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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감정을 그린 책들

어제 삼성의 나름 사과 발언을 듣고 역시나 궁금해진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다음 행보.

여기에서 항소를 포기하면, 그동안 삼성 오더 받아서 충실한 개 역할을 했다는 걸 만천하에 인정하는 셈이고,  계속 재판을 끌고 가면 삼성도 물러선 마당에 몽니를 부린다고 욕을 먹을 것이고....

이러나 저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기념비적 쪽팔림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삼성의 개 소리를 듣더라도 항소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그동안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말이다.

 

어쨌든, 마치 삼성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이 사건이 종결된 것처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삼성과의 싸움이기는 했지만, 사회보장제도로써 산재보험을 운용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이 소송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자본더러 착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결국 공적 주체로서 국가기구가 최소한의 민주적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중요할텐데,  근로복지공단은 쏙 뺀 채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기까지 해보인다....  

하긴 필수적 영역에서조차 국가기구와 정부의 역할 내지는 존재를 찾아보기 힘든게 최신 트렌드이긴 하니까... ㅡ.ㅡ

 

#1.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마르케스 옹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고, 뭔가 한 시대가 저문다는 인상에 장중한 느낌표 하나를 추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할배의 글을 직접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게 언제인가..... ㅡ.ㅡ

할배는 그렇게, 아마도 여한이 없으실 채로 돌아가셨을 것으로 짐작하고, 나는 나름의 추모로 그의 작품을 읽었다. 사실은 스페인어를 익혀서 읽어보겠노라고 묻어두었던 책들이었지만.....

돌아가셨으니 최소한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과 그 날을 기다리다간 결국 하나도 못 읽을 수도 있다는 조금은 슬픈 현실 인식 사이에서 후자에 가중치를 부여한 것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4

 

이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이고 뭐고를 떠나서 APC model (age-period-cohort) 의 생생한 내러티브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치명적 유행병이자 사회악이던 콜레라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 (period),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정치는 격동을 거듭하고, 과학기술과 삶의 수단이 급속도로 변하고, 여행의 수단이 바뀌며, 사랑의 가치와 방식도 변하는 바로 그런 시절이다. 

 

이러한 시공간에서 태어나는 각 코호트는 서로 다르면서도, 한편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색다른 경험들을 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혼재하면서 사회적 세계는 그야말로 대혼란이다. 

 

이 와중에, 주인공들은 나이를 먹는다. 페르미나 다사,  플로렌티노 아리사,  후베날 우르비노는 나이를 먹고, 문득씩 그 나이듦을 실감하며, 하지만 여전히 격동 안에서 사랑을 이어간다. 

 

어떤 수학적 모델이 APC 를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플로렌티노에 대해서는 이 무슨 변태같은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든 것도 아니었고, 페르미나의 기질도 당최 나의 구미에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나는 후베날 박사와 암묵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_) 그들의 늙어감과 함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어쩐지, 그들의 격정을, 나이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미숙함과 실수를, 육신은 초라해졌지만 여전히 빛나는 사랑에 나도 모르게 응원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쓰고 보니, 뭔가 홀렸거나 사기를 당한 것 같잖아 ㅋㅋㅋ

 

이렇게 다른 사람을 홀릴 수 있는 위대한 이야기꾼, 삶의 통찰이 번뜩이는 열정적인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게 새삼 아쉽구나...   할배, 영면하세요......

 

 

#2. 앨리 혹실드 [나를 빌려드립니다]

 

나를 빌려드립니다 -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
나를 빌려드립니다 - 구글 베이비에서 원톨로지스트까지, 사생활을 사고파는 아웃소싱 자본주의
앨리 러셀 혹실드
이매진, 2013

 

어익후, 대리모 합법화라니, 자본주의 상품화가 이 정도였어? 하는 놀라움 한 편에, 뭘 이 정도 가지고, 한국에 한 번 와보시면 깜놀하실 걸? 하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던 책....  장례식장에서 카드로 조의금을 결제할 수 있고 비슷비슷한 상조회사들이 장례의 전과정을 전담하며, 모든 산모들이 분만 후 산후조리원으로 직행하고, 결혼식은 판에 박힌 기성상품이 된지 오래인 데다, 아이들의 돌잔치 또한 극도로 규격화되어 있는 그런 사회.....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선배형들 가족 중에 문상 갈 일이 있으면 집으로 갔었다. 동네에는 가끔씩 초상을 나타내는 등이 대문에 걸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누가 자기 집에서 상을 치르나??? 

