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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에 초대합니다 - 기상이변, 피할 수 없는 재앙인가





마포사회포럼은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다함께'가 주최합니다.
포럼에서는 사회 연대와 공익을 위한 캠페인과 주장을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포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서로의 경험과 주장을 함께 나누는 토론 광장입니다.
 
 
 제23회 마포사회포럼
위기의 지구 환경: 기상이변, 피할 수 없는 재앙인가
일시 : 2005년 1월 26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 : 책사랑방 (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앞 40m 직진 티파니호프 건물 5층)
문의 : 019-391-2789
블로그 : http://blog.empas.com/wp2020 (참고할만한 글을 볼 수 있습니다.)
* 책사랑방은 1인당 이용료가 3천원입니다. 참가비를 준비해 주세요 ^^
 
 
 
초대의 글
 
"인간과 환경의 관계는 오늘날 전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최근 10년 동안 환경 재앙이라는 유령이 이전 세대들은 상상도 못했을 규모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이다. 지구 온난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지난 10년 동안 두드러졌던 기상 이변의 대부분은 지구 기온 상승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홍수·기근·태풍처럼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 패턴이 더욱 흔해진 듯하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온실 가스 방출과 환경 오염의 영향이 커진 결과임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많아지고 있다.
 
2002년 8월 국제연합(UN)의 과학자팀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인간과 지구를 위협하는지를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과학자들은 아시아 대륙의 대기권에 넓이 2천5백6십만 제곱킬로미터, 두께 3.2킬로미터의 인공 오염 안개인 “아시아 갈색 구름층”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를 발표한 국제 기후학자 팀의 책임자는 폴 그룬첸 교수였다. 그는 극지방 만년설 위의 오존층에 뚫린 구멍을 연구해 1995년 노벨상을 받았다. 오존층의 구멍은 분무기(에어로졸), 냉장고, 공장에서 나오는 ‘염화불화탄소’라는 화학 물질 때문에 생겨났다. 이 뛰어난 과학자들이 아시아를 뒤덮은 오염 물질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고한 것을 모든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시아 갈색 구름층”은 보고서가 “움직이는 짙은 안개”라고 부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개는 자동차와 공장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과 먼지, 숲을 태우거나 요리할 때 태우는 나무에서 나오는 재와 검댕으로 구성돼 있다. 이 유독 혼합물 외에도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도 갈색 구름층을 형성하는 한 요소다.
 
UN 과학자 팀은 여기서 생성되는 화학 안개가 일조량을 15퍼센트 가량 차단한다고 말한다. 또, 대기권 아래에 열을 가두어 그 지역의 기온을 높인다. 그 결과 기후 패턴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UN 과학자 팀은 화학 안개가 인도의 겨울철 쌀 수확을 10퍼센트 감소시켜 수백만 명을 [기아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추정한다.
 
대다수 과학자들과 각국 정부는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 가스 방출로 인한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가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클라우스 퇴퍼에 따르면, 이러한 오염의 핵심 원인 중에는 “차량, 공장,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화석 연료와 수많은 비효율적인 요리 기구에서 방출되는 온실 가스의 극적인 증가”도 포함된다.
 
온실 가스를 방출하는 주범은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방출량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유럽이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언론은 불규칙하고 무계획적으로 확대되는 아시아 도시들에서 자동차 사용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갈색 구름층”이 만들어진다는 점을 인정한다. 거대 자동차·석유 회사들과 여타 기업들은 자동차, 타이어, 석유를 더 많이 판매하는 것뿐 아니라 도로 건설 계획에도 관여해 이윤을 늘리고 싶어한다.
 
브리티시 피트롤리엄(BP), 포드, 제너럴모터스 같은 기업들은 인도와 중국 같은 나라들의 “시장 잠재력”을 보고 침을 흘린다. 이런 기업과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들은 깨끗하고 값싼 대중 교통을 계획하기는커녕 대중 교통을 망치고 유럽과 미국의 도시들이 이미 시달리고 있는 환경 오염을 강요하고 있다."
(폴 먹가(Paul McGarr), 응용 수학자 출신의 영국 좌파 저널리스트)
 
반자본주의 행동의 주요 요구로 환경 관련 쟁점이 많다. 지구 온난화, 핵무기, 유전자 변형 농산물, 기타 쟁점들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 체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 그럼 이 가운데 기상이변과 관련한 지구 환경의 위기에 대해 얘기해보자. 마포사회포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참고하는 글들
 
<녹색은 적색이다>, 폭 먹가, 북막스
영화 <투모로우>, 영화평 지구온난화가 몰고올 재앙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존 벨라미 포스터, 현실문화연구
<기후의 반란>, 실베스트르 위에, 궁리
<지구환경보고서>,월드워치연구소
<바이탈사인>,월드워치연구소
<한국환경보고서2004>,녹색연합
 
 
 
 
 
영화 그랑블루 OST, "The Big Blue Overture"(Eric S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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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용모단정?

다함께 47 호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용모단정?    

http://www.alltogether.or.kr

 

 

청년들의 젊음을 압류하는 자본주의 - 승영

 

“청년 실업이 20만 명을 육박하는 이 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작년 유행어 순위 5위에 오른 한 시트콤의 유행어다. 재작년 초에 시작한 이 시트콤에서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회를 거듭할수록 30만 명, 40만 명으로 늘어갔다. 종영 때는 50만 명으로 늘었다.

 


2004년 말 노동부는 청년실업자, 비경제 활동 인구, 유휴 비경제 활동 인구가 모두 90만 5천 명이라고 발표했다. 실제 일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거의 1백만 명이라는 얘기다.
올해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13퍼센트 줄일 계획이라 청년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청년 실업자들의 카페나 사이트에서는 “미치겠다” “너무 힘들다” “우울하다” 같은 절박한 단어를 쉽게 볼 수 있다. 청년 실업자들은 텅 빈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간식으로 따뜻한 군고구마 하나 사먹기 힘든 사람이 많다. 주름살 진 부모님 얼굴을 볼 때마다 죄송스러움이 온 몸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조금이나마 생계를 꾸리고자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년 인터넷 검색순위에서 알바는 4위로 올랐으며 취업은 그 순위가 5계단이나 떨어진 32위에 올랐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빼앗기면, 높은 취업 경쟁의 벽을 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것이 딜레마다. 

 

정부와 주류 언론은 개인들의 변화를 요구한다. “눈높이를 낮추고”, 기업이 요구하는 새로운 능력들을 기르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젠 더 이상 취업이 어려워 공장으로 가려고 생각중입니다. … (지원서를) 한 30통은 넣은 거 같은데 연락이 없네요 ㅡㅡ;”  한 청년 실업자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은 눈물겹다.

 

취업 준비 여성 열 명 중 한 명은 성형수술 경험이 있다. 그 사람들 중 일부는 목소리 성형까지 한다고 한다.
디자이너가 꿈인 한 여대생은 “기업들이 여성복 디자이너들에게 ‘피팅모델(만든 옷이 괜찮은지 보기 위해 입어 보는 사람)’까지 함께 시키기 때문에 키 167 이상에 ‘몸매도 좋아’야 해요. 제 친구는 키가 작아서 포기했어요” 하고 말했다. 
오늘도 학원가와 도서관에는 토익점수 5점이라도 더 받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 중 대다수가 연인과 친구를 만나는 시간,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공부하고 있다. 

 

사람들이 익히지 못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젊은이들은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도 자릿수도 세기 힘든 비용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다못해 학원 수강료도 큰 부담이다.
청년 실업은 개인들이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개인의 노력이 경쟁 무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일자리 수를 늘리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1년 5개월째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는 한 대학 졸업생은 “제가 100을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누가 120을 노력하면 아무 소용없으니까요. 그게 참 힘들어요” 하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 기회를 틈타 노동유연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유연화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늘릴 것이다. 그러나 실업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대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누구에게나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래희망이 하나쯤 있었다. 과학자, 문학가, 연예인 등 …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이 꿈들을 포기하는 것은 그저 의지가 없어서나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한 대 한 대 맞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권투선수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가난, 입시, 실업 같은 자본주의의 강펀치에 조금씩 꿈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은커녕 노동력을 파는 것조차 힘들다.

