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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의 뉴타입 정신과 소심함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통에 뭔가 적어놓지 않을 수 없다. 김예슬이 뭔가 다른 점은 한 개인으로서 체계에 공모해 왔다는 점을 솔직히 드러냈다는 점이다. 얼마전 언론에 드러낸 그 모습만 딱 보아도 소심할 것 같은데, 그 소심함은 일찌감치 대학을 '그만둔다'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김예슬은 애써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고 덧붙였지만, 이건 약간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라 본다. 그녀는 그만둔 것이다. 물론 대학은 구조조정의 실험장을 지나 본격적인 시장이 되고 있고, 모 대학에서는 자치언론 발행물의 발간을 학교측이 금지하는 사건이 일어난 데 더해, 급기야 한 학생이 타워크레인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투쟁의 장에서 버티며 싸우지 못하고 일견 비겁하게 도망치듯 대학을 그만둔 김예슬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도 많지만, 나는 그녀의 뉴타입('퍼스트 칠드런'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기존의 인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점에서) 정신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물론 다른 길을 달리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러나 주저앉는 이들 없이 다른 길이 필요하다는 공감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 때 학교의 '브랜드 네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친구들을 보며 '쳇'하고 비웃으면서도 나는 학생운동하는 명문대 친구들이 부러웠드랬다. 뭔가 확신에 차 있는 눈빛에다, 그네들 곁에는 '쟁쟁한' 선배들도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한 학교 후배가 '정말인지 대학을 왜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꼭 김예슬의 대자보 내용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렇게 나 역시 체계에 공모했다. 그 후배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생각하면 쉽게 네 멋대로 하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김예슬이 뭔가 비빌 언덕이 있어서, 자신감과 용기가 있어서 대학을 그만두었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그녀는 괴로웠을 것이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았을 것이다. 괴롭고 아픈 걸 참으면 병이 되는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집단적 병리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내지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가 그녀와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다"는 지점인데, 나는 애초에 그런 '나'가 있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가 있다는 말에도 갸우뚱 한다. 살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나'일 것이고, 살면서 살아지는 것이 '나'의 삶일 것이지 싶다. '본래의 진정한 나'라는 걸 생각하면 순간 아찔해진다. 대학을 "그만둔, 아니, 거부한" 김예슬이 그 순간 진정한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해보자. 그녀가 고려대 후문에 대자보를 붙였다던 그 날, 그 시점에 얽매여 살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진정한 大학생으로 태어날거라는 그녀보다는 뒷문으로 그만둔 소심쟁이 김예슬을 소심하게 지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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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자전거와 도로교통법!!

산뜻한 주말 오후,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도로교통법 10조 2항 위반, 그러니까 무단횡단으로 잡혀서 딱지를 뗐다. 사실 나는 직좌회전 자동차 신호를 받아서 건너려다 지나다니는 차가 없길래 건넌 것이었는데, 보행자로 처리가 됐다. 어쨌든 최근 교통한테 붙잡히는 일이 많아지니 불길하기 짝이 없다. 가뜩이나 밥값 없어 하루하루 끼니를 잇는 게 걱정인데 웬 벌금이란 말인가! 그것도 차량 통행량이 많은 큰길도 아니고 동네에서 ... 우와 열받는다.

 

뭐 실정법 위반인 건 확실하니 마구 성질을 낼 건 아니다 싶었지만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경찰군을 붙잡고 다소간의 일장연설을 했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으로 명확히 규정되지도 않아서 보행자이면서 이륜차인 모호한 지위에 놓여 있고, 자전거 도로도 잘 안 되어 있고, 이 동네에는 자전거 통행에 관한 조례도 없고 등등 ... 그 경찰군은 그저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라는 말만 한 열다섯 번쯤은 한 것 같다.

 

결국 나는 애꿎은 자전거 잡지 말고 운전 막 하는 자동차들 좀 잘 잡으라는 애매한 소리를 하고 순순히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줬다. 뭐 자전거 타다가 경찰에 불러세워진 적이야 한 두 번은 아니지만, 특히나 요즘 들어 (이것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인가?) 경찰이 시비 거는 빈도가 잦아지는 듯하다.

 

자전거를 이용하기가 편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서울의 특정 지구에 거주한다면 교통수단으로서야 여전히 어려운 면이 있겠지만, 여가를 즐기기엔 확실히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가끔 지하철 타다 보면 한 구석에 자전거 세울 수 있는 곳도 마련되기도 하고 말이다.

 

한 15년 전쯤 사촌형과 함께 성남 모처에서 잠실 부근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던 적이 있다. 한강둔치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사 먹고 돌아가려니까, 이 헝아가 완전 지쳐서 다시 자전거로 못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이 헝아가 만화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자전거를 들처매고 지하철에 타는 걸 봤다고 하면서 지하철로 가자고 했다. 성내역에 자전거를 끌고 게이트를 통과하려니까 역무원이 나와서 이런 경우가 없다고 곤란해하더니 결국 화물로 취급해서 몇백 원인가를 받았더랬다. 지하철 차량 안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그 와중에 또 먹다 남은 새우깡 봉지에서 새우깡이 투두둑 떨어져 완전 얼굴이 빨개졌더랬다.

 

그로부터 또 10년쯤 지난 뒤 어느 여름날 자전거를 타고 인천 모처에서 마포까지 가 보려 길을 나섰는데, 한강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한참 해매다가 어찌어찌 더듬어 가던 중 경찰이 나를 불러세웠다.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자전거를 타고 진입하면 안 된 다는 것이었다. 그 경찰들은 황당하게도 나보고 "술 드셨어요?"라고 물어보더니 심지어 자기 코에 대고 호~ 하고 한 번 불어보라고까지 했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전거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조심하라는 주의 정도로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자전거 타고 거리로 나설라 치면 일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자동차들은 물론, 경찰 눈치까지 봐야 되는구나. 뭐 교통수단으로서의 자전거가 자기 몫을 내세우려면 자출사의 라이딩처럼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를 이루는 방법이 정답이겠지만, 당분간 동네에서 자전거 타다가 빽차 보면 앞을 턱 가로막고 달리는 등 사보타지를 한 번 쌔려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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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기본무소득보단 훨 낫다

서른즈음에님의 [기본소득을 둘러싼 쟁점과 비판] 에 관련된 글.

