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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교생일기 3

 

교생들은 매일 실습록을 작성해야 한다. 그 날 참관한 수업, 지도강화 내용, 하루 소감 및 반성 등의 란을 채워서 지도교사에게 제출하면 코멘트를 작성해서 돌려주신다. 일기장 검사랑 비슷하기도 하다. 꽤나 두꺼운 실습록인데 어느새 빈 칸이 얼마 남지 않았다. 4주 기간 중에 3주하고 절반을 보냈고 게다가 내일은 학년별 산행, 모레부터는 연휴이다. 사실상 수업을 하는 날은 딱 한 주 남았는데 그 한 주가 마지막 고비가 될 듯 하다.

 

팔자에 없는 교생전체대표 수업을 떠맡아서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떻게든 그 자리만은 피해보려 했는데 못 하겠다는 의사를 좀 더 강하게 표현을 했어야 하나보다. 졸업논문 초고 제출일이 대표수업 전전날인데, 오늘 사람들에게 나 졸업논문도 써야해서 정신없다고 했더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하냐고 한다. 대표수업 정할 때 졸업논문 얘길 했으면 당연히 대표수업을 면제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듣고 나니 좀 억울해졌다. 난 대표수업은 대표수업이고, 졸업논문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 얘기를 안 했던 것인데. 내가 지레 짐작으로 사람들을 또 못 믿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오늘은 1,2교시에 각각 특수교육교사의 시범수업과 사서교사의 시범수업을 참관했다. 특수교사를 보니 베리 생각이 문득 났다. 베리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해방촌 이사오고 나서 연락해봐야지 했는데 그렇게 두 달이 지나도록 연락 한번 안 해봤다. 특수교육에선 '통합교육'이 하나의 이슈인 것 같은데, 내 삶의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별 할 말이 없다.

 

특수교육에 비해 도서관에서 진행된 사서교사의 수업은 훨씬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일반 교실에 비해 도서관 공간은 전체적으로 산만한 분위기를 풍기긴 했다. 오늘 지켜본 수업은 "책 구조의 구성요소를 알아보고 문헌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라는 학습목표 하에 전개되었다. 올 초였나, 내 나이 스물 일곱이 되어서야 비로소 책 뒤에 있는 바코드 읽는 법을 염한테 배웠는데, 오늘 보니 아이들은 벌써 서지정보 읽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냥 왠지 부러웠다. 바코드 읽을 줄 안다고 해서 한 개인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가 바로 생기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말이다.부러우면 지는건데.

 

아이들을 하루종일 보고 있다보면 난 저 나이때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난 언제부터 나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했을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시점이 내 기억으론 중1때쯤부터가 아닌가싶다. 내 말투 내 행동 내 성격 내 인간관계등등에 대한 고민을 의식적으로 하기 시작한 시점이. 그럼 난 그 때부터 자의식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일까. 근데 이렇게 '나'에 대한 고민을 가능하게 한 출발점은 외부의 자극이었을까 아니면 내부로부터 시작된 변화였을까. 등등의 질문들.

 

나에게 교육학은 교육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주었고, 교육이 무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내가 사는 이유 그리고 내가 지금 중요시 여기는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이 되었다. 내가 꾸역꾸역 대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이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자극을 던져 주는 것이라면, 내가 지금 만나는 초등학교 3학년들의 눈높이에서는 교사로서 무슨 수업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이 고민을 놓치지 않는다면 대표수업을 준비하는 데에도 뭔가 아이디어가 계속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기주문을 걸어본다.

