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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타(Rosetta)를 다시 보다

로제타(Rosetta)를 다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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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제타>를 다시 보았다. 감독은 뤽 다르덴, 장 피에르 다르덴 형제로 1999년 깐느 그랑프리를 수상한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젊은 여성 로제타가 식품공장(통조림 공장으로 보임)에서 해고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트레일러 마을에서 힘들게 통근하며 일도 잘 해왔으나 일자리를 잃게 되자, 로제타는 공장 관리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항의한다. 해고의 이유는 다른 무엇이 아닌 계약기간 만료였는데, 이처럼 관리자에게 개인적으로 항의하는 모습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주거지인 트레일러촌은 집시들의 유랑 마을과도 유사하다. 그중에서도 1990년대 말의 유럽 치고는 원초적으로까지 보이는 장면이 다름 아닌 로제타가 마을 근처 연못에서 깨진 유리병과 철사줄로 낚시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던 장면이었다. 연못은 항상 뿌연 흙탕물 투성이다. 이처럼 진흙탕 같은 현실에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잡아보자고 낡시를 던지는 그녀의 반복적이고도 원초적인 행위는 막다른 곳에 몰린 자의 분노를 더욱 증폭하여 전달해 준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는 마찬가지로 실업자 신세인 청년 리케를 만나게 되고, 와플을 구워 파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해 겨우 생계를 이을 수 있게 된다. 남자친구가 생겨 사람다운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리지만 이것도 잠시 뿐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사업주를 꼬드겨 그녀의 와플 가판대 일자리를 빼앗게 된 것이다. 리케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하지만 로제타는 ‘일자리 다운 일자리를 갖고 싶다’고 답한다.

 

결국 그녀는 리케의 소소한 속임수를 꼬발라서 짤리게 하고 일자리를 되찾는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니 알콜중독 폐인 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로제타는 차라리 죽어버리려 하는데 가스통의 가스마저 다 떨어져버린 것이 현실. ... 새 가스통을 받아 트레일러로 돌아오는데 리케가 바이크를 타고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마구 따가운 시선을 보내던 중 가스통을 들고 가던 로제타가 넘어진다. 리케가 놀라며 그녀를 일으켜주자 로제타는 눈물을 흘리며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와 원망에 휩싸인 표정을 지어보이고 여기서 영화는 돌연 끝난다.

 

이처럼 시종일관 분노에 찬 젊은 여성 청년실업자의 모습을 보며 유럽 전역의 고상한 어른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우리 시대에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영화를 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주로 정신분석적 함의를 강조하는 그의 논의와 조금 맥락은 다를지라도, <로제타> 역시 1990년대 말 유럽의 청년실업과 그를 둘러싼 사회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998년 벨기에에서는 학교 졸업 후 6개월 이내 청년 13만 3천명 중 7만 2천명이 실업상태였다. 이에 1999년 고용부장관이 25명 이상 기업에 의무적으로 한 해 동안 1명을 청년실업자 의무고용 하도록 하는 계획을 제출하였는데, 이는 총 고용규모의 4%에 해당하는 청년실업자를 추가적으로 의무고용하는 것이었다. 기업측에는 42,702벨기에프랑의 임금 고용을 하는 사용자가 8,000벨기에프랑의 고용부담 감축 적용하는 인센티브가 제시되었다. 이 계획은 로제타 플랜이라 이름붙여졌다.

 

한국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추계된 자료를 보면 100인 이상 기업에 5%의 의무고용을 도입할 경우 141,533명의 청년실업자의 고용이 가능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규모는 전체 청년실업자의 약 50%수준이고, 청년실업자층을 넓게 보았을 때 약70만으로 잡으면 약20%수준이 된다.

 

이러한 청년실업 대책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반적인 고용통계지표상 청년층은 15세에서 29세 사이인데, 2010년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비정규노동통계에 따르면 20대의 비정규직 비율이 50.1%로 절반에 이른다. 비정규직 비율은 학력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비정규직 비율은 중졸이하 78.2%, 고졸이하 59.2%, 반면 대졸의 경우 27.6%로 비교적 낮게 나타난다.

