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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니츠가 보면 욕할만한 라이프니츠 정리

라이프니츠

 

1.방법론과 인식론

라이프니츠의 사고는 분석적 논리학과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이상학을 두 축으로 한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적 학문체계에 대한 불신이 근대의 지적경향을 이룬 가운데, 많은 이들은 범주론과 삼단논법을 축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적 논리학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졌다.

근대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학문적 방법으로는 세계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논리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라이프니츠는 언어가 알파벳의 조합으로 구성되듯 인간의 모든 사고도 기계적인 언어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라이프니츠가 사용한 방법은 수학적 공리적 방법이다. 그는 언어를 단순개념과 공리적이고 분석적 체계로 재구성하고 기호학을 창안하며 컴퓨터의 시초가 되는 계산기도 발명했다. 또한 새로운 진리의 파악을 위해 조합법을 시도했다.

이러한 논리학적 시도들과 더불어 라이프니츠는 모든 사고와 언어를 하나의 통합된 원리에 따라 이해하고자 하는 보편언어학의 창안을 모색하였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당대의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모든 자연활동이 기계적 과정으로 환원된다는 신념아래 이루어진 것이다. 갈릴레이, 케플러, 뉴튼 등 근대과학자들의 기본방법론이 수학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언어로서의 수학을 라이프니츠도 채택한 것이다. 또한 보편언어에 대한 이념은 중세 이후 전개된 언어사적 상황과 관련깊다. 라틴어 중심의 중세언어체계가 붕괴되면서 언어가 민족언어로 분화되자 이전의 보편언어체계로 되돌아 가려는 움직임이 전개되었고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각 민족언어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인류가 공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언어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구축하려 하였다.

 

논리학에 있어 라이프니츠의 주된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극복 혹은 대체하는 것이었지만, 존재론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근대의 형이상학을 아리스토텔레스적 수준에서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일반존재론적 문제에서부터 특수형이상학적 주제들을 두루 포괄하며, 목적론을 핵심사상으로 계승한다. 당시의 대부분 학자들은 목적론을 과학적 사고에서 추방했지만 라이프니츠는 ‘이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는 충족이유율로 목적론을 수용한다. 그밖에 라이프니츠는 자연에는 근본적으로 비약이 없다는 연속성의 원리와 자연의 단순성 및 풍요성 이론 그리고 창조의 완전성에 관한 가설들을 존재론적, 자연철학적 전제로 채택한다.

 

본유관념과 인식의 원리

라이프니츠는 인식의 근거와 방법에 대해 합리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인간의 인식의 원리는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능력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이프니츠도 본유관념, 선험적 원리를 인정한다.

 

경험론에서 특히 로크는 인간의 정신을 백지상태tabula rasa라고 생각하고, 어떤 종류의 타고난 관념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인식을 감관(感官)을 통한 경험과 관념연합, 추상 등의 관습적이고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경험론적 관점에 맞서 인간 정신은 일정한 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원리가 바로 감각적 경험들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으로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선험적 원리인데, 이는 모든 사고의 전제가 되는 모순율과 충족이유율 그리고 연속성의 원리를 비롯한 다양한 존재론적 원칙들로 이루어진다.

라이프니츠는 이에 대한 근거로 동물과 인간의 의식차이를 들어 뒷받침한다. 그에 의하면 동물은 단지 경험과 기억 그리고 단순한 관념연합과 추상행위를 하는 정도의 의식을 갖는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별 차이가 없을뿐더러 동물도 과학을 알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동물과 인간의 의식수준 및 그에 따른 경험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의식활동의 수준을 지칭하는 지각의 명증성 개념으로 밝힌다. 명증성은 명석과 판명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명석은 어떤 대상을 그것의 외연적 징표에 근거하여 다른 대상과 구별할 수 있는 수준의 의식상태를, 판명은 대상을 그것이 그것이게 하는 원리적 근거에서 인식할 수 있는 의식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명석은 경험을 단순히 수용함으로써 주어지는 인식을, 판명은 인과적 근거지움 또는 정당화라는 논증적 행위에 의해 주어지는 인식의 질을 가르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단순경험적, 관념연합적 인식과 그가 주장한느 과학적 인식의 차이는 명석과 판명이라는 의식활동의 차이에 기인한다. 의식활동이 판명하지 못한 동물은 논증적 과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라이프니츠는 과학과 같은 보편타당한 인식은 경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소박한 경험적, 심리적 방식에 의해서는 주어질 수 없으며, 선험적 원리에 따라 논증적으로 경험을 구성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의식, 즉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데카르트 반박

데카르트는 수학적 인식도 공간적 직관에 의존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인식에 있어 경험의 비본질성과 선험적 사고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예를 들자면 공간지각을 경험할 수 없는 맹인도 논리적 사유에 의해 공간기하학을 배울수 있다. 경험론자들이 주장하는 감각자료의 비교추상도 원리적 전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인데, 이는 현대의 방법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관찰의 이론의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논지는 경험론자들이 주장하는 실험과 관찰 검증이라는 경험적 통찰이 선험적 원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식으로 곡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진리의 종류

라이프니츠가 보기에 진리에는 이성의 진리와 사실의 진리가 있다.

이성의 진리-형이상학적 명제=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 는 충족이유율을 비롯한 존재일반에 관한 원리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명제들

-논리학과 수학의 명제=모순율과 공리적 구성을 통해 성립하는 명제들

사실의 진리-경험적, 역사적으로 얻어지는 지식들, 즉 반대가정이 가능한 것들이므로 우연 적 명제라 칭한다.

