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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01
    ==홍치산== 바보 과대표(4)
    난타
  2. 2004/08/30
    스타크래프트 곱씹기(3)
    난타
  3. 2004/08/30
    밤샘 싸스 총회
    난타
  4. 2004/08/29
    반성폭력 워크샾 꼭 가야쥐~~~(1)
    난타
  5. 2004/08/29
    SF와 함께 해요.
    난타
  6. 2004/08/26
    그간의 나태함을 떨쳐내고(2)
    난타
  7. 2004/08/23
    로봇시대가 온다면...(1)
    난타
  8. 2004/08/20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난타
  9. 2004/08/20
    정말 놀라운 전지현.
    난타
  10. 2004/08/08
    맘 내놓고 크게 소리칠 날이여(4)
    난타

==홍치산== 바보 과대표

과거 1학년 때 성신여대에서 북부총련 출범식이 있었다.

단식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멋으로 단식단 옷을 걸치고 다닐 때였다.

 

단식단이란 가슴에 새긴 글이 애처러웠는지 원봉이었던 돈암동 거리를 너무 쉽게 걸어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들어가서 잘 버티다 우리학교 아직 안 들어왔다고 밖에서 결의대회하고 있다는 얘길 듣고 또 원봉된 거리로 뛰쳐 나왔다. 흩어졌단 얘길 듣도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아까보다 더 많아진 전경과 더 심해진 검문에 도저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학교 총집 사람들을 만나 같이 산넘고 건물넘고 계곡 넘어 성신여대 뒷문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본 극이 이 바보 과대표였다.

 

뇌리에 박히는 내용... 밖으로 뭔가를 뽐내거나 내새우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활동가가 되기 위해선 어째야 하는 지를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라는 것을 알고 절판된 홍치산 시집 이리 저리 구해서 읽으며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까지 그 바보 과대표처럼 살지 못한 내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한 번 이 시를 읽어본다.



우리학교 1학년에 바보 과대표가 한 명 있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고
밍맹몽, 007빵 무얼 하더라도 진짠지 가짠지.
야튼 맨날 걸려 얻어맞으며 헤헤 웃고
벌주 발칵발칵 마시며 배꼽 뚜딜겨
뽕짝 걸판지게 뽀아대는 천하에 바보가 있다.
항상 그 바보 곁에 사람들이 드글거리고

그 수첩에는 120명 동기 이름 모두 적혀있다.
누구누구와 언제 만났고
누구의 고민은 무엇이고
누구와는 아직얘기 못해 보았으니.
멋있는 싯구 하나 없지만 그런 것들이 잔뜩 쓰여있다.
수업 안들어오는 애들 리포트 알려주고
시험때는 쏘스 제비 벌레 물듯 물어와 노놔주고

역사연구반이니, 사회과학 연구반이니
소수의 의식을 위한 것보다
바둑반이니 농구반이니
그런 모임을 만들어 120명 모두를
함께하는 고민으로 자기 과 소모임에 참여시켰다.

일기장에는 자신의 참된 삶의 문제
누구보다 겸허하게 치열하게 고민하였으며
개의 안락에는 추호의 타협이 없었으며
항상 5시간 수면을 철저히 지킬것을 강제했고
서재에는 항일 무장투쟁사가 손 때묻어 간직되어 있었다.

그날
자기 과 친구들에게는 아직 이르다며 본대에 있으라 하고
아스팔트 하이바에 우리 선배 전투조들 떨고 있을때
익살스런 춤 "간다 간다 뽕간다"
신명나게 두려움 누그려주고
전투대장의 진격의 나팔 우렁차게 울리니
그는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정확하게 꽃병을 꽃았다.

드디어 놈들이 사나운 이빨 으르렁 거리며 덤벼들때
한 친구 전사는 미끄러지고
모두 안타까이 돌아 섰을 때
그 바보 전사 바보처럼 의연히 달려 나갔다.