 

그밖에도 최근 수년간의 추세를 보면 청년실업률은 6-7% 수준으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고, 고용률은 약40%수준이다. 실업률과 고용률의 격차 이유는 높은 고등교육 진학률인데, 학교에서 직장이 아닌 학교로 이동하며 실업이 유예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예현상의 배후에는 중저학력 취업구조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관련 시험준비자들을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이 약18% 수준에 이르게 된다. 취업준비생이 여전히 대량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가교가 아니라 함정으로 작용하는 고용구조 때문이다.

 

2010년 통계청 경활 청년층부가조사 결과로도 청년층 10명 가운데 4명의 첫 일자리가 비정규직이고, 첫 직장에서 일하는 평균 기간은 19개월이다. 대학 재학 중 휴학경험은 약40%인데, 휴학 사유는 대부분 취업 및 자격시험준비, 어학연수, 인턴 등이다. 한편,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는 약54만명으로 이 중 취업관련 시험 준비자는 10%인 54만명이고, 그중 1/3이 일반직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40대와 50대의 고용률은 70%대 이상인데, 이들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율 또한 40%에서 60% 사이다. 다시 말해 온가족이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나서 생계를 유지하며 청년실업자 자녀의 취업준비를 뒷받침하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은 고위험부담 가계경제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과 가족에게 사회적 위험이 집중되는 경제구조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정부가 아무 것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생색내기라 하기에도 초라한 수준이다. 먼저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을 보면,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은 매년 정원의 3% 이상씩 청년 미취업자를 고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제5조)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권고조항이어서 2010년 조항 적용 대상 공공기관 328곳 중 40.8%가 이를 지키지 않고 있는 곳으로 나타났고, 이중 64곳은 청년 고용실적이 전혀 없었다. 반면,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공기업 정원을 2만 2천명 감축하였고, 이에 따라 2010년 공기업 신규채용은 전년대비 22% 감소세를 보였다.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청년층을 고용하면 중소기업에게 1인당 임금의 50%(80만원 한도)를 6개월 지원하고 정규직 전환하면 추가로 6개월 더 지원하는 방안을 실시하였다.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겨우 2만 5천여명을 대상으로 그것도 1년 미만의 단기간 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청년인턴제의 정규직 전환 성과가 높다고 선전하는데, 그마저도 중도탈락률이 30% 수준으로 상당히 높아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또 중소기업으로서는 청년인턴제 조건인 ‘취업 경력 6개월 이내인 사람만 채용 가능’을 충족하는 인력을 찾기도 쉽지 않다. 구직자의 요구도 못 맞추고, 중소기업의 현실도 외면하여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의 청년층 비정규노동자들, 아니 좀더 범위를 좁혀도 수십 만 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자들 한 명 한 명을 하루종일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녀 본다면 수십 만 편의 <로제타>가 나올 것이라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제아무리 한국사회의 점잖은 어른들이 웬만큼 충격적인 일들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해도, 가까운 시일 내에 정말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진흙탕을 뒤집어 쓸 수도 있음을 절감할 때도 되었지 싶다.

 

 

 

P.S.  2011. 10. 25

 

공교롭게도 오늘 한국경제연구원이라는 민간 연구기관에서 청년의무고용할당제 관련 보고서를 낸 모양이다. 한국과 같은 고학력 청년실업 구조에 로제타 플랜과 같은 형태의 청년의무고용할당제는 중소기업 인력난을 불러일으키는 등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것이 핵심 주장인 듯하다. 그래 놓고는 대책으로 세제혜택(EITC)을 말하는데, 한 마디로 이 보고서를 쓴 사람의 기본 시각은 청년실업자들을 '눈만 높아가지고 힘들게 일하기는 싫어하는 것들'로 보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중심 하청구조 속에서 경영이 불안하니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이런 일자리를 피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마치 눈만 높은 젊은 사람들이 일하려 안 해서 중소기업들이 인력난에 직면하고 경영도 불안해지는 양 현실을 호도하고 뻔한 인과관계의 원인과 결과를 정반대로 뒤집어 제시하고 있으니, 이건 대체 뭐하자는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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