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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책과 영화

벌써 3월이다. ㅡ.ㅡ 이제 세월의 흐름에 둔감해질 때도 되었건만, 문득문득, 여전히 놀란다! #1. 조한상 지음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 2009

후배라고 대전에 내려왔는데, 서로 애틋하게 챙겨주는 사이는 아니고, 뭐 모른척 지내기도 웃기고... 그냥 만나서 수다만 떨기에는 둘 다 한가하지는 않고.... 비어가는 머리를 채워야겠다는 문제의식은 있고.... 이런 오묘한 사정이 결합하여, 얼마전부터 해미와 간이 강독 모임을 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2주에 한번 정도 맛난 차를 마시며 책이야기를 해보자는... 첫번째 책으로 이걸 골랐다. 몇 년전부터 그 답을 알고 싶었다. 도대체 공공성, 그 실체가 묘연한 이 단어의 '정의'가 무엇인지... 저자가 지적한대로, '공공성'이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쓰이는데, 소위 '개념의 인플레이션' 현상으로 그 누구하나 정확한 의미를 정의하지 않은 채 남발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1장에서 짚어준 공공성 개념의 역사와 핵심 의미요소에 대한 설명은 유용했다. 인민/공공복리/공개성이라는 3대원칙은 상당히 명료하고, 개별 사안에서 과연 이것이 공공성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하는데 유용한 잣대로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공공성과 국가공권력이 어떻게 등치되었는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혼란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는 남아있다. 계급분할이 현존하는 이 사회에서 도대체 '공공복리'라는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의 '공공 public'은 과연 누구? '선의'에 기반한 시민사회가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되는겨? 어쩌면 논의는 다시 롤즈의 정의론으로 돌아가, 가장 취약하거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는 편익이 공공성이라고 해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ㅡ.ㅡ 첫술에 배부르랴. 어쨌든, 이제 이렇게 논점들이 정리되고 토의가 본격적으로 (?) 시작되었으니 좀더 심화된 연구결과들이 빨리(?) 나와서, 우리같은 어린양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참,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사법관에 의한 헌법해석의 독점을 비판한 부분.... 격하게 공감했다. 헌법해석의 민주화라...


#2. 이영희 [역정-나의 청년시대] 창작과 비평사 1988

링크된 그림은 2006년도 한길사 저작집에 포함된 것이고, 내가 가진건 창비의 오래된 책... 예전부터, 평소의 행적을 볼 때 자서전을 쓰실 분 같지는 않은데 무슨 연유일까 좀 궁금했었더랬다. '책을 내는 변명의 말'을 보면 이에 대한, 그야말로 변명이 나온다. "혁명가는 지나온 혁명이 그 인간의 전기이다"며 자전 쓰기를 거부했다는 모택동과 주은래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본인 책의 독자들에게 대한 도의적 의무감에서 이 글을 썼다는.... 엄혹했던 시절 '의식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많은 대학생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저서를 통해 문제의식과 비판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후의 실천적 삶의 과정에서 당한 시련과 고통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쁨과 동시에 무거운 부담을 느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에 다시 구금되면서 다시는 지적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전망 하에, 자신의 삶을 털어놓고 지적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연배에게서 동류를 찾아보기 힘든 선생의 까칠함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혼란과 야만의 시대에, 지식인이되 금전이라는 물질적 자본과 학연이라는 사회적자본을 갖지 못한 이의 삶이란... 뭐 글쎄... 약간의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 어느 누가 쉬운 삶을 이어왔을까마는, 갖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지적으로 사상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대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후학들에게 귀중한 경험인 것 같다. #3. 이병훈, 윤정향, 김종진, 강은애 지음 [양극화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 환경미화원에서 변리사까지] 창비 2008

이 책은 희망제작소의 '우리시대의 희망찾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계획된 시리즈물 중 제 5권에 해당한다. 책의 구성이나 접근 방법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생생한 내러티브를 이렇게 조리있게 재구성하여 문제의식으로 정리해낼 수 있다니... 나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들이다. 그런데,결정적으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첫 페이지 소개글이다. "...또 삼성은 '우리시대 희망찾기'의 연구가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기금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이런 걸 병주고 약준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ㅡ.ㅡ #4.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음 [라피끄 - 팔레스타인과 나] 메이데이 2008

아마도 이 책의 미덕은 그 '눈높이'와 에 있는 '다양한 결'에 있는 것 같다. 국제정세 분석과 통계자료만 나열되었더라면, 그것이 아무리 최신의 자료이고 정치한 분석이라 해도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울림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역사와 정치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적 삶 - 이를테면 검문소, 난민촌 생활, 노동, 물 문제 -을 마치 우리옆에 있는 것처럼 그려내고, 또 사람들의 흔한 오해 -홀로코스트, 테러리스트/자살테러, 부르카 - 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방식이 참 좋았다. 결국 연대의 시작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네'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주변에 많이 선물해야겠다. 올해의 생일선물로 당첨 ㅎㅎㅎ 국제연대활동이 쉽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온 팔연대 활동가,회원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음... #5. 노영석 감독 [낮술] 2009

영화보다가 웃겨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홍보 카피에 "술과 여자의 공통점, 남자라면 거절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어서 저건 또 무슨 마초적 발언? 했는데... 영화를 보면 이해가 간다 ㅎㅎㅎ 그 찌질함과 팔랑귀... 근데 그게 너무 낯익은 설정과 상황이더라는... 누구는, 이 영화가 수컷들의 심리보고서라고 평을 하기도 했던데, 적절한 지적이다!!! 음, 어쩌면 영화의 배경이 강원도 정선이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우리 서클에서 정선으로 엠티를 갔던 적이 있었다. 정말 그 때 굉장했더랬다. 이틀 밤을 꼴딱 새며 마시고, 아침에는 해장술, 오후에는 체육대회... 무슨 극기훈련 ㅡ.ㅡ 사실, 당시에, 아침에 일어나 우리 너댓명이 해장술로 맥주 한 박스 먹는 걸 옆에서 본 신입생 하나가 도망가기도 했었다 ㅎㅎㅎ 이 영화가 중반 이상으로 넘어가면, 관람객들은 주인공과 함께 숙취를 경험할수밖에 없다. 빈 속에 보면 위험한 영화다. 그리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내내 웃다가 나올 수 있는 영화이지만, 한 가지 교훈은 있다. "낯선 곳에서의 과잉 친절을 조심하라!!!" ㅎㅎㅎ 영화를 본 자만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세상살이가 무료하신 분들께 강추!!! #6. 아리 폴만 감독 [바시르와 왈츠를] 2008

드디어 보게 되었다. 근데 먼저 본 친구들 말대로, 착잡하다... 최근의 가자 지구 공습 사건이 없었으면, 좀더 감동하면서 볼 수 있었을까? 꼭 그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가졌던 그 미묘한 감동과 반감의 갈등은 이 영화에서도 재현되었다. 그냥, 이스라엘 사람들 - 자신들을 돌아보는 성찰적 영화라고 단정해버리면 참 괜찮은 영화인데... 영상이나 음악이나, 구성방식이나, 또 침착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 하지만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분리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나마 이런 성찰적 움직임마저 폄훼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알겠으나, 그리고 극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상' 혹은 '객체'로 그려진 것도 일견 이해할 수 있으나, 나의 즉자적 감정은 영화를 여전히 '변명'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10년 뒤, 혹은 20년 뒤, 올해의 가자 학살을 돌아보는 이런 류의 영화가 또 나올까? 이제 족한 것 같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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