위: %)

 

구분

일본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농림어업

4.2

2.4

1.3

2.8

2.1

광업

0.0

1.5

0.4

0.1

0.3

제조업

18.4

11.9

13.0

13.9

20.3

전기,가스,수도

0.5

0.8

0.6

0.7

0.8

건설업

8.4

7.2

8.1

6.6

6.0

도소매,음식,숙박

23.5

23.2

19.0

15.3

16.1

운수,창고,통신

6.1

6.5

6.7

5.9

5.1

금융,보험,부동산

14.6

16.9

15.8

12.8

13.1

행정,국방,법정사회보장

3.5

5.2

7.1

9.5

6.8

교육,보건,사회복지

13.9

17.4

21.6

17.9

16.3

대지역,사회,개인서비스

5.6

5.4

6.1

6.3

5.6

 

표3. 취업자의 산업별 구성비 (2008년) (단위: %) (계속)

 

구분

네덜란드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농림어업

2.7

4.4

2.2

2.8

광업

0.1

0.2

0.2

1.7

제조업

11.5

16.8

14.3

11.3

전기,가스,수도

0.5

0.7

0.5

0.7

건설업

6.0

7.2

6.7

7.3

도소매,음식,숙박

18.0

15.7

15.5

17.0

운수,창고,통신

6.1

6.6

6.0

6.2

금융,보험,부동산

15.9

14.1

17.2

13.7

행정,국방,법정사회보장

6.4

5.2

5.7

6.4

교육,보건,사회복지

22.5

21.0

26.3

28.6

대지역,사회,개인서비스

4.7

6.2

5.4

4.3

주1: 취업자에는 자영업자 및 가족종사자가 포함됨.

주2: 산업분류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제외함. 따라서 일부 국가의 경우

      합계가 100이 되지 않을 수 있음.

주3: 영국은 2006년 수치임. 미국은 산업분류가 불분명한 항목이 많아 제외하였음.

자료: 국제노동기구 노동통계(2008)로부터 작성.

 

소매업, 음식업, 개인서비스 부문은 제조업에 비해 설비투자에 필요한 비용이 적고 비정규고용을 활용하면 비교적 소규모 자본으로도 진입이 가능한 부문이다. 이들 부문은 제조업 라인이나 사무직에서 일할 수 없는 청년층이 흘러들어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들 부문 자체가 반실업자 풀이기도 하다. 취업구조기본조사(2007년)에 의하면 도소매업 부문에서 정규노동자는 489만5,500명인데 반해, 비정규노동자는 437만3,300명으로 나타났고, 음식 및 숙박업에서는 정규노동자 81만9,600명, 비정규노동자 184만4,400명으로 두 배 이상의 차이가 나타났다.

 

4. 고용정책 과제

 

이상과 같이 일본의 고용과 노동의 질 저하, 실업․반실업의 확대 현상, 그리고 그 요인에 대해 개관해보았다. 이하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고용정책의 과제를 제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오늘날 필요한 고용정책의 기본은 실업․반실업의 억제하고 줄이는 동시에 실업․반실업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1) 노동기준의 명료화에 의한 실업․반실업의 축소, 고용의 질의 개선

 

첫 번째 과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비롯한 노동기준의 명료화에 의한 실업․반실업의 축소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기업은 경영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인력감축을 추진하고 있지만,(주6) 이를 방치한 채로는 실업․반실업이 계속하여 증가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잔업’의 근절은 노동시간의 실상을 명확히 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의 대전제다. 나아가 1일 노동시간의 상한 설정에 따른 노동시간 규제가 중요하다.

 

이와 병행하여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노동자파견법의 전면적 개정, 유기고용에 대한 규제, 동등대우 원칙의 도입, 최저임금 인상, 노동자성을 부정하는 개인사업자화의 규제 등이 구체적 과제가 된다. 이는 반실업의 축소를 의미한다. 규제완화 추진론자들은 비정규고용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현재적 실업을 줄이기 위해 노동법제의 규제 완화를 주장해 왔다. 비정규고용이 실업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논리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자를 편한대로 쓰고 버리는 비정규고용을 줄이고, 실업자의 생활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직업훈련을 전제로 보다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용의 질을 개선함에 있어 최저임금의 인상은 특히나 중요하다. 2010년도 지역최저임금액 개정에도 불구하고 9개 도도부현의 최저임금은 독신자 기초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친다.(주7) 이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동의 보장을 정한 헌법 및 최저임금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를 방치하는 것은 취업 동기를 손상시켜 생활보호로부터의 자립을 어렵게 함과 더불어 생활보호 수급자들에 대한 불만을 조장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올해 6월 최저임금 제도의 운용에 관한 의견서를 공표하였는데, 그 내용에는 취업 동기를 확보하기 위해 생활보호 급부 수준을 상회하는 최저임금 수준을 검토할 것, 최저임금과 비교해야 할 생활보호 수준에는 독신자뿐만 아니라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세대 또한 포함시킬 것, 최저임금 산정 기준 노동시간으로는 월150시간을 고려할 것,(주8) 최저임금수준을 결정함에 앞서 비정규노동자의 생활 실태를 상세히 조사할 것 등 대정부 요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올해 6월 가나가와 현내 노동자 68명이 최저임금액이 생활보호 수준을 하회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1,000엔으로의 인상을 요구하며 요코하마지방법원에 제소한 바 있다. 생존권보장과 노동권보장을 결합한 새로운 법정투쟁이다.

