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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 편

이번 설 연휴에 일거리를 잔뜩 싸들고 올라왔다. 논문과 칼럼을 비롯한 각종 원고들!!! 노트북에 책이랑 자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옷보따리만 안들었지, 영락없는 상경처녀... ㅡ.ㅡ 그러면서도, 밀린 영화를 꼭 보고야말겠다는 야심찬 결의를 했더랬다. 그리하여, 어제 그제 낮에 계속 영화를 보러나갔다. #1.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2008년 작

그저께, 모처럼 4인방이 모여 감상. 언론과 각종 개인 블로그들에서의 평은 더할나위없는 상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찜찜한은 도대체 무엇? 한마디로, 영화가 지나치게 매끈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도시 생활의 피로를 절감하면서 부쩍 증폭된 향수를 가진 이들, 딱 그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었다... 심지어 공사판 장양은 저 9남매를 위한 영화라고까지 '막말'을 했다. ㅡ.ㅡ 농약치고 트랙터로 모심는 옆논의 모습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할아버지네 농사모습, 할배할매는 물론, 마을주민과 자식들가지 모두 만날 때마다 소이야기만 하는 모습, 우시장의 부감슛까지... 원래 나는 이 영화가 그냥 '다큐'인 줄 알았었다. 물론 다큐라고 연출이 없지야 않겠으나, 이런 인간극장 식의 감정고양 매끈 연출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더구나 엔딩 크레딧은 이땅의 모든 아버지들과 소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하니, 도대체 그 뒷바라지 한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죄다 어디로 가신게냐??? 물론, 이 모든걸 덮어줄만한 진실의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경화된 관절로 한발한발 걸음을 옮기는 소의 애달픈 모습,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기어다니면서도' 소를 챙겨주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 둘을 향한 궁시렁쟁이 할머니의 애틋함 - 그래도 삶은 지속되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 사이의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라는 그 서럽고도 애잔한 진실을 내 어찌 폄훼할 수 있을까? 그런데, 죽어라 40년 동안 일만 하다가 스러져간 소는, 할배 할매의 사랑으로 행복했을까?


#2.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타셈 싱 감독, 2006년 작

결국 못 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보게 되어 어찌나 다행인지... 아마도, 내 평생 본 판타지 영화 중에 최고??? 우선, 그 초현실적인 영상 - 매 장면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뛰어넘고 있었다. 사실, 오프닝 씬에서부터 나는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음악은 또 어떻고?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거니, 꼬마 알렉산드리아의 감정 연기는 정말... 꼬마아이는 실제로 영화를 찍으며 영어도 배우고, 빠진 앞니도 새로 나고, 그리고 성장했단다. 꼬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해... 현실과 허구를 연결하는 빼어난 내러티브와 세상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은근히 귀여운 유머들... 이 감독은 전세계축구 스타들이 공차기로 연결되었던 그 유명한 펩시 광고를 찍은 양반이다. 그렇게 수 년 동안 돈모으고 개인재산 팔아서 이 영화를 찍었단다. DVD가 출시되면 꼭! 장만해두어야겠다... 안 보신 이들.... 어여 보세요. 정말 강추예염... #3. [렛미인] 토마슨 알프레드슨 감독, 2008년작

사실, 친구 M과 함께 이 영화를 본 건 작년 말이다. 여행 떠나는 날 오전에 잠깐... 이것도 금방 극장에서 내릴 줄 알고 서둘러봤는데, 의외로 여태 상영 중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은 좀 복잡미묘하다. 인간세계, 혹은 학교라는 정글로부터 외면받은 소년소녀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에 빠져가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눈과 피, 푸른 어둠... 이 서늘하고도 강렬한 이미지도 잊혀지기 어려운 아름다움. 그런데,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좋은 걸까? 주인공 하나 살리기 위해 전 부대가 몰살당하는 헐리우드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이 영화의 플롯은 뭐가 다른 걸까? 본인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뱀파이어 딸 이엘리를 위해 끊임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얼굴에 염산을 붓고,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딸에게 자신의 피를 먹인 후 빌딩에서 떨어지는 이엘리 아빠의 모습이나, 뱀파이어로 변한 자신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마을 여인의 모습이 그리 쉽사리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야 어찌 되건말건, 둘이 알콩달콩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더래요... 이건 아니잖아??? 우쨌든, 누군가 초대해주기 전에는 들어갈 수 없는 뱀파이어의 모습 ('나를 들어가게 해줘: let me in')은 비단 그 세계뿐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도 들어맞는 것 같다. 누군가 마음을 열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억지로 혹은 강제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니 말이다 ㅡ.ㅡ 이거 같이 보러갔던 친구랑 '바시르와 왈츠를'도 함께 보자고 했었는데 어찌나 시간 맞추기가 어려운지... 영화 내려버릴까봐 걱정일세!!! 혼자 가서 몰래 보면 배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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