 

 

 

아자아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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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Soldier

 

영화 소개

한국에도 개봉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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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5

9. 내게 어제 오전은 스승의 날이었고 오후는 병역거부자의 날이었다. 오전엔 온 학교가 들뜬 기분으로 들썩였다. 2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더 퍼주지 못해 아쉽기만 한데 아이들은 떠나는 교생들에게 감동만빵의 편지와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 편지엔 자기를 잊지말고 기억해달라는 얘기가 유독 많았다.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서른 여섯 명의 눈과 귀가 내 한 몸에 집중되어 있을 때의 그 기분. 거꾸로 이 아이들에게도 내 존재가 기억에 남는다면 정말 고마운 일일 것 같다. 그 교생이 자기 얘기를 온전히 들어주려 노력했다고 기억해준다면 더 땡큐고.

 

8. 점심을 먹고 나선 교생 몇 명과 담임선생님과 탁구를 쳤다. 내기 탁구로 시작했던 것이었는데 교생들이 줄줄이 담임쌤한테 졌다. 음. 수다회가 있었던 시청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시간이 약간 떴다. ㅎㅅ쌤이랑 같이 간호대 교생쌤 짐을 기숙사로 날라주었다. 함춘회관을 지나 연건캠퍼스 안으론 처음 들어가보았다. 함춘관을 지나려니 작년 5.15 생각이 났다. 함춘관으로 걸어가며 통화를 하던 기억도 난다. 그 날 오전엔 비가 주룩 내리고 있었는데 어젠 날이 쨍쨍했다. 

 

7. 수다회에선 여러 발제가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건 돌봄노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전 CO들과 달리 요즘엔 '유약한' CO들이 많이 나오면서 오히려 돌봄노동을 더 요구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지적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의식적으로 남자들이 후원회장을 맡더라도 정작 CO 본인이 의지하는 사람은 '여성'일때 그녀들의 감정노동은 더욱 비가시화된다. 여기서 고민을 좀 더 밀어부친 발제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좀 어려웠다. 다음 달 되고 좀 한가해지면 책도 더 읽고 그래야겠다.

 

6. 내가 의존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후원회장은 누구에게 부탁하는게 나을까. 

 

5. 어제 뒤풀이를 마치고 돌아와 그대로 뻗었다. 12시간을 자고 일어났는데 뭔가 허전한 기분에 젖어있다가 다시 잠이 들어벼렸다.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싶은 생각은 들었는데 그 누군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갈수록 더 몸을 사리는 내 자신이 보인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4. 밀린 빨래와 청소를 끝내고 산책을 나갔다. 해방촌오거리에서 후암초등학교를 지나 용산도서관 쪽으로 걸었다. 처음 걸어본 길들이었다. 용산도서관 바로 위로  남산도서관이 보였고, 반대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니 202번 종점이 나왔다. 거기부턴 학교 다닐 때 매일 걸어다니던 길이다. 도서관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종강하면 산책삼아 도서관에 자주 왔다갔다 해야겠다.

 

3. 근처에 공원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머릿 속이 생각들로 가득 찼을 때 바깥으로 나가 이어폰 꽂고 거닐다가 또 벤치에 앉아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 그리웠다. 정원이 있는 집에 살아야겠다. 그럼 혼자 누워서 책을 읽으며 쉴 수 있을테니 말이다. 돈을 왕창 벌거나 아님 헤이스팅스로 돌아가거나.

 

2. 교생 시작 직전에 사놨던 스파게티 재료들을 가지고 저녁을 해먹었는데 별로 맛이 없다. 남은 면을 헤치우려고 다 부었다가 면이 너무 많아서 먹다가 남겼다. 내일 저녁에 다시 데워서 먹게 되겠지.근데 면이 불어 있으면..?뜨씨..

 

1. 졸업논문 제출일자가 다가온다. 어서 끝내야 할텐데, 내일부터 다시 빡센 일상이 시작된다. 꿈만 같은 이 기간이 어서 지나가버렸으면.

