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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들

서로 어울리지는 않으나 흥미로운 책 몇 권의 기록을 남긴다. #1. 진중권 [호모 코레아니쿠스] 웅진지식하우스 2007

키득거리면서 읽되 쌉싸름한 각성을 주는 책... 이런 거 보면 진중권의 글솜씨란 참... 가볍건, 무겁건, 한국인 혹은 한국사회를 낯설게 보기로 객관화시켜 현재의 질서와 습속이 얼마나 괴이하고 폭력적인가를 드러내는 글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물론 읽는 사람이 많아야... ㅡ.ㅡ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표현들 남겨둔다 *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어느 작가는 이렇게 물었다. 몰라서 묻는가?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앨버트 허슈만은 (정념을) '이해관계'라고 답한다. 이해관계란 궁정에서는 정치적 이익을, 시장에서는 경제적 이익을 가리킨다. 여기서 모든 정념의 즉발적 표출을 단 하나의 정념, 즉 물질적 소유욕으로 억누르는 근대인의 전형이 탄생한다. 중세인이 질주하는 야생마라면, 근대인은 소유욕이라는 엔진에 계산능력이라는 핸들을 단 자동차다. 이렇게 미래의 이익을 위해 순간의 격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계산하는 근대인, 그런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라 부른다. * 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 죄책감은 죄를 짓는 순간 발생하나, 수치심은 그것이 드러나는 시간에 비로소 시작된다. *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말도 못하는 아기들에게 원어민 선생 데려다가 영어를 가르치고, 이제 겨우 두세살 먹은 아기들에게 철학 수업을 받게 하는 '광기'는 공포에서 나온다. 공포는 인간을 잔혹하게 만든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에게 하루종일 과외공부를 시키거나, 영어발음을 좋게 한다고 해서 아이의 부리를 잘라내는 '잔혹극'도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 한국인의 신체가 아무리 그로테스크해 보여도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이다. 다만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의 고통을 제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한국인의 몸을 이루는 세 가지 역사적 층위가 최적의 배합을 이루도록 재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존재의 미학, 즉 요소들을 선택하는 테크네(techne)와 그것들을 배치하는 메트릭(metrik)이다.


#2. Joe Haldeman [Forever Free] Millenium 1999

말하자면 Forever 시리즈 삼부작의 최종편이자, 직접적으로는 Forever War 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더만 할배께서는 이 글을 안 쓰셨어야 했다 ㅜ.ㅜ SF 소설에게 '안드로메다'로 간다는게 욕은 아닐진데, 마지막 장은 정말 이 소설이 안드로메다로 직행하고 있구나 하며 한숨만 푹푹 쉴 밖에... 주제 자체는 심오하다. 심지어 창조주로부터도 독립한 'forever free'라니... 하지만 이건 아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차마 쓰지는 못하겠으나 (누가 읽기는 하려나) 그 어처구니없음이라니... 할배... 너무 섭섭하고 속상해요.... ㅜ.ㅜ #3. 스타니스와프 램 [사이버리아드] 오멜라스 2008

[솔라리스]에 완전 반했던지라, 오멜라스의 램 시리즈 1편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완전 만족!!! 일리아스의 로봇판 버전인 사이버리아드 - 호쾌한 범 우주적 스캔달과 해괴한 만담, 엽기적 행각...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인간 사회, 지식인, 지배계급에 대한 비틀리고비틀린 풍자... 엄청난 신조어와 패러디 용어가 많아서 번역이 정말 어려웠을텐데, 문맥도 살리고 글맛도 살리고, 번역자 송경아의 능력에도 새삼 감탄했다. 조카 다람쥐가 딱 좋아할만한 스토리인데, 아직 초딩 3학년이 보기에는 불가능하다는게 아쉬울 뿐... 램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봐야겠는걸!!! 이 분은 어쩜 이렇게 박학다식한걸까??? #4.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술자리에서나 논하던 이야기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서 '본격적'인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싶다. 지식인, 특히 대학생태계에 거주하는 지식인들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가장 '핵심적' 질문을 책의 앞부분 고병권의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때는 (1980년대 지칭) '어느 계급 편에 설 것인가'를 물었지만, 지금은 '어느 계급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권력이나 부가 될 수도 있고, 투쟁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사회적 상징자본을 넘어서 구체적일 물질적 부와 정치적/사회적 권력까지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직업이 교수 말고 어디 흔하겠나? 이제 그러한 물질적 토대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의식을 결정하고 있으니, 본능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겠다. 이 책이나, 최근 읽은 다른 사회학 논문은 한결같이 대학사회의 미국 편향을 비판하고 있다. 논문은 교수사회의 내면화된 국가주의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별도의 현상이 아니며, 성찰없는 학문적 자세가 그 본질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고 다 친미적/시장적 시각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리영희 교수도 미국에서 공부를 했고, 최장집, 신광영 교수도 소위 미 주류 대학 출신이다. 문제는 얼마나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한국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느냐 하는 능력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국가주의도,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태어났'음을 꾸준히 내면화한 범생이들의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미국의 과학자들, 특히 NAS에 속한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기독교 신자인 경우가 드문 것에 비해 한국의 과학자들 사이에 기독교 신자가 많은 것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결국, 기존의 것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의심 없는, 즉 성찰없는 모범적(!) 학습행위가 이러한 문제의 근간이 아닐까? 소위 한국사회 최고 엘리트들의 문제를 달랑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단정해버리기는 뭐하지만, 달리 다른 답도 잘 모르겠다. 근데 좀 슬프지 않나? 가장 자유롭고 회의적인 이성을 가졌을 거라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니... 아참, 한국 사회 지식인의 이념적 지도를 그리면서 리영희 교수를 언급한 부분은 참 인상적이었다. "'해방된 사회에서 동창생이 없다는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만사에 불편했다'고 되뇌고 했던 그는 평생 누구와 무리지어 세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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