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돈봉투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가 주관한  "6·25전쟁 59주년 기념 및 북핵 규탄대회"라는 요사시런 행사에 출몰한 오세훈 서울 시장이 참가한 노병들에게 흰색 봉투를 돌리고 있는

사진이 공개

되었다.

 

삽질로 부흥한 이명박이 본색에 걸맞지 않게 기껏 청계천이나 후딱 뒤집고 말았던 것에 반해, 통 크게 한강 유역 일대를 파뒤집는 진성 불도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오세훈. 배포라면 이명박이 부럽지 않을 오세훈이 배시시 웃으면서 노병들에게 왠 봉투를 돌리고 있는 모습이 영 어색하기도 하다만, 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더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다.

 

논란이 불거지자 서울시는 오세훈의 봉투전달식이 "재향군인회법" 및 서울시 조례에 근거한 행위이며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12일날 있었던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의 "6·25전쟁 59주년 기념 및 북핵 규탄대회"가 가지고 있었던 성격부터 보자.

 

재향군인회법에 따르면 재향군인회가 할 수 있는 각종 사업 중에는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를 위한 사업도 들어가 있다.(법 제4조의2 제5호) 따라서 표면적으로만 보면 이 행사는 재향군인회가 법률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한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일 진행된 행사의 내용은 단지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만을 내용으로 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었다. 오세훈이 참석한 올림픽공원의 행사 뿐만 아니라 거의 같은 날 전국 지회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 행사에서 나온 구호 중 대표적인 것은 다름 아니라 "친북좌파척결"이었다.

 

재향군인회법에 따르면 재향군인회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법 제3조 제1항) 개인자격으로서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없는 거다. "친북좌파척결"을 위해 노병들이 일치단결 기력마저 쇠한 팔뚝을 흔들어 가며 함성을 외친 것이 "순수한" "호국정신의 함양 및 고취"인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재향군인회의 "정치활동" 공간에 현직 서울 시장이 나서서 "격려"라는 글이 씌여진 봉투를 돌렸다는 것.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오세훈이 "명예 향군회장"이 되셨다는 것은 일단 제끼더라도, 정치활동이 금지된 단체에 정치인이 나서서 봉투를 돌리는 거, 이거 여간 수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서울시의 해명 역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 서울시는 재향군인회법과 서울시 조례를 봉투전달행위의 근거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재향군인회법과 서울시 조례를 아무리 살펴봐도 서울시장이 개인들에게 봉투를 전달하도록 하고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재향군인회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재향군인회의 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법 제16조 제3항) 이 법률에 근거해 서울시 조례는 다음과 같이 사업비 보조를 할 수 있는 사업을 규정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재향군인 예우 및 지원조례

제6조(지원대상사업) 법 제16조제3항의 규정에 의하여 서울특별시가 재향군인회에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국가를 위하여 희생 공헌한 회원들을 추모 또는 기념하는 사업

2. 시민안보의식 및 나라사랑정신 함양 교육사업

3. 모범재향군인 포상 및 지원사업

4. 전적지 및 안보시설 등 안보현장 순례사업

5. 지역사회 발전과 공익활동을 위한 각종 사업

6. 기타 시장이 재향군인회의 육성 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업

 

이 조례에 따르면 위 행사는 제1호, 제2호에 해당하는 사업이거나 혹은 제6호에 해당하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업들에 지원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조례는 이와 관련하여 사업지원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1) 사업계획과 함께 시장에게 지원을 신청(조례 제7조제1항)한 후에, (2) 지원받은 보조금에 대해서는 사용결과를 시장에게 보고하도록(동조 제2항) 하고 있다.

 

서울시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이 봉투를 돌린 것은 서울시 조례에 근거해서 보더라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오세훈은 저 노병들에게 개인적으로 사업계획서를 받고 봉투를 돌린 건가? 혹은 저 노병들에게 개인적으로 사용결과를 보고받으려고 한 건가?

 

이 사건에서 더욱 희안한 부분은 이거다. 서울시가 한 변명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봉투는 돌렸지만 빈봉투였다."

 

뭔 소린가? 빈 봉투에 왜 "격려"라는 말까지 써서 그것도 개인에게 임금님이 하사하듯이 나누어주고 있었을까? 서울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엉뚱하게 답변을 하고 있다. 즉, 격려금을 주긴 주는데 그걸 시장이 개인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보조금으로 지급된 돈 중에서 재향군인회가 알아서 나눠주는 거라는 것. 게다가 어차피 정산하니까 별 문제 없다는 것.