 

0. 이 블로그를 계속 쓸지 아님 다른 곳으로 옮겨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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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6

교생일기 2

 

아침에 눈을 뜨면 6시가 좀 넘어 있다. 해는 이미 떠서 사위가 밝다. 이번 주는 네 시간 이상을 자기가 힘들어서 아침에 눈을 뜨는 게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무리 전날 술을 먹고 뻗어도 6시가 되면 눈이 떠졌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대문을 나가 걸어내려가는 길에 들어서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 시야에 펼쳐진 남산 자락과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햇살 그리고 곧 보게될 우리반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면 기운이 불끈 솟는다.

 

잰걸음으로 종점약국을 지나 지하도를 건너면 남산3호터널입구 정류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143번 버스를 기다린다. 이 정류장은 명동 쪽으로 넘어가는 방향에만 있고, 길 건너 맞은편은 아예 인도가 없기에 따라서 정류장도 없다. 그래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한신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 거꾸로 좀 걸어 올라가야 한다.

 

터널 입구가 바로 앞에 보이는 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보면 동굴탐험 혹은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버스가 터널에 진입해 꽤 긴 시간을 달린 후 다시 바깥이 나오면 이제 옛 서울 성곽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단지 공간만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간도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는 듯 한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어쩌면 내가 지금 버스를 타고 가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설은 현대화되고 체벌하는 교사도 없어졌지만 여전히 학교는 갑갑하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왠지 모르게 내 행동을 스스로 규제하게 되고,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한다는 몸에 각인된 기억들이 올라온다.

 

퇴근할 때 다시 터널을 통과해 해방촌으로 돌아오면 다시 2010년 5월의 시간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또 그렇게 말처럼 되돌아오게 되진 않는 것 같다. 학창시절 내 몸의 모든 욕구를 짓누르며 책상 앞에 앉아 몇시간이고 공부하던 때처럼 지금은 새벽에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다음 날 수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 자 여러분들이 올해 저랑 같이 생활하면서 새로 알게 된 규칙을 얘기해봅시다. OO이가 일어나서 한번 말해봅시다.

학생1: 급식실에서 밥 먹을 때 음식을 하나도 남기면 안 되는 거요.

담임교사: 아 그렇죠. OO이는 이 규칙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느낌을 솔직하게 한번 말해봅시다.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학생1: 먹기 싫은 것도 있는데 그걸 다 일부러 먹어야 하니깐 짜증이 났어요.

담임교사: 아..짜증이 났다라..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표현이 좀 그렇네요. 짜증난다라. 선생님이 예전에도 얘기했죠? 선생님은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참 싫어합니다.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하게 되면 자기 마음도 덩달아 더 짜증이 나게 되는 것이지요. 음.. 다른 규칙에 대해서도 한번 물어봅시다. XX는 올해 저랑 같이 생활하게 되면서 새로 갖게된 규칙이 뭐가 있나요?

학생2: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을 때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담임교사: 아 그렇죠. 다른 반은 밥 먹으면서 얘기도 하고 그러는데 저희 반은 제가 대화를 나누지 못 하도록 했으니 좀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기분이 어땠나요?

학생2: 학교에 있으면서 친구랑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고 해서 밥 먹는 시간에라도 같이 친구랑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얘기를 못 하게 하시니깐 좀........

담임교사: 좀...다음에 표현이 뭡니까? 좀 어떻다는 거죠?

학생2: 좀... 그랬어요.

담임교사: 아 좀 그랬다라..? 음 뭔가 모호하네요? 다른 학생이 또 이 규칙에 대해서 어떻게 느꼈는지 얘기를 해볼까요?

학생3: 제가 저번에 밥 먹다가 좀 떠들었는데 선생님이 째려봐서 막 안에 있는 음식이 토나올 것 같앴어요.