 

여러 경제 지표들은 한국 자본주의에 더 큰 불황을 예고한다. 그것은 젊음을 압류당한 수많은 청년들에게 더 힘든 현재와 더 불안한 미래를 뜻한다.           

 

 

용모단정? - 이예송

 

나는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많은 여성 구직자들 중 한 사람이다. 고교 졸업자의 취업률이 11년 만에, 대학교 졸업자 취업률은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살인적인 실업률이 계속되고 있다. 나는 최근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여성에게는 취업문이 더 좁고 ‘외모’를 엄격하게 따진다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무직 모집 광고에는 ‘용모단정’이라는 자격요건이 명시돼 있었다. 도대체 용모가 단정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한 중견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뚱뚱하거나 키가 160센티미터 이하인 여성은 면접에서 감점 처리한다”며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는 안경을 쓰거나 지나치게 수수한 것도 감점 요인”이라고 밝혔다.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가 지난 9월 말 기업 인사담당자 2백43명에게 “채용 시 구직자의 외모가 영향을 미치는가” 하고 물은 결과, 66.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73.7퍼센트의 인사 담당자들은 “실력이 뛰어나지만 외모가 호감형이 아닌 사람보다, 실력이 부족하지만 외모가 호감형인 사람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사무직보다 더 노골적으로 외모를 고용 기준으로 삼는 직종이 바로 서비스직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외모에 따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천차만별이다.
의사·변호사 등 상류층의 피부 관리를 전문으로 한다는 한 피부 관리 숍에서는 키 163센티미터 이상, 외모에 자신있는 20∼25세 이하 여성들에게 하루에 적게는 18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의 일당을 지급한다. 
반면 평범한 여성들에게는 일당 3∼4만 원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 기회만 주어진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전일 근무하는 여직원에게 50만 원을 주겠다는 한 중소기업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외모는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인생과 성공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최근 여성 포털 사이트 팟찌닷컴이 20∼30대 여성 4백32명을 대상으로 “올해 가장 큰 스트레스”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3퍼센트가 다이어트를 꼽았다. 이 중 63퍼센트가 “몸매로 인한 사회적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취업 시즌을 맞아 많은 여성들은 집단으로 성형수술이나 몸매관리를 받기도 한다. 한 도우미 대행사는 한 성형외과와 제휴를 맺어 도우미 여성들의 경우 성형수술 시 수술 비용의 30∼40퍼센트를 할인해 주는 혜택(?)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이러한 광적인 외모지상주의는 평범한 여성들을 끔찍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방송이 나간 뒤 많은 사람들의 동정과 관심을 받은 ‘선풍기 아줌마’도 그러한 예다.
그녀는 여러 차례 성형수술 실패 후 외모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자신이 직접 파라핀과 콩기름을 얼굴에 주입한 결과 얼굴이 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고 말았다. 

 

야만적인 이 사회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의 한숨과 눈물에서도 고스란히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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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다함께 47 호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 전술은 파산했다.   

http://www.alltogether.or.kr

 

 

병 주고 약 주는 집권당 개혁쇼 - 전지윤

노무현과 열우당은 2004년의 마지막과 2005년의 새 출발을 역겨운 배신으로 더럽혔다. 이 배신자들은 끝까지 갈지자 사기극을 연출하며 민주개혁의 염원을 우롱했다.

 

노무현은 “4대 입법이 되든 안 되든 대세에 크게 지장이 없으니 … 차근차근 풀어 나가자”며 야합의 물꼬를 텄다. 노무현은 친미 우파를 향해 “지금부터 잘 해 보자”, “따뜻한 인간 관계가 맺어지길 바란다”고 눈웃음쳤다.    

<조선일보>는 “옳고 바른 방향”이라고 반겼고, 한나라당도 노무현과 열우당이 “한나라당의 합리적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칭찬하기에 마땅하다”(2004년 12월 24일 논평)고 기뻐했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야합은 껍데기만 남은 4대 개혁의 개혁 ‘흔적’까지 닦아냈다. 언론개혁법에서는 시장점유율 산출 단위를 애초 중앙 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지로 조정해 조·중·동을 규제 대상에서 빼 주었다. 지면 50퍼센트 광고 제한 조항과 편집위원회 설치 의무화 조항도 빠졌다.  
친일진상규명법에서는 진상 규명의 대상에서 ‘언론’을 뺐고, 심지어 법안 이름에서 ‘친일’도 뺐다. 과거사법에서는 한나라당이 요구한 ‘친북 좌익에 의한 테러 규명’이 받아들여졌다.

 

‘개혁 없는 개혁법’들마저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은 합의와 결렬을 거듭하다가 결국 막바지에 파병연장동의안과 함께 신문법만 통과시켰다.
온갖 협잡과 난동으로 몇 달을 허비한 배신자와 전쟁범죄자들은 파병 연장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의 5분 연설에 “처리할 법안도 많은데 시간을 끈다”며 짜증을 내고 야유를 보냈다. 열우당에서는 파병 연장 찬성표가 심지어 한나라당보다 두 배가 넘게 나왔다.
파병연장안을 통과시키고 난 직후, 범죄자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 ‘정겨운 2005년 새해 덕담‘을 나누었다. 

 

국회 앞 길거리에서 추운 겨울에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며,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지적했듯 다시 한 번 “노무현 정권의 개혁이 정치적·도덕적으로 파산”했고 “우리당 견인을 통한 개혁법안 처리는 환상임[이]” 분명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열우당의 개혁적 이미지와 반동적 실체의 모순 때문에 균열이 생겼다. 당의 왼쪽 기반을 의식해 ‘왼쪽 깜박이’ 노릇을 하며 농성까지 한 소위 ‘강경파’에게 ‘온건파’들은 “그만해라. [이미 카메라가] 많이 찍었어” 하고 비웃었다. ‘강경파’는 열우당의 배신과 야합을 가리고 지지자들을 묶어 두는 구실을 한 것이다.

 

이해찬은 생뚱맞게 “2007년 대선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말했지만, 더러운 실체가 드러날수록 열우당의 분열과 파산은 가속화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도로 민주당과 합당하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미래가 없는 이 더러운 배신자들의 파산을 더 앞당겨야 한다.

 

 

자본주의 정치인들과의 동맹전술은 파산했다. - 전지윤

 

배신자들의 파산과 함께 배신자들과 동맹해 개혁을 이룬다는 전술도 파산했다.

 


지난해 9월 노무현이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말하자,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를 주도한 민족주의 좌파와 NGO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노무현·열우당과 손잡고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헛된 기대로 기울었다.
“과거를 불문하고 노선을 따지지 말고 민주개혁을 바라는 모든 세력을 … 노 대통령을 포함하고 여야를 떠나 … 반(反)수구냉전 전선으로 결집하는 것이 우선”(<민중의 소리> 2004년 9월 10일치 사설)이라는 것이다.
노무현은 민중운동의 다수파가 자신에 게 의존하는 틈을 이용해 운동을 분열시키고, 파병연장, 공무원노조 탄압, 기업도시법 통과 등 각종 더러운 악행들을 저지를 수 있었다.

 

민중운동 진영은 노무현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파병반대 투쟁과 공무원노조 탄압 항의 행동들에 의미 있고 실질적인 대중 동원을 할 수 없었다.
노무현을 궁지로 몰아선 안 된다는 방침 때문에 파병 같은 진정으로 중요한 쟁점들이 외면됐다.
이런 전술은 4대개혁에서도 진정한 개혁을 쟁취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 노무현과 열우당의 배신으로 4대개혁의 알맹이가 빠지고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민중운동 진영은 무기력했다.