 

 

대인 서비스, 그것도 감정노동을 대신하는 여러 형태의 대인서비스 사례들을 읽으면서 눈에 꽂혔던 사례 중 하나는 필리핀 유모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인 중산층 부모들은 필리핀 유모가 삭막한 미국과 달리 아직 전통 가치가 살아있는 필리핀에서 왔기 때문에 아이한테 진심으로 정을 쏟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필리핀 유모는 오프라 위프리 쇼를 보면서 새롭게 학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대인서비스, 감정노동, 가사노동자이자 생활의 '멘토'이기도 한 이들의 삶과 경험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또한 이러한 개인서비스 상품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결국 아웃소싱하는 것은 '인내심'이라는 표현도 비수를 맞은 듯했다. "시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바라는 방식마저 바꾼다. 손에 지갑을 들고 시장에 갈 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돈을 내고 사려는 물건이다. 반대로 서비스 영역에서 우리의 시선을 빼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 곧 완벽한 결혼, 맛있는 '전통'음식, 훌륭하게 자란 아이, 심지어는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게 관한 경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하는 과정을 쉽게 무시하게 된다." 아이를 돌보면서 가져야 할 인내심, 하기싫은 가사노동을 하면서 가져야 할 인내님, 치매에 걸린 부모를 돌보면서 가져야 할 인내심 - 이런 것들이 아웃소싱된 것이다. 기왕 인내심을 아웃소싱해버린 마당에, 이들 감정노동자의 기분은 이제 안중에 둘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용주와 피고용인 사이에는 애매한 관계의 혼란이 남는다. 이러한 종류의 감정노동, 그리고 가장 사적인 대역 노동이라는 것이 차가운 계약적 관계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친밀함으로까지 발전하지만, 그런 관계는 때로 갈등을 야기한다. 돈으로 거래되는 수고와 보답이라는 차가운 이름표를 달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진심을 표현할지 알기 어렵고, 더구나 비금전적 친밀감이라고 포장된 착취도 너무나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내게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정이와 담이가 우리 집에서 자랄 적에 이러한 갈등은 언제나 한구석에 일촉즉발의 시한폭탄처럼 남아 있었다. 우리 가족들이나 정이네 식구들 누구도 돌봄의 관계가 돈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친가족보다 더한 유대관계에 기초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있었다. 두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아울 엄마에게 '친이모도 아니면서...'라고 떼를 쓰던 순간이 아마도 갈등의 최고조가 아니었나 싶다. 둘 다 지금은 너무나 부끄러워하는 일이지만, 그 때는 최소한 관계에 대한 그들 나름의 냉정한 진단이었다. 

 

 

(암묵적인) 호혜성에 근거해서 '그냥 베푼다'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우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친구들은 시장이 도래하면서 같이 사라진 게 아니라 우리가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팔 때 여전히 옆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표현이 딱, 이만큼의 진실을 잘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 안타까워하거나 목가적 회고를 통해 과거가 좋았었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이렇게 가야 하는 건지, 호혜에 기반한 비시장적 협력의 가능성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고민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시장 세력들이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의 안정을 해치면서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을 살면서 의지가 되고 위로가 돼주는 것도 시장이다"는 말이, 슬프지만 진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대인 시장서비스들은 결국 "경영자들이 가정생활에 잘 대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어려운 회사 생활에 좀더 쉽게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다" .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심지어 그 약을 팔아서 돈까지 버는 셈이다.. ㅡ.ㅡ 세상에 이렇게 효율적인 제도가 있나 싶다 .. ㅜ.ㅜ

 

책 다 읽고 났더니 자본주의 진짜 무섭다는 생각에 압도되어 머리가 멍~ 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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