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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6/29
    또 꿈, 무지 초라해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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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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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6/22
    이창래 <제스쳐 라이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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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6/18
    옛날 이야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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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6/16
    오랜만에 비디오, <빌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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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6/12
    열화당 낸골딘 사진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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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6/10
    칫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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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6/03
    어느 라디오 광고(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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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6/01
    비가 온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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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6/0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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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 무지 초라해진

내가 날아다니는 꿈에 대해 여러번 떠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이상 안떠들겠다.)

아, 내가 그 꿈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발뒷꿈치를 살짝 들어올리고 무릎을 굽혔다가 펴면서 가볍게 점프한다. 두 팔도 좍 피고.

그러면 하늘로 스윽 올라갔더랬지.

몸이 떠오르는 그 느낌, 공기 사이를 유영하는 그 느낌, 땅바닥이 슉슉 뒤로 물러서는 걸 내려다보는 그 느낌, 나무 위로 공원 위로 들판 위로 날아다니던 그 느낌, 그 느낌.

(안 떠들겠다고 했는데 또 떠든다.)

그런데 더 이상 그 꿈을 안 꾼다고도 얘기했을 것이다.

그 이후 아주 가끔 변형된 날기를 시도하는 꿈이 있었다.

 

어젯밤 꿈,

나는 학교처럼 생긴 건물 안에서 윗층으로 윗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벽과 천정이 골격만 있는 형태였고, 책상과 의자도 점점 없어지고 공간도 점점 좁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락없는 정글짐이다.)

도중 누군가 다가와 너도 할래? 물었다.

난 무서워,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뭘 하겠냐는 거였냐면, 그때 내 머리 바로 위에서, 그래서 마치 내 머리를 스치듯 행글라이더가 지나갔고, 저걸 나보고 타보겠냐는 거였다.

 

거대한 행글라이더였다.

그 거대한 삼각형이 거의 하늘을 덮을 듯 했다.

 

나는 계속해서 정글짐 위로 위로 올라갔고(거의 꼭대기가 가까와오자 그것은 무지 높은 위치였다. 땅이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는 도중 행글라이더들이 계속 지나갔다. 내 머리 바로 위로. 그 떄마다 머리가 닿을까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어꺠를 바싹 움츠렸다.

나는 두 손으로 정글짐을 꼭 잡고 있어서 거의 엉금엉금 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고개만 빼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행글라이더가 지나갈때마다 나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고개를 다시 빼고 하늘을 올려봤다가 하면서 거북이같이 굴었다.

그러다, 문득, 저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 아냐? 하는 깨달음이 왔다.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잖아. 저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건데.

아, 그러니까 이 꿈은 나에게 하늘을 날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한 것인가보다.

근데 난 무서워서 엉금엉금 기기만 하고 전혀 탈 생각을 못 하고 있잖아.

예전처럼 그냥 몸이 가뿐 하늘로 떠오르는 것은 이제 꿈도 못 꾸고,

초라하게 행글라이더를 이용해야 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무서워 벌벌 떨고 있구나.... 등등을 꿈 속에서 모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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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는 동성애자가 분명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모르겠다.

커다란 갈색 천 소파 위에 눕듯이 앉아있다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모를 남자가 몸을 일으켜 동성애 남자의 바지를 벗기고 그의 것을 입으로 애무했다. 갑자기 내 앞에서.

보라색 면 바지가 소파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은 장난이었다.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짓을 지금 하는 이유는 널 놀리기 위해서야,라는 듯한. 그러나 그 남자는 동성애자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눈빛이 그랬다.

한참을 깔깔대며 그러고 있으니, 동성애자는 진정으로 흥분하여 이번엔 자기가 애무해주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른 남자는 얼른 몸을 뺐다. 아니야, 아니야, 됐어, 됐어, 하면서.