 

심지어 노무현이 우리 운동을 탄압하는데도 “열우당은 적과 아를 분명히 구분[하고] …개혁공조를 복원해야 한다.”(<민중의 소리> 2004년 11월 2일치 논평)며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국가보안법의 형법보완은 ‘위장 폐지’일 뿐이라고 비판했지만, 사실상 그나마도 통과되길 바라는 애처로운 신세를 자초했다. 이처럼 우리 운동이 “열린우리당 행보에 따라 일희일비”(<민중의 소리> 12월 10일치)한 것은 바로 이런 잘못된 전술 때문이었다. 

 

지배계급의 개혁파와 동맹한다는 전술은 독립적 대중행동 건설에 소홀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점을 놓치고 민족주의 좌파는 “국가보안법 폐지 대중운동, 왜 힘이 안 실리나?”(<민중의 소리> 10월 14일치)하고 조급해했다.  
결국, 투쟁은 결의된 소수 사람들의 단식 등으로 이어졌다.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6백여 명이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하고, 심지어 1백50명은 물과 소금까지 끊고 보안법 철폐를 바랐지만 배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족주의 좌파는 “민중진영은 투쟁의 주도권을 확실히 움켜쥐었다. … [우리의] 노선은 정당했고 그 위력은 지금 보는 그대로다. … 이 싸움은 이미 승리한 것”(<민중의 소리> 2004년 12월 29일치 사설)이라며 한사코 현실을 외면했다. 

 

호흡곤란, 탈수증, 구토, 근육경련까지 무릅쓰며 싸우던 국회 앞 단식 농성자들은 야합 소식에 분노해 국회로 향하다 노무현 정부 경찰의 방패에 찍혀 피 흘리며 쓰러졌다.  
단식 농성자들의 영웅적 투지는 실로 놀라웠다. 그럼에도 노무현과 열우당의 더러운 배신에 쓰디쓴 좌절을 겪어야 했다.    

 

만약 우리 운동이 노무현의 파병연장, 공무원 탄압 등에 맞서서 대중행동을 건설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처럼 아무 저항없이 파병연장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고 진정한 민주개혁에 좀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운동의 미래와 성장을 위한 자산이 됐을 것이다. 아직도 “열린우리당 견인 성공”, “열린우리당 배신 막아낸 농성단 ‘승리했다’”(<민중의 소리> 2005년 1월 1일치)며 오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쓰디쓴 교훈을 배워야 한다.

 

농성단이 마지막 성명에서 말했듯이 “이 배신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할 뿐 아니라, 배신자들에 맞서 투쟁을 건설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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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다함께 47 호

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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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해일은 자연적이지만 ,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 민주주의) 

 

 

- 한 동남아시아 사회주의자가 이번 지진해일 대참사에 대해 맑스주의적으로 논평한다


 

폭풍·지진·지진해일 같은 자연 재앙들의 원인은 자연적일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단순히 자연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연 재앙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계급 사회에 의해, 또 평범한 사람들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들에 의해 좌우된다.
최근 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의 경우, 적어도 여섯 가지의 인위적 요인들이 이 비극의 결과를 좌우했다.

 


첫째 요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태평양처럼 제대로 된 조기경보체계가 갖춰져 있었다면, 지진해일로 말미암은 사망자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인근 한 섬의 주민들은 지진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선조들이 말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들은 진동을 느끼자마자 언덕 위로 뛰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지진해일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 지역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진해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태평양과 달리 수마트라 주변 인도양에서 마지막으로 지진해일이 발생한 것은 1백 년도 더 전이었다. 하지만 1년 전에만 해도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지진해일 경보체계를 구축하라는 기상학자들과 지질학자들의 제안을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타이의 한 주요 기상학자는 몇 년 전부터 푸껫 섬이 지진해일 위험 지역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대적인 경보체계가 없었더라도 각국의 정부는 피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하와이의 지진해일센터는 위험을 알았지만 “누구한테 연락을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각국 정부의 전화번호 목록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스리랑카와 인도는 3시간 전에 피난 명령을 내릴 수도 있었다. 타이 기상청도 약 1시간 전에 지진해일 위험을 알았지만 긴급 회의 끝에 위험을 강조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정부 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그들의 머리 속에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잘못된 경보”가 관광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었다.

 

그런 재앙의 결과를 결정하는 둘째 요인은 세계 자본주의의 발전이다. 이것은 긍정적인 영향도 있고 부정적인 영향도 있다.
비록 타이에서도 엄청난 인명 피해가 있었지만, 타이가 아체나 스리랑카보다 타격을 덜 입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타이 경제가 더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사회기반시설이 입은 타격이 더 작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더 튼튼한 집에서 살고 해변에서 작은 배로 생계를 꾸리는 데 급급할 필요가 없다면 그들은 재앙의 충격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인근 도시들은 훨씬 더 빨리 구조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간이 재앙을 견디도록 도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도 세계화가 사회의 모든 부분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불평등은 더 심각해지고 빈민이 대부분 고통을 겪는다. 그뿐 아니라 관광산업의 급속한 발전으로 더 많은 관광객들과 관광산업 노동자들이 위험해졌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경제와 관광산업을 발전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그 해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수마트라 북부의 아체는 최악의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는 발전한 관광산업이 전혀 없었다.
물론 지구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은 어떤 경우에 결정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 억제 조처들을 거부하는 서방 정부들의 행동이 위험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는 최근 아시아의 지진해일에서 주요 쟁점이 아니다. 조기경보체계와 적절한 피난·긴급구호 절차 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세계 자본주의 덕분에 우리는 자연 재앙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수단들을 얻게 됐지만, 자본주의의 막대한 잠재력을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 정부들의 우선순위에 내맡긴다면 그 잠재력은 결코 인류 대다수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아래로부터 투쟁이 중요하다.

 

자연 재앙의 영향을 결정하는 셋째 요인은 계급투쟁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 수준이 중요하다. 지진해일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의 다수는 가난하지 않다. 인도는 핵강대국이다. 타이는 급속히 발전하는 나라다. 타이 총리와 그의 측근들은 억만장자들이다.
문제는 계급 사회에서 부와 권력이 분배되는 방식이다. 계급투쟁이 더 성공적이었던 곳에서 우리는 기업주들을 압박해 더 많은 자원을 인간적 발전에 할당하게 만들 수 있었다. 괜찮은 긴급구호 서비스와 복지국가는 평범한 노동대중이 더 나은 생활수준을 위해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지역의 어떤 나라에도 복지국가 시스템이나 제대로 조직된 긴급구호 서비스가 없었다. 구급차들조차 거의 없었다.
타이 정부는 군대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이 거대한 군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한다. 전에 타이 군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총을 쏘았다.
타이 군대는 이런 재앙에 대처하기 위해 제대로 동원된 적이 없다. 예컨대, 후아힌(Hua Hin)에 있는 국왕의 여름 궁전을 지키던 군함 세 척은 서부 연안의 피해자 구조 작업에 긴급 투입되지 않았다.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타이 남부 세 개 주(州)에 주둔하는 대규모 군대도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군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 가운데 하나이지만, 수마트라 피해자 지원에 서둘러, 그리고 충분히 동원되지 않았다.
버마의 억압적인 군사독재 정권은 사망자가 “극소수”라고 주장한다. 1988년 민주화 운동 패배 이후 버마 정부는 국민 다수에게 이로운 일을 안 할 뿐더러 버마를 침묵의 벽 뒤로 감출 수 있게 됐다.
타이의 어선들에서 일하다 지진해일에 희생된 버마 어민 수백 명은 대부분 타이의 인종차별 때문에 결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결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지 못할 것이다.

 

지진해일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넷째 요인은 제국주의다. 제국주의에는 여러 수준이 있다. 인도네시아·스리랑카·타이는 “소(小)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의 중앙 정부는 자국 국경 내의 모든 지역을 “지배하고 통치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입증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자국 자본들의 이익에도 매우 중요하고 세계화 시대에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는 데서도 매우 중요하다.
작은 국가가 자국 국경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면 어떤 자본가들도 그런 나라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가는 아체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고, 스리랑카 국가는 타밀족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으며, 타이 국가는 주로 무슬림이 거주하는 남부 세 개 주의 자치를 허용할 수 없다.

