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국민중심당!

개봉박두한 영화 '다빈치 코드',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어쨌든 이렇게 영화 한 편이 씨끌벅적한 이유는 그 주제가 민감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꽤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아나그램(anagram)인데, 일종의 철자맞추기게임 정도 된다. 알파벳조합을 달리해서 완전히 다른 말을 만들어내거나 또는 암호처럼 만들어내는 것인데, 소피의 할배가 여러가지 아나그램으로 암호를 남기고 이걸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성배추적이 이루어지는 내용이 다빈치 코드를 재밌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다.

 

박물관에서 시체로 발견된 소피의 할배는 이런 코드를 남겼다.

13-3-2-21-1-1-8-5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O, Draconian devil!)"
"오, 불구의 성인이여! (Oh, lame saint!)"
P. S. 로버트 랭던을 찾아라.

무슨 주문 같은 글귀를 보고 랭던은 이 아나그램이 가르키는 의미를 파악한다.

"오, 드라코 같은 악마여! (O, Draconian devil!)" =>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오, 불구의 성인이여! (Oh, lame saint!)" => "모나리자! (The Mona Lisa!)"


 

이렇게 글자를 가지고 장난치는 일은 알파벳을 사용한 서양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한자문화를 가지고 있던 동양에서 역시 글자를 이용한 암호화나 게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한자를 이용해 말놀이를 하는 것으로 '해자(解字)' 또는 '파자(破字)'가 있다. 말 그대로 글자를 풀어헤치거나 여러 개로 쪼개놓는 것 또는 그 반대를 의미한다.

 

옛날 호랭이가 고스톱 치고 토끼가 비보이 배틀에 도전하던 어느 때, 한 마을에 총각이 하나 있었더랬다. 당연히 이야기가 되기 위해선 그 마을에 처녀가 있었지 않았겠나? 또 이야기의 순서대로 이 총각이 처녀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는데, 이 총각이 사모하는 마음과는 달리 처녀는 별로 관심이 없었더랬다. 속으로 꿍꿍 앓고 있던 총각이 사람을 시켜 편지를 몇 차례 넣어봤는데, 대답이 없다.

 

그래, 이 총각,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고 다시 편지를 넣었더니 답장은 없고 중간책만 입이 댓발이 나와 툴툴거린다. "아 쉬파, 니가 직접 오면 답장을 준단다. 이건 뭐 뺑이만 치고 남는 건 없고..."하고 궁시렁거리자 이 총각, 다시금 희망이 보인다. 앗싸~! 두드리라 열릴 것이로다~! 그런데 이 중간책 말이 걸작. "별채 뒷담에 개구멍이 있는데 오늘 자정에 그리로 머리를 드밀면 답장을 준다더라" 해서 졸지에 이 총각, 달밝은 밤중에 개구멍에 머리를 들이 밀었겠다.

 

휘엉청 밝은 달을 등지고 왠 처자가 하나 서있는데 개구멍으로 삐죽 들이민 총각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 서신이 든 봉투 하나를 툭 던지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게다. 희색만면한 이 총각, 집에 와서 편지를 뜯어 보니 글자 하나만 덩그라니 씌어 있다.

 

"적(籍)"

 

아니, 이게 도대체 뭔 뜻이란 말이냐... 이게 뭐 좋다는 뜻이냐 어쨌다는 뜻이냐... 총각이 마음은 하늘에 가 있는데 마빡에 들은 것이 없었던 게다. 그 수많은 연서 끝에 답장이 기껏 책적자, 호적적자만 덩그라니 있으니 이 어찌 하란 말이더냐... 머리 나쁜 이 총각, 선승이 화두에 들어 면벽수행하듯이 이놈의 적자 한 글자를 앞에 놓고 식음을 전폐한 채 몇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결국 기진맥지...ㄴ

 

편지배달역을 하던 그 친구넘, 사나흘 꿈쩍도 하지 않는 총각이 궁금해 방문해보니 꼴이 가관이라, 무슨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총각이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역시 그놈 친구가 거기서 거기라 이넘도 뭔 뜻인지를 모르겠는 거다. 해서 궁리를 해보다가 결국 동네 훈장에게 가서 물어보기로 의기투합, 서당으로 달려갔다.