 

우리 반 도덕 시간에 있었던 상황이다. 그 때 난 뒤에 앉아 참관 중이었는데 분위기가 정말 살벌했다. 그 때 메모했던 것과 지금 남아있는 기억으로 대충 재현을 해보았는데 그때의 긴박한 분위기가 잘 전달이 될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담임선생님의 의도와 달리 아이들은 정말 ‘솔직하게’ 규칙들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처음엔 당황한 듯 했고, 아이들의 ‘적나라한 표현’이 끝이 날 줄 모르자 화가 매우 나보였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갑자기 선생님이 애들을 쥐어패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매우 쫄아있었는데, 다행히 물리적인 폭력이 발생하진 않았다. 대신 선생님의 분노 섞인 훈계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솔직하게 표현해보래서 진짜 솔직하게 말했는데, 정작 선생님은 “제가 평소에도 여러분에게 때와 상황에 맞는 말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 있죠? 그런데 어떻게 여러분은 감히 선생님한테 짜증이 난다는 말을 할 수가 있고 또 째려본다라는 표현을 할 수가 있죠?”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오늘 이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배워갈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겼다.

 

이 날 도덕 수업의 학습목표는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알아봅시다”였다. 교육과정 안에서 법과 규칙은 이미 항상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전제가 되어 있었다. “법과 규칙을 왜 지켜야 하는 것인지” 혹은 “법과 규칙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라는 식의 접근은 애초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교사는 이미 정해져있는 수업목표 즉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도출하기 위해서 “법과 규칙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서부터 출발을 하였는데 아이들은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답답함과 짜증을 이야기해버렸다. 자신의 예측에서 벗어난 말을 하는 아이들에 대해 교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진 않았지만 여전히 그 학생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에 대해선 이해를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교사 혼자서 정한 뒤 아이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했던 “밥 먹을 때 조용히 하기,” “음식 하나도 남기지 말기” 규칙은 여전히 교사에게 중요한 가치였다. 규칙 혹은 약속을 구성원 모두의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정할 수도 있다는 메세지를 아이들은 자신들의 솔직한 감정을 통해 표현했지만 교사는 이 메세지를 캐치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이 날 교사는 아이들에게 ‘이유 없는 반항’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춘기는 이유 없는 반항의 시기라고도 하는데 지금 학생들을 보면 자기는 그런 말이 이해가 된다는 말을 했다. 동시에 하지만 교사 자신은 그래도 여러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이 ‘이유 없는 반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교사는 여전히 알지 못했고, 오히려 자기는 그런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촛불집회 참여자들은 좀 반성을 해야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모범생은 단지 학업성취가 높아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다. 모범생은 학업성적의 우수함보다도 교사가 원하는 답을 얘기해줄 수 있는 학생이다. 이미 정답을 가지고 있는 교사의 의중을 헤아려 교사가 좋아할 만한 말을 할 수 있는 눈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날 도덕 수업에서 선생님은 일부러 평소에 ‘행실이 안 좋은’ 학생들에게 먼저 질문을 해서 자신의 정했던 규칙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자 했지만 실패했고, 결국엔 나중에 지목한 모범생들로부터 “처음엔 규칙이 어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키다보니 익숙해졌고 왜 이 규칙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알게되었습니다”라는 원했던 답을 들을 수가 있었다.

 

담임 교사는 나와 다른 교생에게 “선생님의 교육관대로 자유롭게 아이들을 만나십시오”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이날 상황을 지켜본 나와 다른 교생은 더더욱 담임 교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 날 사건이 있고 교사는 “그럼 알겠습니다. 여러분이 이 규칙을 힘들어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오늘부턴 밥 먹을 때 소곤소곤 얘기를 해도 되도록 허락을 하겠습니다”라고 규칙을 개정(!)하였지만, 나와 다른 교생은 섣불리 같이 밥을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얘기를 걸 수가 없었다.