 

이들 나라의 내전은 미국과 영국 제국주의의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아체와 스리랑카에서 정부는 국내 상황을 핑계로 구호·복구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진해일 뒤 미국 군대의 인도주의적 노력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려하게 된다. 당연히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반제국주의자들은 이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 군함들이 실어다 주는 깨끗한 물·의약품·식료품이 우리 아이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좌우하게 된다면 우리가 도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생각해 보자.

 

물론 우리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미국 제국주의를 칭찬하는 데 열을 올릴 만큼 오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반전 운동 내의 일부 사람들은 그런 유혹에 빠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가 지적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조처들이 취해져야 하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인 미국이 가장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절실한 원조를 거부하라고 호소해서는 안 된다.
똑같은 태도가 대기업들에도 적용된다. 많은 대기업들이 기업 홍보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온정을 보여 주려 애쓰고 있다. 죽음과 파괴가 닥치면 기업들은 이를 재빨리 이용한다.

 

타이에서는 이번 재앙을 보도하는 TV 뉴스 화면 한쪽 구석에 기업 상품광고들이 등장했다. 민간항공사들은 피해자들이나 의료진을 수송하는 무료 항공편을 제공하고 있다고 광고하는 데 열을 올렸다.
대기업들은 전례 없는 자비로움 ―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문제에서나, 이윤 추구 때문에 현지 주민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문제 등에서는 잘 보여 주지 않았던 ― 을 재빨리 과시했다. 그러나, 시신 수습도 아직 끝나지 않았건만 경제 뉴스는 주가 등락을 논하고 “관광산업”에 미칠 효과를 보도하느라 바쁘다.
우리가 요구해야 하는 것은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임금을 인상해야 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하며,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

 

세계의 기업들이나 군사 기지들이 해체돼 미국 정부의 원조를 받아도 괜찮다고 느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라크 전쟁이 지금 당장 끝나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래서 막대한 군사비가 생산적 용도, 특히 당장의 위기가 끝난 뒤 시행될 재건 사업에 투입돼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전쟁·제국주의·자본주의가 모두 서로 연결돼 있고, 세계적인 반전·반자본주의 운동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려는 노력을 갑절로 늘려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우리의 투쟁을 멈출 때가 아니다.

 

우리는 용기를 내 인류의 진정한 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은 인종·국적·종교를 떠나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슬픔과 연민으로 가득하다.
아체로 구호품을 실어 나른 영국 공군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지금껏 했던 가장 값진 일 가운데 하나”였다고 느꼈다. 나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군인을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아이들을 잃은 베슬란 주민들은 자신들이 기부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기부했다.
재앙이 닥치면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러 달려간다. 혈액·식료품·의약품 기증이 쇄도한다. 자원봉사활동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적 연대의 새 세계를 말할 때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을 반박하는 증거들이다.

 

그렇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전쟁터에서 싸우게 만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이고 가증스런 태도를 취하게 만드는 흡혈귀 같은 자들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지배계급과 대결하고 체제를 바꾸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나 지배계급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사상에 도전하지 않으면 고통받는 사람들의 분노가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타이 현지 주민들은 정부가 자신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더 많이 도와 줬다고 말하며 모든 외국인들을 미워하기 시작할 것이다.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분노를 진정한 표적 ― 계급 사회 ― 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상류층의 거짓 자비에 감동할 것이고, 그리 되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국민”이라는 사상이 더 강화될 것이다. 미국 제국주의가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고 속아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 절망감과 불필요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초자연적 해결책으로 그 슬픔을 치유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 토론과 논쟁을 계속해야 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투쟁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

 


 

자이 자일스 웅파콘 (타이 노동자민주주의)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진해일 피해자 구호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

아체민중운동연대 


지진해일이 인도네시아 아체 주와 수마트라 북구 일대를 휩쓴 지 엿새가 지났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구호물자 보급을 지연시키면서 수십 톤의 기증품들이 자카르타 공항 등에 가득 쌓여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번거로운 절차와 부분적으로 아체를 국제적으로 고립시켜 온 계엄 상황 때문에 국제원조가 아체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아체 주는 수십 년 동안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와 갈등을 겪어 왔고, 2003년 5월 이후 다시 인도네시아 군대의 표적이 되면서 수백 명의 시민이 희생됐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파견한 구호활동가들은 신속하게 피해자를 후송하고 시체를 매장해야 했지만, 적절한 수송수단 부족과 통신시설 파괴 때문에 재해지역에 접근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들은 아체인을 돕고 싶어한다. 자원봉사자들을 재해지역으로 보낼 수 있었던 아체 안팎의 시민단체들은 국가기구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아체민중운동연대(Solidarity of People Movement for Aceh: SEGERA)는 2001년에 아체인의 민주적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결성됐으며, 노동조합·학생회·민주화 운동 단체·정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SEGERA는 현재 15명의 자원자를 아체 재해지역에 파견했다. SEGERA는 구조활동을 태만히 하고 있는 정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인도네시아 정부는 계엄을 해제하고 지역과 국제사회의 원조와 구호 활동이 자유롭게 아체로 향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2. 국가기구와 군대는 국내와 국제 시민단체들이 구호 활동을 더 자유롭게 벌이고 필요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


 

3. 인도네시아 정부는 즉각 재건사업을 시작하고 재난으로 파괴된 사회기반시설을 복구하라.


 

2005년 1월 1일
Solidaritas Gerakan Rakyat untuk Aceh ­아체민중운동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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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러시아 혁명 1백주년 : 혁명으로 가는 다리

다함께 47 호

혁명으로 가는 다리 -  아닌디야 바타차리야(Anindya Bhattacharyya)  

http://www.alltogether.or.kr

 

혁명으로 가는 다리

 

- 대중 파업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녀의 고전적 저작 ≪대중 파업≫을 쓴 1백 년 전보다

2003년 10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대통령궁을 에워쌌다.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던 백만장자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의 퇴진을 요구했다. 며칠 후 그는 불명예 퇴진하고 마이애미로 도망가야 했다. 

 


몇 주 동안 계속된 대규모 파업과 거리 전투의 정점이던 그 운동은 맑스주의자들이 대중 파업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사례였다.
대중 파업은 머나먼 이역만리에서나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아니고 역사책 속에나 나오는 케케묵은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유럽에서는 대중 파업이 일어났던 나라들이 아니라, 대중 파업이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들이 예외였다.  

 

그런 파업들은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상황에서 대중 파업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로 대체하기 위한 투쟁을 대중 파업이 도대체 어떻게 진전시키는가?
이런 논쟁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비슷한 논쟁이 19세기에도 격렬하게 벌어졌다.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놀라운 사건들은 이런 논쟁의 양상을 바꿔 놨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푸틸로프 기계 공장에서 전투적인 노동자 네 명이 해고된 것에 반발해 시작한 파업이 도시 전체의 대중 파업으로 확산했다.
다양한 공장과 작업장의 노동자 약 15만 명이 그 투쟁에 참가했다.
파업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 언론과 집회의 자유, 농민에게 토지 분배,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요구했다. 전에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대규모 파업들이 벌어진 적이 있었지만, 이토록 광범하고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파업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며칠 뒤, 약 20만 명의 파업 노동자들이 짜르의 동궁으로 행진했다. 짜르의 군대가 군중에게 발포했고, 뒤이어 기병대가 사람들을 습격했다. 적어도 1천 명이 살해당했고 거의 2만 명이 부상당했다.

 

그 학살이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이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은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룩셈부르크는 당시 독일의 대규모 노동계급 사회주의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던 폴란드 태생의 혁명가였다.