 

내가 보기에 기본소득 논의는 계급, 젠더, 세대 등 다양한 적대들 사이에서 유효한 개입지점을 찾아낸 것 같다. 기본소득 논의가 잔여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임노동을 전제로 하는)라는 구분법에서 일정하게 비켜서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인 것 같다. 비정규노동자, 여성, 청년들이라는 피지배집단 내부의 균열들 속에서 대항주체 형성과 그 물질적 기반 마련을 동시에 추진해 보고자 하는 전략인 듯하다.

 

한편, 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이 생산관계를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기본소득론을 '전략적' 개입보다는 '총체적' 기획으로 간주할 경우에만 해당된다. 그러나 기본소득론이 총체적 기획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오히려 연합을 통한 대항헤게모니에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계급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피지배계급의 근본적인 계급적 이해와 관련성이 떨어지더라도 기본소득이 당면한 계급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사실이며, 그것은 근본적인 계급이해 실현의 자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 기본소득은 금융규제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것이 생산관계에 대한 일정한 개입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무엇보다 이 시대의 위기는 '재생산의 위기'로 나타나는데, '생산관계'만 부르짖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과감히 말해 보자면 모든 임금노동은 근본적으로 노예노동이다. 그리고 임금노동 형태로 묶일 수 없지만, 계속해서 그 범주 안으로 침식되어가는 수많은 비임금형태의 노동이 존재한다. 솔직히 말 하면 나는 일 하기 싫고, 일 하고 싶다. 일 할 때 일하지 않기도 하고, 일 하지 않을 때에도 일하기도 한다(소비도 노동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양가적인 상황과 감정 속에서 분열증을 앓는다. 정말인지 뭔가 해 보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뭔가 해 보려는 이들에게 어떻게 힘을 부여할 것인가? 기존의 논의들이 이 문제에 답변을 얼마간 외면해 왔고, 이미 무언가 하고 있는 이들에 강조점을 두고 주목하였다면, 기본소득 논의의 매력 포인트는 나름 일관성 있게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출산파업이나 청년 오타쿠 되기 같은 저항들을 일정하게 연결시키고 진전시킬 수 있는 나름 유효한 방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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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Might last a day, minus forever ...
 

나의 첫사랑은 왜 이리 셀 수 없이도 많은지 ... 그 많은 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오늘 밤만은 러브(Courtney Love)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뭐든 제멋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살짝 가슴이 아픈 그런 사람. 주변 사람들을 대책없이 자신의 삶에 휘말려들게 하는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왜 안돼?"라고 되묻는 사람. 누구도 이해하려 들지 않으면서 모든 이들을 이해하고 있고, 누구도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지만 모든 이들이 이해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뒷모습에 얼굴이 있는 사람. 무언가 물음을 던지면 그것을 묻기 이전의 그 사람에 대해 되묻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기에 상대방의 감정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위악으로 똘똘 뭉친 바로 그 사람. 자기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면서도 자기 안으로 미워하지 않고, 자기 안으로 괴롭히지 않으며 그 미움을 죄다 밖으로 뿜어내는 사람. 구강, 비강 및 이문으로 들어오는 이물질들을 철저히 노래 섞인 가래침으로 죄다 내뱉어내는 사람. ...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거나 "죽은 남편 팔아 얼굴 판 년"이라거나 하는 되도않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듣는 순간 귓가에 잡아두고 싶어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 좀더 마음 여렸던 커트가 죽어서도 별로 미워하지 않을 그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내겐 그녀의 노래가 이렇게 들린다. "난 이미 한 번 죽었기에 아쉬울 게 없다"고. "너도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 한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3J라든지 커트 코베인 등 스물 일곱에 세상을 떠난 몇몇 이들의 삶이 너무도 아쉬울 게 없어 보여서 원래 삶이란 게 스물일곱 까지구나 싶었다. 그래. 나도 이미 한 번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 이후의 삶이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었다 살아났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신은 몇 살입니까?" 따위의 물음에는 이제 오락가락 헛갈린다.

 

 

*사진 한 장 덧붙이기 ... 언젠가인지 모를 프랜시스-커트니-커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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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극복의 세 가지 시나리오

 

삶의 위기는 불현듯 닥쳐온다. 최근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된 영화들, 재미있게 또는 지겹게 본 영화들은 공교롭게도 그러한 위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참에 앞으로 다시 한 번 닥쳐올 위기에 재치있게 대응(?)하기 위해 각각의 위기를 유형화해 보고 귀감으로 삼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말로는 요즈음이 '악령이 들릴 시기'라는데, 악령에 씌지 않기 위해서라도 꿋꿋한 인간들 혹은 비인간들의 모습을 스케치해 두어야겠다.

 

첫 번째 유형은 심드렁무관심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유형이 맞닥뜨리는 위기는 주로 개인적-생애사적 위기들이다. 뭘 해도 안 풀리는 시기를 맞게 된 이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바로 심드렁함, 무관심함이라 할 수 있다. 팀 버튼의 <에드 우드>나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들 ... 그 제목만 봐도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성냥공장 소녀>,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과거가 없는 남자>, <황혼의 빛> 등등을 보고 있자면 '참 삶이 저럴 수도 있는 건가', 아니, '삶이라는 게 다 저런 건가' 싶다.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되도 않는 영화들을 죽자사자 찍어대거나, 밑도끝도 없이 추락하든 말든 그냥 그 순간 순간을 담담하게 살아가며 위기를 넘긴다. 일종의 락 스피릿으로 돌파하기.

 

두 번째 유형은 신체훼손형 또는 좀비형인데, 이런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위기는 주로 마을 수준의 지역사회를 단위로 하며 나(+몇몇 지인) 말고는 전부 맛이 간 놈년들이 동네를 뒤덮음으로써 발생하는 위기이다. 사실 최근의 부조리한 좀비영화들이 아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새벽의 저주> 등과 같은 정통 좀비영화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좀비'를 내세워 지배의 속성을 드러내고자 시도한다. 지배자의 시선으로 보면 피지배자들은 죄다 좀비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좀비들이 엄청난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지배자들이 어찌 마음 편할 수 있겠는가. 좀비 영화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좀비의 편이 되어 속으로 "마지막 한 놈까지 물어뜯어라"고 외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이 진정한 위기의 극복이리라. 신체훼손형도 이와 유사한 에토스를 지닌다. 이와 관련된 영화들 중 최근 정말 재미있게 본 것들로는 <이치 더 킬러>, <머신 걸>, <여자경영반란부> 등인데, 특히 후자의 영화들은 AV와 스플래터 무비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띤다. 여기서 핵심은 잘려나간 신체의 흔적이 아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려나간 팔다리는 다시 들러붙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분수처럼 피가 뿜어나오며 절단되는 신체를 보고 있자면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근대 이후 신성한 그 무엇이자 권력이 자리잡는 밑바탕이 된 신체를 마구 훼손함으로써 동네는 일종의 카니발로 접어든다. 불안이라는 위기는 이렇게 극복된다.

