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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7월 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홍콩 도심에서는 시민 50여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당국이 국가안전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한 게 발단이었다. 이달 말 개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홍콩 기본법 23조(국가안전법)는 국가전복이나 반란선동 금지, 국가안전위험조직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었다. 법을 확대 적용할 경우 인권 침해와 종교 탄압의 빌미로 악용될 수 있다는 반발을 사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홍콩 당국은 결국 23조 개정작업을 취소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홍콩의 시위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민주화된 홍콩’의 저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지난 9월 26일 ‘인권: 홍콩과 중국의 함수’를 주제로 강연한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가 보기에 홍콩에서 인권·민주·법치·자유는 추상적으로는 중요시되지만 현실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는 측면이 강하다. “많은 경우 중국반대가 곧 인권이요 민주요 법치로 통용되고 식민성을 근본에서 성찰하거나 ‘홍콩식’ 인권담론을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 교수가 내리는 결론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은 150년 넘는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홍콩은 식민지였고 ‘중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홍콩인들은 중국본토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건너온 난민들에서 기원한다는 독특한 역사도 중요한 변수다. “홍콩의 인권문제는 결국 중국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인권을 지킬 것인지가 문제가 됐으며 인권 문제는 민주·자유·법치와 혼용되면서 홍콩이 중국의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할 ‘홍콩적’ 가치로 강조됐다.” 홍콩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홍콩 내부의 식민성을 극복하는 과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게다가 주권, 생존권, 발전권이 식민지 시기 오히려 보장되었고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즉 조국으로 돌아가면서 오히려 인권이 나빠졌다는 것도 인권담론을 왜곡시킨다. 중국에서는 “타국이 인권을 위협한다”고 강변하지만 홍콩에서는 ‘조국’이 인권을 옥죄는 게 핵심 문제다. 즉 홍콩이 중국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하는 홍콩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홍콩 시민단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현안도 중국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영국 식민지 시기에는 민주화가 잘 이뤄졌나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그는 “집회시위나 민주선거 같은 기본적 자유권조차 90년대 이전까지는 전혀 없었고 중국반환을 앞두고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잠깐 나타난 현상”이라며 “그런 자유조차 중국반환 이후 위협받으니까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식 가치? 이와 관련해 밥 베이티(Bob Beatty)라는 학자가 2003년 쓴 책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홍콩정치인 89명 가운데 대다수는 싱가포르에서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홍콩식 가치’ 혹은 ‘홍콩 나름의 특색’이 있다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홍콩의 독특한 가치란 다름 아닌 “정부의 최소한의 간섭과 이로 인한 경제적 자유, 법치 존중, 서구와 중국문화 그리고 홍콩식의 효율성이 혼합돼 있다는 점, 점진적인 민주화, 언론과 발언의 자유” 등이다. 장 교수는 “그게 무슨 ‘홍콩식’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들을 강박관념처럼 강변한다는 사실”이라며 “결국 ‘홍콩식’이라는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둔 인권담론”이라고 꼬집었다. ‘홍콩식’이란 다름아닌 “중국보다 경제자유가 많고 중국보다 법치를 존중하며 중국보다 민주화됐고…”라는 것이다.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도 홍콩에서 나타나는 인권논의를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홍콩에서 강조되는 인권, 법치, 자유 등의 가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한계는 이들이 홍콩인에게 내재화된 가치라기 보다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목적이란 특히 경제적 번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권, 자유, 법치란 독자적인 가치로 인정되기 보다는 홍콩의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식으로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홍콩만 가진 특수한 한계로 볼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금융과 무역 허브로 번성했던 홍콩은 점차 경제적으로는 상하이에 밀리고 정치적으로는 베이징에 종속된다. 표준중국어인 북경어를 쓰는 홍콩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애초 뿌리가 얕았던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조짐을 보인다. 방청객이었던 조효제 교수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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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29일 오후 16시 5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이런 겉모습과 달리 말레이시아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이슬람화가 아니라 개발 또 개발”이다. 