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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가 보면 신경질낼만한 데카르트정리

1.데카르트의 방법론과 과학철학

 

데카르트는 올바른 판단능력인 이성을 모두가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당시의 학문적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았지만 그럼에도 회의론으로 빠지지 않은 것은 이러한 보편적 인식능력으로서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학문적 위기상황을 겪고 있는 당시 상황을 이성에 대한 결함, 즉 이성은 진리를 담보해주는 기원적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사용에 대한 방법적 결함으로 보았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이 중요한게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에게는 방법론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지켜야 하는 규칙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의 방법론적 규칙을 네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1. 명증하게 참이라고 인식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2. 검토할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각각의 대상을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3.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갈 것. 단순한 인식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인식

4.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정도로 완벽하게 열거하고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데카르트의 방법이 너무추상적이라 실제로 구체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진리 획득과정은 철저한 시행착오의 과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데카르트가 스스로 지적했듯이 위의 규칙들에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하는 것은 실질적 탐구활동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방법론을 통해 형식적 추론 규칙 때문에 초래될 위험성을 피하고자 했다. 이것은 삼단논법에 대한 그의 비판을 살펴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비판의 핵심은 삼단논법이 학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삼단논법의 본래적 기능은 이미 획득된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도구이다. 문제는 삼단논법을 미지의 진리에 대한 발견의 도구로 보고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대전제를 이미 주어진 것으로 가정하는 삼단논법은 새로운 진리 즉, 대전제를 발견하는 데 있어서는 무력하다.

 

데카르트는 당시 현존하는 학문들 중 기하학과 대수학만을 신뢰했다. 그리고 어떤 지식체계가 성립하려면 모든 학문이 수학적 형태를 띠어야 하며 나아가 수학적 지식만큼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수학을 성립시키는 방법론이 모든 인식대상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학의 영역밖에 있는 대상들에도 수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수학에서만큼 확실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확신은 어떻게 정당화 될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물음을 제기한다. 인식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식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데카르트는 우리의 인식조건들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물음에 답한다. 여기서 분석의 출발점은 수학적 지식과는 다른 기원에서 유래한 지식의 획득과정이다. 수학과는 다른 영역에 속하는 지식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 지식은 어떻게 획득가능한가? 그 조건은 크게 두 가지이다. 일단 물질적 대상이 주어져야 한다. 두 번째로 인식주체인 인간의 인식능력이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인간을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진 동물로 간주하며 우리의 인식능력을 각각의 기능에 따라 감각 상상력 기억 이성으로 나눈다.

여기서 유의한 것은 본래적 인식능력을 지니는 것은 이성이 유일하다. 나머지 감각 상상력 기억은 이성의 인식활동을 위한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식의 대상이 물질적 대상인 경우 이성은 이러한 보조수단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대상이 비물질적 대상일 경우 이성은 혼자 활동해야 한다.

 

이제 데카르트가 어떻게 수학과 다른 영역에서도 수학만큼 확실한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수학을 자연과학에 적용하는데 방해물이 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때문이라고 보았다. 그 견해에 의하면 사물들은 종류마다 성질이 다르며 유적으로 다른 대상들은 서로 다른 방법에 따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적 사고의 혁명성은 이런 생각을 뒤집는데서 출발한다. 데카르트의 관점에 의하면 모든 학문들이 탐구하는 것은 공통적으로 대상들의 순서와 척도이다. 수학과 다른 학문간의 차이는 단순하냐 복잡하냐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닫. 즉 모든 학문은 하나이다. 이러한 학문간의 통일성은 방법론적 통일성에, 그리고 이 방법론적 통일성은 정신의 단일성에 기초한다.

규칙1: 인식대상이 아무리 달라지더라도 그것을 인식하는 정신의 방법적 사유는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자연과학을 확실한 방법으로 세우기 위한 데카르트의 첫걸음-

◎1성질과 2성질의 구분

1성질-수학적으로 해석되는 양적성질-대상에 내재하는 객관적 성질

2성질-대상이 신체에 작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감각적 성질-인간의 표상에만 있는 주관적 성질

◎새로운 지각(표상)이론의 고안

이런 구분에 바탕을 둔 데카르트의 지각이론은 단순히 지각과정을 설명하는데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대상이 제1성질만을 지닌다고 전제할 때 지각의 개념을 어찌 설정할지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뭣보다 중요한 것은 데카르트가 제2성질에 대한 지각을 인간의 신체적 조건들과 물리적 대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1성질과 2성질의 구분은 물리적 대상들을 탐구하는데 있어 단순히 1성질만 고려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도는 단지 제1성질만이 대상이 갖는 고유한 성질임을 역설하려는데 있다. 물리적 대상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정의를 통해 데카르트는 자연과학적 증명이 수학적 증명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즉 자연과학과 수학은 모두 양적인 대상에 대한 탐구이므로 양자는 같은 종류의 학문이라는 것이다.

 

2. 데카르트 형이상학-이원론의 의미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17세기 등장한 새로운 과학의 탐구계획을 정당화하려는 것이었다. 이 정당화는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한다.

① 새로운 과학을 규정하는 범주들의 정의, 새로운 과학의 인식론적 전제와 존재론적 토대 마련

②새로운 과학과 당대의 종교적 믿음 사이의 갈등을 제거하고 양자의 화해와 일치를 모색

 

이런 동기에서 시작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세 가지 존재증명을 내용으로 한다.