 

세 번째 유형은 재난대항연희형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하자면 "노래가 세상을 구할거야"라는 메시지를 은근슬쩍 혹은 공공연히 내비치는 영화들인데, 여기서 나타나는 위기는 주로 '인류의 위기'이며, 위기의 원인은 부조리하게도 신종 바이러스라든지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 같은 것들이다. <20세기 소년 최종장> 같은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우드스탁을'과 같은 고전적 메시지를 고수하는데, 이게 참 맘에 든다. 더구나 <20세기 소년>에서 위기는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친구'라는 한 인간, 그것도 주인공들의 어릴 적 친구인 바로 그 친구인 과거로부터 위기는 덮쳐 온다. 물론 해결책도 과거로부터 온다는 게 조금은 아쉽다. 중학 시절 옥상에서 흥얼거리며 만든 노래에 담긴 그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반면, <피쉬 스토리>는 보는 내내 완전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노래가 세상을 구한다는 메시지를 들고 나와서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필연성의 법칙을 내세우는 것은 대체 뭔가. 게다가 결국엔 천재 소녀가 거대 군사강국이 띄운 우주선에 타서 ... 젠장. 물론 그렇다고 <20세기 소년>의 "구따라라~ 스다라라~"가 완전 좋다는 건 아니다. 아쉽게도 노랫말이 ... '집으로 돌아가자'는 ... 너무나도 아저씨스러운 것이라는 점이 좀 찜찜하다.

 

여하튼 뭔가 삶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싶은 개인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요약해 보자면 ... 만사에 심드렁하고 무관심하게 대처하며,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찢어발기고, 한껏 노래를 불러제끼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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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비명과 어른들의 감정 응축

사람이 사는 데 단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할 때가 있고, 방대한 데이터보다 한 줄의 경구가 더 많은 통찰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 나에게 이따금씩 번뜩이는 경구로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이 중 하나가 김규항이다. 가끔씩 신문에 실리는 칼럼을 보며, 이 사람의 말은 생생하게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 중 뇌리에 박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말 중 하나가 '요즘 아이들의 거친 입'에 관한 것이었다. 나 역시 중고교 시절에 온갖 뻘짓을 하며 살았지만, 욕을 달고 살지는 않았던지라 중고딩들이 지나가며 온갖 욕을 씨부리면 속으로 '무섭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를 두고 김규항은 억압적인 교육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그네들이 질러대는 '비명'이라 말한다. 그런 그가 엊그제 칼럼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다'고 가족간에 합의롤 보았다고 자랑(?)해대면서 '그들의 엘리트'가 아닌 '우리의 엘리트'는 (좋은) 대학 보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사실 좀 뻔한 이야기이다. 굳이 신문 지면에 칼럼까지 쓰면서 이야기 안 해도 주변에 그런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신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교사로부터 "아니, 선생님처럼 훌륭한 분이 어찌 그리 자녀에게 무관심(?)하느냐"는 요지의 전화를 몇번이고 받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 문제가 된다면 정말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간다. 참 오랜만에 이번 명절엔 고향을 방문했는데, 모처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도 찾아와 있어 저녁녘에 읍내에서 만났다. 녀석의 동행은 실업계 여고생. 녀석과 그녀가 무슨 관계인지는 물어보지도 않았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셋이 종종 초점 안 맞기도 하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참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풍부한 감정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때로는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젠 명실상부한 아저씨들이 된 우리들은 어느덧 수많은 감정들을 단 하나의 깡통 속에 꾹꾹 눌러담는 버릇이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스트레스'라는 깡통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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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의 에덴(東のエデン) 리뷰

*네타바레로 뒤범벅이 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감안하시길 ^^;

 

 

 

              -사진: <동쪽의 에덴(東のエデン)> 극장판 포스터

 

              -포스터의 문구는 ...

 

 타키자와 아키라는 누구인가?

 

100억엔이 들어있는 휴대폰으로 일본을 구한다 ...
12명의 구세주 중 한명으로 선택된 남자는
60발의 미사일을 격추시키고
기억을 지운채 행방을 감춘다.
그는 어째서 다시금 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가
그 비밀은 17년전의 뉴욕에 있었다 ...

 

 

 

예전만큼 애니메이션을 모니터링할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면서 꼭 봐야겠다는 애니를 꼽는 데 알게 모르게 기준 같은 것이 생긴 듯하다. 굳이 <동쪽의 에덴>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순전히 제작사인 프로덕션IG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지난 해 방영된 TV판은 극장판으로 기획된 두 편의 이야기의 서막쯤 된달까. 이걸 보고 나면 극장판을 안 볼 수 없게끔 해 놓은 기획은 아무래도 재정난이라든지 그런 배경이 있는 듯했다. 이러한 기획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공각기동대> 등이 극장판을 통해 독자적인 설정과 스토리로 감독만의 자기세계를 보여주었던 그런 (오시이 마모루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여하튼 오시이 마모루의 오른팔 정도로 인식되었던 카미야마 켄지(神山健治)가 독자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동쪽의 에덴>이 TV판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일본에서는 역시나 <동쪽의 에덴 극장판1: The King of Eden>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이는 일본에서 3월 13일에 개봉할 예정인 <동쪽의 에덴 극장판2: Paradise Lost>로도 이어질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극장판 1편은 일본 개봉에 비해 비교적 빨리 국내 소개되었고, 그 덕에 주말을 이용하여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역시나 ... 투니버스를 통해 TV판이 지난 연말에 방영되었음에도 영화관은 썰렁했다. 가장 구석에 자리잡은 90여석 규모의 상영관에는 토요일 오후인데도 달랑 4명의 관객 ... 영화관을 나서면서 가 국내에 소개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동쪽의 에덴>은 기존 대중문화 코드, 특히 영화를 중심으로 한 은유와 패러디로 뒤범벅이 되어 있어 보는 이를 정신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 생각에 중심적인 축은 게임의 은유와 성서의 은유라 생각된다. 세레손들에 의해 펼쳐지는 게임에는 전후 일본의 사회시스템이 겹쳐지며, 게임의 행위자인 12명의 세레손과 그 진행방식에는 신약성서의 예수의 12제자가 겹쳐진다. 그간 프로덕션IG의 작품들을 볼 때, 이 제작사 내엔 성서읽기 모임 같은게 있나 하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이다. 일단 TV판을 중심으로 주요 설정과 전개를 돌이켜보자.