 

1906년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 정당, 노동조합≫이라는 팸플릿을 썼다. 오늘날까지도 이 팸플릿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대중 파업이 하는 구실에 대한 고전적 맑스주의 분석으로 남아 있다.
팸플릿의 많은 부분에서 룩셈부르크는 1905년 사건들의 복잡한 과정과 결과를 자세히 분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그녀가 끌어 낸 세 가지 이론적 결론은 대중 파업을 전술과 무기로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그 전의 빈약한 논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첫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에 대한 이전의 분석들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투쟁은 개별 공장이나 산업에서 벌어지는 임금이나 일자리 등등 노동조건을 둘러싼 투쟁을 말한다.
정치투쟁은 정치적 권리나 국민연금 정책을 둘러싼 투쟁 또는 사람들이 증오하는 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투쟁 등이다. 
룩셈부르크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 파업≫에서 그녀는 “이 둘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고 썼다.
“모든 정치투쟁의 고양기 뒤에는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는다. 또한, 역으로, 끊임없는 경제투쟁 덕분에 정치적 휴지기마다 노동자 투쟁이 활력을 유지한다.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새로 활력을 불어넣는, 노동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다.
“경제투쟁은 운동을 하나의 정치적 초점에서 다른 초점으로 이동시킨다. 정치투쟁은 빈번히 경제투쟁을 위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경제적 요인들과 정치적 요인들은 러시아 노동계급 투쟁의 동전의 양면이다. 둘의 결합이 바로 대중 파업이다.”
룩셈부르크 주장의 핵심은 흔히 한두 부문의 노동자들이, 예컨대 한 가지 정치적 문제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이는 데서 대중 파업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어 흔히 첫번째 집단의 요구와는 다른 그들 자신의 요구를 제기하게 된다.

 

 

전에 어떤 행동도 취한 적 없는 집단들이 가장 기본적인 노동조합 문제들을 제기할 수 있다. 또는 매우 높은 수준으로 도약해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1905년에 일부 집단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다른 집단들은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했다. 그러나 짜르의 퇴위를 요구한 집단들도 있었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대중 파업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상호작용을 통해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 노동자들이 체제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 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산업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가 무너진다.
“노동계급 전체가 어떤 직접적인 정치 행동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 조직해야 하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노동계급이 공장과 작업장, 광산과 주물공장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일상적 멍에가 강요하는 작업장들 사이의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이데올로기에 도전한다.
공동의 투쟁 경험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염원을 끌어올리고 그들의 집단적 힘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한다. 
“그리고 얼마나 높은 이상으로 노동자들이 도약하는가! 그들은 투쟁하는 동안에는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생계수단에 대한 고민을 제쳐놓는다.
“그들은 기술적 준비가 완벽했는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다. 일단 정말로 심각한 대중 파업의 시기가 시작하면, 이 모든 ‘비용 계산’은 양동이로 바다를 재려는 시도와 비슷한 것이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일상적 시기에 파업 노동자들이 집세나 융자금을 낼 수 있을지, 일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돈을 모을 수 있을지, 그 밖의 수많은 걱정거리들을 정말로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중 파업의 위력은 노동자들이 새로운 자신감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를 맞을 것임을 알지만, 더 커다란 군대의 일부로서 어려움을 견뎌 낼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은 룩셈부르크의 세번째 통찰로 이어진다. 대중 파업 때문에 노동자들은 투쟁 속에서 스스로 변화해, 자신들의 염원을 더욱 키우고 사회를 운영하기에 적합한 계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 파업의 다른 역사적 사례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폴란드 그다인스크 조선소 점거 투쟁의 특징은 대중문화 행사가 대규모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작가 조합은 야간 강좌를 열었고, 약 1만 명의 노동자가 시 낭송회나 독서모임 들에 참가했다. 재즈 연주회나, 유명한 영화감독 크쉬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강연회에도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대중 파업은 민주적인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보여 준다.

 

1995년 프랑스 대중 파업 당시 드뢰 시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활력과 정신을 잘 보여 준다.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총회를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 언론과 민주적 조직들에게도 널리 개방함으로써 쥐페 정권의 계획에 맞선 투쟁을 개방적 형태로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 운동 때문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파업노동자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이것은 더는 ‘그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다 함께’ 하는 운동이었다.”

 

 

대중 파업은 다른 사회를 위한 투쟁과 오늘의 투쟁을 잇는 다리다. 대중 파업은 노동자들의 힘을 보여 주고, 노동자들에게 미래를 힐끗 보여 주며, 새로운 조직 형태들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개별 파업들에서도 대중 파업의 모습이 힐끗 드러난다. 이탈리아의 자동차 대기업 피아트는 2004년 봄 30만 명의 노동자들이 참가한 국가적 파업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한때 피아트 공장 중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생산이 중단됐다.
그 파업을 촉발한 것은 이탈리아 최남단 멜피의 노동자들이었다. 피아트 회사는 정확히 10년 전 그 지역에 전투적 노동자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그 곳에 공장을 열었다. 
그러나 일단 파업이 시작하자 노동자 총회가 날마다 열려 정말로 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을 잠깐씩 보여 주었다.

 

1905년에 대중 파업은 소비에트[노동자 대표들의 평의회]를 탄생시켰고, 소비에트는 삶의 모든 측면을 조직하고 토론하기 시작했다. 소비에트는 기존의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 형태였다. 

 

대중 파업은 개혁을 위한 요구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그 끝은 혁명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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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 / 토론회 안내

다함께 28 호

흥미진진했던 세계사회포럼 워크숍 :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 - 조너선 닐

http://www.alltogether.or.kr

흥미진진했던 세계사회포럼 워크숍

흥미진진했던 세계사회포럼 워크숍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


조너선 닐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의 활동가


나는 현재 우리 운동 전반에서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논쟁을 화두로 발제를 시작하려 합니다.


작년 영국의 반자본주의 시위대 중에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좀더 근사한 것으로 대체하자’고 쓴 큰 배너를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 많은 사람의 운동이 처한 상황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무엇에 반대하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쟁과 탐구가 진행중입니다.


이곳 세계사회포럼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인도 좌파들은 러시아와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우리가 아직까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이 경험했던 것 중 일부를 도입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혼란돼있고 확신이 없습니다. 그들은 확실한 미래상이 무엇인지 또는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우리 운동이 부상할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궁금해합니다.


나는 우리의 대안은 옛 소련 공산당 하에 존재했던 체제나 마오주의의 기치 아래 세워졌던 중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난 70년 동안 러시아나 중국을 대안으로 우러러봤던 사람들이 전 세계의 진보 운동을 건설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 바로 이곳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한 젊은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련과 중국을 자신의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 국가들은 우리가 원하는 대안이 전혀 아닙니다. 이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진행되면서 우리 모두 민주적인 세상을 원한다는 원칙에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련과 중국 같은 사회에서는 노동조합과 파업이 불법이었고, 고위직의 임금이 평범한 노동자 임금의 10∼20배였습니다. 그 곳은 불평등과 억압의 사회였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이야기할 때 어떤 사람들은 옳게도 인도나 미국, 또는 인도네시아와 영국의 민주주의를 보라고 말합니다.


이들 국가의 민주주의를 보면 민주주의를 떠드는 자들이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두 손에 권력을 쥐고 그것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독재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3∼4년, 또는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투표를 제외하면 우리는 매일 매일 독재 아래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노동’이라고 부르는 독재입니다. 일을 시작하는 아침 7∼8시, 또는 9시부터 일을 마치는 저녁 7∼8시, 또는 9시까지 우리는 독재 아래 살아갑니다.


당신이 아침에 행여나 늦게 출근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 하고 사과하면 저들이 오만하게 “알았어, 조너선. 하지만 다신 그러지 마” 하고 대답할 때, 당신이 자기 차에 주먹질을 하며 화풀이를 할 수밖에 없을 때, 당신이 하루 종일 시계만 쳐다보며 언제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 당신의 삶이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신의 직장 상사와의 관계, 그 독재가 바로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중심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은 단지 일하는 동안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가고, 직장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에까지 일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일 때문에 가족과 싸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맥주 두 잔을 마시며 직장에서 쌓인 피로를 잊으려 하겠죠.


