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살고 싶냐?

천살 먹은 인간이 옆에 있다면 그게 인간으로 보일까?

"어르신 연세가...어찌되시는지..."

"올해로 만 구백 아흔 아홉이네. 이제 한 일년 더 살면 많이 살겠지... 허허허..."

"???"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면 1000살을 산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자기 밑에 34대를 거느리게 된다.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라나? 집안의 막내가 집안 최고 어르신에게 뭐라고 불러야 할까? 보통 윗대는 아버지 어머니, 그 윗대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 위로는 증조가 붙고 또 그 위로는 고조가 붙는다. 그리고 그 다음은 호칭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구한말에 들어와서야 성씨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거의 인구절반에 해당된다는 조사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통 본관을 따져서 "어디 모씨 몇대손이요"하는 말의 절반은 개구라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이 1000살을 살게 되면 자칫 시조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후대 자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렇게 어르신들이 말그대로 '천세'를 누리면서 살게 되는 경우 설날 세배드리려면 도대체 절을 몇 번 해야할까나? 혼인관계가 복잡한 집이라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숫자가 일반기준을 넘어서게 되는데, 자칫하면 삼보일배로 천배를 넘게 해야한다. 새만금에서 서울로 삼보일배 걸어 올라온 분들의 노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온 가족이 모여 잔치라도 할려면 도대체 몇 인분의 밥상을 준비해야할까나? 현재의 가부장제도가 그대로 온존한다고 치자면 종갓집 종손며느리 된 어느 여인은 하루 잔치상 준비하고 기절해버릴 수도 있겠다. 잔칫상에서 오고갈 대화의 내용을 상상하면 그것도 괜찮은 코메디 소재가 될 듯 싶다.

 

"얘, 네가 올해 몇살이냐?"

"뭐 이제 겨우 오백 여든 두살입니다."

"아이구, 아직 한참 나이구먼~!"

 

아마 나이와 댓수가 섞이고 얼켜서 벌어지는 혼란도 가지가지로 나올성 싶다.

"나 3백 열 한살이다. 너 몇살이여?"

"7백살이 넘었다, 이 썩을 넘아."

"그랴? 난 이 집 23대 손인데, 넌 몇 대손이냐?"

"어이구, 할아버지, 저 27대손입니다..."

"이 시키가 죽을라구..."

 

게다가 천 살을 산다는 것이 생물학적인 연령만 그렇다는 것일 뿐 그때까지 젊고 싱싱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데서는 더 기가막힌 상상력이 가동된다.

"전 연상이 좋아요, 저보다 한 2백살 쯤 많았으면 좋겠어요." 뭐 이런 말이 심심찮게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언론 기사도 재밌는 것이 무진장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700살의 노인, 300살 연하의 날치기범 격투끝에 붙잡아"

"정치인 모씨와 방송앵커 모씨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920세라는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신혼재미에 날이 가는 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한반도 남단의 현재 인구가 약 4900만이 넘는다. 현재 평균연령이 76세, 출산율이 1.03% 정도.

이 상황에서 평균연령이 1000살로 바뀐다면, 그 인간들 퍼지고 살 곳과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해야할까? 출산율을 0.01% 정도로 낮추어야 현재의 수준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럴러면 모든 인구에게 1000년 동안 살면서 애를 몇 번 낳으라고 해야할까?

 

다 좋다. 뭐 오래살면서 건강하고 젊게 산다는 거야 진시황때도 이미 노심초사 원했던 바라 현대 인류라고 해서 그런 희망 버리고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살아왔던 경륜과 뜻을 후대에 남길 새도 없이 돌아가시는 것 보다는 그런 분들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잘 살려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세상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을 보면 1000년 사는 것이 별로 희망적인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원로대접은 다 받으려고 하면서도, 정작 사회에 한 푼어치도 도움이 되지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이다.

 


12월 4일 시청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동길 원로. 이냥반의 개그쑈를 보려면 요기로

 

이 할배의 독보적 개그콘서트 모노드라마를 천년 본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악몽이다. 저 어르신이 저런 어르신스런 모습이 아니라 20대의 새파란 청춘의 모습으로 저 자리에 앉아서 저런 환상적 코메디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차라리 평균 수명이 40대 초반에 머물러 있었던 50년대 대한민국이 살기는 더 편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래 사는 거 너무 좋아할 일이 아니다. 사람이던 뭐던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죽을 때 죽어주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남아 있는 다른 모든 존재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별로 오래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에게 인간수명 천년가능하다는 언론의 기사는 엉뚱한 상상이나 하게 만들고 만다. 뭐 이런 일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600살 먹은 손자가 찾아온다.

"할아버지, 저 다시 군대 갈랍니다."

"아니, 뭐여?"

"낼 모레 입영입니다."

"어허, 이런 일이..."

 

800살 먹은 할아버지와 600살 먹은 손자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면서 쏘주 한 잔 거하게 빠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 600살 먹은 손자는 이틀 후 580살 정도 어린 신병들과 논산 훈련소에서 뒹굴고 있을 것이다. 이게 무슨 그림이 이런 그림이 다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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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5 03:54 2004/12/05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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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움베르토 에코의 '미네르바 성냥갑'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 원로의 뻘타, 이런 건 아니구 ^^;;)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사춘기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 나타나는 사춘기는 탄생부터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까지의 기간이다.'...'그렇다면 흥미로운 예상을 할 수 있다. 즉 수명 연장으로 인해 독재적 통제와 스파르타 식 교육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뭐, 이런 그 특유의 익살. 헉, 너무 뻘탄가? ㅡ.ㅡ

  2. 한 세대를 300년으로..ㅋㅋㅋ..죄송해요--'

  3. 미류/ 그것도 그렇지만 예를 들어 8백살쯤 먹은 노인네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3000년 전 피라미드 공사장 노가다꾼이 써놓은 낙서죠)"라고 하면 그게 몇 살 쯤 된 사람들 이야길지 궁금해요. ㅋㅋ 자기보다 어린 애들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붉은사랑/ 그럼 애 낳는 주기가 300년 쯤 된다는 이야긴데... 사람들이 참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