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관계법 패스트트랙 처리에 대한 검토
하승수 변호사가 그동안 정치관계법 개혁을 위하여 헌신을 다해온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번번히 그의 노력에 배신의 똥칼을 들이밀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시민사회와 함께 그가 열성적으로 주장했던 여러 정치관계법 개혁의 사안들은 슬금슬금 폐기처분코스로 밀려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물론이고 선거연령 인하, 선거구획정 건 등을 비롯하여 그 알량한 국회의원 '특권' 철폐까지 도통 개선할 의지를 거대 양당은 내보이질 않고 있다.
(국회의원의 '특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법률용어로서 '특권'은 헌법상 보장된 신분보장의 내용일 뿐, 실제 현실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제공되는 각종 혜택은 그들 스스로 만든 '특혜'라고 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뭐 이런 이야기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니고, 귀담아 듣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러다보니 답답한 하변은 이제 패스트트랙으로라도 정치관계법 개정을 추진하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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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의 요지는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개혁법안을 패스트 트랙으로 처리하자는 것이다. 국회법 제85조의2는 패스트 트랙 절차, 즉 안건의 신속처리에 관한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재적의원 5분의 3 또는 소관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한 안건은 바로 본회의의 법안으로 회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신속처리안건'인데 '신속처리안건'이 지정되면 소관 상임위가 법안심사 180일, 법사위 심의 90일을 경과하면 법안심사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자동으로 본회의에 안건이 상정되고, 안건이 상정되면 본회의는 60일을 넘기기 전에 표결해야 한다. 최장 330일이 걸리는 것이다.
하변의 계산으로는, 이 패스트 트랙을 진행할 경우 정치관계법 개혁법안을 2월 안에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면 2020년 1월에는 본회의 표결을 하게 되므로 20대 국회에서 안건이 처리되고 개정된 법에 따라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변은 더불어민주당이 의지를 가지고 개혁법안을 다른 야3당과 합의하여 신속처리안건으로 올릴 것을 촉구한다.
그런데 정작 하변도 인정하듯, 칼자루는 더민이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변의 계산상 더민이 주도해야만 5분의 3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변이 지면관계상 말을 아꼈는지 모르겠지만, 절차상의 문제와는 별개로 정치관계법의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 역시 더민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동형 비례제는 말할 것도 없고, 기실 분위기를 보면 선거연령 하향에 대해서도, 선거구 획정에 대해서도, 하물며 '특권' 축소에 대해서도 더민은 그다지 별 의지가 없다.
그래서 하변이 야3당에게 더민당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의당을 제외한 나머지 두 당, 민평과 국당이 지금까지야 선거법 개정을 운운했지만 총선을 1년 남짓 남긴 현 상황에서 과연 거대 양당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배제한 채 선거법 개정을 밀어부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예비후보등록이 이제 10개월 정도 후면 이루어질텐데, 그 전후해서 이 두 야당과 거대 양당의 밀당이 더 큰 문제가 될 터이고, 그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 같은 건 그냥 양념 수준에서 다루어질 거고.
그렇다면 패스트 트랙으로 정치관계법 개정을 논한다고 했을 때, 어찌어찌 하여 절차적으로는 합의가 가능할지 몰라도 내용적으로 어떤 수준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극히 회의적이다. 아마도 18세 선거연령 조정 정도가 최대 합의치가 아니겠는가 싶긴 한데, 이 역시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330일 지나면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일반적 표결절차에 따라 처리되므로 가능성이 높지만 이게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기 위한 재적의원 5분의 3 동의를 받는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하변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칼럼이긴 한데, 패스트 트랙으로 처리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방안인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법안처리의 미진한 상태를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사회적 압력이 작동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부연하자면, 선거법 개정운동과 동시에 정당법 개정운동 좀 시작해보자. 난 이게 더 효과가 클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째 사람들이 별로 호응을 안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