노동의 독재는 우리 삶의 모든 관계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5살쯤이었을 때를 회상해 봅시다. 지배자들이 우리를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질리도록 일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를 길들이는 공간인 학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그 학교의 운동장 한 구석에서 큰 아이들이 조그마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겪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모든 이들의 삶은 그러한 독재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 독재를 행하는 자들은 또한 정치판에서도 독재를 행합니다. 이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묶어 놓은 쇠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독재를 끝장내야 합니다.


이것은 먼저 강력한 세계적 운동을 건설해서 모든 곳에서 우리가 자신의 상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선출하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그들이 실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직장에서 상사를 선출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작업장에서 대표를 뽑아 각 도시마다 대표자들이 회의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아마도 영국에서 이런 대표들이 다 모이려면 축구경기장처럼 넓은 장소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뽑은 국가 전체 대표자들은 또한 세계를 운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 경제를 바꾸려는 운동은 한 국가에서만 존재한다면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국제적인 운동이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세계 시장의 통제를 분쇄해야 합니다. 세계 시장의 중심에는 기업들간의 경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적이 없는 경쟁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해도, 우리가 일하는 병원이나, 혹은 우리가 사는 국가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합니다.


나는 9년 동안 한 페미니스트 낙태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협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임금을 동등하게 나누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와 동료들의 삶은 모두 세계 시장에 의해 파괴당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낙태 병원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 경영자는 모든 노동조합원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대표자들을 뽑아야 하는 동시에 세계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접수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접 뽑은 대표자들은 인류의 노동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표자들은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인이나 변호사, 언론인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우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 중 선출된 이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청소부, 공장 노동자, 교사 중 우리를 대표하기 위해 선출된 사람들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을 소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야 우리는 인류의 노동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셀 수 없이 많은 논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더 이상 목적 없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면, 이 체제가 끝없이 팽창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월요일을 없애는 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웃음]


한편에는 우리의 급선무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니야,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가난한 나라들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야.” 하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부는 환경을 돌보는 것은 일단 나중으로 돌리고 뭄바이의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이 더욱 풍요롭게 살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노동력 중 많은 부분을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써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우리에게 더 많은 예술과 음악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많은 예술가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런 식의 논쟁이 끊임없이 오고갈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누군가가 우리 대신 어떠한 사회가 가장 최선인지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 노동계급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결정을 내릴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계급이고 나는 그들을 믿습니다.


나는 네팔, 아프가니스탄, 영국, 베네수엘라, 미국 등지에서 거주하면서 그곳의 노동계급과 함께 일했습니다. 노동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이자,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아픈 아이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면서도 약을 살 돈이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 늙은 아버지가 노환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데도 병원으로 모실 수 없을 때 느끼는 두려움, 직장을 잃고 집에 가서 아내나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제 나 실직했어. 그래서 우리는 돈이 없어”라고 말해야 하는 두려움, 잘못 때문에 해고된 것이 아님에도 가슴 깊이 느껴지는 수치심과 두려움, 사람들은 일생을 살면서 이런 일들을 겪기 마련입니다. 산재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늙고 병들었을 때 연금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살 곳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등등.



다른 세계



전 세계의 노동계급이 첫번째로 하게 될 일은 바로 이러한 두려움들을 없애는 일입니다. 모든 이들이 물을 마실 수 있고, 집과 직장이 있고, 모든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고 누구든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 … 그러한 세상,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인간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일생 동안, 그리고 내가 살아온 50년의 생애 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 머리 속에 두려움을 각인시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반응하는 모든 행동 양식을 운명짓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은밀한 순간에도 자본주의는 사랑을 나누는 방식을 결정짓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식조차 규정합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개개인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가한 영향이 우리 내부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세계를 이루어 낸다면, 우리가 사회주의를 성취한다면 저도 엄청 기쁠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제가 자라 온 낡은 사회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는 세상, 그러한 세상은 평등한 곳이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같은 양의 돈을 벌고 같은 양의 물질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전혀 다른 종류의 아이들을 기를 수 있습니다.


태어난 지 여섯 달 된 아기를 보십시오. 굶주리거나 길거리에서 자는 아이들이 아니라, 집이 있고, 먹을 음식이 있으며, 마음에 평화가 있는 그런 여섯 달 된 아기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고, 그들의 개방성을 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에서 흐르는 기쁨을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밤 기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기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도 한때는 그런 표정을 가진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도대체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해 봅시다.


우리가 만약 민주적인 세상,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을 쟁취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꾼 우리 자신조차 상상하지 못한 세상을 건설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들을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 즉 불행을 겪지 않은 인류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이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사회포럼에서 다양한 언어로 외쳐진 구호인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가 가능함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나는 성인이 된 이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습니다. 나는 쉰 살이 될 때까지 ‘역사에 대한 나의 신념을 고수할 것이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세상이 가능하지 않다면 최소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모든 열강에 대항했던 제노바 거리 시위 이후, 나는 내가 사는 동안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인도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나는 뭄바이에서 이렇게 거대하고 다양한 운동이 함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있었던 지난 25년 간의 노동자 운동과 진보 운동의 패배 후에 나타난 새로운 희망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운동과 희망은 우리 앞에 길고 험난한 길이 놓여 있다고 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상을 쟁취할 때까지 우리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승리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할 패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세계는 가능합니다. 나는 남아 있는 내 생애 동안 그 세상을 위해 싸울 것이고 여러분들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정리



얘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몇 가지는 빠뜨릴 것 같습니다. 토론 끝나고 저를 찾아오십시오. 우선 핵심적인 쟁점들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화폐와 상품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제 생각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는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무료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무상 초등교육을 쟁취했듯이, 일부 나라에서는 의료 서비스가 무료이듯이 말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더 확대돼서 모든 종류의 교통 수단과 기본적인 의류, 생활필수품들이 무상으로 제공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화폐와 유료 상품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으로, 우리는 더는 필요없는 일자리들을 없애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창조적인 재능을 끔찍하게 낭비하는 광고 산업이 있습니다. 저는 광고 산업을 해체하고 그 사람들이 예술에 종사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인도에 치오카시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곁에 대기하고 있다가 그 사람의 심부름을 해주는 직업인데, 이것 역시 없애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노동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여가를 누리면서도 더 많이 생산하고 세상을 더 부유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쟁점입니다. 한 동지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소련과 중국을 이해하는 데서 더 진지하고 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소련과 중국이 국가자본주의 체제라고 치밀하게 주장하는 조직에 몸담아 왔습니다. 제가 말하는 국가자본주의란 마이클 앨버트 동지가 설명한 것과 매우 비슷한 체제로서, 그 나라의 지배계급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자국의 인민을 착취하는 체제입니다.


소련과 중국의 지배자들은 본성이 사악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경쟁적인 세계 체제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게 침략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고립된 빈국의 지배자들로서는 노동계급을 쥐어짜고 쥐어짜고 또 쥐어짜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서방 자본주의와 나머지 세계의 지배자들도 본성이 사악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는 정말 사악한 자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경쟁의 압력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맑스와 레닌의 전통이기도 한 사회주의 전통의 중요한 부분인 노동자 평의회라는 개념입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공장, 병원, 사무실 등에서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뜻하는 이 사상은 우리 운동의 절정기였던 러시아 혁명의 경험에서 유래합니다.