 

이 두사람은 지금 알 수 없는 이유로 날 감금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재빨리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내가, 나, 이제 집에 가봐야돼, 하고 일어나니, 둘은 장난을 그만두고 빨리 운동화를 꿰신느라 주춤주춤하면서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하고 외쳤다. 순간 공포감이 확 밀려왔다. 나는 태연한 척 하면서, 천천히 신발 신어,하고는 마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던졌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대머리 노인(최근에 벤 킹슬리 영화를 봐서 그런듯)과 다른 몇몇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 들어가 엘레베이터 벽에 몸을 착 붙이고 노인들의 뒷 모습을 봤다. 모두 깡 말랐다. 그래도 목 뒷덜미가 몇 겹 접혀있었다. 노인들은 내가 일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의 일행을 기다리느라 엘레베이터문의 오픈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안 들어오자 다시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거의 닫힐 무렵 두 남자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서둘러 층계로 달려내려가고 엘레베이터 문은 완전히 닫혔다.

엘레베이터는 층마다 멈추고 문을 열었다. 아무도 내리고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릴때마다 비상계단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그들과 마주 쳤다. 그들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고 그냥 계속 층계를 뛰어내려갔다.

 

건물을 빠져나오니 앞에 고속도로가 펼쳐있었다.

고속도로에는 뜨거운 해때문에 이글이글 아지랭이가 잔뜩 깔려있었다.

거기에 큰 개들이 늑대처럼 어슬렁 대고 있었다.

저 개 좀 봐, 어느결에 내 옆에 선 동성애자가 말했다.

그 개는 네 다리로 걸으며 작은 다리 한 쌍을 어깨에 권투글러브를 걸친 모양처럼 늘어뜨리고 흔들흔들하며 걷고 있었다. 저게 정말 다릴까?하고 내가 물어보았다.

아지랭이 때문에 잘 안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하얀색 큰 개 한마리가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있었다. 허리 아래부분이 차에 깔렸는지 고개와 어깨만 좌우로 흔들 뿐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저기서 새끼를 낳고 있는건지도 몰라,하고 동성애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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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래 <제스쳐 라이프>

지금 막,은 아니고 약 두어시간 전 다 읽었다.

사실 이 소설을 읽을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 작가 이름이 좀 후져보이고.

책 표지 날개에 쓰인 작가양력에는 그가 한때 월가에서 증권맨으로 일했다고 했는데, 딱 증권맨의 이름 같지 않은가(내가 그렇다고 증권맨을 폄훼하는 것이냐,한다면, 사실 그렇다). 이 번 책에는 다행히 붙어있지 않지만,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의 표지 날개에는 작가사진까지 붙어있는데, 그 사진 또한 영락없는 증권맨의 얼굴이었다.

이 바쁜 세상에 증권맨이 쓴 책까지 볼 여유는 없지.

 

그래서 볼 생각이 없었는데, 듣도보도 못한 제목의 책 <영원한 이방인>을 어느날 갑자기 들고다니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작가의 또 다른 책 <제스쳐 라이프>를 연이어 사고, 결국은 이 책이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훌륭한 것이었다는 둥의 소릴 하는 전모작가 때문에 호기심이 슬쩍 일어 한 번 보자 하고 책을 들었다가 1,2권을 3일 만에 후루룩 끝내 버리게 되고 말았다(1,2 권이라지만 사실 짧다). 아, 전직 증권맨, 생긴 것도 증권맨, 이름도 증권맨인 사람의 이토록 고요하고 슬픈 소설이라니!

 

그 전모작가의 짧은 독후감을 다시 보았다. 역시 작가는 다르다. 내가 얼레발설레발 떠드는 것보다 낫겠다. 옮기자면,

 

영원한 이방인은 사실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무척 매력이 있지만 문체는 어딘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인상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아예 거대한 심해로 그걸 가라앉혀 놓았다. 감정의 조절, 특히 감정의 절제는 소설에서는 무척 중요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커다란 감정의 비

누방울을 만들어놓고 끝까지 그걸 줄타기하듯 터뜨리지 않았다.  (나라면 단번에 터뜨린 뒤에, 너무 슬퍼서 할 수 없었어......지랄을 할 것이다.)

