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12월 조선총독부령 제154호

1922년 12월 조선총독부령 제154호.

제목은 "조선 호적령"

1960년 현행 호적법 제정시까지 한국사회의 신분등록제도로 기능.

가(家)별 편제 기준, 호주 기준자, 가족의 신분변동사항을 연대기적으로 축적.

모든 사람의 신분변동사항을 그대로 공시.

장남호주승계의 원칙...

 

헌법 재판소가 2005년 2월 3일,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린 현행 민법 제778조, 제781조 제1항 본문 후단, 제826조 제3항 본문을 근거로 만들어진 '호적법'의 원조, 조선호적령이 가지고 있는 일단의 특성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선 호적령이 일본의 호적제도를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근거로는 일제가 자신들의 민법제도를 조선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가족법의 부분만큼은 조선의 관례에 의한다고 한 바 있으며, 조선호적령 이전에도 이미 1896 건양호적, 1909 민적법 등에 의해 호적제도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든다.

 

그들의 주장이야 어쨌든 현행 호적제도가 일본이 식민지 조선인들의 관리감독을 위해 체계적으로 동원한 조선호적령을 상당부분 그대로 원용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호주제와 같은 부분은 패전후 일본이 폐지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반세기가 넘게 존치되어오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60년 전에 종주국이 망했는데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착취와 억압을 위한 식민지 법률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호주제 폐지하면 안 된다는 무수한 주장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주장 중의 하나는 호주제 폐지 주장이 가족의 형질을 바꾸려는 것, 더 심하게 말하면 현재의 가족구조를 깨트리려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여성의 종속화 내지는 여성의 도구화가 결코 현행 호적제도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가족의 근간을 규정한 이 법률을 해체하려는 것은 일부 윤리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특히 여성들)이 가족관계의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일 뿐 그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논증의 핵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고, 2월 3일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도 그 전제는 가족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어야 하는가 였다.

 

논의의 관점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다. 왜 하필 대한민국의 신분등록제도는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신분등록제도를 국가가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보면 호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호적체계가 지금까지 유지되어오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법률적 미스테리이다. 왜냐하면 신분등록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유지한 채 법률관계형성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본인의 현재 신분상황을 타인이 알 수 있도록 국가가 관리 보장해주는 것이 기본적 원칙이기 때문이다. 가족관계의 확인은 본인의 현재 신분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부수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신분등록제도는 이게 뒤집혀져 있었다. 즉, 누가 가문의 가장이며, 이 가장에게 딸린 식솔들이 어떤 면면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심이고, 가문의 혈연관계를 확인하는 과정 속에 개인은 부속물로서 그 위치를 점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 부분에 오면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왜 국가가 국민의 신분과 신원을 관리해야하는 본연의 사명을 망각한 채 가족이라는 집단형태의 관리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했는가? 헌법 재판소의 결정과는 별개로 바로 이 부분에서 또다른 문제점이 제기되었어야 한다.

 

일본은 가족법을 그들의 근대화와 군국주의를 구축하는 과정에 이용했다. 일본이 구 호적법을 활용한 목적은 첫째, 호주(사실은 각 지역 무사가족들의 수장)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그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가족관계를 모두 확보하여 둠으로써 무사세력을 중앙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여 천황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둘째, 호구의 완전한 확인을 통해 군사력 확장을 위한 인적편재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게 조선에 들어와 조선의 유구한 종손 중심의 가문 체계를 관리하는데 더없이 유효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고, 역시나 일본 안에서 거뒀던 효과를 조선에서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계속된 독재 체제가 이러한 호적체계를 선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 강고한 가부장제가 꿈쩍할 기미도 보이지 않은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에랴... 국민감정을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지들 체제 유지를 위한 매우 좋은 무기가 되는 이 법률을 독재체제가 굳이 흔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 호적문제는 주로 여성의 불이익, 양성평등의 파괴라는 측면에서 제기되어왔다. 전술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일정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한편, 바로 이 과정에서 국민신분등록제도가 왜 필요했는지의 논의는 그다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즉, 애초부터 이런 제도가 왜 존재해야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술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었지만, 다들 신분등록제도의 존재이유에 대해서는 서로간에 합의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지금부터는 논의를 근본적인 부분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국가는 가족구성원의 현재 상황을 독점적으로 확보하고 관리할 권한이 없다. 그건 가족 구성원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국가는 다만 개인에 대해서만 법률관계의 명료화와 법적 분쟁의 사전적 해결을 위해 관리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 이외의 범위로 관리작용이 확장되는 것은 최소한에 머물 수 있도록 자제해야 한다. 이게 새로 만들어져야할 신분등록제도의 원칙이 되어야 한다.

 

지난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괴롭혀왔던 호주제도는 이제 종말의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요즘 법무부와 대법원이 들고 나오는 새로운 신분등록제도의 형태가 과연 헌재의 결정에 부합하는 형태인지는 의심스럽다. 할려면 제대로 하자. 이 절호의 기회에 또다시 뻘짓을 해서 예나 후나 똑같은 효과가 나오게 한다면 그것은 죄악이다. 좀 뭘 해도 제대로 해보자.

 

ps : 호주제 폐지하는데 총력을 다 기울이셨던 여성단체들도 이제는 양성평등 뿐만 아니라 신분등록제도라는 본연의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주었으면 한다. 호주제 폐지는 공부상에 나타나는 여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기록은 현실을 좌우할 수 있다. 호주는 없어져도 여성의 신분변동사항이 공부에 남는 순간, 여성에 대한 차별은 별 변화 없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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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08:01 2005/02/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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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호와 호주에 대한 의미가 명시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호주'라는 말이 46회나 나온단다.
    가족구성원이 잘못한 일이있으면 호주에게 책임을 묻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걸 당연한 거라고 떠드는 사람들, 각성 좀 해야한다. 연좌제가 별개 아니다. 이게 연좌제다. 그런데 연좌제가 당연한 거라고??? 제발 착각들 좀 하지 말기 바란다. 그러면서 옛날부터 호주제 있었다고 하지 좀 말고, 그 때 호주와 지금 호주 성격비교라도 좀 해주면서 그런 소리 해라... 씨댕...

  2. 어 그렇구나;;
    유림 할아버지들 난리났던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