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감동을 보았다.

행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마라톤이다. 2시간 여의 그 긴 시간동안 꾸준히 달려나가는 운동.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와 싸워야 하고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나름대로의 작전을 구사해야한다. 직접 달려본 사람들만이 아는 어떤 쾌감도 있다. 그 쾌감은 티비 모니터를 통해서도 그대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라톤 경기에서 오늘 새벽 또 하나의 감동을 맛보았다. 그 감동의 주인공은 브라질의 리마였다. 25km 구간을 지난 후부터 속력을 내기 시작했던 리마는 줄곧 앞서 나가면서 경기를 리드했다. 이봉주가 승부처를 32km로 잡았을 정도로 이번 코스는 장거리의 오르막이 중간에 놓여있던 코스였고, 그만큼 초반 승부가 어려운 코스로 인식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장거리 오르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리마는 과감한 독주를 시작했던 것이다. 중간에 지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리마는 제대로 그 오르막을 통과했고, 내리막에서 상당한 시간을 벌었다.

 

35km구간을 지나면서 리마의 우승은 거의 확정적인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리마는 잘 달리고 있었다. 사건은 그 순간 일어났다. 무슨 예식복같기도 하고 전통의상같기도 한 녹색옷을 차려입은 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리마를 끌어안고 연도의 응원대열로 밀고 들어갔던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레이스가 끝나는가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마라톤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30km 이상 달리고 나면 그 때는 허벅지고 장딴지고 간에 자기의 의사에 의해 그것이 움직인다기 보다는 일종의 관성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뛰어왔던 그대로 두 다리가 자동적으로 전진을 하게 되고 상반신과 팔은 이러한 다리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거리가 지난 후의 마라토너의 다리는 지금까지 레이스의 피로가 그대로 축적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그러면서도 달려왔던 만큼의 속도를 무의식적으로 유지하도록 셋팅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앞에 장애물이 나와 몸 상태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다리근육이 놀라 제대로된 레이스를 계속 유지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 리마는 아예 누군가에 의해 떠밀려지고 관중들 안으로 밀려 쓰러졌다. 아... 세상이 이럴수가... 그것은 하나의 만행이었다. 잠시후 다시 레이스로 복귀한 리마의 표정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고통이 화면을 통해 전달되어왔다.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런 상황에서 계속 달리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두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고 있었고, 자세가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이를 악무는 그 표정에는 조금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피로감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면 달려오는 후미의 선수들을 확인하는 그의 표정에는 절망감마저 비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리마는 예상을 뒤엎고 계속 달려나갔다. 38km 지점 쯤에서 결국 이탈리아 선수와 미국선수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말았으나 그는 계속 달렸다. 도저히 달릴 수 없을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믿겨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3위로 스타디움의 결승선을 통과했다.

 

리마는 메인스타디움 트랙에 진입한 후 한바퀴를 돌고 나서 양 손을 날개처럼 주욱 펼쳐 올리더니 새가 비행을 하듯 좌우로 흔들흔들 몸짓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창공을 나는 비행이었다. 그리고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그의 표정 속에서 메달이고 뭐고 1등이니 2등이니 하는 순위의 이야기나 몇 시간 몇 분 몇 초의 기록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룩했으며, 보통의 사람들이 포기했을 상황을 끝까지 극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그토록 아름다운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그는 해낸 것이고 그는 웃은 것이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행인은 감동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새벽 2시 30분, 지구 반대편에서 활짝 웃고 있는 리마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행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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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30 17:15 2004/08/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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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러네요. 저는 방송이 나오지 않는 TV를 가지고 있어서 못 봤는데 글로도 감동이네요. 리마에게 박수 이빠이~~~

  2. 리마가 docu님의 박수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3. 저도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올림픽 마직막날인 것도 모르고 그냥 TV를 틀었는데, 마라톤 장면이 나오더군요. 리마의 완주는 정말 감동적이었죠.
    더불어..저도 마라톤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행인님 마라톤하실 때 언제 한번 따라가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