 

먼저 이야기의 배경에는 넘버1부터 넘버12까지 12명의 세레손(selecão), 즉 선택받은 자들이 벌이는 "타락한 일본 구하기 게임"이 펼쳐진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모토 하에 진행되는 이 게임은 거대 재벌이자 전후 일본 형성의 핵심 인물로 거론되는 미스터 아웃사이드(원래 이름인 아토 사이조의 타쟈레)가 만든 시스템이다. 게다가 게임의 시작 시점에서 이미 그는 사망했다. 임의로 선택된 각 세레손은 휴대폰 단말기를 통해 각각의 보조시스템인 주이스(Juiz)와 연결되며, 100억엔의 자금을 주이스의 대리를 통해 활용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규칙은 일본을 구한 단 한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는 것. 게임 진행과정에서는 자금을 다 써버렸는데도 타락한 일본을 구하지 못하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게임을 소홀히 하거나 할 경우엔 '서포터'라는 의문의 존재에 의해 제거된다는 것이 벌칙이다.

 

TV판의 이야기는 취업 내정을 받고 미국으로 졸업여행을 떠난 모리미 사키와, 니트(NEET)이자 넘버9으로 선택된 타키자와 아키라의 워싱턴DC에서의 조우로부터 시작된다. 타키자와는 넘버10 유우키가 (실질적으로 넘버1 모노노베에게 조종당하여) 기획한, 도쿄를 향한 10발의 미사일 공격을 세레손 단말기의 상호 이력조회를 통해 알게 된 뒤 2만명의 니트들과 함께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그러나 이들이 미사일 공격과 관련한 의혹을 사게 되자 타키자와는 2만명의 니트를 컨테이너에 실어 두바이로 3개월간 대피시킨다. 니트들과 도쿄 주민들로부터 배신당한 타키자와는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지우고 난 뒤 워싱턴DC에서 사키와 마주친 타키자와는 이후 차근차근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 가며, 그 과정에서 사키와 그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사키의 친구들은 화상검색시스템인 '동쪽의 에덴'을 만들어낸 대학 동아리 출신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니트족이지만 성향은 각기 다양하다. 사키는 취업 내정을 받은 상태이지만, 면접을 앞두고서도 기성사회에 대한 회의를 지니고 방황하던 차에 타키자와를 만난다. 히라사와는 적잖이 기업가적 기질을 지닌 IT벤처 진출형이다. 사키를 좋아하는 오오스기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고싶어 하며 또 기업에 입사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밋쫑은 작고 어려 보이지만, 역시나 현실세계보다는 네트워크에 익숙한, 어엿한 여성 니트다. 교토에 거주하는 이타즈(빤스)는 니트의 대부격인 공대 중퇴생으로서 사회적 사건들을 계산을 통해 정확히 예측한다는 '세간컴퓨터' 시스템을 만들어낸 뒤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음에 좌절하곤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나머지 두 명은 조금씩 다른 이 친구들을 이어주는 역할로 등장한다.

 

TV판의 후반부에는 모노노베가 다시 한 번 유우키를 동원하여 60발의 토마호크 미사일로 일본 전역을 공격하고자 시도한다. 타키자와는 때마침 도쿄로 돌아온 2만명의 니트들을 네트워킹하여 다시 한 번 미사일공격을 막아낸다. 그리고는 주이스에게 자신을 일본의 왕으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뒤 홀연히 사라지며 이야기는 일단락된다. 사실 천황제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에서 "왕이 되게 해 달라"는 타키자와의 주문은 매우 센세이셔널한 것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이스 시스템이 '왕'을 '총리대신'으로 해석하여 게임을 진행한다. 이는 세레손 시스템과 그것이 전제로 하고 있는 일본의 사회시스템이 철저히 천황제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쯤에서 성서의 은유를 검토해 보자. 노블리스 오블리주 게임의 12명의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의 12제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에서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부른 순서에 기준하면 각각 넘버1 모노노베는 첫째 제자인 베드로, 넘버9 타키자와는 신약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 아직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넘버12는 유다를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넘버12가 서포터일 것이라 보는 모노노베의 추측도 힘을 얻게 된다. 사실 주인공인 타키자와가 넘버9인 이유를 <태양을 훔친 사나이>라는 영화에서 핵폭탄을 소유하게 된 남자로부터 유추하는 지적도 있지만, 아홉 번째 제자인 야고보의 은유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야고보는 신약성서의 야고보서에서도 나타나듯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하며,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높은 가치부여를 하는 성격을 드러낸다.

 

또한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에덴의 동쪽'은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한 카인이 자리 잡은 곳으로서 타락한 인간세계를 의미한다. <동쪽의 에덴>에서 '동쪽'은 타락한 일본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 제목인 '동쪽의 에덴'은 바로 그 타락한 세계를 낙원으로 되살릴 가능성, 혹은 혁명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한편, 사키와 그 친구들이 만들어낸 화상검색 네트워크인 '동쪽의 에덴'은 네트워크상에서는 니트들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낙원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니트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들과 기성세대 간의 대결구도가 나타난다.

 

이쯤에서 각각의 게임 참여 행위자들을 중심으로 <동쪽의 에덴>을 좀더 자세히 파헤쳐보자.

 

넘버1 모노노베는 관료 출신이자 일본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인물로, 자신이 '구세주의 적자'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는 세레손 시스템이나 사회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세레손 시스템의 경우, 그는 다른 세레손들의 주이스(각각의 주이스가 독립적인 시스템이라는 사실은 에서 밝혀짐)를 파괴하여 시스템의 내적인 모순을 제거하고, 그것이 일자(一者)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시스템의 경우, 그는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을 통해 '시스템 재설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넘버2 츠지는 젊긴 하지만 원래 엄청난 자산을 소유한 자로서 게임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기체로서의 일본 사회시스템이 이미 수명을 다 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키자와의 행적에 흥미를 느끼고 다시금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주이스가 해석한, 타키자와를 총리대신으로 만드는 기획을, 미사일 사건으로 동요하고 있는 일본사회에 피해자 감수성을 자극하여 군국주의적인 방향으로 끌어감으로써 성사시키고자 한다. 그럼에도 모노노베에 의해 자신의 주이스 하드웨어가 미사일 공격을 당하게 되어 세레손 시스템 운용능력을 상실한다.