 

(2) 고용을 늘리는 고용정책

 

수출형 대기업의 성장이야말로 대지진 재앙으로부터의 부흥의 전제조건이고 이를 위해서는 법인세 감세, 노동규제 완화, 원전 재가동,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의 참여 등이 필수적이라는 논조가 힘을 얻어가고 있는 오늘날, 수출형 대기업의 성장을 전제하지 않고도 고용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과 더불어 내수주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것에만 매달려 반실업상태의 고용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고용이 증가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소매업, 음식업, 대인서비스부문은 내수형 산업이기는 하지만 비정규고용 의존형 산업인 동시에 ‘에너지 과다 소비형 24시간 사회’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문이다. ‘일다운 일’이라는 목표의 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산업구조에의 전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사회서비스 부문(교육, 보육, 의료, 사회복지 등)의 확충이 필요하다. 재계는 이 부문의 시장화․민영화를 의도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서비스의 질 저하, 비정규고용에 의존적인 저임금 산업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개호보험 도입 후의 사회복지 노동 실태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시장화․민영화를 통해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도 ‘일 다운 일’과는 거리가 먼 ‘쓰고 버리는 일자리’가 될 것이다.

 

둘째, 농림수산업도 지역사회 중심의 친환경 산업구조를 위해 발전이 필요하다. 대지진 피해지역에서 동일본대지진부흥구상회의(2011년 6월)가 시도한 특구 구상에 대항하여 각 지역별로 농림축산업의 부흥을 꾀하는 사람들이 보여준 주체적인 노력이 그 모델이 될 것이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환경 속에서 생산되고 있는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식품의 제조 및 판매와 관광을 결합한 사업 창출도 중요한 시도다. 이를 통해서도 새로운 고용기회 또한 창출되고 있다.

 

셋째, 원전 의존적 에너지 과다 소비형 산업구조로부터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환경관련 산업은 새로운 고용창출 영역이 될 수 있다. 후지타 미노루(藤田実) 씨의 제안과 같이 환경관련 산업은 대기오염방지기술, 에너지 절약 기술, 물 공급 시스템, 전력기술, 신소재 기술, 중소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미세가공기술 등 그간 일본이 축적해 온 산업기술을 기반으로 할 수 있다. 환경관련 산업의 구축은 이들 제조업은 물론 농림업, 건설업, 서비스업과 결합될 수 있다.(주9)

 

넷째, 통상적으로 민간부문 및 공공부문에 취업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취업을 희망하는 실업자에게 취업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공공근로 사업을 재도입하는 것이다. 공공근로 사업은 2차대전 이후 긴급실업대책사업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업자의 체류, 사업의 비효율성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1990년대 후반 폐지되었다. 그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실정에 맞는 공공근로 사업 방향에 대해 지역경제 관계자들(노사, 자치단체 등)이 협의하며 다시금 추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의 불황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가 실시한 긴급고용창출사업인 ‘내고향고용재생특별기금사업’을 활용한 일자리 만들기가 전국의 자치단체에서 실시되고 있어 이들의 경험을 살릴 필요가 있다.

 

공공근로 사업과 병행하여 공적직업훈련의 확충, 특히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생활보장 연계 직업훈련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업내에서의 교육훈련 이수가 불가능한 비정규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는 현재, 보다 양호한 조건의 일자리로 이동하기 위한 공적 직업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직업훈련 내용의 확충과 더불어 취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개별 지원의 충실화가 과제가 된다.

 

(3) 실업시의 생활보장

 

이상의 정책과 병행하여 실업․반실업 상태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불안정한 노동을 강요하지 않고 일정 기간의 생활보장을 실시하는 것은 고용의 질을 유지하고 ‘일 다운 일’에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생활보장 제도 개혁, 실업부조 제도 신설 등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구체적 정책들이 요청된다.

 

 

 

(주1) 후생노동성의 취업형태의 다양화에 관한 종합실태조사(2007년)에 따르면 정규직 이외의 노동자 중 가구 주수입원이 자신이라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45.4%로 나타난 반면, 배우자(41.5%), 부모(8.1%) 등 본인 외의 가족인 경우가 54.4%로 나타났다. 특히 파견노동자의 경우 본인이 가구 주수입원이라 응답한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70.5%). 2003년 조사에서는 전자가 42.8%, 후자가 56.0%로 나타난 바 있다.

 

(주2)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와키타 시게루(脇川滋) 교수의 조언을 얻었다. 한편, 특정노동자파견사업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다카나시 아키라(高梨昌)의 저서 <해설 노동자파견법>(제3판, 2007년)을 참조하였다.