 

 알려진대로 이 소설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꽤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 여성의 굴절된 삶이라는 면 보다는 야만의 세기인 20세기, 그 얼굴에 난 잔인한 흉터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역사적인 맥락을 늘 떠올린다.

 

 그도 이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충격이 그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사람들은 잊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이 산처럼 쌓여 죽어갔는데도 어떻게 사람들은 그 위에 햄버거 가게를 세우고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 어쨌든, 20세기가 폭력과 혁명세기, 혹은 야만과 광기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틀림없이 망각의 세기, 단절의 세기가 될 것이다. 안 그런가, 여러분?

 

 난 최근에 읽은 소설 중에 이 소설을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꼽고 싶다. 시간 나면 한번 읽어보시길..

 

<제스쳐 라이프>를 내려놓고 서둘러 <영원한 이방인>을 들었더니, 이 全작가가 그건 당신한텐 좀 별루일 수 있겠는데, 했다. 그래서 그냥 내려놨다. 내 귀는 참 얇기도 하지. 진짜 얇다.

 

나의 개인적 소견을 살짝 보태자면, 어느 작가는 데뷔 기념 인터뷰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자기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해준 고마운 소설이라고 하였었는데, <제스쳐 라이프>를 읽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천둥이 치는 하늘에 동시에 무지개가 걸리는 행운이 나에게 찾아와 나도 데뷔 기념 인터뷰 비스무리 한 걸 혹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도 그때 <제스쳐 라이프>를 두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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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1

누구나 다 그렇지만, 규민도 옛날 얘기 듣기를 좋아해 자기 전엔 언제나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조른다. 아이 수준에 맞는 짧막 이야기를 그때그때 만드느라 진을 뺐었다. (요즘은 어휘력과 이해력이 부쩍 늘어 선녀와 나뭇꾼, 잭과 콩나무를 해줘도 된다.) 규민이 열렬 좋아해 여러번 재신청을 받았던 얘기 중, 전수찬의 '문 얘기'와 '동그라미 얘기'가 있다. 도대체 왜 그토록 좋아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문 얘기 : 옛날에 옛날에(처음에 꼭 이렇게 시작해야한다. 안 그러면 빠꾸당한다.) 문이 하나 있었어. 애기가 와서, 문아 열려라, 그러는데 안 열리는 거야. 어~ 왜 안 열리지? 문아, 열려라. 애기가 아무리 말해도 문은 열리지 않았어. 그러더니 문이 말하기를, 밥 잘 안 먹고 잠도 코 잘 안자고, 치카치카 잘 안하는 애기한테는 문 안 열어줄거야. 하는거야. 그래서 애기는 집에 가서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떼도 안 부리고, 치카치카도 잘 하고 다시 와서 문아, 열려라, 했더니, 이번에는 문이 스르륵 열리더래. 끝. (이런 시덥잖은 교육용 이야기라니.. 그래도 규민은 번번히 '문 얘기 해줘'하고 졸랐다.)

 

동그라미 얘기 : (당시 규민이 돼지 얼굴을 그리기 위해 동그라미 그리기를 열심히 연습하면서 동그라미, 세모, 네모에 관심이 많았었다.) 옛날에 옛날에 동그라미가 있었어. 그런데, 동그라미가 막 굴러가다가 탁 넘어져서 한 쪽 귀퉁이가 떨어져나가 잃어버렸어. 그래서 떼굴떼굴 굴러가지 못하는거야. 동그라미는 너무 슬퍼서 자기 한 쪽 귀퉁이를 막 찾으러 다녔어. 그러다가 세모를 만났는데, 이게 내가 잃어버린 귀퉁인가 하고 세모를 끼어봤더니 안 맞는거야. 그래서 다시 울면서 가다가 네모를 만났는데, 네모가, 동그라미야, 내가 도와줄께, 해서 껴봤는데도 떼굴떼굴 굴러갈 수가 없었어. 어떡하지, 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저 쪽에 뭐가 있는거야. 가봤더니 바로 그 귀퉁이였어.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철썩 끼우고 또 떼굴떼굴 굴러갔대. 끝.