이성의 진리는 오늘날로 치면 종합명제, 사실의 진리는 분석명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모든 사실의 진리가 궁극적으로는 필연적인 이성의 진리로 환원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충족이유율에 따라 모든 현실적 사실들이 사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근본적으로 우연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사실은 필연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철저하게 합리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인간이 선천적인 지적 한계로 논증적이며 경험적 방식으로 단편적으로 진리에 접근할 수 밖에 없지만 세계의 모든 존재자와 사건은 합리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 라이프니츠의 생각이다.

 

충족이유율과 경험과학

이성의 진리=모순율에 근거=논리학, 수학등의 순수과학 성립

 

한계-관념적 구성에 근거한 가능성의 과학/실재하는 물리적 존재자인 자연을 인식하는데 있어 필수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음. 우리 삶의 사실은 논리적 가능성을 넘어 존재자의 사실적 근거가 되는 충족이유율에 따라 인식되어야 함=충족이유율은 주어진 현상을 원인에 따라 설명하는 자연과학의 인과율

 

사실의 진리=충족이유율에 근거=경험과학

 

라이프니츠의 경험과학에 대한 인과율적 요구는 근본적으로 양상논리적 사고(model logic)에 근거-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논리적으로 수많은 세계가 성립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특정한 하나의 세계만이 물리적 실재로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며 왜 하필 이 세계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자연과학의 과제이다.

라이프니츠는 최적의 원리, 조화의 원리, 단순성의 원리등을 인과율적 인식의 보편적 척도로 규정한다. 예를 들자면 공간의 형태에 관한 다양한 기하학이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논리적 모순이 없다면 모두가 진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체계들중 물리적 사실과 부합하는가의 문제는 과학자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의 기준은 인식의 경제성, 단순성, 미적통일성등이 통용된다.

 

라이프니츠가 충족이유율의 기준으로 규정하는 최적, 조화, 단순성의 원리들은 ‘생산적 자연의 건축술적 원리’라는 표현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통용되어온 자연철학적 가설들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근대과학의 실증적 전개과정에서 경험론자들이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근본요인으로 배격한 것이다.

◎베이컨은 전통의 모든 목적론적 관점에서 유래하는 개념들-목적인-을 과학적 사고에서 배제하고 오직 현상의 인과적 진행방식을 나타내는 운동인과적 개념-작용인-만을 과학적 인식의 목표로 규정했다.

◎뉴튼 역시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이 보여주듯이 형이상학적 가설의 배격을 물리학적 탐구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와 반대로 라이프니츠는 경험과학은 선험적 원리에 근거해야 하며,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합목적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기계론과 실증주의적 방법론의 한계는 여전하다는 것으로 라이프니츠의 유효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3. 존재론과 자연철학

 

모나드 형이상학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실체관을 기본관점으로 하고, 거기다 자신의 논리주의적 합리론적인 방법론에 따라 형이상학을 재창출함으로써 근대적 차원의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시한다. 이것은 모나드론에서 실체개념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개진되어 있다.

라이프니츠는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 즉 실체를 모나드라 칭하는데 이는 그리스어중 하나 혹은 단위를 의미하는 monas에서 유래한 말이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모나드는 단순함과 분할 불가능함을 기본특성으로 한다.

모나드가 단순해야 하는 이유는 물리적 성질이 아니라 정신적 활동성에 있다. 라이프니츠는 이 정신적인 활동성을 표상 또는 지각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의식적인 정신활동뿐만 아니라 우리가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라 부르는 수준의 활동까지 포괄하는 의식활동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모나드는 정신적 실재이다.

원자론과의 차이=원자는 무한히 작은 물리적 원소

→원자론으로 자연을 설명할 경우 제논과 같은 패러독스에 봉착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의 활동=의식=지각

→존재론적 의미; 다른존재와 관계하는 동시에 자신을 세계내적 존재로 가져오는 실체의 역동적인 자기 정립적 행위

→인식론적 의미: 자신의 고유한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의미

 

즉, 모나드는 무엇을 구성하는 원자적 요소가 아니라 인식론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역동적인 정신적 존재자이다. 또한 모나드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존재자이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모나드론의 의의

①정신적 자족성=모나드는 존재근거를 스스로 가진다. →다른 존재자로부터의 영향이나 도 움을 필요로 하지 않음/예를 들어 모나드들은 상호인과적 관계를 맺거나 정보교환을 위한 어떤 행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나드는 창이 없다’=예정조화설

②지향성, 합목적성

모나드=전체(무한성)와 완전성을 지향한다. 여기서 완전성이란 시공간적 무한성, 인식적, 도덕적 가치를 모두 포괄하는 요어로 사용된다. 즉 모나드는 진선미의 이데아이거 나 혹은 순수형상적인 최고의 가치를 지향하며 변화발전하는 존재자이다.

 

=현실적으로 경험되는 존재자의 위상? 모나드의 실천, 즉 지각은 그것이 얼마나 명료하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모든 모나드는 지각활동에서 완전성을 지향하지만 지각활동은 선천적으로 부여된 한계안에서 이루어지므로 그들이 도달하는 명료성은 제한됨. 각 모나드들이 도달하는 명료성의 정도에 따라 세계에 대한 모나드의 존재방식과 인식내용이 구분된다.

③모나드의 신체성=정신의 현상형태로 신체를 수반

모나드는 인간의 의식에 명료한만큼 정신으로 나타나고

의식에 불명료한만큼 신체에 종속된 형태로 현상한다.

 

인간정신=논리적, 인과적 사고로 과학을 창출하고 반성을 통해 최고존재자에 대한 사유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식=통각apperception↔지각perception

통각이 바로 이성이며 인간의식도 완전하지는 못한 것이다.

 

라이프니츠 논의에서 주목할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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