 

이러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어차피 이미 재향군인회에 준 돈, 그걸 뿐빠이 하려면 재향군인회장이 나와서 하던지 할 일이지 왜 서울시장이 지 돈 나눠주는 척하면서 뿌리고 있었을까? 명예 향군회장이 된 기념으로다가? 기왕 재향군인회에 준 돈이면 그건 재향군인회 돈이지 오세훈의 돈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세훈은 결국 남의 돈 가지고 생색만 냈다는 건데, 돈 잘 벌던 변호사출신에 서울 시장씩이나 하신 분이 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했을까?

 

서울시의 변명은 점점 더 의문점이 들게 만든다. 서울시는 오세훈의 행위가 법률과 조례에 비추어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오던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구태여 이런 변명까지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오세훈의 행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이를 덮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공직선거법의 규정에 따르면 문제가 없는 걸까?

 

공직선거법 제86조 제3항 단서를 보면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라고 할지라도, (1)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임기개시를 하기 이전부터 관행적, 정기적으로 행해지던 행위이거나 (2) 선거 1년 전까지 대상, 방법,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정한 조례를 만들어 그에 따라 정기적으로 하던가 하는 것은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행위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오세훈이 한 행위는 (1)번 항목에 비추어보면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다. 즉 전임 이명박 시장도 그랬다는 거. 그런데 전임 이명박 시장이 재향군인회 행사장에서 개인적으로 돈봉투 돌렸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다. 결국 관행적,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던 일이라는 것은 보조금을 재향군인회측에 주었다는 것이지 오세훈처럼 직접 개별적으로 봉투돌리던 일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면 오세훈의 행위는 위 (1)번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다.

 

(2)번 항목을 보자면, 해당 서울시 조례는 2007년 1월부터 시행된 것이므로 얼핏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그 내용이 문제다. 즉, 조례 어디를 보더라도 기 지급된 보조금을 빌미로 시장이 지돈 주듯이 생색낼 수 있도록 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공직선거법 위 조문의 제4항이다. 아무리 위 (1)과 (2)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할지라도 "1. 종전의 대상·방법·범위·시기 등을 확대·변경하는 경우, 2.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참석한 장소 또는 행사에서 행하는 경우, 3. 당해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업적을 홍보하는 등 그를 선전하는 행위가 부가되는 경우"에는 공무원의 선거개입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되어 있다. 이번 오세훈의 봉투살포행위는 이 4항 각 호에 비추면 엄연히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공직선거법 제112조에 따라 기부행위에서 제외되는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에 오세훈의 행위가 해당되는지 검토해야할 대목이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여러 사람이 거명되고 있고, 이 와중에 오세훈이 쬐끔 밀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설마 오세훈이 지가 만든 공직선거법 규정까지 어겨가며 내년 지자체 선거를 준비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닌 말로 이렇게 호구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 무덤까지 스스로 파는 행위를 할 만큼 오세훈이 머리가 안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한 것이다. 오세훈의 행위도 그렇고 서울시의 변명도 그렇고.

 

어쨌건 이번 사건으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잊을만 하면 쏟아져 나와서 애국애족 하시는 어르신들이 단지 노익장 과시하려고 나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저렇게 떨어지는 떡고물이 있기에 그 노구를 끌고 광막한 광야에 서시는 거 아니겠는가?

 

차제에 서울시장은 시덥잖은 "격려" 딱지 붙인 돈봉투로 어르신들 희롱하지 말고 노인복지를 위한 체계구축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훨씬 좋을 거다. 그게 재선에도 도움이 될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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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5 17:15 2009/06/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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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6/16 13:12

    행인님의 [이상한 돈봉투] 에 관련된 글. 수수료 30원만도 못한 목숨을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는 나라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워낙에 경제개념이 확실한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은, 한 명에게 돌아가는 건당 30원의 수수료가 지들 이윤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하는데 불과 수초도 걸리지 않을 만큼 빨리 돌아가는 수퍼컴퓨터형 지능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고따위 계산능력으로 인해 사람 목숨이 파리목숨만도 못하게 죽어 넘어가는 것에

  1. 하여튼 정말 ㅠ_ㅠ

  2. 참 치졸하기 짝이 없지요.

  3. 내가 오세훈이면 행인처럼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는 사람 참~ 싫을 것 같아요. ㅋㅋ

  4. 이명박 왈: 감세 효과 70%는 서민에게 돌아간다
    네티즌 왈: 이색휘는 말만 하면 구라야... 씨바, 진짜 구라에 혼이 담겼어..

    뻥구라닷컴 위깁니다. 분발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