 

(지금은 이렇게 동그라미를 제법 잘 그린다. 며칠 전 그린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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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디오, <빌리지>

비디오 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하며, 이거 끝이 영 별루던데, 했다.

우디 알렌과 크리스티나 리치의 <애니씽 엘스>(이게 찾아보니 03년도 영화던데, 왜 이제서야?)와 <빌리지>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전수찬이 적극 <빌리지>로 밀고 가는 중이었다. 나는 최대한 재미있는 것으로 골라야했다. 규민이가 7시부터 자는, 이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행운을 최대한 누려야하므로. 사실 요즘 영화를 너무 드문드문 보아서, 비디오가게 진열대 사이를 걷고 있자니 보고 싶은 영화들이 쏟아져 쌓일 지경이었다. 고민하고 자시고도 없이 <애니씽 엘스>며, <빌리지>며, 케이트 허드슨 주연의 영화며, 전도연의 <인어공주>, 욘사마와 전도연의 <스캔달>, 고날과 몇몇이 좋았다했던 <미치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까뜨린느 브레야의 <횃걸>, 한 번은 왠지 봐주어야할 것 같은 <올드보이>(아직도 안 봄), 사실은 올드보이 보다 더 보고 싶은 <복수는 나의 것>...

 

요즘 나는 '할일강박' 같은 거에 시달리고 있는 듯 하다.

영화도, 즐겁게 보아야할 것을, 보지 못한 것을 숙제화하고 있다.

인생이 숙제천지로 콱 막혀있다.

한의사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했는데.

한의사 말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산들 뭔 부귀영화 입신양명 금의옥식 불굴불멸 왕생극락을 누린다고, 허.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지만, <빌리지>가 최종낙찰 되었다.

<애니씽 엘스>는 로맨틱 코메디라던데, 일 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행운으로, 반짝 행복보다는 무언가 진지한, 인생을 성찰하며 진리를 반추하는 기회를 얻고 싶었기 때문에(로멘틱 코메디에 대한 편견).

 

<빌리지>가 그렇다고 인생을 성찰하며 진리를 반추하는 기회를 주었는가 하면, 결과적으로 아니올시다 인데, 하지만 여러가지 곰곰 곱씹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감독은 기껏 섬세하게 은둔의 모습을 그려놓고서 왜 그들을 우스꽝이로 만들었을까. 공포정치라면  타겟은 다른 데 있지 않은가.

 

감독은 사실 그런 정치적인 것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그가 가지고 있던 관심은 스산한 분위기 만들기, 그러다가 오싹 카메라 움직이기, 갑자기 한 번 짱 놀래키기. <스크림>식으로 말고. 이미 그의 전작 <싸인>에서 연습했던 듯이, 묵직하고 둔중하게. 그래서 어떤 장면은, 장면 자체만으로 아름답고도 공포스럽도록 완벽하여 기억에 남도록.

예를 들면, 치자색 망토를 두른 맹인 처녀가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를 감지하고 공포에 싸여 두손을 맹렬히 휘저으며 앞을 살피는 중, 그 바로 뒤 초록잎사귀의 고목이 한 그루 서 있고, 그 고목 에 비껴서 빨간 망토를 두른 살인마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깨를 움츠린 채 처녀를 노리며 서있다.  카메라는 가로등 정도의 위치에서 그들을 내려다 보고.

또 예를 들면, 사랑하고 동시에 인생의 스승인 아버지가 어딘가로 이끌어가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어떤 사건의 등장을 얘기할 것이라고 느낄 즈음 아버지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지 마라."라고 말을 툭 던진다. 그 둘을 뒤에서 얌전히 쫓던 카메라도 갑자기 툭 정지하더니, 이야기를 듣던 딸을 중심으로 두고 반바퀴 주루룩 돌아 그녀 앞에 탁 선다. 그녀의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표정.