다음날 한계레신문에 조그맣게 바보 이야기가 실려다.
고대에서 2명이 화염병으로 잡혀오고 100명이나 친구들이
성북서 항의 방문을 했다고 바보를 풀어 달라고 울부짓었다.
총학생회장님이 잡혀가도 그런 일이 없어는데

그리고 다음날 교문과 식당에서는
바보의 바보같은 친구들을 누구나 만났다
그들 손에는 당구 큐대가 아니라
볼펜이 아니라 오락실 운전대가 아닌
규탄 성명서가 들여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뒤 학생의 날 가투 전투조 사전모임에서
한 1학년 학우의 결의 발표가 나의 심장을 쳤다

"나는 바보의 다른과 친구입니다.
투쟁하란 말은 없어지만
그 친구는 말은 없어지만
저는 아직 짱돌 한 번 던진적 없었지만 바보들 잡아간 놈들
용설할 수 없습니다.
오늘 비록 제가 잡혀간다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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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곱씹기

파병도 마찬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그렇게 정책, 전략, 전술의 바탕이 되고

 

도구가 되는건 우리 인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인간들의 권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 언제나 커다란 이익이라는 허황되고 잘못된 개념속에 작은 희생이라는 고귀한 생명

 

이 사라져 간다.  우리는 언제나 그런 희생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그건 정작 내 생명이기때문이 아니라 내 생명이

 

값지기 때문에 남의 생명도 값지다는 것을 아는 그런 고귀한 깨달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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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싸스 총회

싸스가 아닌 다른 동지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총회라고 12시간 꼬박 회의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더 놀랄 일은 회의안건지를 보고나서일 것이다.

 

한 번 더 놀랄 일은 그렇게 12시간짜리 서기록을 보면 모두 이건 논통모때 더 얘기하고

 

이건 사업회의에서 더 얘기하고, 이건 캠에서 더 풀어내고, 이건 간담회에서 더 풀어내고

 

이건 교육연수위에서 더 준비하고...

 

하지만 이들이 더 놀랄 일은 우리는 이런 일들을 몇년째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기본은 대화가 아닐까한다. 그것도 자신의 감정의 숨김이 없는 대화,

 

불만이라 생각이 들면 이해될 때까지 캐묻는... 그리고 그러한 숨김이 없는 대화를 받아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논의에서 결정되지 않을시에는 1인이 사전 정리하에 다음 논의를 가져갈 수 있는 용기

 

와 배짱을 가져야 한다.

 

회의를 시작하면 밤새고 아침을 맞이하는 게 일상이 되어가듯 동지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꿍함과 불만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상쾌함과 결의만이 다져질 뿐이다.

 

진보캠프때 조문익 선배님이 아테네에서 전쟁을 그렇게 죽어라 할 수 있는 것은 폴리스의

 

민주주의때문이라 했던가? 자신들이 직접 결정한 사안이기에 목숨걸고 싸울 수 있다고...

 

우리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우리들이 죽어라 풀릴때까지 얘기해서 결정된 사안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애정과 결의를 갖게 된다.

 

항상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는데 거부감도 없고 후회감도 없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 민주주의 전선에서 한 걸음 앞에 서있는

 

것 같은 기쁜 기분이 든다.

 

논의가 요약 발췌되는 것이 아닌 확장, 증축될 수 있는 회의체계로서의 싸스 회의가

 

너무나도 맘에 든다. 언제나 회의 도중 더 많은 것들을 스스로 교육받고 느끼고 정리되는

 

그러한 회의가 너무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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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워크샾 꼭 가야쥐~~~

‘2004 가을 반성폭력 workshop 기획안 (草案)

광주민중항쟁25.8.28
새로운 여성운동을 고민하는 모임 She's에서
제 단체 및 개인에 제안드립니다.
 



제안배경
왜 다시금 반성폭력 운동인가?
 