 

(주3) 1970년대 원전 하청노동자의 상세한 기록으로서 호리에 쿠니오(堀江邦夫)의 <원전집시: 피폭 하청노동자의 기록>을 들 수 있다. 또한 후쿠이현 와카사 지역을 대상으로 1980년대 원전 노동자와 그 가족의 노동 및 생활에 대한상세한 조사연구업적으로 타카기 카즈미(高木和美)의 <일용직 노동자의 생활문제와 사회복지의 과제: 와카사지역의 원전 일용노동자의 생활실태 분석을 중심으로>(1987년 일본복지대학 석사학위논문)가 있다. 그밖에도 언론보도에 의하면 동경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처리에 투입된 현장노동자 가운데에는 인재중개업자(노동자공급사업자)가 오사카시 니시나리구에서 허위구인정보에 의해 동원된 노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주니치 신문 2011.5.8).

 

(주4) 모리오카 코지(森岡孝二)의 ‘노동시간의 이중구조와 양극화’(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잡지 627호, 2011년)를 참조.

 

(주5) 제조업 생산라인에의 로봇 도입 외에도 은행의 ATM화 및 인터넷 뱅킹, 일부 슈퍼마켓 계산대의 무인화, 셀프서비스 주유소 등장을 들 수 있다.

 

(주6) 신문보도에 의하면 리코(Rico)가 국내외 약11만명의 종업원을 대상으로 3년간 1만명의 고용조정을 단행한다고 한다. 국내 고용조정 규모는 수천명이다(니혼게이자이 신문 2011.5.26). 파나소닉은 올해까지 국내외 1만 수천명의 고용조정을 추진하여 2012년에는 고용규모를 35만명 이하로 한다는 방침이다(니혼게이자이 신문 2011.6.28).

 

(주7) 최저임금액과 생활보호수준(생활부조, 주택부조의 합계)의 괴리(차액)는 혹카이도 31엔, 미야기 8엔, 사이타마 9엔, 도쿄 16엔, 가나가와 23엔, 교토 1엔, 오사카 7엔, 효고 3엔, 히로시마 6엔이다.

 

(주8) 후생노동성은 최저임금액 산출 기준 노동시간을 월173.8시간으로 하고 있으나, 이는 시간외노동 약20시간이 포함된 수치이다.

 

(주9) 후지타 미노루(藤田実)의 ‘복지국가형 산업구조에의 전망’(고용문제연구회 편 “‘일다운 일’의 실현, 새로운 복지국가를 목표로”의 4장)을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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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Rosetta)를 다시 보다

로제타(Rosetta)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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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제타>를 다시 보았다. 감독은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형제로 1999년 깐느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젊은 여성 로제타가 식품공장(통조림 공장으로 보임)에서 해고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트레일러 마을에서 힘들게 통근하며 일도 잘 해왔으나 일자리를 잃게 되자, 로제타는 공장 관리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항의한다. 해고의 이유는 다른 무엇이 아닌 계약기간 만료였는데, 이처럼 관리자에게 개인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주거지인 트레일러촌은 집시들의 유랑 마을과도 유사하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말의 유럽 치고는 원초적으로까지 보이는 장면이 다름 아닌 로제타가 마을 근처 연못에서 깨진 유리병과 철사줄로 낚시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던 장면이었다. 연못은 항상 뿌연 흙탕물 투성이다. 이처럼 진흙탕 같은 현실에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잡아보자고 낡시를 던지는 그녀의 반복적이고도 원초적인 행위는 막다른 곳에 몰린 자의 분노를 더욱 증폭하여 전달해 준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는 마찬가지로 실업자 신세인 청년 리케를 만나게 되고, 와플을 구워 파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해 겨우 생계를 이을 수 있게 된다. 남자친구가 생겨 사람다운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리지만 이것도 잠시 뿐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사업주를 꼬드겨 그녀의 와플 가판대 일자리를 빼앗게 된 것이다. 리케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하지만 로제타는 ‘일자리 다운 일자리를 갖고 싶다’고 답한다.

 

결국 그녀는 리케의 소소한 속임수를 꼬발라서 짤리게 하고 일자리를 되찾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알콜중독 폐인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로제타는 차라리 죽어버리려 하는데 가스통의 가스마저 다 떨어져버린 것이 현실. ... 새 가스통을 받아 트레일러로 돌아오는데 리케가 바이크를 타고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마구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중 가스통을 들고 가던 로제타가 넘어진다. 리케가 놀라며 그녀를 일으켜주자 로제타는 눈물을 흘리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와 원망에 휩싸인 표정을 지어보이고 여기서 영화는 돌연 끝난다.

 

이처럼 시종일관 분노에 찬 젊은 여성 청년실업자의 모습을 보며 유럽 전역의 고상한 어른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시대에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주로 정신분석적 함의를 강조하는 그의 논의와 조금 맥락은 다를지라도, <로제타> 역시 1990년대 말 유럽의 청년실업과 그를 둘러싼 사회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98년 벨기에에서는 학교 졸업 후 6개월 이내 청년 13만 3천명 중 7만 2천명이 실업상태였다. 이에 1999년 고용부장관이 25명 이상 기업에 의무적으로 한 해 동안 1명을 청년실업자 의무고용 하도록 하는 계획을 제출하였는데, 이는 총 고용규모의 4%에 해당하는 청년실업자를 추가적으로 의무고용하는 것이었다. 기업측에는 42,702벨기에프랑의 임금 고용을 하는 사용자가 8,000벨기에프랑의 고용부담 감축 적용하는 인센티브가 제시되었다. 이 계획은 로제타 플랜이라 이름붙여졌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추계된 자료를 보면 100인 이상 기업에 5%의 의무고용을 도입할 경우 141,533명의 청년실업자의 고용이 가능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규모는 전체 청년실업자의 약 50%수준이고, 청년실업자층을 넓게 보았을 때 약70만으로 잡으면 약20%수준이 된다.

