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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정치...

지난 1년, 아니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래로 '안정'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항상 유동적이고 잠정적이었으며, 그래서 확신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돌아보면,

생애 처음으로 당원이 되고, 또 당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 하면서,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뿌듯했었다.

가슴벅찬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대중강연이나 포럼 등에서 당의 이름으로 발표를 하고,

청중들로부터 비판과 격려, 혹은 하소연이나 부탁을 들으면서

당이 나에게 부여하지도 않은 괜한 (?) 책임감마저 느끼곤 했었더랬다.

 

사회운동에는 여러 영역과 층위가 존재하지만,

운동과 제도를 매개하는 고리이자 현실정치 수단으로서 "결국은" 당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당과 동일시하려고 했다.

별도의 정치서클이나 정파조직에 가담되어 있지 않은데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들은 특정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정치성과 관련해서라면 나에게 당이 유일하고 우선적인 귀속단체였다.

 

그러나 지난 통합과 독자생존을 둘러싼 논쟁의 과정은 피로 그 자체였다.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할 때와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기어이 다시 합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정세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석연찮기는 하지만 통합이 되면 어쨌든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합안이 부결되었다.

그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표현을 쓸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독자적인 생존 노력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일부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해버렸다. 그럴 거면 투표는 왜 했나 싶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이 국참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과 합쳐지는 걸 막아야 한다던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국참당과도 통합을 이루어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유시민은 사회 정책 영역에서 박근혜보다 더욱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라크 파병, 의료급여 제도 등을 둘러싸고 보여준 그의 행태, 민주노동당 사표론 등등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선거 때 전술로서 '비판적 지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유시민이라는 인물, 또 그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포진한 정당에 내가 귀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그렇다고 소위 독자파들이 보여준 당내 정치의 모습도 가히 아름답지는 않았다. 

더구나 당내 게시판의 정신병적 상태는 정말 환멸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도 저도 다 보기싫어 탈당하려 했지만, 미적거리던 와중에 홍세화 선생이 대표로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는" 그의 심정을 듣고서도 탈당할 만큼 매정하지는 못했다. 

 감정은 그러했지만 피로는 가중되었고, 모든 것에 심드렁해져갔다.

물론 당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가 그리도 힘들다는데,

출마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그 어떤 선거보다 정치가 아닌 정치 공학이 만개 중이다. 

또다시 온 국민이 정치평론가가 되었고, 내놓는 정책들만 봐서는 정당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짐작할 재간이 없어졌다. 소위 새인물들이 소용돌이처럼 정치판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데, 그야말로 빨려 들어갈 뿐 흐름이 바뀌지는 않고 있다.

나는 그저, 내 손으로 탈당계라는 비수를 꽂고 싶지 않을 뿐,

4월 선거가 지나면 진보신당이 자연스럽게 해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냉정하게 이 예측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홍세화 대표의 때늦은 신년 인사글 때문에 마음이 무척 무겁다.

 

 

척탄병이 되기에는 회의주의가 너무나 강렬하고, 

눈감아 버리기에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내면의 불꽃이 불편한 충동질을 해대는 판국이다.    

누구도 시지프스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면, 하기 싫어도 그리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자기기만과 자만심이 아닌,

자존감으로 정당활동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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