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핸드폰을 켠 이유

선배, 후배, 선수, 도우미, 브로커...

이런 용어가 한꺼번에 사용되는 경우도 참 드물다. 체육특기 부정입학생 선발할 때 사용되는 말인가?? 물론 그때 그때 달라진다. 그래서 단어의 사용용처에 대한 해석은 그 단어들이 어떤 상황에서 이용되었는가를 면밀히 따지도록 만드는 피로감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위 단어들이 한 몫에 다루어진 엽기적 사건은 다름 아니라 수능 부정행위였다. 이번 뿐만이 아니었나보다. 작년에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을 보면 전력이 없이 난데 없이 튀어나온 수법은 아닌가보다. 이러한 단어들이 총동원된 수능 부정행위는 휴대폰을 이용한 것이었다. 정보사회의 총아,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면서까지도 중국에 팔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대한민국 주력상품 휴대폰. 그 휴대폰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 또 다른 형태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겠다고 한다. 벌써 죄목부터가 살벌한 이름이다. 공무집행방해도 무서운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란다. 선배, 후배, 선수, 도우미, 브로커... 얘네들 이제 큰 일 났다. 목하 신문지상은 그 수법 등을 상세히 설명한 기사로 넘쳐나고 방송에서도 빠짐 없이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느 신문 4컷 만화에서 이런 스토리가 실렸었다. 수능 당일, 가난때문에 진학을 포기한 한 청년이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수능을 치는 시간에 리어카를 끌고 나타난다. 그리고 리어카에 올려놓은 물건을 사라고 소리친다. 그 때 수능장에 자식들을 들여보낸 부모들이 몰려와 다구리를 놓는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

 

벌써 몇 년 전이던가? 그 만화에 실린 청년이 느꼈을 자괴감과 비슷한 심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친구들이 대입시험을 보러 가던 날, 행인은 공장 한 구석에서 뺑이를 치고 있었다. 그날 온통 모든 언론은 대학입시 시험문제풀이로 도배질이 되어 있었고, 몇 점 맞으면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예보성 기사가 넘쳐나고 있었다. 뺑이치고 떡이 되어 기숙사로 돌아간 행인, 그 방송들을 보면서 술을 빨고 있었다. 어차피 포기한 대학이기에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을텐데, 그날따라 왜 그렇게도 허전한 느낌이었을까... 소외감?

 

만 18세의 겨울에 치루는 한 번의 시험이 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토록 중요한 시험이다보니 듣기평가를 하는 그 시간에는 비행기도 이륙하지 못한다. 전국 공무원들과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조정된다. 93년 여름이었나? 아마 그 때 수능이 처음 시도되면서 여름 시험이 치루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 여름, 수능생들의 원만한 듣기평가를 위해 여의도 전역에 살충제가 뿌려졌다. 7년의 터널을 뚫고 단 며칠 지상의 빛을 보기 위해 올라왔던 매미들은 몰살당했다.

 

그렇게 결정된 인생의 항로. 자아의 완성을 위해 이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느 지역,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가 평생 간판으로 붙어다니면서 인생의 항로를 결정지어버린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인간이 아니다. 단지 시험을 보기 위해 제작되는 시험기계들일 뿐이다. 정밀한 기계가 되어야 한다. 나사 하나라도 제대로 조여지지 않아 작업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평생을 말 그대로 조진다.

 

그러나 어디 모든 학생들이 시험기계가 될 수 있으랴. 말만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지, 그게 어디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더냐. 수학능력이라는 것은 어릴 때부터 형성되어온 사물에 대한 이해, 판단능력, 적용능력 등이 모두 포함되어있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초중등 교육, 아직도 그러한 수학능력 심어줄 수 있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밑줄 쫘악 잘 그어 주는 선생님은 훌륭한 교사, 그거 더 잘해주는 학원 강사 찾아 맹모삼천지교 해야하는 현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이 암기했나, 얼마나 문제패턴을 잘 이해하나가 평가의 기준이 되는 현실.

 

수학능력? 말만 거창하다. 무슨 얼어죽을 수학능력인가? 대학교 교정마다 학생들이 넘쳐나도 학부 1, 2학년 학생들 질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고시관련과목에서는 사회문제 함부로 이야기도 못한다. 대번에 능력없는 교수로 낙인찍힌다. 시험에 나올 만한 이야기 잘 하는 교수는 훌륭한 교수가 된다. 수학능력에 상관 없이 학점 잘 주는 교수는 A폭격기라는 별칭이 붙으면서 학생들로 넘쳐난다. 그놈의 잘난 A폭격기들 덕분에 전면적인 상대평가제도가 도입되었다. 강의를 하는 스타일이나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판단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초중등 교과과정 이후 맞이하는 학부의 교육에서도 역시 밑줄긋기의 행진은 계속된다. 창의성? 그게 뭔데? 쥐가 이빨 갉는 소리냐?

 

밑줄 긋는 교육은 구호로는 노력을, 결과로는 선천성을 요구한다. 경험상 느낀 것은 기억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경험으로는 다른 때는 몰라도 시험때는 귀신같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건 열심히 노력했어요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교육은 항상 그렇게 잘 외우고 시키는 대로 잘 하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다. 외우는 것 보다는 엉뚱하지만 뭔가 다른 발상을 하는 아이들에게 있어 대한민국 교육제도는 악몽일 뿐이다.

 

그 결과 아이들의 창의성은 엉뚱한 곳으로 발현된다. 일단 선수 모집. 이 선수들, 그나마 암기력과 교과적응능력에 상대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다음으로 동조세력의 확보. 주로 선배와 후배들로 구성된다. 한 쪽에는 도우미들이 상시 대기. 원활한 작업진행을 위한 필수 요소 되겠다. 이들 선배, 후배, 선수, 도우미는 사이 좋게 핸드폰을 켜고 서로의 답안지를 교환한다. 정보통신기술의 총아는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창조적 공간에서 제 몫을 다하게 된다.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는 언제나 돈으로 환산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당연히 돈 놓고 돈 먹기에 뛰어난 재질을 보이고 있는 넘들이 끼어든다. 선배, 후배, 선수들은 아마추어를 벗어나지 못한 도우미들의 중계만으로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그 이름도 찬란한 브로커들은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기 위해 그 자리로 뛰어든다. 창의교육! 그 찬란한 성과물이 이렇게 오늘 대한민국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구면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다.

 

그날 하루의 컨디션에 의해 평생이 좌우되는 세상. 이건 사실 제정신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제정신 가지고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만들어내는 창의성. 핸드폰 부정행위.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떨어트릴려 했던 악의 무리는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선배, 후배, 선수, 도우미, 브로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제 역사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선배, 후배, 선수, 도우미, 브로커를 만들어내는 '창의교육'은 아직도 깨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18살에 잘만 찍으면 평생이 보장되는 이 정신나간 세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저 아이들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싸그리 잡아 넣으면 내년 수능부터는 아름답고 깨끗한 수험문화가 활짝 꽃피는 것일까?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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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0 19:13 2004/11/2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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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텔레비전뉴스에 톱으로 나오네요. 산오리는 휴대폰의 용도가 다양해 진 것에 놀랐어요...

  2. 이 나라처럼 "한방"에 목숨거는 나라도 없는 것 같아요. 18세 수능에서 한방 못 거두면, 나중에 부동산에서라도 한방, 로또라도 한방해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니... 있는 놈들이 혼자 모든 것을 독식하는 현재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위계"가 꽃피울테지요..-_-a

  3. 이 사회가 그 학생들을 어떻게 벌줄 수 있을까...그 학생들을 그렇게 만든게...이곳인데...참말로..갑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