 

이러한 청년실업 대책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반적인 고용통계지표상 청년층은 15세에서 29세 사이인데, 201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비정규노동통계에 따르면 20대의 비정규직 비율이 50.1%로 절반에 이른다. 비정규직 비율은 학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비정규직 비율은 중졸이하 78.2%, 고졸이하 59.2%, 반면 대졸의 경우 27.6%로 비교적 낮게 나타난다.

 

그밖에도 최근 수년간의 추세를 보면 청년실업률은 6-7% 수준으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고, 고용률은 약40%수준이다. 실업률과 고용률의 격차 이유는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인데, 학교에서 직장이 아닌 학교로 이동하며 실업이 유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예현상의 배후에는 중저학력 취업구조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관련 시험준비자들을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이 약18% 수준에 이르게 된다. 취업준비생이 여전히 대량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가교가 아니라 함정으로 작용하는 고용구조 때문이다.

 

2010년 통계청 경활 청년층부가조사 결과로도 청년층 10명 가운데 4명의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이고, 첫 직장에서 일하는 평균 기간은 19개월이다. 대학 재학 중 휴학경험은 약40%인데, 휴학 사유는 대부분 취업 및 자격시험준비, 어학연수, 인턴 등이다. 한편,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는 약54만명으로 이 중 취업관련 시험 준비자는 10%인 54만명이고, 그중 1/3이 일반직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0대와 50대의 고용률은 70%대 이상인데, 이들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율 또한 40%에서 60% 사이다. 다시 말해 온가족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나서 생계를 유지하며 청년실업자 자녀의 취업준비를 뒷받침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은 고위험부담 가계경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과 가족에게 사회적 위험이 집중되는 경제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색내기라 하기에도 초라한 수준이다. 먼저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을 보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제5조)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권고조항이어서 2010년 조항 적용 대상 공공기관 328곳 중 40.8%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곳으로 나타났고, 이중 64곳은 청년 고용실적이 전혀 없었다. 반면,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공기업 정원을 2만 2천명 감축하였고, 이에 따라 2010년 공기업 신규채용은 전년대비 22% 감소세를 보였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층을 고용하면 중소기업에게 1인당 임금의 50%(80만원 한도)를 6개월 지원하고 정규직 전환하면 추가로 6개월 더 지원하는 방안을 실시하였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겨우 2만 5천여명을 대상으로 그것도 1년 미만의 단기간 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청년인턴제의 정규직 전환 성과가 높다고 선전하는데, 그마저도 중도탈락률이 30% 수준으로 상당히 높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 중소기업으로서는 청년인턴제 조건인 ‘취업 경력 6개월 이내인 사람만 채용 가능’을 충족하는 인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구직자의 요구도 못 맞추고, 중소기업의 현실도 외면하여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의 청년층 비정규노동자들, 아니 좀더 범위를 좁혀도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들 한 명 한 명을 하루종일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녀 본다면 수십 만 편의 <로제타>가 나올 것이라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제아무리 한국사회의 점잖은 어른들이 웬만큼 충격적인 일들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정말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흙탕을 뒤집어 쓸 수도 있음을 절감할 때도 되었지 싶다.

 

 

 

P.S.  2011. 10. 25

 

공교롭게도 오늘 한국경제연구원이라는 민간 연구기관에서 청년의무고용할당제 관련 보고서를 낸 모양이다. 한국과 같은 고학력 청년실업 구조에 로제타 플랜과 같은 형태의 청년의무고용할당제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불러일으키는 등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것이 핵심 주장인 듯하다. 그래 놓고는 대책으로 세제혜택(EITC)을 말하는데, 한 마디로 이 보고서를 쓴 사람의 기본 시각은 청년실업자들을 '눈만 높아가지고 힘들게 일하기는 싫어하는 것들'로 보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중심 하청구조 속에서 경영이 불안하니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이런 일자리를 피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마치 눈만 높은 젊은 사람들이 일하려 안 해서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에 직면하고 경영도 불안해지는 양 현실을 호도하고 뻔한 인과관계의 원인과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어 제시하고 있으니, 이건 대체 뭐하자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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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봉기, 지역에서 변혁을 꿈꾼 노동자 민중의 저항

 

 

여순봉기, 지역에서 변혁을 꿈꾼 노동자 민중의 저항

 


1948년 10월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들이 지역주민들의 지지 속에 일으킨 여순봉기는 단순한 군 내부의 ‘반란’ 사건이 아니라 지역 노동자 민중의 봉기였다. ‘민족’이나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그려져 온 노동자 민중의 ‘저항의 역사’는 지역적 관점에서 또한 끊임없이 재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에서 본 저항의 역사

 