그 혁명은 결국 패배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은 고립과 내전, 기아에 있었습니다. 고립과 쇠퇴를 겪고 있는 경제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일종의 경찰 노릇을 하게 된 상황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는 혁명을 일으켰던 볼셰비키들의 압도 다수를 처형한 뒤에야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저 역시 사회주의 전통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있고 그에 관한 매우 정교한 이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새로운 운동이 부상하고 있는 시기에 저나 인도 공산당 동지들 같은 사람들이 잠결에도 술술 나올 법한 기나긴 설명으로 말문을 열었다간 운동에 새롭게 입문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1918년과 1919년에 일이 어떻게 잘못됐는지에 관한 것보다는 우리의 대안이 무엇이며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를 더 궁금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부분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인도공산당(CPI), 인도공산당 맑스주의파(CPI­M), 인도공산당 맑스­레닌주의파(CPI­ML) 그룹 동지들에게서 제가 느끼는 것은, 적과의 싸움에 평생을 헌신한 사람들의 한 가지 실수가 부른 끔찍한 비극입니다. 그것은 흔한 실수였습니다. 즉,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동유럽 사람들이 바로 그런 실수를 범했습니다. 폴란드의 연대노조 사람들은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며 서방 세계가 더 낫다고 믿었습니다. 중국의 천안문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서방의 공산당에서 싸웠던 사람들도 똑같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그들 또한 우리 모두의 적인 체제를 상대로 싸우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저는 부르주아식 민주주의를 불신합니다. 노동계급 운동과 노동조합에서는 보통 선거권이 어느 한 나라에 도입되기 150년 전부터 이미 투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상의 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편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존재하고, 따라서 러시아나 중국 아니면 인도식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라는 식의 선택을 거부합니다.



병사



또 하나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 이후의 삶에] 어떻게 도달하느냐는 것입니다. 마이클 동지의 말대로 그것은 혁명입니다. 저는 마이클 동지가 말한 것에 몇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첫째, 그것은 평탄한 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운동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그저 확산되고, 자신감을 얻고, 더 많은 승리를 거두기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모든 혁명은 중도에 몇 차례 패배를 겪고, 분쇄당하고, 끔찍한 학살을 경험했습니다.


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희망을 잃는 듯한 순간들이 오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합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지금의 투쟁에서도 그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 많은 투쟁 가운데 어떤 것은 승리하고 어떤 것은 패배하며 전진과 후퇴를 거듭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젠가는 결정적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기회는 그리 흔히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왔을 때, 우리 위에 있는 거대한 권력 기구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병사들을 우리 편으로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보유한 힘과 무장력은 너무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병사들을 우리 편으로 획득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들을 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을 넘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파업과 시위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조직해서 병사들의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시위 대열 어딘가에 함께있다는 것을 병사들이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병사들이 그것을 느꼈을 때 군대는 무너지고 우리 쪽으로 넘어옵니다. 권력 이동의 순간입니다.


필리핀에서 오신 분들은 1986년에 마닐라 사람들이 맨손으로 탱크를 밀어냈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때도 병사들은 감히 탱크로 시위대를 짓밟지 못했습니다.


1980년에 이란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한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테헤란 남부의 큰 길에서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었고 이란 정권은 시위대에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공군을 투입했습니다. 전투기가 저공 비행을 하며 다가오자 모두들 공포에 질린 눈으로 하늘을 응시하면서 계속 행진했습니다.


첫번째 비행기가 바로 코앞까지 하강했습니다. 그러나 그 비행기는 발포하지 않은 채 그대로 기수를 올렸습니다. 두번째 비행기가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행기는 발포하지 않고 다시 솟구쳐 올라갔습니다. 그 다음 비행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3천 명은 하나같이 그 순간에 샤 왕조가 끝장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비극은 지난 20년 동안 마닐라든, 테헤란이든, 네팔이든, 태국이든, 소말리아든, 동독이든, 폴란드든, 러시아든, 어느 곳에서나 민중의 힘이 적들을 굴복시키고 군대를 우리 편으로 획득했을 때조차 대안 세계에 관한 비전이 없었던 탓에 우리의 권력을 한 무리의 변호사들, 사기꾼들, NGO들, 혹은 제3자에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혁명적 운동의 초반에 노동계급이 종종 그렇게 하듯, 난생 처음으로 권력을 잡은 것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가장 먼저 ‘내가 적임자’라며 나서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1백 년 전에 맑스와 레닌뿐 아니라 수천만 민중이 함께 꿨던 오래된 꿈을 우리가 더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 평등한 세상을 위한 꿈 말입니다. 또한 더 광범하고, 더 크고, 사람을 더 존중하는 운동(미국의 좌파들이 노동자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고압적으로 대했다는 앨버트 동지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에 뿌리내린 평범한 사람들의 대중 운동을 건설해서 다른 세계를 향한 꿈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 번에 테헤란에서 시위가 열린다면, 다음 번에 마닐라의 거리에서 탱크를 몰아낸다면, 그때 우리는 단지 소수의 혁명가들이 아닌 우리 모두가 진정한 대중 운동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며, 세계가 우리 것이 되는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안내 : 제 22 회 마포사회포럼 - 자본주의 이후의 삶

 

 

마포사회포럼은 반전반자본주의 노동자운동 '다함께'가 주최합니다.
포럼에서는 사회 연대와 공익을 위한 캠페인과 주장을 소개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포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서로의 경험과 주장을 함께 나누는 토론 광장입니다.

일시 : 2005년 1월 12일 수요일 오후 7시30분
장소 : 신촌 책사랑방 (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앞 )
연락처 : 019-391-2789
블로그 : blog.empas.com/wp2020


* 책사랑방은 1인당 이용료가 3천원입니다. 참가비를 준비해 주세요 ^^

 

얘기해볼 거리들

 

미래 사회에서도 경쟁은 필요하지 않는가
여성억압은 사회주의에서도 있지 않았는가
모든 혁명은 관료화하지 않는가
인간 본성 때문에 다른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는가
사회주의는 실현 가능한가
구 소련이 사회주의였나
'민주적 사회주의'는 가능한가

 

읽을 거리들

 

다른 세계의 구상

자본주의 이후의 삶은 어떨까, 조너설 닐 <미국의 베트남 전쟁>의 저자
반자본주의 선언, 알렉스 캘리니코스, 책갈피, 제2장, 제3장
파레콘, 마이클 앨버트, 북로드
역사의 복수, 앨릭스 캘리니코스, 백의, 제4장 시장을 넘어서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마이클 앨버크 사이의 토론[영어]
주대환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의 사회민주주의
서유럽 사회주의의 역사, 이안 버첼, 갈무리, 제1부
노동 계급 문화는 있는가?, 린지 저먼 영국전쟁저지연합 소집자

 

혁명의 진실들

 

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책갈피, pp. 519~548
러시아 혁명의 진실들, 빅또르 세르쥬, 풀무질
러시아 혁명은 어떻게 패배했는가?
'중국 사회주의'의 진실
소련 여성과 페레스트로이카, 하니 로젠버그, 한울[절판]
알려지지 않은 사회주의자 이야기
헬렌 켈러 아인슈타인 존 레논 조지 오웰 외; <진보정치>와 <다함께> 가운데


 

존 바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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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가치 하락과 세계 경제 위기 - 얌마, 돈 좀 빌려주라

다함께 46 호

달러화 가치 하락과 세계 경제 위기 - 얌마, 돈 좀 빌려주라 - 알렉스 캘리니코스

http://alltogether.or.kr/

 

 

얌마, 돈 좀 빌려주라

재선에 성공한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유혈낭자한 혼란을 조성하는 것을 보는 전 세계인의 마음은 이미 꽤나 절망적이다.
그러나 많은 논평가들이 예상한 달러 위기가 본격화된다면 사정은 훨씬 더 악화될 수 있다.

