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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소망이라면,

돈 많다는 삼성생명은 어찌나 돈이 많은지, 정확한 기간과 액수를 외우고 있었는데 까먹었다, 비틀즈 원곡을 사용할 때 지불해야하는 로열티(원곡 뿐 아니라 비슷하게 부르거나 연주된 곡도 사용료를 내야한다고 함, 웬 재수.)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큼 어마어마했는데, 테레비를 거의 틀지 않는 나도 자주 봐야할 정도로 쉴 새 없이 쏘아대던 삼성생명 부라보 유어 라이프 광고 배경음악으로 "I will"을 정확하게 폴 메카트니가 부른 것으로 쓰고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삼성생명이 그토록 거부가 된 데에는 적으나마 나의 돈도 있다. 십시일반이라고, 없는 통장에서 꼬박꼬박 매달 삼성생명께 돈을 바친다. 암보험도 두 개나 들어있고, 엄마가 옛날에 들어준 여성보험도 하나 있다.

 

그래서 삼성생명 직원(은 아닌데.. 보험아줌마의 현재 호칭은 무엇인가.)이 가끔 사근사근한 안부전화를 한다. 지금 돈이 없어서 보험을 더 들 수 없는데요,하고 어느날 용기있게 말했는데, 아, 그런 거 신경쓰지 마세요, 그것때문에 전화하는 거 아니에요,하고 그녀는 매우 프로훼셔널하게 대꾸를 하였다.

그러더니 급기야 우리집에 한 번 오겠다고 조르고 졸랐다.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이유의 전부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왔다.

산타클로즈처럼 선물을 잔뜩 들고.

2006년 새해달력은 기본이고, 내가 평소에 갖고 싶어했던 딱 그 모양의 탁상거울이랑, 핸드폰에 매달라는 앙징맞은 개 인형줄 두 개, 원래는 여기까지였는데 애기선물을 안 챙겼다며 18 k 금으로 된 네잎클로바 책갈피까지.

 

나도 답변용 무언가를 내주어야하겠는데, 줄 수 있는 거라곤 그녀의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 뿐. 그녀는 역시 프로훼셔널하다.

 

삼십대 중반, 이때 십년 이십년을 내다보며 돈을 모아야한다,는 게 그녀 강의의 요지였다.

사실 나도 이 걱정을 안해본 것은 아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세월이 어디까지일까.

땡자땡자하며 지나온 젊음 덕에 수중은 빈털털이고, 거의 하루 벌어 하루 살고 있는 형편인데, 그렇다면 앞으로 하루벌이가 끝나는 날, 내 생활도 끝인 것이다. 그때 가서 나는 살만큼 살았다고쳐도 규민은 또 어떡할건가(이런 걱정을 정말 진심으로 하게된다).

 

그녀는 은행저축보다 보험회사 재테크 보험이 왜 좋은지 줄줄 꿰더니, 그 중 하나 가장 추천할 만한 것으로 변제주식펀드? 변환주식펀드? 하여간에 주식에다가 일정 투자하는 보험을 설명한다.

그녀 : 지금 주식이 얼마인지 아시죠?

나 : 네?.... 네, 얼마더라..

그녀 : 1,300이에요.

나 : 헉 (거기까지 올랐나, 벌써. 천이라고 하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렇다면 갈 데까지 다 갔네.)

그녀 : (나의 표정을 읽은 듯) 미국 주식이 얼만지 아세요? 만***에요. 분석가들은 우리나라 주식이 미국의 딱 이십년전 상황이라고 해요. 이제 우리나라 주식도 그렇게 될거에요. 올해도 천오백,육백된다고 하잖아요. 삼성전자, 에스케이텔레콤 이런데에 예전에 주식 2억정도 가지고 계셨던 분들, 지금 68억원이래요.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 참 많잖아요.

 

주식이 자본주의 꽃이라더니, 노동자도 자본의 주인으로 만들어주어 부자가 될 희망을 피워준다고 꽃인가, 아, 그 꽃, 공포스럽다.

침이 넘어갔다. 우리나라가 20년 후에 주식 만 포인트 달성하려고 무기 장사 총 장사에 전쟁 장사까지 벌이겠구나. 못할 짓이 무어겠는가. 삼성전자, 에스케이텔레콤 급기야 쌀농사까지 팔아넘기고 주식 천 삼백을 얻었는데. 핸드폰 장사 더 해먹어야 한다는 논리 오로지 이거 하나로 쌀농사 쯤 해치우지않았는가. 이것에 대면 그 어떤 논리도 나가떨어지지않았는가.

아, 무섭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이 어떻게 돈을 모아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이제 다른 한 쪽은 어떻게 죽어나가든 상관없다는 식이라니.

 

 

새해 소망을 묻는 마이크에다 열에 여덟은 경기가 풀리고, 경제가 나아지고, 부자가 되었으면, 이라고 한다. 가구 당 한 대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고, 인터넷은 삼천만명이 사용한다고 하며, 핸드폰은 중학생이면 거의 가지고 있는 세상이면 소비산업이란 갈 데까지 다 간 것 아닌가. 여기서 경기/경제더러 더!더! 외치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정말 모르겠다.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 건지.

 

새해소망이란 거 없었는데, 생겼다.

주식 500대 이하로 확 꺽어서 자본주의 꽃 말라비틀어주시고, 미국 전쟁산업 좀 고만하게 하시고, (여기서 끝나면 좀 아쉬우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홀딱 망하고, 민주노동당 많이 당선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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