 

그 은둔자들은 거의 완벽한 평화 속에 살고 있었다. 아무도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 저능아(인)이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돈 많은 사람도 따로 없고, 권력자도 따로 없다. 대소사를 결정하는 원로회가 있을 뿐이고, 원로회는 모두에게 건의와 질문을 받는다.

작은 마을을 이루고 옹기종기 사는 그들 모습은 어찌 보면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이들의 청사진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겐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주기적으로. 이 사건은 그들을 공포스럽게 하면서 그들을 더욱 단결시켰다. 결국 이 공포정치가 모든 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고 마는데, 여기서 더 얘기하는 것은 이 영화를 안 봤는데 앞으로 혹 보게될 사람을 위해서 할 짓이 아니므로 입을 닫으며 하여간에 개인은 집단에 우위한다,는 정치스러운 결론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접기로하고,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이들의 청사진이 될 수도 있는 작은 마을의 옹기종기는 보다 현명하게 평화를 이루길 바랄 뿐이다.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고개를 살레살레 저은 만큼 꽝은 아니었다. 그 아저씨도 도피와 은둔과 낙원을 꿈꾸는 분이시라 결말에 상처받았나.

호와퀸 휘닉스가 나는 리버 휘닉스보다 더 좋던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도 건실한 일등 신랑감으로 나온다. 저 사진에서 그는 드디어 그 무겁고도 섹시한 입술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열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네 생각부터 한다고 말해서 무엇하겠어. 하루 종일 너와 함께 있을 생각만 하고 있다고 말해서 무엇하겠어." 라며 사랑 고백을 한다.  어느 여자가 감동받지 않겠는가. 둘은 그 즉시 열렬한 키스를 한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저렇게 과묵한 스타일의 남자는 연애나 결혼이나 다 꽝이다. 저런 가슴 절절한 대사는 곧, "사랑한다고 꼭 말해야 돼? 그거 말해서 무엇하겠어." 가슴 터지는 대사로 바뀔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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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당 낸골딘 사진집

잃어버린 줄 알았던, 그런데, 토요일 아침, 우연히 찾았다.

토요일 밤, 남은 포도주와, 첫맛은 산뜻하나 뒷맛은 고린내가 나는 농주를 마시고 약간 알딸딸한 기분에 아침에 찾은 그것을 들췄다가 아, 괜히 기분만 뒤숭숭해졌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사진, 이 잔인한 사진. 그리고 또 이거

 

 

우리, 서로에게 이런 사진 허하기 하자.

가식적인 우리 관계에 이건 너무 무리인가.

그럼 이건.

 

 

옛날에 내가 흉내낸다고 오방 난리를 치며 찍었다가 개뿔, 흉내는 커녕 그지발싸개로도 못쓸 사진 하나 찍었던 그 모델도 눈에 띈다.

 

 

우리도 누드사진을, 예술을 위해, 서로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위해 허해주는 게 어떨까.

 

이제부터, 늘 사진기를 들고다니기로 또 새삼 결심했다.

근데 문제는 사진기를 들고다니냐 아니냐가 아니다.

배워야한다.

갑자기 어디서 사진을 배우냐, 하고 인터넷을 열라 뒤지다가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여성의 눈으로 사진을 찍기 어쩌구하는 강좌를 기웃했더니 수요일 밤 9시 시보마넌, 한겨레 문화센터 토요일 오전내내 이십마넌, 시간도 안되고 돈도 엄꼬,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오마넌에 나도 비디오저널리스트 어쩌구하는 비디오카메라 촬영 및 편집 강의가 있어 그럼 이거나(더군다나 강의가 끝나면 수강료 오마넌은 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한다.)했다가, 아무래도 시간이 맞으려면 하고 광진문화센터를 찾아보니 이건 석달에 사마넌, 강사도 광진구 각종 사진대회 상을 휩쓴 사진작가협회 소속 사진작가님. 음, 근데 이건 왜 끌리지 않을까. 결국 돈도 엄꼬 애엄마 주제에 그냥 독학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옛날 보던 책을 꺼내어 그래, 다시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가며 실습해보는거야,하고서는 빛의 성질 어쩌구 카메라 옵스큐라 어쩌구가 나오는 1장 한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다가 뻗어 자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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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하얗다 상이 몇 번 우리집에서 자고갔다.

