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의 정치

그래, 뭐 한 두번 본 것도 아니고, 새삼스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읍소를 하며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주장하는 모습이 선거판에서 나오는 것에 신기해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지난 대선 총선 연거푸 읍소정치, 구걸정치를 되풀이해왔던 열우당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때가 되서 나오는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병두가 자기 당 홈페이지에 올린 절규에 가득찬 호소문은 또다시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 가득차게 만든다.

 

민병두는 집권정당인 자신들을 일컬어 스스로 "민주평화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이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말을 보자마자 하필 박근혜의 얼굴에 커터칼을 들이밀었던 지모씨가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랬다"고 했다던 말이 떠올랐을까나... 아무튼 이 자칭 "민주평화세력"의 일원인 민병두는 이번 선거를 8년만에 다가온 집권"민주평화세력"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로 판단했다.

 

집권8년이라... 열우당이 언제 창당했던가? 2003년 창당했다. 47명의 의원으로 창당한 신당 열우당은 이후 탄핵정국을 맞이하여 민주당을 깨빡내고 나온 의원들과 더불어 총선을 치루고 제1당이 되었다. 사실 오늘의 열우당 틀이 만들어진 것은 2004년 총선 직전으로 봐야하지만 2003년으로 치더라도 열우당 역사 불과 3년 지나고 있는데 왠 집권 8년? DJ민주당 정권까지를 포함하면 8년이 된다. 민병두는 "탄핵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던 민주당"의 역사를 탄핵 덕분에 생각없이 "지갑"을 주은 열우당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다.

 

지들이 부정한 역사를 지들의 역사 속에 주저없이 포함시키는 이 오만함이 사실은 오늘날 열우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음을 아직도 민병두는 모르고 있다. 민병두만 모르고 있으면 그나마 희망의 빛이 보일텐데 보아하니 열우당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민병두의 이 발언은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민주당 잔류파들에게는 오만방자한 이야기일 뿐이다. 쪽박까지 다 깨고 나간 주제에 과거 찬란했던 민주당의 역사를 아예 지들 역사로 만들어? 이것들이 코이즈미하고 동격이냐? 뭐 이런 생각하기 충분하다.

 

어쨌든 민병두, 남들이 인정하든 말든 간에 지난 "8년"간 지들이 "통일로 가는 이정표를 만들었고, 부패없는 사회와 정치개혁의 단초를 만들었고,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단다. 많이 들어오던 레퍼토리다. 사실 저 레퍼토리, 노태우때 이미 신나게 써먹었다. 부패청산과 정치개혁의 주제는 전두환이때도 하염없이 울궈먹었다. 김영삼이는 안 그랬나? 결국 뻔한 레퍼토리, 정권이 바뀌어도 언제나 치적사항으로 선전되는 그 주제, 이번에도 내용 하나 없이 똑같은 줄거리로 읍소정치에 이용된다.

 

민병두가 한나라당을 공천비리백화점이라 이야기하고 수구부패세력이라고 규정하는 것, 뭐 그 자체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들이 "8년"동안 이들 "수구부패세력"이 왜곡한 역사에 균형을 잡도록 했다고 주장하는 데서는 실소가 나올 뿐이다. 뭔 균형을 잡았나? 괜히 선명성 경쟁하다가 결과적으로 다 죽어가던 한나라당 기사회생시켜주는 뻘짓이나 했고, 가진 거라고라는 아버지의 후광밖에 없던 박근혜를 한국 야당정치지도자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나마 끝까지 선명성이라도 관철했으면 괜찮았을텐데, 어영부영 쑈부치고 성과생산하는데 급급하다가 지금 뭘 해놓았나? 국보법폐지시키길 했나, 사학법 제대로 만들길 했나. 겨우 사학법 하나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켜놓더니 지난번엔 또 뭐 재개정 합의를 하니 마니 설레발이나 치고...

 

좋다. 뭐 여기까지야 그렇다고 치자. 정치인들, 걔네들에게 많은 기대를 할 필요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나 소나 다 아는 일이니까 민병두가 뭔 소리를 하던 작두 끝에서 말춤을 추던 노상 벌어지는 일이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민병두의 이번 읍소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보인다. 그건 이 열우당 의원이 국민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사람들은 이제 내놓고 말합니다. "무능한 남편(열린우리당)보다 부패한 남편(한나라당)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지난 40년간 우리 국민은 부패와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그런데도 공공연히 부패를 자행하는 세력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무능하다는 지적에 수용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성실한 남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함의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이 뭔지도 알겠고, 민병두의원이 가지고 있는 표현능력의 한계가 기껏 '남편'이라는 용어로 사태를 풀 수 있는 정도임을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그 '남편'이라는 한 주체의 상대편에 서있는 국민들은 그럼 뭔가? "성실한 남편"이 있는데도 그 성실성을 몰라주고 능력없다고 핀잔이나 주면서 다른 '남편'감 찾아서 외도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냐? 우리 국민들, 지금 속된말로 '홧김에 서방질'하는 뉘집 안사람 되는 건가?