어느 샌가 우리에게 반성폭력 운동은 식상한 무엇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여, 어떤
조직(공동체)에서든 앞서서 문제제기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말은 ‘오버한다’는
말과 눈초리, 그리고 이중삼중의 고통과 피해이다. 이미 국가차원에서는 한국에는
‘남녀평등고용법’ ‘성폭력방지특별법’
등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기도 하고, 라디오나 TV에서는 더 이상 움츠리지 말고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라고 여성부와 관계기간의 전화번호를 시시때때로
내보내준다. 이러한 홍보들 앞에서 마치 우리는 어떤 조직(공동체)내에서든
이러한 성폭력의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자기암시를 하고 있으며,
명확한 사회(공동체) 진단을 흐린채 오히려 반성폭력 운동의 문제의식이 후퇴되는
곤란에 처해있다.  
90년대 말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으로 본격화된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은
대책위원회 구성을 통한 사건해결, 가해자 공개사과,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대한 논의, 운동사회 내 가부장성에 대한 문제제기들 속에서 어느 정도 대중적인
지반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대학사회 내에서 새터, 현장활동 등을 준비함에
있어 반성폭력 내규 구성은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반성폭력
운동은 이전까지 도덕적 잣대로서만 이야기되었던 성폭력 사건을 여남의 권력차에
기반한 폭력으로 ‘폭로’해내었던 반성폭력 운동 초창기의 문제의식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면서 대책위 구성을 통한 사건해결의 한계, 가해자 처벌주의에
매몰되는 경향,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공격 등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통상적으로 성폭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몇몇 언사들만 피하면 되는 것으로
형식화되어 있는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인식수준에서는 끊임없이 성폭력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운동사회 내부에서 활동가들 사이에서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은 끊임없이 오해되고 공격당하면서 반성폭력 운동의 질곡을
가져오고 있다.
이 워크샵을 제안하는 우리들은 성폭력의 문제가 자유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오히려 은폐되고 양산되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법까지 제정했으니
심각하긴 심각한가보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법규정에 걸리지 않으면 되는 정도로
성폭력의 문제를 사고하고 있고, 운동사회 내부에서조차도 규약에 위배되지 않는
정도 또는 싫은 소리를 듣지 않는 정도가 성폭력에 대한 인식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여 우리는, 성폭력을 단순히 원하지 않는 성적접촉의 문제로만 이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여성의 ‘생활권, 노동권, 학습권, 생존권에 대한 침해로서의
성폭력’을 알려내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또한 그 동안 사건해결의 주된
방식으로 여겨졌던 대책위 구성을 통한 해결에 대한 평가,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에 대한 확인, 가해자 처벌주의의 한계 고찰 등을 통해 기간 오해되어왔던
반성폭력 운동의 제 의의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
자체의 전화와 공동체 내에서의 자기대안 모색이 가능하도록 하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관성을 넘어선 반성폭력 운동의 의의를 공유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이 모색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반성폭력 워크샵의 상 및 방향성 

- 기간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담론과 운동의 방향 및 방식에 대한 평가
- 반성폭력 운동에서 미확인된채 사용되는 개념들을 재규정하는 자리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을 살피고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
- 일방적인 방식의 강연이 아닌 토론이 가능하도록 하는 자리


명칭
새로운 반성폭력 운동 시작을 위한 2004 가을 『반성폭력 워크샵(가)』


참여대상
반성폭력 운동이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보다는 실천적으로 풀어내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시기 및 장소 
2004년 10월 1일(금)~2일(토)
모대학교에서 (가)


내용구성

1. 사전 프로그램
공동체 프로그램, 모둠별 프로그램

2. 본 프로그램 - 주제별 발표 및 토론
1) 지난 반성폭력 운동 되짚어 보기 (성난 얼굴로 뒤돌아보라.)
2) 확인되지 않은 채 넘어갔던 개념들 짚기 (what do you mean?)
3) 2004 환경현장활동 사례 발표 
4) 진행되고 있는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 살피기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3. 정리 프로그램
대중운동 아이템 짜기


준비경로 
1시기 (9월 첫주) : 2004 가을 반성폭력 워크샵(가) 내용구성을 위한 첫모임
2시기 (9월 2~4주) : 자료수합 및 정리, 단위 및 개인 참여자 조직, 내용구성을
위한 지원 강연(?), 자체 토론   
3시기 (9월 마지막주) : 최종 정리 및 마지막 조직화 


1차 준비모임 
9월 5일 늦은 2시 장소미정(추후공지) 

※ 앞의 워크샵에 대한 기본안들은 1차모임을 통해 충분히
수정보완될 수 있습니다. 준비과정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새로운 여성운동을
고민하는 모임 She`s

메일: tssmsm@jinbo.net
홈페이지  http://w1.hompy.com/itzki0/s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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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와 함께 해요.


 

 

우리 모두 이주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해 SF와 함께

 

이주노동자와 연대 투쟁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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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나태함을 떨쳐내고

이래저래 시간이 없다. 안정적으로 무슨 고민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란 뻥 속에 내 내면의

 

풍만함이 꺼져간다. 계속되는 정신적 허기짐.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내 몸은 점점 쫓기고 정신만 없어지는 듯 하다.