한 번은 그 다음날 일본으로 출장 예정이어서 (고향에 가며 '출장간다'라고 말하는 건 좋을까, 나쁠까. 고향은 닳고 닳은 단어라지만, 그말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향이란 단어에 연상되는 이미지는 가슴 뻐근하게한다.) 가방에 세면도구들을 챙겨왔었는지, 아침엔 당당하게 자기 칫솔을 꺼내어 썼다.

그러고는 그 칫솔을 놓고갔다.

 

음, 이걸 어쩌나.

1초 생각하고,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냥 그대로 둔 것이 하얗다 상이 다음에 올 것을 대비하는 착한 마음이었다면 이런 곤란한 벌을 하늘이 주지 않았을까.

하룻밤을 다른 곳에서 자게 되었을때, 세면도구 챙길 것을 전수찬에게 부탁했더니, 이냥반이 자기칫솔, 규민칫솔은 다 잘 챙기고서는 내것이랍시고 하얗다 상의 칫솔을 가져왔다.

그걸로는 왠지 도저히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김에 이 안 닦고 먹고 자고 했다.

(그랬더니, 이게 늙어가는 징조인가, 지금 한쪽 잇몸이 마구 시리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세면도구를 제자리에 정리하던 중, 하얗다 상 칫솔을 들고 또다시 음, 이걸 어쩌나 1초간 생각하였다. 모조리 칫솔꽂이에 꽂아두었으면 한 번에 일이 끝날 것을, 칫솔꽂이까지 걸어가서 몇몇 칫솔은 꽂아두고 다시 돌아서서 쓰레기통까지 걸어가 하얗다 상 칫솔만 따로 버리는 수고를 했다. 어차피 이 집 안에선 필요없는 물건인 걸, 남의 칫솔로 수채구멍 청소하기도 그렇고 버리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고, 애초에 게으름뱅이 짓을 했으면 게으름뱅이 다운 마감을 할 것이지, 괜한 이중의 노동을 해가지고 하늘은 일을 한 번 더 꼬아 벌을 주셨다.

 

어젯밤 하얗다 상이 또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오늘 아침 일어나 그는 아껴두었던 나의 새 칫솔을 썼다.

아까와 뜯지도 못하고 있던 걸.. 무심하게 뜯어제껴져 한 쪽에 나뒹굴고 있는 포장, 공포 속에 떨며 마모되었을 여리딘 여린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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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라디오 광고

배용준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당신을 좋은 집에서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목소리 깔며 얘기하는 라디오 광고를 들을 때마다 웃어야하는 건지 비웃어야하는 건지 (결국 웃긴 웃는 것이군) 헛갈리던 것이 몇달째였는데, 또 헛갈리는 것이 하나 더 나왔다.

 

"장바구니 챙겨야지" "비닐포장을 줄이기 위해 장바구니를 준비하는 당신, 고맙습니다."

"건전지는 따로 버려야지" "환경을 생각해서 건전지는 따로 버리는 당신, 고맙습니다."

 

엇, 건전지, 따로 버리는 거던가?

이거 무수은, 무(또 뭐더라...)로 제작되어 이제부터는 따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던게 90년대 말이었는데, 그 사이 다시 수은건전지가 나오는 건가, 아니면 따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해놓고 알아보니 그러면 안되는 거여서 번복했었나..

사실, 건전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때마다 1초간 망설이긴 했었다, 그냥, 왠지.

만약 따로 버려야하는 것이라면 따로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할때처럼 왜 신문에 알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또 왜 건전지 수거함은 하늘에 별따기 마냥 보기 힘든 것인가.