 

이 학교에 있는 아이들도 24대1의 경쟁률을 뚫고 ‘추첨’을 통해 입학한 ‘프라이드’를 가진 아이들이지만, 교사들 역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서울 전역에서 몰려온 ‘전문성과 인성’을 갖춘 교사들이다. 실제로 선생님들은 하루 8시간 노동시간 따윈 신경쓰지 않고 저녁 8시 9시까지 뭔가를 끊임없이 준비했고, 수업공개나 계발활동 프로그램 등 여러 모로 노력하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전문성’이 뛰어난 만큼 교사 자신의 ‘교육관’도 불가침의 영역이었고, 자기 교육관에 충실한 교육을 하면 할수록 그 교육관에 부합하지 않아서 교사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도 늘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 담임선생님이 설령 무서운 존재일지라도 ‘스승의 날’이 되면 아이들은 그동안 배운 바대로 교사에게 감사의 편지와 선물을 전달했고, 이에 교사는 감동을 받는다. “여러분들 이런 식으로 행동할 거면 그냥 앞으로 제가 교생이 되어서 다음 주부터 저학년으로 내려가고 대신 교생선생님이 여러분 담임을 하겠습니다. 스승의 날 편지 이런 것도 왜 씁니까? 그냥 저에겐 쓰지 마십시오”라고 말을 했는데 어쨌든 아이들은 담임 교사에게 감사의 표현을 담은 편지를 써주었고, 이에 감동을 받은 ‘엄한’ 교사는 눈물을 흘리는 동안 자신의 ‘엄한’ 교육방식에 대한 성찰은 못하게 된다. “죽도록 두드려 팬 교사였지만 그래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때 선생님처럼 날 사랑한 사람도 없었더라. 그 선생님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라는 식의 언설이나 “엄하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는 이렇게 재생산되고 공고화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내 교육관과 전혀 맞지 않는 선생님과 2주일을 보내면서도 그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는 연습을 했다는 거. 그 선생님이 왜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지, 지금 저 선생님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서 내 맘이 편해질 수 있었다. 어쨌든 난 우리 담임 선생님과 매일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많이 배우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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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2

내일 1교시 수업. 각자 한번씩은 해야하는 연구수업이라 다른 교생들도 와서 참관을 할 예정. 누적되는 피로와 이 긴장감 사이의 묘한 조화. 방금 혼자 시뮬레이션을 하며 녹음을 해보았다. 좀 더 자연스럽고 여유있게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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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0

교생일기 5월 10일

 

첫 수업을 한 날. 어제는 망원동에서 이사를 도와주고 집에 돌아오니 12시였다. 이번 주 교안들을 완벽히 짜놓은 것도 아니었는데, 한 시간만 더 놀다 가야지 한 시간만 더 더 하다가 결국은 그렇게 늦게 돌아왔다. 다음 날 출근하기가 어지간히도 싫었던 게다.

 

밤 늦게 부랴부랴 교안을 다시 제대로 검토해보고 머릿 속으로 수업 시뮬레이션을 했다. 오늘이 일일 담임을 하는 날이기도 해서 아침 조례 시간에 무슨 멋진 얘기를 해주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막상 가보니 일일 담임이 별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

 

40분 수업을 딱 시간 맞춰서 끝냈는데 기분이 뭔가 찝찝했다. 교안 그대로 기계적으로 대본 읽듯 진행한 수업이었다. 내가 앞에서 진행을 하는데 아이들이 반응이 없이 조용히 있어서 속으로 당황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 그 상황을 복기해보니 그때 내 감정은 불안하고 불편한 상태였던 것 같다. 아이들과 내가 소통이 되고 있는 것인지 같은 맥락 안에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불안했다. 불편했던 이유는 그 수업 장면이 내 교육관과 맞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시끌시끌하니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수업을 그려왔는데, 정작 내 수업은 결과적으론 하나의 잘 짜여진 주입식 수업이었다.

 

교안을 어떻게 꾸역꾸역 생산해낼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나도 모르게 교사용 지도서에 이미 정해져 있는 교육목표에 매몰되었던 것이다. 내가 짰던 교안 안에 학습목표 즉 하나의 정답이 이미 전제되어 있었고, 수업 중에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근거는 그 '정답'이 나왔는가의 여부였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정답'을 금방금방 잘 얘기를 해줬고, 덕분에 40분짜리 교안은 원래 계획대로 잘 실행이 되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어떤 학습이 일어났는가에 대해선 자신이 없어졌다.