흔히 우리는 “노동자는 하나”라고 한다. 물론 세대, 성정체성 등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부에도 다양한 차이들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더욱 이러한 차이들에 민감해져야 할 것이 요청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 모두를 ‘노동자’라 부른다. 이들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궤적을 되짚어보면 사회변혁의 핵심적 주체로 부상하는 시기와, 자본의 ‘반격’에 직면하여 헤게모니를 빼앗기는 시기가 엇갈린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노동자 역사를 고려함에 있어 ‘사회적 범주’와 ‘시간’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이제 우리는 ‘공간’이라는 범주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계급의 수세 혹은 후퇴의 시기로 표현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에 자본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이동하고, 이에 따라 ‘지역’이라는 공간적 단위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간의 노동운동은 ‘국민국가’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 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차이에 주목하며 ‘이주’노동자들을 언급할 때조차 그 기준은 국가간 이주다. 물론 새롭게 지역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은 현재의 시점에서뿐만이 아니다. 지역적 관점은 과거, 즉 노동자 역사를 되짚어 볼 때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단일한 하나의 역사란 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지배적 역사서술에 대항해 온 노동자 민중의 역사, 나아가 조직 중심의 노동운동사를 탈피한 노동계급 생활사와 노동자 자기역사쓰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저항의 역사’를 보다 정교화하기 위해서는 ‘민족’ 또는 ‘국민국가’라는 개념의 유령을 떨쳐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역적 관점에서 역사쓰기의 시도들이 보다 더 필요하다.(주1) 지역적 관점에서 역사쓰기는 ‘장소정체성을 둘러싼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일례로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역사를 고려하면서 우리는 울산이라는 도시를 둘러싸고 ‘기업도시’와 ‘노동자 도시’라는 장소정체성이 경합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해방정국의 역사적 중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변혁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는 점을 고려 할 때, 해방정국이라는 시기의 역사적 의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시작된 미군정의 통치는 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았고, 자발적으로 공장을 접수하여 생산을 재개하는 노동자들의 공장자주관리운동을 탄압하였다. 또한 일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여 분배하고 있던 인민위원회의 토지정책을 무효화하고 친일 관리와 경찰 등을 그대로 군정 기구에 재등용하면서 억압적인 국가기구와 법제도를 강화했다.
 

남한 단독정부를 준비하던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민중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을 본격화하였으나, 이에 맞선 노동자 민중의 저항 또한 시작되었다. 한편, 해방정국의 좌파는 조선공산당의 재건운동을 펼치며 1945년 말까지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발생한 1946년 9월 총파업은 1929년 원산총파업 이후 한국노동운동사에서 가장 조직화되고 규모가 큰 노동자 투쟁이었다. 9월 23일 부산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파업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철도, 출판, 항만, 전기 등의 부문을 중심으로 20여 만 명이 참여하였다. 약1,700여명의 파업지도부가 검거되기도 했던 9월 총파업에 뒤이어 10월 1일 전평 대구지부의 결성식을 계기로 시작된 10월 인민항쟁에서는 한 달 동안 서울에서만 3만여 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벌였고, 1만 6천여 명의 학생들이 동맹휴업에 참여하였다.(주2) 이처럼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난 9월 총파업과 10월 인민항쟁 이후, 1948년에 지역을 중심으로 발발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바로 제주 4.3항쟁과 여순봉기다.

 

 

여순봉기는 노동자 농민 연대세력의 저항

 

여순봉기 자체의 사건 개요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좌익 장병들이 제주 4.3항쟁 진압 출동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키자 지역주민들이 지지하고 나섰던 것이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군인들에 의한 봉기는 있었지만, 지역의 노동자 농민이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했던 사례는 제주 4.3사건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쉽지 않다.
 

여순봉기의 배경을 이루는 전남동부지역의 ‘봉기의 전통’은 19세기부터 살펴볼 수 있다. 1860년대에는 수 차례에 걸쳐 민란이 발생하였고, 이후의 1894년 농민전쟁에서는 순천, 광양의 농민군들이 호남지역 농민군의 주요 세력을 이루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노동자 농민의 저항은 끊이지 않았다. 이 시기 산업화와 도시화는 항만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는 일제가 항만 배후지 곡창지대의 쌀 반출을 통해 식민본국의 경제발전을 위한 저임금 구조를 뒷받침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개항된 주요 항구들은 인천을 제외하면 동남권과 서남권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서남권에서는 목포항과 더불어 여수항을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전되었고, 이후 소작쟁의와 노동쟁의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었다.
 

그간 전남동부지역의 ‘저항의 역사’ 서술은 사료의 한계에도 기인하겠지만 주로 인물 중심이었으나,(주3) 일제강점기부터 여순봉기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인물들의 활동을 노동자 농민의 활발한 대중운동이 뒷받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20-30년대의 전남지역은 노동운동이 전국적으로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다. 특히 순천, 광양을 비롯한 전남동부지역에서는 소작농 비율이 높아 소작쟁의가 활발하였다. 대표적으로 1922년 순천 서면에서는 약1,600명이 참여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이후에도 전남동부지역 농민들이 결성한 남선농민연맹회를 중심으로 소작료 불납투쟁 등이 일어났다.
 