 

넘버5 히우라는 노년의 의사로서 TV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100억을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 내의 노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독립적인 복지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에서는 주어진 100억엔을 다 사용하였으나 제거되지는 않고 기억이 지워진 것으로 밝혀진다. 사회시스템 자체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그것을 재설정하기보다는 그 내부에 개혁적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방향을 추구한다.

 

넘버4 콘도는 경시청의 말단 형사로서 '고개숙인 중년'으로 등장한다. 그는 빚에 시달리며 위태위태하다 결국 전 부인의 칼에 숨진다. 이 시점까지는 이것이 서포터에 의해 실행된 게임 중도탈락의 벌칙인 것처럼 보이나, 에서는 100억엔을 다 쓰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게임의 규칙이, 단지 게임에의 참여를 강제하기 위한 명분이었다는 해석이 게임 참여자들 사이에 지배적으로 된다.

 

넘버3, 6, 7, 8, 12는 TV판에서는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데, 에서 새롭게 등장한 세레손이 바로 넘버6이다. 그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AV감독 쯤으로 등장하는데, 시스템의 하위에 머물면서 그 언저리에서 기생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타키자와와 사키를 스토킹하면서 둘을 만나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둘 간의 므흣한 영상을 담아내기 위한 것으로 그려진다. 새로운 면이 있다면 넘버6의 지저분한 주문들을 주이스가 거부하거나 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인데, TV판에서 몰개성적인 사이보그처럼 등장하던 주이스의 음성이 개성을 띠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일견 주이스라는 인공지능이 '고스트'를 획득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이 상황은, 그간의 타키자와의 행적에 의해 일견 견고한 것처럼 보이던 세레손 시스템의 규칙이 흐트러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세레손들도 자신들이 참여해 온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 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넘버10 유우키 역시 타키자와와 마찬가지인 니트로서 구조적인 세대간, 계급간 착취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변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권력의 정점에 서서 자신의 의지대로 시스템을 재설정하고자 하는 모노노베에게 휘둘려 최초 10발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이후 60발의 미사일 테러를 실행한다. 결국 모노노베로 대표되는 주류에게 이용당하였음을 인식하고 세레손 시스템의 단말기인 휴대폰을 스스로 부숴버린다.

 

넘버11 쿠로하는 지금까지 등장한 세레손 중에서는 유일한 여성으로서 비록 모델 에이전시의 여사장이라는 상위계급에 속하면서도 성차에 있어서는 피억압자 의식을 지니고 있다. 타키자와와 조우하기 전에는 성범죄자들을 유괴하여 성기절단 살해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적'을 처단하는 일에 매진하였으나, 이후 타키자와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그를 지원한다. 에서는 타키자와의 주이스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서 자신의 주이스를 대신 희생하여 그를 지켜낸다.

 

타키자와라는 인물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쿨함에서 나온다. 매우 상반되는 인물인 유우키처럼 자기 존재의 물질적 기반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정체성의 불안함에 고뇌하거나 하지 않는다. 나아가서는 모노노베가 주도하는 시스템의 폭력적 재구성, 즉 다시 한 번 전쟁의 상황을 연출하여 새롭게 전후의 일본을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에 맞선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기억을 지운다는 형태로 자신의 존재를 지운다. 더구나 2만명의 도쿄 니트들과 함께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지만, 타키자와는 그들을 조직하거나 대표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동쪽의 에덴>에서 니트라는 존재들은 개별화된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노동거부로서 저항하는 개별자들로 그려진다. 타키자와는 이러한 개별적 저항을 네트워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사이버공간이라는 독자적인 기반을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 기식자들은 사회시스템의 규칙을 어지럽히고 결국 그것을 혁명적으로 재구성할 주체들로 그려진다.

 

사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12명의 세레손에 집중하다 보면, 역시 니트들은 글러먹었고, 가진 자의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바로 전후 일본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이라는 해석에 기울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의 설정자로 그려지는 미스터 아웃사이드의 의도를 <동쪽의 에덴>이라는 애니메이션 자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로 해석하는 건 무리라 생각한다. 세레손들의 행적은 가진자의 의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며 폭력적인 것인지를 충분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타키자와는 그런 의무감 같은 것은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시금 성서의 은유를 상기해 보자면, 지금까지는 구세주의 적자를 자임하며 그에 따라 오직 자신에게만 부여된 권능을 통해 시스템을 재편하고자 하는 넘버1 모노노베와, 기존의 시스템에 대한, 니트의 시각에서 바라본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억압받고 배제당하는 이들의 '연결'을 통해 시스템으로부터 끊임없이 탈주함으로써 사실상 그것을 불능으로 만들고자 하는 넘버9 타키자와 간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어 왔다.

 

문제는 넘버12로 추정되는 서포터의 존재인데, 에서 시스템의 규칙을 수호하는 자로 그려졌던 넘버12의 주이스는 모노노베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를 고려할 때, 극장판 2편에서의 전개는 타키자와와 모노노베의 마지막 승부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극장판이자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극장판 2편 "Paradise Lost"의 제목을 두고 그 결말이 부정적일 것이라는 예상들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에덴의 동쪽'인 일본에서 사이버공간을 통해 먼저 등장한 '동쪽의 에덴'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그 지점에서 동쪽의 에덴이라는 IT기업을 성공시켜 니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히라사와의 욕망은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이타즈의 니트정신으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의 노동거부가 전후 일본이라는 사회시스템을 '낙원'의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섣불리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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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그 섬을 생각한다

최근 이래저래 해서 오키나와(沖縄)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증폭되었던 차에 2005년 3월 3일 3.1절 특집으로 MBC에서 방영한 오키나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우치난츄, 일본 속의 타자들'과 '오키나와, 평화를 꿈꾸는 섬'의 2부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그 기획의도가 '우리 민족'의 경험을 되새겨보자는 다소 애매한 것이긴 해도 '풍광 좋은 관광지'로 소개하는 각종 프로그램보단 낫다 싶었다.

 

다큐멘터리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국민의식'을 묻는 것으로 출발한다. 길거리 인터뷰에서는 국적이 뭐냐고 물으면 일본인이라 대답하겠지만, 당신은 일본인(니혼진)인가 오키나와인(우치난츄)인가를 묻는다면 오키나와인이라 대답하겠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오키나와 지역신문인 <오키나와 타임즈> 2004년 2월 20일자에 발표된 자체 설문조사 결과로는 잘 모름 1.9%, 일본인 28.8%, 일본인이면서 오키나와인 41.8%, 오키나와인 27.5%였다.