1. 자아(영혼)의 존재증명

2. 영혼을 전제로 한 신의 존재증명

3. 신을 전제로 한 자연적 사물의 존재증명

 

이 세가지 존재증명은 영혼, 신, 자연 사물의 본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자아= 물질적 요소가 없는 사유로 정의

사물= 심리적 요소가 없는 순수한 물질, 물질의 본성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의미로 삼차 원적 연장으로 정의

신= 영혼과 자연세계의 존재론적 기원인 동시에 정신 안에 있는 특정한 관념의 원인으로 정의되는데, 그것은 가장 완전한 존재자이자 무한한 권능의 소유자를 표상하는 관념

 

이러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성찰의 내용은 ‘제1철학에 대한 성찰: 신의 존재 그리고 인간영혼과 신체의 구분에 대한 증명’으로 요약된다.

 

신의 존재 증명은 학문적 진리의 항구적 견고성을 보증하는 궁극적 근거에 대한 발견과정이다. 수학을 모델로 하는 데카르트적 의미의 이론적 인식은 명석,판명하게 직관되는 전제와 그에 따른 추론과 연역에 의해서 성립한다. 학문적 진리는 어떤 증명을 통해 그 참이 확인된 논증적 진리이므로 언제나 어떤 연역의 결론이다. 그러나 명증한 것은 왜 참인가?등등

 

데카르트가 신의존재를 증명하게 된 이유는 명증한 것을 참된 것으로 판단하는 정신의 본성과 그 존재론적 기원을 검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석판명한 것은 왜 참인가? 정신이 참되다고 확신하는 것은 왜 참인가? 연역의 확실성은 전제와 추론과정의 명증성을 보존하는 기억에 의존한다면, 그 기억속의 명증성은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하나의 확실한 연역적 증명의 결론이 다른 증명의 전제나 원리로 사용되기 위해 자신의 전제와 증명의 문맥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면 그렇게 자신의 근거로부터 떨어져나온 결론은 매번 재검토되어야 하는가? 한 번 성취된 명증성은 나중에 기억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데카르트가 자아와 사물의 존재증명을 한 것은 궁극적으로 정신과 신체를 포함하는 물질이 서로 다른 종류임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중세 스콜라 자연학과 17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자연과학간의 갈등관계에 비추어 볼 때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스콜라 자연학: 자연적 사물은 모두가 실체이며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실체적 운동의 원리는 식물과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에서 찾는다.

하지만 17세기 자연과학에서는 자연적 사물은 수학적 언어로 번역되는 양적 성질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의 원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으로 표상된다. -기계론적 운동관

데카르트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기계적 운동이며 이 운동은 수학적 법칙을 따른다고 보았다.

결국 데카르트가 영혼과 물체사이의 실체적 구분을 증명하고자 한 것은 기계론적 자연관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연장이 없음으로 파괴될 수도 없고 분할될 수도 없는 영혼의 불멸성을 보장함으로써 종교와 과학의 화해의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3. 데카르트적 회의의 의미

데카르트 형이상학에서 회의는 형이상학적 성찰의 입구이자 형이상학적 체계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이다. 또한 이 회의를 통해서 중세적 세계관은 치명적으로 붕괴되었다.

 

회의가 형이상학의 출발점인 이유

1. 상식과 이론 사이의 괴리 때문에(예를 들자면 중세때는 천동설이 대세였죠)

근대 과학의 세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감각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이성사용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더욱이 신이나 영혼 등의 형이상학적 대상은 감각적으로 표상할수록 애매하고 혼잡해진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었다. 초감성적 대상을 주제로 한 형이상학적 성찰은 그 어떤 경우보다도 감각으로부터 해방된 정신을 요구한다. 형이상학적 성찰이 회의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을 감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 이를 통해 이성을 중세적 상식과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견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 여기에 회의의 최대 유용성이 있다.

 

2. 회의의 과정이 자세하고 엄밀할수록 형이상학적 증명도 상세하고 엄격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논증은 회의의 근거에 대한 반대논증이며 형이상학적 사유의 여정은 회의가 열어놓은 길의 재정복이다.

 

이러한 데카르트의 회의를 방법적 회의라고 하거나 또는 과장법적 회의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최소한의 근거로 최대범위의 부정으로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4. 코기토와 신

체계적 회의를 통해 데카르트는 회의할 수 없는 진리로 나아간다. 그것이 바로 코기토, 즉 자아가 존재한다는 진리이다. 데카르트는 이 회의 불가능성을 확실성 혹은 명증성으로 표현한다. 명석판명⇔애매혼잡

 

새로운 의문

한번 명증하다고 하면 언제나 명증한 것인가? 왜냐하면 명증성은 대상이나 명제 자체가 갖는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정신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태를 맞이하고 새로운 사태로 나아가려고 하므로 하나의 사태에 집중할 수 없다. 정신의 이러한 시간적 한계 때문에 명증성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해야할 필요가 생긴다.

만약 이성이 한 번 명증한 것으로 파악한 것이 지속적으로 참됨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이성은 매번 그 명증성을 다시 확인해야 하는가? 데카르트는 정신의 존재론적 기원인 신의 존재와 그의 선한 본성을 논증함으로써 이 물음을 해결한다. -명증성의 항구적 타당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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