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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한 행인의 넋두리와 상식, 양식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실성한(?) 분과 마주쳤다.

 

실성한 사람들의 넋두리는 종종 의미심장한 계시이기도 한데,

이 아주머니의 넋두리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훌륭하다.

 

중얼중얼 읊어대는 것이 아니라 성난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인데도

운율이 절묘하여 한 구절의 시와도 같다.

 

..... (전략)

 

모지리, 모지리 모지란 것들아

모조리, 모조리 쓸어버릴거다

 

..... (후략)

 

구체적인 앞뒤 내용들은 요즈음의 선거 국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 굳이 적어두지 않을란다.

 

근데 가만 듣다보면 "모지란 것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것 같은데도

무지를 탓하며 계몽을 호소하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른바 사회적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는 이들이

보통 사람들의 '양식', 나아가 '상식'조차 결여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쓸어버린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긴 했지만)

 

뭐, 적절한 지는 모르겠지만 자꾸만 그람시(Gramsci)가 떠오른다.

그의 '상식'(common sense)과 '양식'(good sense)에 관한 논의를 추려보면 ...

 

먼저 상식은 철학적 사유의 침전물로서 대중들의 생활양식과

전문가들의 철학 및 과학 사이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다.

다시 말해 상식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일정하게 규격화된 대중적 지식으로서

생활양식의 세대간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본다.

 

한편, '양식'이라 함은 '상식'에 대한 비판이자,

'상식'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철학'과 등치된다.

 

물론 그는 한 사회에 단일한 '상식'과 '양식'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계급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실성한 분의 넋두리는

계급간 '상식'의 괴리와 동시에, 각 계급 내에서의 '양식'의 부재를

한탄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이러한 한탄의 배경에는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주의주의적 흐름에 대한

경계가 있을 것인데, 마찬가지로 이와 관련한 그람시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

 

주의주의(voluntarism)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초인적인(?) 개인 또는 소수 집단에 대한 찬양과,

포병이나 보병이 없는 '돌격대'가 그것이다.

(그람시는 그가 처한 수감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군사적 비유를 종종 사용하곤 하였으니 이해해야 할 듯)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대중과 유기적으로 연관된 지식인을 강조하며

퇴행적-허위적 영웅주의와 유사 귀족주의에 대항해 싸울 것,

나아가 사회적 집단 형성, 즉 조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오늘 아침 펼쳐본 신문에는 두 청년세대의 기고글이 실려 있었는데

한쪽은 같은 정당 소속이지만 전 시장이었던 사람과 '그분'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찬양이

또 한 쪽은 뿌리를 둔 정당은 없어도 '그분'의 선한 의지와 역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찬양이 나란히 '상식'의 괴리와 '양식'의 부재를 보여주고 있는 듯하여 씁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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