 

'주장과 근거를 알 수 있다'라는 학습목표가 아이들의 삶에서 왜 중요한 것인지, 즉 내가 학생의 입장이라면 지금 '주장과 근거가 무언지'를 왜 배워야만 하는가에 대한 부분을 과연 제대로 다룬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정해져서 획일적으로 하달된 국가의 교육과정, 학습목표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니었나 합리화도 해보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나의 언어로 40분간의 활동내용을 재조직하고 아이들의 삶과 좀 더 연결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후회가 든다.

 

해당 차시의 학습목표가 이미 정해져있을 때, 학습자에게 그 주제가 왜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학습목표를 교수자로서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해보지 않을 때 '교사'는 어느 순간 '진리'라는 잣대로 아이들이 옳은지 그른지를 평가하게 되는 것 같다. 참 무서운 일이다. 5교시 과학시간, 한 아이가 실험에 집중을 안 하고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는 장난을 치고 있었을 때, 아이의 그 행동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대뜸 아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들어간 학급은 6학년 1반. 담임선생님의 성향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인다. 질서를 상당히 좋아하신다. 급식실에서 밥을 먹을 땐 옆 사람과 대화를 해선 안 되고, 밥을 싹싹 다 먹어서 교사에게 검사를 맡아야 나갈 수가 있으며, 체육대회 응원 중에 다른 교사나 학부모가 먹을 걸 줬다고 해서 담임 교사의 허락없이 먹으면 안 되고 등등. 첫날 난 그런 규칙도 모르고 아이들하고 친해져보겠다고 급식실에서 옆에 앉은 학생에게 계속 말을 걸었더랬다. 애들이 대꾸를 안 하길래 난 애들이 나한테 별 관심이 없는 건가라고 생각을 했었다. 푸핫.

 

담임 선생님 왈, 내가 수업 시간에 극존칭을 쓴다고 한다. 예컨대 "제가 생각하기에는"이라고 말하기 보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이라고 말 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시고, "자리에 앉으시고요"보단 "자리에 앉고요"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하신다. 나의 극존칭때문에 제3자에겐 교사로서의 전문성과 자신감이 왠지 부족해보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난 실제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에 더 조심스러운 것이고, 존댓말도 그래서 이젠 아예 입에 붙어버렸다.

 

공간 민들레에서 처음 아이들을 만나 그네들을 지칭할 때 자꾸 '학생'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그걸 의식하고 고쳐보려고 꽤나 애를 썼었다. 분명 '학생'이라는 표현 이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가 있는 것 같다. 보통 한국말에서 '학생'이 있으면 '교사'가 전제되고 그 순간 학생과 교사 사이에 위계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학생'이 아니라 '아이'니까 더 반말을 쓸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다른 계기들도 있었겠지만 난 민들레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최소한의 존중의 차원에서 존댓말을 하는 습관이 어느새 붙어버렸는데 이런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지금 학교에서 이해받긴 왠지 힘들 것 같고 적당히 타협을 보며 교생실습 한 달을 끝냈으면 한다. 그러려면 나의 적절한 '연기력'이 필요할 것 같다.

 

재미있는 건, 내가 수업시간에 교안을 다 못 외워서 잠깐 교사용 지도서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대해서 나중에 언급하시면서, 교사가 책을 이렇게 접은 상태로 들고 있는 모습은 학생들에게 너무 권위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에게 '극'존칭을 쓰면서 한편으론 책을 양손으로 접어들고 서있는 교사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가 너무나 궁금해진다.

 

사족1.

