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인권이 보장된다?
* 이 글은 행인의 [감시를 바라는 사람들] 에 대한 셀프 트랙백 입니다.
1.
강남 CCTV 관제센터의 모니터링 요원은 모두 여성이다. 왜? 사람들이 남성들이 쳐다본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모든 모니터링 요원들이 여성이므로 인권침해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가당찮은 일이다.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이 가능할 수 있는 논리는 뭘까? 남성이 쳐다보는 것은 거부감이 든다. 그러나 여성이 쳐다보는 것에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2.
강남 CCTV 관제센터에 모니터링 요원으로 선발된 여성들은 지고지순한 자들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게 된 것이 아니다. 여기엔 모종의 합의가 있다. 그녀들은 남자들처럼 "섹쉬한" 누군가를 향해 zoom-in 할 리 없다는 확신. 누군가를 쳐다보며 낄낄거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사실은 지난 인류의 역사 동안 여성들에게 요구되어왔던 그런 모습들. 그런 모습들에 대한 관습적 각인과 신뢰.
3.
반면 남성들의 경우, 그 자리에 앉아 "섹쉬한" 누군가를 수시로 zoom-in 할 수 있고, 그 누군가를 보며 낄낄거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실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감시카메라 저 너머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남성의 것이냐 여성의 것이냐가 중요할 뿐이다. 즉, 누군가가 나를 '보고있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그 시선의 주체가 어떤 '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해진다.
4.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문자로 기록된 역사 이래 확인된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가 잠복되어 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그리하여 유사이래 피해자이던 여성을 가해자의 위치에 올려놓음으로서 가해자이던 남성의 죄상을 은폐한다. 동시에 여성을 가해자의 위치에 올려놓음으로써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공범의식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구별의 기준을 넘어서 인권의 기준으로 승화한다. 이러한 어이없는 전제오류는 현실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5.
그 결과 CCTV에서 보내지는 화면을 모니터로 확인하고 있는 사람들 중 모니터링 요원을 제외한 나머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잊혀진다. 쳐다보아야할 화면과 분석해야할 화면을 지정하는 사람들은 남성들이다. 어차피 여성으로 이루어진 모니터링 요원은 그저 시키는대로 화면을 찾아내고, 보라는 화면을 쳐다보는 일 외에는 할 것이 없다. 강남 CCTV 관제실에서 여성들은 그저 선전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감시에 있어서조차 주체가 되지 못한다. 아니, 감시 주체로서의 자격마저도 인정되지 않는다.
6.
결국 강남 CCTV 관제실은 이중의 인권침해를 유발한다. 감시 당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도구화된 여성의 인권. 여성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단지 "인권침해 요인을 없앴다"는 선전을 위한 것일 뿐이다. 어차피 거기에 남성이 있으나 여성이 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그런데 왜 여성이 모니터링 요원이라는 사실만으로 인권침해의 여지가 없어졌다고 할까?
0.
다시 한 번 여성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여성은 '섹쉬한' 누군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못하는 존재가 된다. 여성은 절대로 '폭력적 시선'을 가질 수 없는 지고지순한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여성은 또다시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한다. 이 사회는 이걸 또 자랑이라고 신문기사로 뽑아낸다. 강남 CCTV 관제센터에는 오늘도 인권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