한편, 해방 직후 순천지역에서는 우익이 건국준비위원회를 장악하였는데, 이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세력이 순천지역 노동조합평의회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이었다. 결국 건국준비위원회는 곧 해산되고 인민위원회로 재편되었다. 여순봉기가 일어나기 전인 1948년 2월에는 여수에서 철도 및 항만운송노동자 5,000여명이 파업을 벌이기도 하였고, 1948년 3월부터는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단선반대투쟁이 시작되면서 5월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이처럼 활성화되어 있던 노동자 농민의 저항운동이라는 배경과 단선반대투쟁의 확산이라는 지역 정세 속에서, 군 내부에서 발생한 반란이 지역 차원의 봉기로 확산된 것이 여순봉기다. 그러나 여순봉기는 단순한 지역적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여순봉기의 폭력적 진압이 반공국가 형성의 핵심적 계기라는 주장 또한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것 중 하나가 흔히 ‘사태’로 불리곤 했던 지역의 봉기와 항쟁들 가운데에서도 여순봉기는 유독 ‘반란’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군정과 우익의 폭력, 그리고 ‘장구통’과 ‘양날백이’

 

전남동부지역에서는 여순봉기 이후 1980년대까지 지역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이 침체기를 맞았는데, 이 배경에는 여순봉기 탄압이 남긴 “나서면 죽는다”는 트라우마가 있다. 물론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지역 사회운동이 다시 활성화되었으나, 폭력의 상흔은 오랜 시간 지속되며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사회 차원의 노력들도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1988년 여순봉기 관련 자료가 공개되면서 ‘여순반란사건’의 명칭을 정정할 것을 요구하는 지역주민들의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여순봉기는 ‘여순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여순사건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가 결성되었고 이를 계기로 여순봉기가 다시금 지역사회의 주요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국가폭력 진상규명 요구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관련 특별법이 제정된 제주 4.3항쟁에 비해 여순봉기를 둘러싼 논의는 더딘 편이다. 2009년 1월에 와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여순봉기 때 전남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9명이 군과 경찰에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한편, 1990년대 말부터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지역 학계와 사회운동단체들이 광범위한 구술자료 수집 등 조사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구술자료들을 살펴보다 보면 생존자 구술증언에서 ‘장구통’과 ‘양날백이’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좌익과 우익 양편 모두에 협조하는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던 말이라 한다. 여기서 다시금 여순봉기가 외견상 군인들의 봉기였지만, 실은 지역에서 억압받고 있던 노동자 민중이 지지하고 참여했던 민중봉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좌익과 우익이 대립했다고 본다면, 피해자의 90% 이상이 경찰과 우익세력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이처럼 우익의 테러는 지역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는데, 또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당시의 표현이 ‘손가락총’이다. 당시 여수의 군청 직원이었던 김계유의 기록에 따르면, “경찰관이나 우익진영 요인들이 돌아다니면서 소위 ‘심사’라는 것을 했는데, 시민들 중에 가담자가 눈에 띠면 뒤따른 군경에게 ‘저 사람’ 하고 손가락질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결처분장으로 끌려가는 판이니 누구나 산 목숨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장구통’과 ‘양날백이’ 뒤에는 사회적 약자를 겨냥하던 ‘손가락총’이 있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평범한 겁쟁이들의 ‘비겁함’은 폭력에 대한 자기방어기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자본의 테러와 ‘심사’는 수단과 방법을 바꿔가며 계속되고 있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삶을 포기하는 일들이 계속되고 있고, 노동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비정규노동자들은 계약해지와 하청업체 폐업의 위협을 수단으로 한 ‘심사’에 직면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노동운동 또한 내부에 또 다른 형태의 ‘심사’의 기제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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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과학과 역사의 복수성을 강조하며 지역을 강조한 역사서술의 대표적인 예는 아날학파 역사가들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페르낭 브로델은 상품유통 권역으로서의 지역에 주목하며 <지중해의 역사>를 서술한 바 있다. 한편, 아날학파는 시간의 흐름 또한 단일한 것이 아니라고 보며 단기-중기-장기의 시간적 흐름을 구분한 이른바 ‘삼층도식’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주2. 10월 인민항쟁에 관해서는 2008년 10월 <이달의 역사> “10월 인민항쟁, 노동자와 농민이 도시와 농촌에서 함께 일어나다!”(안태정)을 참조할 것.

 

주3. 일제강점기 및 해방정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이 지역의 역사서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로는 사회주의 정치운동 및 노동운동 지도자인 김완근, 정충조, 김기수 등이 있다.

 

 

 

노동자역사 한내 뉴스레터
2011년 10월 34호 <이 달의 역사>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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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행인의 넋두리와 상식, 양식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실성한(?) 분과 마주쳤다.

 

실성한 사람들의 넋두리는 종종 의미심장한 계시이기도 한데,

이 아주머니의 넋두리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훌륭하다.

 

중얼중얼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인데도

운율이 절묘하여 한 구절의 시와도 같다.

 

..... (전략)

 

모지리, 모지리 모지란 것들아

모조리, 모조리 쓸어버릴거다

 

..... (후략)

 

구체적인 앞뒤 내용들은 요즈음의 선거 국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 굳이 적어두지 않을란다.

 

근데 가만 듣다보면 "모지란 것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것 같은데도

무지를 탓하며 계몽을 호소하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른바 사회적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이

보통 사람들의 '양식', 나아가 '상식'조차 결여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쓸어버린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뭐,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그람시(Gramsci)가 떠오른다.

