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에 의한 착취

에밀리오님의 [열세번째날.. - 다시 국가 폭력을 생각하면서...] 에 관련된 글.

최근 포털 사이트의 검색순위 1위를 달렸던 단어 중의 하나가 "노예할아버지"였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착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한 번 놀랐고, 바로 옆에서 이토록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일이 물경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었음에도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방관에 대해 한 번 놀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착취는 단지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와 개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취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상한 것은 국가가 국민에 대해 심각한 착취행위를 일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것을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 정도로 생각하거나 오히려 '숭고한' 의무이행으로 포장질까지 하기도 한다.

 

국가에 의한 착취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다름 아니라 군대다. 국민개병제를 시행하면서 60만 정예군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는 착취구조의 ABC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점에서 단연 연구대상이다. 요샌 월급에 보너스 얼마를 받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PX에서 과자 몇 봉지 사먹고 담배 몇 값 사면 사라질 만큼 될 거다.

 

물론 놀랍게도 이 몇 푼 되지 않는 돈을 모아 알뜰히 저축해서 제대하는 사람도 있다. 행인의 고참 중 하나는 30개월 동안 부대 안에서 '거지'소리 들어가며 돈 한 푼 안 쓰고 월급 모아 제대하면서 집에 돼지 사다 준 장한 장병도 있었다. 실화다. 그러나 이건 거의 옛날 이야기 아니면 소설같은 이야기가 됐다. 군 부대에서 병사들이 하는 일, 이거 밖에서 보면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사실 그 폐쇄된 공간 안에 팔팔한 청춘들 죄다 쑤셔넣어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다.

 

병사들이 사역을 하고 훈련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총칼을 손에 들려 전쟁을 준비토록하는 그 자체만으로 이들에게 월급 제대로 주고 생명수당까지 주어야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쥐뿔 그런 거 전혀 없다. 국방색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의경들은 어떤가? 시퍼런 방석복 입히고 방패 들리고 곤봉 들려서 "죽봉"을 들고 쳐들어오는 "폭도"들 앞에 내보낸다. 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나?

 

월급은 고사하고 전의경 사이의 폭력이나 성추행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보고가 있다. 국가에 의한 착취는 결국 착취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또다른 유형의 폭력과 착취를 유발한다. 전의경 뿐만이 아니다. 요즘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공익요원들. 요원이라고 하니 꽤나 그럴싸한 것 같은데 다들 아시다시피 공익요원을 무슨 안기부요원처럼 여기는 시민들 단 한 명도 없다.

 

공익요원은 그나마 병영 내에 있는 병사들이나 전의경보다는 쬐끔 월급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거 차비하고 밥값하면 말짱 황이다. 그런데 이 공익요원들 하는 일 무진장 많다. 하다못해 서울 시내 전철 지하철은 공익요원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근무처에서 가까운 여의도공원 역시 공익요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유지된다.

 

이 청춘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일반 기업체에서 사원들이 한다고 하면 도대체 얼마의 월급을 줘야할까? 군인, 전의경, 공익 다 합쳐서 좋다, 딱 그냥 60만이라고 치자. 이들에게 월급 100만원씩 지급한다고 하면 한 달에 6000억이다. 1년이면 7조2000억. "원하는 것은 무엇이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던 될 수가 있"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단순계산만으로도 연간 7조2000억원어치의 노동력착취를 자행하고 있다.

 

이와는 전혀 달리, 군인이든 전의경이든 공익이든 간에 이러한 "의무"이행이 자랑스러운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이며 보람찬 것이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실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던 영광스럽게 여기던 보람으로 여기던 그건 뭐 알아서 여기시라. 그런 감정까지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당한 댓가는 주라는 이야기다. 정당한 댓가를 주기 어려우면 부리질 마라는 이야기다. 한 인간을 노예로 부리던 어느 개념없는 인간들이나 수십만의 젊은이를 밑천도 들이지 않고 부려먹는 짓이나 도찐개찐이다.

 

이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다 주기 어렵다면 월급 제대로 줄 수 있을 만큼만 군 병력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의경들 방패막이로 보낼 생각하지 말고 전부 정규경찰로 바꾸란 이야기다. 공익'요원' 만들지 말고 노동자 채용하면 될 일이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 아닌가? 행여나 청년실업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군대, 전의경, 공익요원제도 이딴 것들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언제까지 이넘의 나라는 젊디 젊은 청춘들 쌩으로 끌고가 돈도 제대로 쥐어주지 않으면서 노예처럼 부려먹을 텐가? 이 대목에서 비오는 날 길거리에서 칼침 제대로 맞던 장동건이 날린 한마디가 필요하다.

 

"고마해라, 마이 무?L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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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2 13:41 2006/05/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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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게요 >_< 어디서 본건지 기억이 안나니 전혀 근거 없을지도 모르지만, 네덜란드인지 독일인지 어디인지에서 징병된 이등병은 월급이 300만원 선이라고 하던데... 호봉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300만원으로 계산해도... 한달에 1조 8천억, 일년에 21조 6천억... 진짜 다른 나라 사례 한 번 찾아봐야겠군요 ㅠ.ㅠ

  2. 나도 아침에 아래 기사 보고 공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됐음.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S2D&office_id=081&article_id=0000090628§ion_id=102§ion_id2=251&menu_id=102

  3. 에밀리오/ 사례 찾으시면 꼭 알려주시길~~ ^^

    정양/ 공익요원문제가 좀 더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착취제도가 존속한다는 거, 이거 진짜 상식에 맞질 않는 일인데 교수씩이나 된 사람이 그런 헛소리하는 거 보면 기도 않차서리...

  4. 결국 그들의무료함은 괜한 시민에 대한 폭력으로 돌아오지...비단 전경 뿐만아니라 병영속에 갇혀있는 일반 사병들 역시..그들은 시한폭탄에다름 아니다 라고 한다면 지나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