 

훈장님, 근엄하게 곰방대 물고 앉아 글자를 들여다보다가 "쳇, 아 이 띨빡들, 이걸 몰라서 여까지 온겨?" 하곤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고, 총각과 그 친구, 쪽팔리기는 하나 사람 한 목숨 살려보려는 굳은 의지로 답을 요구했더니 이 훈장이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한다.

 

"스무 하룻날 대나무 밭으로 오시오"

 

훈장의 풀이는 이러하다. 籍자의 머리에 부수가 되는 대나무가 놓여있고(竹), 아래 오른편 옛 석(昔)자는 열십(十)자 두 개에 한일(一)자가 날일(日) 위에 얹혀 있는 것이고, 그 왼편에 있는 글자는 올래(來)자의 약자. 고로 스무 하루 (十十一) 날(日)에 대나무(竹)밭으로 오시오(來)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처녀도 달빛에 비친 총각의 얼굴이 밉상은 아니었다는 뜻이었고, 다만 이정도 수수께끼는 풀 수 있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던 거였다. 총각과 처녀가 대나무밭 상봉 이후 혼인하여 애들낳고 잘 먹고 잘 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 이야기에서 籍자 하나로 이루어진 편지의 내용이 바로 해자 또는 파자의 한 예가 되겠다.

 

본격적인 선거일정이 시작되자 온 거리 사방 곳곳에 각 후보들을 알리는 현수막과 걸개그림이 현란하게 나부낀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 왔더니 대형 후보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광명에 디즈니랜드를!"이라는 구호가 씌여 있다. 실소가 나오는 것을 참고 봤더니 아, 그 말로만 듣던 국민중심당 후보였다.

 

국민중심당(國民中心黨)... 약칭이 국중당(國中黨)인지 중심당(中心黨)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찌 되었든 이 당 약칭을 해자 파자 해보면 굉장히 재밌다. 국중(國中)을 풀면 나라국(國)자 안(中)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건 곧 혹(或)자가 된다. 즉, "혹시나할 或"자가 되는 거다. 혹시나 이번에 당선이라도 될까 싶어서 만든 당이란 뜻일까?? 중심당(中心黨)이라 하면 中과 心을 합치면 충(忠)자가 되는데, 역시 전략적요충지를 충청도로 삼고 있는 충청지역 대표정당이라는 뜻이 될라나?

 

성악교수께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셨는데, 이분, 시장판에서 성악 뽑으시는 것은 영 어색하긴 해도 언젠가 토론회에서 딱 한마디 션~~하게 하셨다. "머리 속에 돈만 들어있는 사람들이 서울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다" 오케바리. 그런데 왜 시장선거 출마하셨는지 그걸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분도 국민중심당 후보이신데, 정말 국민이 중심이 되는 당을 만들어 가실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바라는 것은 혹시나할 혹(或)자 밑에 중심당의 심(心)자가 깔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되면 미혹할 혹(惑)자가 되어버린다. 사람 홀린다는 말인데, 이번 선거판에 처음으로 나선 국민중심당이 사람이나 홀리다가 진 다빼버렸던 다른 정당들 짝이 나질 않기 바란다. 안 되면 뭐 할 수 없지만서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5/18 15:40 2006/05/18 15:40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524
  1. 크... 국민중심당... 불안불안 한 느낌이에요 >_<;

  2. ㅋㅋㅋ 재미있네요. ^_^ㆀ

  3. 에밀리오/ 뭐 국중당까지 염려를 해주시고 ㅎㅎ

    not/ 오호~~ 공부는 잘 되가는지...

  4. 독립운동사 다룬 책들 보면 그당시 사용된 암호해석법들이 나오는데 그게 또 재밌더라구요.
    여튼, 그래서 어찌어찌하여 총각은 대나무밭으로 가는데까진 성공하였으나 그 후 그의 무식함이 탄로나 처녀에게 차이고 말았다는 가슴아픈 전설이;;

  5. 정양/ 흠~~ 그런 책 있음 좀 소개를 시켜주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