나는, 모든 항목에서 점수를 받고, 다시한번, 자타가 공인하는 '지구지킴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딱 한 항목에서 날려버리고 이 탓을 누구한테 해야하는지, 어디부터 잘 못 된건지 찝찝한 기분으로 한참을 짚어보았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정신차리고 보니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97년말, 연세대학교 공대 도서관 건물 안의 한 장면.  도서관 내부 벽에 붙어있던 작은 의견란 앞 청바지와 누런 색 쎄무 자켓을 입고 긴 생머리를 하고 서있던 한 여자. 그 의견란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끄적끄적 그녀가 적고 있었던 것은, "공대 내 건전지 수거함을 만들어주세요."란 문장 아래, "건전지는 이제 무수은, 무(....기억 안난..)로 제작되어 분리수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가 펜을 내려놓자 마자 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온 그녀의 애인, 그것을 보고, 입끝을 귀에 걸며, "당신은 아네뜨 베닝같아"한다.(그 당시 무슨 영화에서 마이클 더글라스는 미국대통령으로 나오고 아네트 베닝은 환경운동가로 나와 환경에 대해 썰을 풀자 마이클 더글라스가 그 모습에 반하였다) 

 

아, 그 여자, 그 당시, 정말 아름다웠구나, 미친년 널 뛰듯 머리를 산발하고 있어도, 가끔은 쥐잡아먹은 듯 시뻘건 립스틱만 얼굴에 동동 띄웠어도, 다 헤진 청바지와 다 헤진 30년된 쎄무 자켓이 그럴싸하게 어울리며 너무도 아름다웠었구나, 이 생각을 한참 하고 자빠져있었다. 건전지 분리수거가 잘 안 알려진 문제의 책임은 저 멀리 집어던져놓고.

 

이제는 알겠다, 그 때 그녀가 정말 아름다웠었다는 걸. 아, 젊음이란, 지나고 나니 이렇게 가슴 끓듯 절절히 아름다운 것이로구나. 이제는 미친년 널 뛰는 머리를 하면, 그야말로 미친년 널을 뛰고있고, 쥐잡아먹은 시뻘건 립스틱을 발라볼라치면, 살짝 바르자마자 누가 그새 혹 봤을까 깜짝 놀라 허둥지둥 지우기 바쁘고, 헤진 청바지와 누렁 쎄무자켓은 버티기 자세같다. "그거 그렇게 버리면 오염원이야."라고 한 소리하면, '아네뜨 베닝'은 커녕, '저 아줌마 저 잔소리'표정이 돌아오고....

 

20대, 나에겐 다 지나가주었다는 것이 좋았어, 라고 시건방을 떨었더니, 이제와서 이렇게 그리울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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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무슨 비가 게릴라처럼 온다.

꿈에서 봤던 몽롱한 안개비를 기다렸는데.

그러면 우산도 없이 밖으로 나가, 꿈에서처럼 그냥 맞으며 걸어가려고 했는데.

옥상에는 내가 어제 널어놓은 이불 세개가 고스란히 비를 맞고 있을 것이다.

바람에 마구 흔들리며.

옥상에 이불 널어놓고 저집 여편네는 어디 갔냐고, 옆 건물 사람들이 한 마디할 이 여편네는 그냥 밖의 비만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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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를 봤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 그녀와 나는 어디론가를 자꾸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기때문에 그녀의 옆 얼굴만을 볼 수 있었다.

굉장한 이야기가 나와서 기억해두었다가 꼭 꿈을 깨고나면 적어두어야지, 했는데, 손톱만큼도 기억이 안 난다.

 

유영이를 만난 후 (꿈이 설정해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공원 같은 곳에 앉아있었는데, 주위의 빌딩 옥상에서 사람들이 5분 10분 간격으로 떨어졌다. 어머, 저기, 누가 떨어져. 했는데, 주위 사람들은 무반응이었다. 요즘은 원래 저렇게 사람들이 떨어져 자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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