 

삽질을 하고 자빠졌다. "역사의 추가 요동을 쳐야할 만큼, 그들이 목표하는대로 우리가 완전히 무너져야할 만큼 저희가 설정한 방향과 목표가 잘못된 것인지 한번만 더 고민해주십시오. 한나라당이 지방권력의 90%를 장악했을 때 풀뿌리가 썩을 가능성에 대해 조금 더 천착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하는데 이건 거의 전 국민들을, 유권자들을 아무 생각도 없이 시류 따라 인기 따라 쓸려다니는 빠돌/순 수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거다.

 

조금 강한 톤으로 물어보자. 그래, 니들이 설정한 방향과 목표가 뭔데? 이라크 파병하고, FTA해서 농업 완전히 작살내고, 경제구조를 완전히 개판으로 만들고, 전략적유연성 덜컥 합의해주고, 평택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온갖 불법과 사기질을 하고, 허구헌 날 올인정치하면서 정치판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입으로만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실제 개혁적인 일은 쥐뿔도 하지 않고, 서민서민 중구장창 노래를 부르면서 서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중에도 없는 니들. 도대체 니들이 설정한 방향과 목표가 뭔지 그걸 먼저 알고 싶다. "민주평화세력"이 가지고 있는 방향과 목표는 뭔가? 그게 니네 집권 4년 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은 거다. 민중들의 눈에 그 방향과 목표가 보이질 않는데, 뭐 어떡하라고?

 

한나라당이 90%의 지방권력을 차지하는 거나, 니들하고 일정하게 뿐빠이 하는 거나 뭔 차이가 있을까? 어느 양아치가 동네 주민들에게 "저쪽 패밀리가 90% 나와바리를 장악하면 안 되니 견제장치로 우리 패밀리에게 나와바리를 보장해달라"고 하면 그 주민들 어찌해야하나? 어차피 뜯길 삥인데 한놈에게 몰아주나 두놈에게 나눠주나 무슨 차이가 있지?

 

민병두, 읍소를 하려면 좀 그럴싸하게 했어야 한다.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유시민이 선수다. 읍소정치, 구걸정치 제대로 구사하려면 유시민이 정치판 떠나기 전에 빨리 가서 노하우를 전수받기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을 아무 생각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그게 뒌장인지 덩인지도 모르고 기냥 가서 투표하는 사람들로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민은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이놈의 정치인들은 아직 자유당시절을 살고 있으니 우짜면 좋냐?

 

게다가 성실한 남편 같은 소리 하면 듣는 국민 열받는다. 니들하고 국민들하고 혼인계약관계도 아닐 뿐만 아니라 민병두가 이야기하는 성실, 그거 진짜 부부관계를 놓고 보더라도 제대로 개념정의부터 해야할 주제다. 뭐가 성실인데? 집구석은 난장판이 되고 있는데도 밖에 나가서 그럴듯한 개뻥이나 잘 치고 다니면 그게 성실인가? 내가 아내라도 남편이 되도 않는 뻘짓이나 하면서 싸돌아다니다가 때되면 돌아와 미워도 다시 한 번 어쩌구 하면 당장 이혼이다. 그게 남편이냐? 웬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병두 말마따나 집권 8년이면 이제 질릴 때도 됐다. 질리지 않게 하려면 뭔가 쌔끈한 것으로 일신한 모습을 보이던지 그게 안 되면 한나라당이 권력을 차지한다고 해도 별로 문제가 될 일은 없다. 어차피 어떤 양아치가 나와바리를 차지하더라도 동네사람들 힘 든 것은 마찬가지니까. 동네사람들이 진짜로 바라는 것은 양아치간의 나와바리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긋지긋한 양아치들이 좀 없어져 주는 거다. 이젠 좀 울고불고 하지 말고 닥치고 가만히 있어주면 참 좋겠다. 보면 꼭 내세울 것 없는 인간들이 울고불고 굿을 한다. 자꾸 그래봐야 가진 거 없는 거 티만 나는데 그걸 왜 모를까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5/22 16:13 2006/05/22 16:13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528
  1. 양아치가 읍소하는 거 가지고 왜 또 그려셔. 양아치의 글을 광고하는겨? 요즘 판 돌아가는 걸로 보아 양아치들의 읍소는 별영향 없지 않겠수? 한 칼에 끝났잖여.

  2. 놀라우신 평화......군요.

  3. 말걸기/ 영향유무를 떠나서 그 싹퉁머리 없음에 쬐끔 분노했걸랑...

    조커/ 그저 저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놀랍다고 할밖에요...

  4. 열우당 최고의 성과(!?)가 한나라당을 살려 준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나서 아주~ 열받는다죠. 유시민도 짜증나고... 에라이...

  5. 무능한남편, 부패한남편, 성실한남편.
    전 '잘생긴'남편이 제일 좋아요. 므흣

  6. 에밀리오/ 최대 성과죠, 그게... 쩝...

    정양/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