 

오키나와와 전쟁

 

이와 같은 모호한 국민정체성의 이면에는 전쟁의 상흔이 있다. 1945년 4월 필리핀, 타이완을 거쳐 18만 미군병력이 오키나와에 상륙했다. 이에 일본 군부는 본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키나와 주민들을 방패로 삼았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의 일본군 사망자보다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이른바 '집단자결(옥쇄)'의 희생자는 전체 주민 40만여명 중 10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소년들은 학도단으로, 소녀들은 '히메유리'로 (히메는 공주, 유리는 백합을 의미) 전쟁에 동원되었다.

 

중반부에는 오키나와 중부 요미탄촌(読谷村)의 주민인 치바나 쇼이치(知花昌一) 씨가 등장한다. 치바나 쇼이치는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에서 1987년 국민체육대회 때 소프트볼 경기장에서 일장기를 내려 불태웠던 슈퍼마켓 주인으로 소개되는 바로 그 사람이다. (필드에 따르면 요미탄촌 어른들이 '일장기를 내린 것까진 좋았는데 왜 굳이 불태웠느냐'고 묻자 '태우지 않았으면 누가 또 게양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을 정도로 호탕한 성격이다.) 그는 지금은 민박집을 운영하며 평화운동을 한다. 치바나 쇼이치가 평화운동에 투신한 계기는 요미탄촌에서 치비치리 동굴이라는 '집단자결'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었다. 일본이 '집단자결'이라 부르며 의로운 죽음으로 미화했던 이사건을 치바나는 자결이 아닌 '학살'이라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피로 물든 역사 앞에서 몇 명이 죽었느냐의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도 살인무기로 가득찬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선 세계 어느지역에라도 폭탄을 떨구기 위해 폭격기가 출격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즈음에서 오키나와 연구에 천착해 왔던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浪)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저서 <폭력의 예감>에서 폭력은 결과로서 기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감이라는 감각으로 기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드는 바로 그 순간, 그 곳에서 폭력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피해자의 수동성으로 읽히는것을 뒤집어 그것을 '방어태세'로 보아야 하며, 그러한 '방어태세'에서 '폭력에 대한 예감'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지금도 일본 본토인들을 '내지인'이라 부른다. <포스트콜로니얼>의 저자이자 역사교과서 문제와 관련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도 홋카이도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10년 동안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과 '내지인'을 구별했던 경험을 회상한 바 있는데, 이는 아이누족이 살던 홋카이도 역시 일본 본토인들에 의해 '발견된' 땅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지인'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에 '뒤늦게 합류한 자들'이라는 인식을 지니고 있었고, 그에 따라 전쟁에서 그들을 방패로 삼았다. 인터뷰에서 어떤 오키나와 사람은 오키나와인들이 다소간 지니고 있었던 '일본인으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의식이 더 큰 비극을 불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도미야마의 저서에도 등장하는 사료인 미군의 민사핸드북(Civil Affairs Handbook)에는 "대부분의 류큐인들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든지, "류큐인들은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친척처럼 취급받고 있다."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미군은 본토와 오키나와 사이를 이간질하는 선전을 하는 한편, 많은 오키나와인들을 '스파이' 혐의로 살해하기도 했다.

 

오키나와의 재현

 

오키나와의 재현과 관련해서 ... 뻔한 국수주의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나 TV 프로그램등은 제껴두고 ... 최근의 일본영화들 중 생각나는 것들(주로 청춘스타들이 나오는)로는 <눈물이 주룩주룩>, <심호흡이 필요해> 등이 있는데, 이런 영화들에서는 오키나와인들을 '어찌 되든 되겠지(なんくるないさ)'라는 말로 대표하면서 느긋하고 낙천적인 이들로 표상한다. 이는 '내지인'들에 대한 '방어태세'를 시골사람들의 '천진난만함'으로 해석하며 식민화하는 재현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밖에 애니메이션으로는 <블러드> 시리즈가 떠오른다. 오시이 마모루의 소설 <야수들의 밤>, 극장판 애니메이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TV판 애니메이션 <블러드+>가 그것인데, 물론 원작소설에서 극장판 애니를 거치며 TV판으로 갈수록 농도가 옅어진다. <블러드> 시리즈의 경우에는 미군 주둔지인 오키나와를(태평양전쟁은 너무 노골적이라 생각해서인지 몰라도) 베트남전과 연결지으며 피식민자로 재현하지만, 이들을 잠재적인 저항 주체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다. 여기서는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를 '흡혈귀'로 표상한다. 피를 빨린 이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흡혈귀가 되어버린다는 설정을 통해 식민주의와 자본주의가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며 재생산되고 있음을 비판하지만, 거기서도 흡혈귀는 자신의 말을 갖지 못하고 웅얼웅얼대는 괴물에 불과한 것으로 재현된다는 한계가 있다. 사실 MBC의 다큐멘터리도 오키나와 사람들이 '준비된 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오키나와와 '인구, 안전, 영토'

 

오키나와인들이 '인구, 안전, 영토'의 측면에서 어떻게 '통치의 대상'으로 구성되어 가는지 살펴보자.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가 1972년 미군으로부터의 반환됨과 동시에 오키나와현(沖縄県)이 되면서 일본 국민으로 기입된다. 그러나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수년 전에는 '류큐독립당'이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기도 했다. 영토의 측면에서 오키나와는 지도상 대만과 일본 규슈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최근 하마시타 타케시(浜下武志)의 저서 <오키나와 입문>을 보다가 필리핀부터 대만, 오키나와, 일본 본토, 한반도, 중국 서안지역이 나타난 지도를 남고북저 형태로 '뒤집어'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적잖이 충격을 먹고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있다. 아시아 권역 내의 특정 지역을 떠올릴 때 그간 나는 남이 아랫쪽, 북이 윗쪽을 향하는 '대륙지향적'이며 '서구중심적'인 공간적 이미지를 떠올려 왔다. 그러나 대만, 남서제도, 오키나와 사람들의 시선은 중국 대륙, 일본 본토를 향해 있기보다는 남쪽의 넓은 바다를 향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슬프게도 오키나와 땅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미군기지이며, 베트남전 때에도, 두 차례에 걸친 이라크 전쟁 때에도 폭격기는 오키나와의 카데나, 후텐마 기지에서 출격했다. 안전, 즉 정체성의 안정성과 관련해서는 박물관이나 기념물을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은 1999년 3월 개관을 앞두고 주민들과 오키나와 현청 간의 투쟁의 장이 되었다. 예컨대 일본군에 의한 주민 학살 관련 전시물에서 일본군의 손에서 총이 사라졌다던가 하는 문제들이 불거졌다. 다큐멘터리에서도 한 오키나와 사람이 일본의 우익들이 곳곳에 세운 위령탑을 보며 전쟁에서 죽어간 오키나와인과 조선인들의 혼은 '영령'(일본어로 영령은 용감히 싸우다 죽은 자들의 영혼이라는 의미라 한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죽은 자들의 혼마저 정당화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 대한 반대를 표하는 것이었다.