그의 '상식'(common sense)과 '양식'(good sense)에 관한 논의를 추려보면 ...

 

먼저 상식은 철학적 사유의 침전물로서 대중들의 생활양식과

전문가들의 철학 및 과학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해 상식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일정하게 규격화된 대중적 지식으로서

생활양식의 세대간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본다.

 

한편, '양식'이라 함은 '상식'에 대한 비판이자,

'상식'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철학'과 등치된다.

 

물론 그는 한 사회에 단일한 '상식'과 '양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실성한 분의 넋두리는

계급간 '상식'의 괴리와 동시에, 각 계급 내에서의 '양식'의 부재를

한탄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이러한 한탄의 배경에는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주의주의적 흐름에 대한

경계가 있을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와 관련한 그람시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

 

주의주의(voluntarism)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초인적인(?) 개인 또는 소수 집단에 대한 찬양과,

포병이나 보병이 없는 '돌격대'가 그것이다.

(그람시는 그가 처한 수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군사적 비유를 종종 사용하곤 하였으니 이해해야 할 듯)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대중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지식인을 강조하며

퇴행적-허위적 영웅주의와 유사 귀족주의에 대항해 싸울 것,

나아가 사회적 집단 형성, 즉 조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아침 펼쳐본 신문에는 두 청년세대의 기고글이 실려 있었는데

한쪽은 같은 정당 소속이지만 전 시장이었던 사람과 '그분'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찬양이

또 한 쪽은 뿌리를 둔 정당은 없어도 '그분'의 선한 의지와 역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찬양이 나란히 '상식'의 괴리와 '양식'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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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생노동성, 생활보호 수급 자격요건으로 직업훈련 실시 검토

후생노동성, 생활보호 수급 자격요건으로 직업훈련 실시 검토
 

- 결석자는 수급자격 박탈당할 수도 ...

 

아카하타 신문(しんぶん赤旗) 2011年10月9日

 

고용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실업자에게 월10만엔을 지급하고 직업 훈련을 실​​시하는 “구직자 지원제도”가 10월 법제화된 것을 이유로, 이 제도를 생활 보호 수급의 사실상의 요건으로 하는 것을 후생노동성이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업훈련에 결석할 경우 생활보호 수급자격을 중지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생활보호법 개정을 위해 비공개로 실시되고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협의 가운데 후생노동성이 제시한 내용이다.

 

후생노동성은 협의 과정에서 생활보호를 적용하기에 앞서 다른 법률에 의한 부조를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생활보호법의 규정을 들며 구직자지원제도의 법제화에 의해 바로 이 제도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다.

 

나아가 후생노동성은 생활보호 수급자가 이 직업훈련 과정을 합리적 이유 없이 받지 않거나 결석할 경우 지도 지시 등 소정의 절차에 따라 수급자격을 중지하거나 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협의에 참여하는 지방자치단체 측에서는 현재의 고용정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수급자격의 중지나 폐지를 조건으로 하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높다.

 

 


해설: 직업훈련을 생활보호 자격요건으로 ... 현실을 외면하는 후생노동성

 

카마즈카 유미(鎌塚由美)

 

후생노동성은 그간 생활보호 수급자의 급증, 그중에서도 경제활동 연령층의 증가를 문제시하며 해당 연령층을 생활보호 대상으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제도를 개악하려 하고 있다. 구직자 지원제도를 생활보호의 사실상의 요건으로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구직자 지원제도를 관문으로 만들어 수급자의 폭을 좁히고, 직업훈련 과정 결석을 이유로 생활보호 수급자격을 중지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직업훈련의 활용에 의한 취업을 기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생활보호 수급을 받는 것은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외면하는 논의다.

 

구직자 지원제도는 10월부터 법제화되었지만, 직업훈련의 내용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어 원하는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과정을 이수하면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자립생활지원센터 ‘모야이(한국의 ‘두레’와 유사한 표현 - 역주)’의 이나바 츠요시(稲葉剛) 대표이사는 “이러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생활보호 수급의 요건으로 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나아가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사업자는 취업률을 일정정도 높일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취업 전망이 낮은 이들의 수강을 꺼려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생활보호제도 개선을 위한 생활보호문제대책전국회의는 △ 구직자 지원제도의 지원금은 생활보호법상의 ‘다른 법률이 정하는 부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 △ 다른 법률에 의한 부조를 ‘우선시’한다는 것과 ‘조건으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 등을 들며 후생노동성이 구직자 지원제도 활용을 생활보호 수급 자격요건으로 하는 것은 불법이라 지적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생활보호제도의 재검토를 논의 속에서 지방자치단체 측으로부터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령지정도시(지방자치법에 의거하여 정령으로 지정된 도시, 한국의 광역시와 유사 - 역주) 시장 모임인 지정도시 시장회의는 지난 7월 후생노동성에의 긴급요청을 통해 구직자 지원제도를 생활보호에 “우선하는 제도로 정할 것”을 요청한 바 있다. 향후의 논의 추세는 예측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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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동 연령층의 생활보호 수급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화와 같은 고용파괴와, 중소기업의 경영악화 등으로 인해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그래프 참조). 생활보호 수급자가 합리적 이유도 없이 취업하지 않고 생활보호에 기대려 한다는 후생노동성의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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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쟁, 일상적 실천, 스타크래프트

뽀삼님의 [돈 미첼-문화정치와 문화전쟁] 에 관련된 글.