2주차를 맞으니 36명의 아이들이 한명 한명씩 좀 더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정말 아이들 한명 한명의 표정만 봐도 그 안의 우주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각자가 얼마나 다양한 개인사와 배경을 갖고 있을 것인가. 그런 아이들이 무려 36명씩이나 한 시공간 안에 모여 '교육'이라는 것을 받는다. 뭔가 불가능한 상황 같은데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매일 뭔가를 배워갈 것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잘 어울리지 못 하는 학생들 중엔 교생에게 먼저 다가와 친해지려는 아이도 있지만, 교생에게도 선뜻 못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해지고 내가 자꾸만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은마음이 들었다. 마치 내가 테레사 수녀가 된 양 말이다. 2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일대일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가만히 그 아이를 지켜보자니 자꾸 신경이 쓰인다. 슈퍼맨만큼의 에너지와 48시간의 하루, 그리고 유능한 상담능력을 갖고 싶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이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동정이 아니라 진실한 연결의 욕구인지에 대해선 아직 잘 모르겠다. 

 

사족2.

학교란 공간이 확실히 학생의 행동 하나하나를 효과적으로 잘 통제하는 것 같다. 걷는 방법에서부터 인사하는 방법, 신발을 갈아신는 곳, 밥 먹을 때 줄 서는 법 등등 모든 행동 패턴이 정해져있고 학생이 이를 따르지 않을때에는 처벌이 뒤따른다. 교사도 학생도 아닌 교생이란 어중간한 신분인데, 어느 새 나도 학생들처럼 늘 공손한 자세를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다. 학창시절 몸에 베인 기억이 학교란 공간에서 되살아난게 아닐까..

 

사족3.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에서 아규를 만났다. 왠지 모르게 무지 반가웠다. 사람이 그리운건가.

 

12시 전에 교안과 활동지, 프'레'젠테이션을 다 마무리 하고 잠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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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금요일. 자율휴업일. 내일은 토요휴업일, 흔히 말하는 놀토. 모레는 일요일.

 

서울교대에서 학부를 고대 국어교육과에서 석박사를 다 마치고 대학강의를 나가다가 교사를 하셨다는 내 지도선생님. 수업시간에 눈썹이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있을 때 안타깝다. 아이들과 함께 교실 뒤에 앉아서 수업을 듣다보면 예전 학생 시절 기억도 나고. 교사에 대한 절대 복종이라는 몸의 기억이 아직도 깨끗이 지워진 것이 아닌걸까.

 

읽기 수업으로 수업 세번, 체육 수업으로 한번을 준비하기로 했다. 교안을 얼른 짜서 올려야 할텐데. 덤으로 생긴 하루 휴일에 집중도 안 되고 몸은 노곤하기만 하다. 졸업논문도 얼른 마쳤으면 하는데, 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에효.

 

계절학기 수업을 신청했다. 체육수업은 아침에 일어나질 못해서 신청 못했고, 2학점짜리 교양 수업 하나를 넣었다. 50명짜리 강의이다. 그래도 100명 200명 강의보단 낫겠지. 화목 1시부터 5시. 방학 때의 학교라니. 옛날 열린교실 하던 때의 기억들이 날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언어교육원과 수영장을 다니던 기억도 난다. 땡볕 속, 한적한 학교의 모습. 이것도 길어야 두달이면 끝이 나겠지.

 

병역거부자의 수감기록을 보면 일상에 찌들어있는 내 자신이 보이면서, 이 정도 쯤이야 거뜬히 이겨내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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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수업을 통제해야한다는 무의식과 그러면 안된다는 압박감 속에서 교안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 섣불리 질문을 던졌다가 어떠한 방향으로 튈지 모르고, 또 그럴 때 애초의 학습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불안감. 그래서 더 예측이 가능한 활동들 위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재미없는 교사 중심의 수업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좌절감. '좋은 수업'이란 무엇일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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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의 집속탄 생산에 반대하는 피스몹

 

4월 14일, 종로 한화 본사 건물 앞, 집속탄 생산 반대 피스몹 영상.

영상편집 혜란

무기제로팀 wzer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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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k Satie - Gnossienne No.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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