 

 

 

-사진: 인터넷에서 찾아본 오키나와 1평 반전지주회 관동지부의 홈페이지 첫 화면

 

 

 

일본 내 미군기지의 약75%가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미군기지, 특히 공군기지로 인한 소음문제는 물론, 140여건의 항공기 사고도 일어났다. 2004년에는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하는 참사로 다시 한 번 주민들의 투쟁이 일어났다. 사회사가인 나카무라 마사노리(中村政則)도 <전후사>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며,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의 '전후'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지적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또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지역신문인 <류큐신보>가 오키나와 전쟁을 마치 지금 일어난 일처럼 보도하는 특집호를 발행했다는 부분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라는 오늘의 한국에서 내전이 불러온 수많은 상처와 문제들이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문제의식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상기시킬 수 있는 미디어는 과연 존재할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족을 달자면 매주 월요일 일본 방위청 앞에서 열리는 평화운동가들의 시위 장면에서는 얼마 전 민주노총 위원장 후보로 나섰던 허**씨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탈식민, 하위주체, 대변(대표)/재현

 

고모리 요이치는 자신의 저서 제목을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형용사로 정한 데 대해 그 뒤에 어떤 명사가 붙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고 한 바 있다. 그는 서구 식민주의 논리를 일본의 상황에 맞게 변용한 사람으로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꼽는다. 후쿠자와는 1875년 <문명론의 개략>에서 사회진화론적 발전단계론에 기초하여 '문명', '반개', '야만'이라는 3단계 규정을 제시한다. 후쿠자와의 논의는 '문명'을 '문명'으로, '야'만을 '야만'으로 성립하게 하는 중간항적인 타자로서의 '반개'를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일본 본토의 인민은 '아이누인'이나 '류큐인'에 비교할 때 '문명'이 되며, '아이누'나 '류큐'를 영유하고 개척의 장소로 삼을 수 있는 권리가 '문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후쿠자와의 삼극구조 논리 안에서 '반개'는 '야만' 없이 '문명'에 대해 '반개'일 수 없기 때문에 '야만'을 계속해서 날조하지 않는 한 자기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 고모리는 자국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제도, 문화, 국민들의 정신을 서구 열강이라는 타자에 의해 반강제된 논리하에서 자발성을 가장하며 식민지화하는 '자기 식민지화'를 '식민지적 무의식'으로, 동시에 자신을 서구에 대해 '반개'로 설정함으로써 '문명'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신이 '반개'이기 위해 끊임없이 '야만'을 날조하고자 하는 숨은 의식을 '식민주의적 의식'으로 개념화한다.

 

다큐멘터리 시작부분의 한 길거리 인터뷰에서 한 도쿄 청년은 "오키나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름다운 섬이며 사람들도 친절하다"고 대답한다. 표면적으로는 젊고 건전한 도쿄 시민으로서의 시민의식이 나타나 있을지 몰라도 거기엔 '자신은 세계도시인 도쿄의 잘 나가는 상류층에는 끼지 못한다'는 '열등감'의 형태로 '식민지적 의식'이 드러나고 있으며, 자신이 사는 도쿄의 삭막한 도시경관과 파편화된 인간관계로부터 회피하면서 오키나와를 아름다운 섬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을 친절한 사람들로 대상화하려는 '식민주의적 무의식'이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 문제는 서울의 길거리를 거닐다가 어느 방송사에서 카메라를 들이밀며 내게 "제주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로서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참 아름다운 섬이고 사람들도 좋다"는 식으로 대답하지 않았을까하는 불안한 예감이 밀려든다는 사실이다.

 

많은 오키나와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회의적이라고 한다. '경제논리'는 그토록 무서운 것일까.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오키나와 젊은이들을 재단하는 것 또한 의문스럽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던 도미야마의 물음에는 피억압자를 온전히 대변/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물론 거기엔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동시에 담겨 있다고 본다. 어설프게나마 약자를 대변하는 일에 발을 들여놓아 볼 예정인 나로서는 누군가처럼 '약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것을 가로막는 요소들과 싸워나가는 것이 문제이지 대변/재현 그 자체에 불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없다. 다만 약자를 대변하고자 하는 운동은 끊임없이 그 대변/재현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고와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지금으로서의 내 생각이다. 약자를 대변/재현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이 '제국의 눈'을 닮아있지 않은지 자문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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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의 오류는 국가간체제와 국내체제의 혼동

보르디가님의 [양아치 창비] 에 관련된 글.

 

보르디가 님의 글은 여러 면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보르디가 님의 글에서 문제삼는 내용들은 창비주간논평의 다양한 필자들 중 김기원 교수의 개인적 성향이 상당히 반영된 것도 사실이지만, 창비라는 집단이 내세우고 있는 '진보개혁 구상'이 양아치스럽다는 지적엔 십분 동의한다. 비싼 돈 주고 계간 <창작과 비평>을 꾸준히 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간 한국사회에서 창비의 행보를 다시금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창비의 여러 논의들 중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창비는 진보적 민족주의라는 이론적 기반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냉전구조 붕괴와 남북간 화해분위기 형성 등 역사적 상황이 변화하면서 더 이상 적절하지 못하다는 판단 아래 일찍부터 세계체계론을 수입해 이론적 쇄신을 시도했다. 이러한 이론적 성실함은 평가해 줄 만하다. 그 과정에서 민족통일이라는 목표는 탈분단체제 형성으로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조선족, 재일조선인 같은 디아스포라도 껴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체계 내에서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재편을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망을 세웠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일찍부터 전후 미국 헤게모니가 서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형성되었음을 지적해 왔다. 간단히 말하면 서유럽이 다자간 질서로 나아갔다면, 동아시아는 일본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 질서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변화의 계기는 냉전구조의 붕괴, 미국자본주의의 쇠퇴와 중국자본주의의 부상 등이었다. 이러한 흐름들을 읽어내면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분석하고 제시한 대표적인 이가 백영서 교수다. 그의 논의를 비롯한 창비의 동아시아 연구들은 국가간체제의 수준에서 한, 중, 일이라는 국민국가 단위를 중심으로 꼼꼼히 짚어내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은 중국과 일본의 대립구도, 특히 일본의 경우 과거사 문제를 내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피해의식의 극복을 내세우는분위기라던지, 국내 계급투쟁이 극단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상황이라던지 하는 문제들 때문에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상황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라는 목표 제시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창비의 논의가 국내체제로부터 국가간체제로 분석수준을 거슬러 올라가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하면서도 다시 국민국가 수준의 국내체제로 추상수준을 거슬러 내려와서는(엄밀히 말하면 추상수준을 거슬러 내려오지 않는다) 계급관계에 기반한 분석을 버리고 진보개혁 통합과 같은 의제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창비의 양아치성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좀더 거칠게 말하면 자신들의 거두인 백낙청 교수를 쉽게 거스르지 못하는 데에 기인한다. 그러니 국민국가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과 상반되는 부르주아 제도정치 중심의 주장들을 내놓으며, 결국 세계체계론을 편의적으로 적용한 꼴이 되었다. 국가간체제에서의 행위주체인 개별 국민국가를 중심에 두다 보니 국내체제에 대해서도 여전히 국민국가를 중심에 두고 국내 사회집단간 갈등의 조정과 통합 같은 것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백영서 교수의 연구에서는 '국익'과 같은 개념이 국내체제 분석을 대신한다.