 


미첼의 저서가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강조한다는 평가는 적절한 듯하다. 그럼에도 어쨌든 그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용어가 안고 있는 복잡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데올로기'의 측면에 중점을 둔다.


중반부를 읽다 보면 그런 시원시원함이 기존의 문화연구는 물론 다양한 문화현상, 특히 '재생산 체계로서의 경관'에 대한 분석 등으로 탄탄히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눈에 띠는 부분이 드 세르토의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비판인데, 한 마디로 뭐 그리 시시콜콜한 데에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느냐는 것이다. 요컨대 세르토의 '걷기'는 개인들의 이동인데, 중요한 것은 집단적, 사회적 이동이라는 것이다. 물론 드 세르토의 '일상생활의 실천' 내지는 '일상적 저항'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드 세르토는 르페브르나 드보르에 비해 보다 미시적인 일상적 실천들에 초점을 맞추긴 했으나, 1960-70년대 유럽 정세 속에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논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현재의 세계정세를 고려하면 미첼이 말하는 '문화전쟁'의 지형 또한 큰 변화를 겪었다.

 

스타크래프트를 해 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배럭스와 팩토리가 건설되고 상대의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저글링을 보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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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0079 복습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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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0079 (일명 퍼스트 건담) 복습을 시작했다. 방대한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의 총감독은 토미노 유시유키(富野由悠季)로,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건담의 '우주세기(U.C.)'라는 설정은 지구상의 인구가 100억을 넘어서자 인류가 우주공간에 인공 거주공간인 콜로니를 쏘아올리면서 시작된다. 건담의 스토리가 시작되는 것은 우주세기 0079년인데, 이는 기동전사 건담이 첫 방영된 해가 1979년이라 임의로 붙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어쨌든 리마스터판 DVD로 그냥 시간날때 틈틈히 보는 정도인데, 아무로네 집에 프라우 보우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이 웬지모를 아련함을 자아낸다. 어쨌든 다시 건담을 보려니까 이참에 궁금한 것들을 정리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사항들에 대해서는 주로 루리웹에서 정보를 얻었다.

 

먼저 시리즈의 제목이면서 이미 방대한 세계의 일반명사이기도 한(건담이라는 '일반명사'를 둘러싼 소송이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건담(GUNDAM, ガンダム)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하나는 프리덤(freedom, フリーダム)과 건보이(gun boy ガンボーイ)의 조어라는 설이다. 또 다른 설로는 애니메이션 내 설정으로, 건담의 기초 소재인 건다리움(ガンダリウム)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다. 기본 설정인 두 세력은 지구제국 형태의 '연방'과 독립투쟁 세력인 '지온(Zion)'인데, 지온이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시오니즘에서 따 온 듯하다.

 

다음으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이른바 '1년 전쟁'으로 불리우는 지온의 독립전쟁이 왜 발발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우주세기가 시작된 이래 지구 인류인 어스노이드와 우주 인류인 스페이스노이드 간의 대립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초기 콜로니의 스페이스노이드들은 지구의 자원과 물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부터 예속 관계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던 중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사이드3(콜로니의 명칭)에서 지온 즘 타이쿤이라는 인물이 '콩트리즘'이라는 사상을 설파하며 독립투쟁이 싹트게 된다. 그러나 지온 즘 타이쿤은 그의 측근으로 추정되는 데킨 소드 자비에게 암살당하고 데킨 소드 자비는 권력을 장악하며 지온 공국을 수립한 뒤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이후 독자적인 산업 및 기술발전을 이루며 MS(Mobile Suit, 모바일 수트) 등 병기를 개발하면서 우주세기 0079년에 독립전쟁을 일으킨다.

 

또 하나의 궁금증은 수많은 로봇물에 대해 제기되어 온 물음인 왜 효율적이지도 않은 인간형 병기가 등장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는 이 문제를 '미노프스키 물리학'이라는 전제로 비껴간다. 미노프스키라는 물리학자가 무중력 우주공간에서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입자를 발견하면서 기존 물리학의 전제가 모두 무너져내리게 되었고, 이에 따라 전쟁에서도 원거리 공격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반면, 미노프스키 물리학의 응용으로 초소형 고에너지 핵융합로 등이 가능하게 되면서 우주공간에서 근접전을 위해 인간형 병기인 모바일 수트가 개발된 것이다.

 

아무튼 이후에 차근차근 정리해 볼 생각인데, 연방의 아무로 레이와 지온의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양대 히어로를 비롯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건담과 자쿠로 대변되는 모바일 수트를 비롯한 각종 모바일 아머 등 메카닉 디자인, 방대하면서도 정교한 스케일의 세계 설정과 정치-경제-사회적 메커니즘 등이 우주세기 0079 '기동전사 건담'에서 우주세기 0093 '샤아의 역습'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며 이 가운데 다양한 외전 시리즈들이 흥미를 더한다. 최근에는 '샤아의 역습' 이후 우주세기 0096 시대의 이야기인 '건담 유니콘'이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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