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은 원래 그런 거다

게으른 블로거 행인이 포스팅 열폭을 하게 된 사정은 다음 기사 때문이다.


교수 시국선언 비난 나선 '교수' 128명 - 알고보니 뉴라이트 계열 단체의 '세몰이'


민주주의라는 거, 이거 원래 좀 시끄러운 거다. 한 쪽에서 찬성이 나오면 다른 한 쪽에선 반대가 나오고, 저쪽에서 저리로 가자고 하면 이쪽에서는 이리로 가자고 하면서 갑론을박, 때로는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따라서, 시국선언이 무슨 트랜드인 것처럼 번지고 있는 이 즈음에 안티들이라고 해서 가만 입닥치고 앉아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주제가 민주주의라고 할 때에는, 그들이 '뉴라이트' 건 '올드라이트' 건 간에 지들 입가지고 지들이 떠들겠다는데 그걸 뭐라고 할 이유도 없다.


전제는 이렇다고 할지라도, 시국선언에 태클 걸고 나온 분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개인적으로 조금 웃기는 현상을 발견한다. 적어도 행인이 알고 있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학자쯤 되시는 분들이라면 조금은 상황판단을 가려야 할 터인데,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아니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자기들이 밥벌어먹고 사는 기반이 뭔지도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거, 이게 문제다.


기자회견 장에서 사회를 맡고 계시던 이재교 교수. 이분은 뉴라이트 재단의 이사인 동시에 공정언론시민연댄가 뭔가 하는 조직의 대표도 하고 있다. 일전에 이분하고 같이 토론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토론회가 무려 '사이버모욕죄' 관련 토론회였다.


이분은 한 기자가 6월 항쟁 당시와 비교할 때도 이번에 시국선언을 한 교수들의 숫자가 많은 편이라고 지적하자, "6월 항쟁 때의 시국선언은 교수들의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했는데, 지금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그 당시의 분위기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비교사적 접근을 통한 훌륭한 답변을 했다.


그런데 위에 링크를 걸은 행인의 포스팅을 보면 해당 토론회 당시 뉴욕 정전사태를 거론하면서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을 우려했던 장본인이 바로 이 교수님 되시겠다. 재밌는 것은 그 때 토론회에서는 전후맥락이라는 것을 완전히 삭제한 채, 대정전 사태가 벌어진 뉴욕의 밤거리에서 발생한 난장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이버공간에 적용했던 분이, 오늘날에 와서는 시대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여 "분위기를 비교"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발언을 하셨다는 점이다.


한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에는 매우 낯익은 사람들도 몇몇 보이는데, 숭실대 강경근 교수도 눈에 띈다. 그것도 가나다순으로 올린 명단때문에 제일 먼저 눈에 확 띈다. 이 분에 대한 이야기는 걍 패스하자. 뭐 별로 할 이야기도 사실 없다. 그런데 아주 유달리 저 구석 어딘가에 짱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이름이 한 분 보인다. 바로...


제성호(중앙대)...


이명박 정권에서 인권대사까지 되신 그분이다. 요즘 좀 뜸하던데, 어쨌든 잃어버린 10년 이후 가장 빛 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분 이름도 찬란히 명단 속에서 번쩍거리고 있다. 이분에 대한 이야기도 패스. 뭐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들이라면 이 분이 어떤 분들인지 다 알고 있을 것이므로.


이분들이 여기 명단에 자기 이름을 낑궈 넣었다는 것 자체가 별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분들이 뭘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하는지를 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언급한 분들이 밥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종목은 다름 아니라 법학... 그렇다. 이 분들은 바로 민주주의와 주권과 법을 연구하고 그 실적으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의 상황인식은 이렇게 표현된다.


"언론과 방송이 정부여당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또한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써도 과거 권위주의정권 시절처럼 탄압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경찰은 뭇매를 맞으면서도 폴리스라인을 넘는 일부 과격폭력시위에도 인내하는 태도를 보였다. ... 자유는 방종과는 다른 것이다. ...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불법폭력을 동반하는 집회시위마저 허용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자유의 남용에 이른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후퇴가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사회의 평화, 나아가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


적어도 법학을 하신 분들이라면,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탄압을"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욱 교활하게 이루어지는 "탄압"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사에 낙하산 사장들을 배치하고, 자율적 언론기능을 억누르고, 사이버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내고, 네티즌들을 구속하고, 공공연하게 언론통제를 하고 있는 상황은, 비록 표면적으로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처럼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더 악날하게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 대한 탄압을 통해 억제효과를 누렸던 권위주의 정권과 시스템 통제를 통해 억제효과를 노리는 이 정권의 행위에 대해 "법학자"라면 그 본질을 비교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분들은 껍데기만 핥고 있을 뿐 포장재 안에 감춰진 내용물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는다.


더 나가, 한국사회의 경찰폭력이 국제적 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경찰이 "인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기자회견문에 대해 이들 법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검경을 위시한 정부의 폭력행위를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로 둔갑시키는 구절에 이르게 되면, 이들 법학자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해당언론사 등에서 요설을 뿌리는 기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학계의 저명한 학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입으로 "자유는 방종과 다른 것"이라고 엄밀한 구분을 할 수 있을 수준에서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불법폭력을 동반하는 집회시위"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더구나 민주주의라는 어떤 가치를 강단에서 강의까지 할 위치에 있는 "법학자"라면, 문제의 인과관계에 대하여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비판을 해야만 한다. 이건 "법학자"에게 주어져 있는 의무다. 그러나 이분들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본연의 의무보다는 정권보위라는 시대적 의무에 더욱 몰입하고 있다.


이로써 일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위에 언급된 분들을 "법학자"라는 전문성을 가진 지식인 집단으로 구분하고 그에 기하여 판단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분들은 그냥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우익"집단의 일원 정도로 판단해주는 것이 상황판단에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소위 "우익"은 꼴통 노릇을 해도 된다. 그것이 그들의 특징이며, 바로 그 특징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한국사회에서 "우익"은 얼마든지 꼴통 짓을 해도 괜찮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를 일종의 원칙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동의할 때, 이들의 꼴통짓이 보다 합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을 거다. 더불어 그 "우익"들은 그들이 법학자냐 뭐냐 하는 구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은 꼴통짓을 하도록 숙명지워진 "우익"일 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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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9 16:15 2009/06/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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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6/12 13:04

    안녕하세요, 실타래입니다. 실타래가 블로거 시국 선언에 함께 합니다. 어제 도아님께 저희 실타래가 블로거 시국 선언 실을 만들어서 배포해도 되겠냐고 제안을 드렸었는데 마침 흔쾌히 함께 하자고 하셔서, 바로 블로거 시국 선언 실을 만들었습니다. 모양은 이 모잉이구요, 선언자 앞에는 카운팅 숫자가 들어갈 예정입니다. 예전 촛불/독도 때에는 고유 숫자 (내가 받아간 번호)를 표기하였지만, 도아님과 어울림님의 요청으로 고유 숫자가 아닌 이 실을 달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