 

요는 이렇다. 창비주간논평의 김기원 교수의 글이나 창비가 제기하는 진보개혁 구상과 같은 국내정세 분석들에 대해서는 그 국민주의적 함의를 비판하면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창비라는 집단은 워낙 그간 미국을 강하게 의식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국가간체제, 국제지역질서에 대한 시각과 분석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때 창비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가 자신들의 국민주의와 잘 맞지 않는다는 판단 끝에 덮어두었다고 생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접근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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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식생활을 문제삼는 세상에 절망했다

친구 H의 강추로 <사요나라 절망선생>을 보다가 온갖 것에 절망하고, 우연찮게 독기가 빠진 인간들에 한탄하는 이토시키 노조무 선생을 보고 있자니, 갑작스레 독기가 오른다. 내 식으로 절망선생의 대사(絶望した! **に絶望した!)를 패러디하자면 "절망했다! 개인의 식생활을 문제삼는 세상에 절망했다!" 쯤 되려나. 몇 년 전쯤 초록정치연대를 띄웠던 우석훈 씨가 "아토피는 정치다"라고 했을 때 당시 아토피를 심하게 앓던 나는 갸우뚱 하면서도 옳거니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5년여 전쯤부터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었고, 1-2년을 그냥 버티다가 결국 피부과 치료를 받았는데, 그 1년여간 섣부르게 항히스타민, 스테로이드 등을 주입받아 간과 신장이 너덜너덜 해졌고, 체중도 약 20Kg 늘면서 뭘 해도 몸이 힘든 상황을 맞았다. 이후 한의원 등등을 통해 독기를 빼는 시간을 보냈다. 생활비를 줄여 병원을 다니다 보니 식생활은 탄수화물 위주로 배를 채우는 방식이었고, 그로 인한 악순환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건 뭐 지금도 비슷하다. 아뭏든 이를 계기로 네 발 달린 짐승과 날개달린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술도 일절 마시지 않게 되었다. 우유, 달걀, 해산물 정도까지가 나의 타협선이다. 최근엔 금연도 나름 성공적으로 진행중이다.

 

그러나 삶이란 게 원래 녹록치 않은 것인지 고기와 술을 먹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물음이 단순한 궁금증부터 일종의 공격적 언사까지 덮쳐 온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고, 사람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게 된 것도 이 탓이 큰 것 같다. 가장 빈번하게 받는 질문 아닌 질문은 바로 "채식주의자냐?"라는 것인데, 나는 그냥 건강이 안 좋아서 내지는 아토피 때문이라고 둘러대 왔다. 그런 나의 대답에도 꼭 심층적으로 따지고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뭐 어느 정도는 버틸만 한데, 몇 개월 전쯤엔 정말 절망스러운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 고기도 안 먹는데 그렇게 살이 쪄요?" 뭐랄까 그땐 정말 화도 안 났다. 그 순간 절실히 느낀 게 있다면, 사람들은 좀처럼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며 솔직하게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솔직하지 못함을 드러내면 그것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느새 나는 가끔씩 속을 알 수 없다거나 음흉(?)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속내를 나도 몰래 드러냈다가도 곧 흠칫하고 주워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냐?"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식품생산을 살펴보면, 육류생산으로 갈 수록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또 먹이사슬의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중금속 등이 축적되는 비율이 높아, 육식 위주의 식생활은 다음 세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나는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인류의 식량소비가 채식을 중심으로 지역적 생산물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러한 생각을 대중운동으로 풀어 나가는 것 또한 지지한다.
 

그 이후 오랜만에 또 사석에서 "채식주의자들은 자기들 몸 챙길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개인적인 자리에서 "채식주의자냐?"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은 아저씨들이 술자리에서 누군가 이명박을 까대면 "너 좌파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뭐랄까 그 자리에서도 나는 자기해방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자가 떠올랐다. 때마침 최근 들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일련의 책들 중 매우 평이하면서도 인상적인 구절을 발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는 가동되고 있지 않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사실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지로 개인에게 성패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소신껏 일을 추진할 수도 없고 결국 그것은 수많은 사회변동의 싹을 압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 쳔꽝싱(陳光興), 백지운·임우경·송승석 옮김. 2003, 『제국의 눈』, 창비. p.27

 

 

식품의 생산과 소비의 구조적인 문제 또한 개인이 짊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아토피라는 원인불명의 환경병을 겪는 개인적 경험 또한 개인적인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에 대응하는 개개인들의 의료서비스와 식생활 등에 관련한 선택을 공격적으로 문제삼는 것 또한 비생산적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이야 얼마 안 되겠지만, 얼마 안 되는 이들에게라도 사석에서 누군가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왜 고기를 안 먹느냐고 사정없이 캐묻지는 말아 주었으면 한다고 말하고 싶다. 상대방이 채식의 이유와 필요성과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며 채식을 권할 경우에는 그에 맞게 진지하게 대화를 풀어 나가면 좋을 것이다. 나는 그저 내 몸이 물질적-정신적으로 식민화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 경험을 통해 개인적으로 대응해 왔을 뿐인데, 물론 기회가 된다면 집합적인 대응에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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