홍석준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문화인류학 전공)는 “개발독재와 그에 따른 인권쟁점이 말레이시아의 주요모순”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개발독재를 추구하는 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말레이시아 인권구도를 설명한 뒤 대항세력을 속칭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 시민사회운동으로 나눴다. 특히 이슬람의 견지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야당 세력 빠스(PAS)나 이슬람을 표방하는 시민단체들은 이슬람의 규범과 원칙에 부합하는 인권개념을 강조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서구의 인권개념과 원리는 기본적으로 개인에 기초한 인간 개념에서 출발한다. 세계인권선언 등에 담긴 인간은 권리의 유일한 담지자로서 개인이다. 하지만 빠스 등은 이슬람이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통해 평화를 얻는다는 원칙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동등하게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는 점을 인권에 관한 기본강령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인간은 집단적, 사회적 존재이다. 인권 개념은 집단적 가치 혹은 무슬림 공동체적 규범과 가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마하티르는 개발지상주의자” 홍 교수는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총리에 대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통념과 상반되는 주장을 폈다. 무엇보다도 “마하티르가 이슬람을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이슬람을 이용해먹었다”는게 홍 교수 생각이다. 그는 “마하티르는 경제발전을 가장 중시하며 그걸 위해서라면 서구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IMF와 미국·영국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왜 미국이 마하티르를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처럼 대하지 않았겠느냐”며 “교묘한 외교술”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마하티르가 박정희를 본받자는 얘길 해서 한국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마하티르의 본심은 중국의 경제성장을 본받자는 것인데 말레이시아 다수종족인 말레이인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화인(華人)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것을 고려해서 박정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독재는 사회통제를 수반한다. 말레이시아 연방헌법은 일련의 인권제한에 관한 법률과 조례들은 국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정부 당국이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다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내치안법이다. 이것은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는 법률을 말하는 것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경찰법, 공무원들의 활동을 제한하는 공무원비밀법, 인쇄출판의 자유를 구속하는 인쇄출판법, 대학 구성원들의 활동을 감시하는 대학법, 각종 비정구기구의 활동을 제한하는 사회법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 법이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고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시민단체들은 기본권을 제약하는 법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담론을 활용하거나 잠재적인 테러 위협에 직면한 상태에서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경제개발을 시민의 정치적, 시민적 권리보다 상위에 두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아시아적 가치’는 유신정권이 강조했던 ‘한국적 민주주의’처럼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고 국가 권력을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참신한 시도, 아쉬운 뒷심 여성할례, 명예살인, 일부다처제, 가부장제, 차도르, 빈곤, 테러리즘… 한국인들이 이슬람 사회의 인권을 바라보는 눈은 썩 곱지 않은게 사실이다. ‘낯설다’는 느낌은 ‘다르다’가 아니라 ‘틀리다’로 다가오고 텔레비전과 신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사고 기사’로 이슬람을 색칠한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이슬람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의 눈이 아니라 ‘서구’의 눈이라는 것이다. ‘서구’의 눈이 지극히 편향돼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 이슬람의 눈으로 이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시민사회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미하기만 하다. 더구나 그런 노력조차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같은 ‘중동’ 즉 ‘아랍세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 12일 세미나 첫시간을 홍 교수가 “이슬람의 관점에서 말레이시아의 인권을 다루겠다”고 ‘선언’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슬람의 관점에서 인권문제를 접근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슬람보다도 더 낯선 동남아시아를 다룬다는 것도 쉽게 접하기 힘든 기회였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온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서구인권개념이 자유권에 치우쳐 있다고 얘길 시작했는데 본론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유권을 탄압하는 내용을 집중 거론”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결국 서구인권기준으로 말레이시아 인권현황을 고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홍 교수에겐 더 뼈아픈 비평이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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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5일 오후 17시 41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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