 

멍한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이래저래 암것도 안하고 죽이는 시간들을 건설적인 고민을 하는

 

시간으로 바꿔야한다. 재밌는 프로를 보고 웃고 노는 시간을 치열하게 정세글을 읽는

 

시간으로 바꿔야한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더 많은 고민들을 생산해내야 한다.

 

조금만 정신차리고 나태함을 떨쳐내자. 다시 한 번 내 스스로 활동가라 칭할 수 있는 나를

 

만들자. 멋진 내가 되자. 멋진 활동가 난타가 되자. 내가 닮고 싶은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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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시대가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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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Emma Ries)



"판사 당신도 기립하시오. 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이오"

예심판사 앞에 선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가
체르노비치의 예심판사 앞에서 섰을 때
그녀는 요구 받았다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가
그 이유를 대라고
이에 답하고 나서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그녀가 매섭게 소리쳤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ot B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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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운 전지현.

전에 곁에 있던 여성동지들이 전지현 칭찬을 하면서 시월애를 꼭 보라고 전지현을 위한 영화라고 전지현 정말 예쁘다고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정말 애써서 본 적이 있다.

 

틀어놓고 정말 오랫만에 실컷 피로가 풀릴 정도로 잔 것 같다. 정말 이럴수가 있냐고. 이렇게 지루한 영화를 보라고 하다니...

 

하지만 전지현은 정말 예뻤다. 왠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듯한 사람으로 느꼈던 거 같다. 정말 한국 미디어는 이상적인 인물을 찾아낸 거리라. 미의 완벽한 모델... 모두는 그가 되기를 원하고 그를 꿈꾸리라. 정말... 남자가 봐도 부러울 정도의 외모는 모두를 홀리기에 충분했다.

 

각종 CF에서 전지현 붐을 일으킬 정도로 놀라운 인물인 것 같다. 왠지 모르게 과장되게 섹스어필로 인식되는 이효리와는 틀리게...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그런 섹시함과 도도함, 그리고 신세대의 대표로 생각되는 그런 발랄함과 신선함이 너무 빠져들게 자연스럽다.

 

다른 세상에 사는 그, 그가 왠지 좋다.



 

 



♪ 전지현 네이버 광고 ♪

 

 

Post Script> 요즘 왠지 그라는 표현을 남성, 여성을 넘어 사용하는 것이 좋다. 원래 우리나라말에 언니라는 말이 여성이 아닌 모든 상급자를 뜻하던 것처럼 그도 모두를 망라한 3인칭 대명사일 뿐이었다. 왠지 요즘은 그렇게 철저하게 구분짓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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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내놓고 크게 소리칠 날이여

 

너무나도 갑갑할 때가 있다.

 

내 꿈은 뭐다. 근데 이 꿈을 큰소리로 외칠 수 없다.

 

심지어 밖으로 내놓기조차 힘들다.

 

항상 안으로 더욱 더 안으로 그 이름을 삭힐 뿐이다.

 

60, 70년대 자유라는 이름이 그리도 애절했을까? 민주주의란 말이 그토록 애절했을까?

 

민중들의 꿈은 언제나 그렇게 그렇게 애절하고 갑갑해야만 하는 것일까?

 

언제나 밖으로 표출되면 안되는 항상 위험한 것이던가?

 

때로는 술 진탕 마시고 크게 외치고 싶다. 내꿈이여 내꿈이여

 

하지만 역시도 안으로 삭일 뿐이다. 결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나도 한 땐 복종을 찬양하고 복종을 당연시했던 한 인간이었다.

 

한용운의 '복종'이란 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한 인간이었다.

 

왠지 모를 엘리트적인 위치 속에서 이 사회의 이끄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아래 이 사회의 유지(개선, 보수가 선행하는 이었지만)를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무의식속에 엘리트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사회 유지를 최우선시 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대학에서의 시간들은 그런 나를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밎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내 꿈을 민중들의 꿈과 동치시킬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게 되었다.

 

민중들의 삶 속에서, 민중들과의 만남에서 내 꿈이 새순 돗 듯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사회에 막혀버린 묻혀버린 그 민중들의 꿈, 그 꿈이 즉 나의 꿈이라는 것을...

 

이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선 그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눈 돌리고

 

눈 감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꼿꼿이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그 사회는 그 꿈을 향해

 

달릴 것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 거리낌없이...

 




♪ 피엘쏭 타는 목마름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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