 


달러는 유로나 엔 등 다른 주요 통화에 비해 한동안 천천히 하락해 왔다. 전반적으로 달러의 무역 가중치 환산 가치는 약 17퍼센트 하락했다.
분명한 것은 무능한 미국 재무장관 존 스노가 뭐라고 말하든 부시 정부가 달러화 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달러 환율이 다른 통화들보다 낮을수록 미국의 수출품 가격도 다른 경쟁국들보다 낮아진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수입이 수출보다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이제 국민소득의 약 5.5퍼센트를 차지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자본주의의 불균형을 추적해 온 두 명의 경제학자 윈 고들리와 알렉스 이주리에타는 현 추세대로라면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2006년 7퍼센트, 2008년 8.5퍼센트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세계은행은 그런 수준의 적자가 지속되는 경제라면 모두 외채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미국의 왕성한 수입이 결정적으로 나머지 세계 경제를 계속 떠받치고 있다.
그 대가는 미국이 수입품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돈을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이 미국에 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의 총외채(부채와 대 미국 해외직접투자)는 10조 5천1백50억 달러(약 1경 1천1백24조 8천7백억 원)에 달했다.
월스트리트와 부시 정부의 여러 바보들은 이런 대규모 자본유입이 투자가들이 얻을 수 있는 고수익과 미국 경제의 강세에 이끌린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투자보다 해외직접투자에서 더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다.
미국 외채의 거의 3분의 2가 미국 정부와 기업들에 대한 대출 결과다. 동아시아가 올해 미국에 빌려 줄 것으로 예상되는 돈은 3천1백억 달러(약 3백27조 9천8백억 원)로, 이는 연간 적자의 거의 절반이다.

 

사실, 외국 정부들, 특히 동아시아 정부들이 조달한 돈이 2002년과 2003년, 2004년 상반기 미국의 누적 국제수지적자 1조 1천3백18억 달러(약 1천3백94조 4천4백 원)의 43퍼센트, 즉 5천6백40억 달러에 달한다.
존 플렌더는 이라크 침략 직전에 <파이낸셜 타임스>에 쓴 글에서 “군자금은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다.” 하고 논평했다.
조지 부시의 온갖 허풍에도 불구하고 그의 막강한 국방부는 사실 외국의 보상금에 의존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유입되는 자본은 자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3대 경제 ― 일본·중국·한국 ― 가 모두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량 수출에 의존해야 한다.
또, 세 나라 모두 대규모 무역흑자를 보고 있다. 이런 흑자의 일부를 미국에 빌려 줌으로써 동아시아 나라들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달러보다 낮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미국 시장에서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동아시아는 미국에 수출해서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에 빌려 줌으로써 미국 기업들과 소비자들이 이런 수입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자본 순환이 세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순환이 해체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의 외채는 지탱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파이낸셜 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에 따르면, “미국의 총외채는 수출소득의 11배다. … 이 수치는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처럼 위기에 빠진 라틴아메리카 경제들의 수준과 비슷하다.”
미국의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는 부시 정부가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을 유지하기 위해 “금융 테러의 균형”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아시아는 막대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 가치는 심각한 달러화 가치 하락으로 폭락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중국 위안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5분의 2쯤 하락하면 중국은 2천억 달러를 잃을 수 있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공황 심리가 금융시장에서 발전해 달러화가 폭락하면 투자가들이 자신들의 달러 표시 자산을 대거 내다팔게 될 것이고 그리 되면 달러화가 더 폭락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위기는 세계 경제를 더욱 침체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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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농업이고, 쌀 재협상인가?

다함께 46 호

누구를 위한 농업이고, 쌀 재협상인가?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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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농업이고, 쌀 재협상인가?

 

노무현 정부의 쌀 재협상 결과 발표에 농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통상 책임자들은 어쨌든 관세화는 유예되지 않았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관세화 유예가 만사형통은 아니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이후 10년 동안 관세화가 유예되는 대신 해마다 일정량을 수입해서 지금 곡물 창고에는 쌀이 넘친다. 그런데도 이번 쌀 협상은 기존 의무수입량의 두 배를 결정했다.

 

정부 관료들이 한동안 관세화가 대세인 것처럼 굴다가 관세화 유예를 결정한 것은 미국 협상단의 태도와 관련있다.
미국 정부와 곡물 대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가격경쟁력(중국 쌀 가격은 미국의 3분의 1이다) 때문에 내심 관세화가 더 불리할 수도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미국 협상단은 되도록 의무수입물량을 늘릴 것을 강요했다. 
중국 정부도 의무수입물량을 8퍼센트 이상 늘릴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진정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검역 규제 완화다. 중국은 여러 가지 작물들을 검역 규제 없이 한국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애쓰고 있다. 
‘관세화 유예를 위해 의무수입물량을 늘리고 수입 쌀 시판을 허용하느냐 아니면 관세화를 받아들이느냐’라는 선택은 농민들과 평범한 소비자들의 근본 이익과는 무관하다.

 

정부 관료나 신자유주의 논자들은 이렇게 외친다. ‘농촌 인구 15만 명이 미국 농작물 생산의 50퍼센트를 담당하는 미국처럼 한국도 기업농 혹은 준기업농에 해당하는 약 50만 농민만 육성하자.’ ‘대기업이 참여하는 농업회사법인도 늘리고, 농지도 기업들이 쉽게 사들일 수 있도록 하자.’
한 마디로 말해, 시장주의 농업정책에 농민의 삶과 소비자들의 밥상을 내맡기자는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 시장이 더 개방될수록 이득을 보는 쪽은 세계 곡물 메이저(대기업)들이다.

 

WTO 농업 협정을 만드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 카길은 한국의 농산물 수입의 60퍼센트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카길 같은 곡물 메이저만이 이득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카길의 대행업체로서 미국 밀 수입과 가공업자로 선정돼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였던 기업은 바로 삼성이었다. 
앞으로 농산물 수입 개방이 더 확대된다면 식품 유통업체들도 농산물을 싼 값에 사들여 비싸게 팔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박정희 정권 이래 줄곧 한국 농업 정책의 핵심은 농업 멸시였다. 개방 농정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산 수입 소고기를 싼 값에 사들여 3배나 높게 팔아 폭리를 취한 것도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었다. 이윤 경쟁에 밀린다는 이유로 농지를 싸게 기업한테 넘기려는 것도 바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다.
그러는 사이 농민들은 ‘규모 있게’ 파산하고 유전자 조작된 위험한 식품들이 우리 밥상을 지배한다.
농산물 시장 경쟁 때문에 농산물 생산은 넘쳐나고 가난한 농민들은 파산하지만 기아는 더 심해지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가운데 약 8억 5천만 명이 만성적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요동치는 시장경제에 먹을거리를 내맡긴 결과다.
따라서 수입개방 반대 요구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수입개방 반대 요구는 세계 각 나라의 농민들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다.
세계의 가난한 농민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에 대적하는 요구가 중심 구호로 채택되는 게 효과적이다.
시장주의 농업 체제에서는 좀더 싼 값의 쌀을 수출하는 나라의 농민들이 수입개방으로 결코 이득을 보지 못한다.

 


태국산 쌀이 인도네시아로 아주 싼 값에 수출됐지만 태국 농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다. 태국 개발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산 쌀 수출의 13.2퍼센트만이 최빈층을 위해 쓰인다. 쑹 쿨라 롱하이 지역의 태국의 유명한 쟈스민 쌀 재배 지역에서는 유전자 조작된 종자를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들이나 CP 같은 태국의 대기업들만이 유일한 수혜자다.
중국 농민들은 다를까? 중국 농민들 사이에서는 이런 민요가 유행이다. “술집 앞엔 고급 승용차가 번쩍이고, 술집 안엔 공무원이 취해가네. 패스트푸트 한 끼에 수천 위안, 농민 1년 수입과 맞먹네.”

 

농민 단체는 수입개방 반대 요구보다는 WTO와 다국적기업과 대기업의 이윤 몰이의 희생양이 되는 가난한 농민들 모두의 공통의 요구를 중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 순간 가난한 농민들은 도시의 노동자들과 위험한 식탁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문을 느끼는 광범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그럼에도 전농이 내년 홍콩에서 열리는 WTO 각료회담에 일찌감치 도전장을 내민 것은 그 자체로 흥분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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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경제, 불안한 앞날 / 서민의 삶을 쥐어짜는 공공요금 인상

다함께 46 호

위기의 한국 경제, 불안한 앞날 / 서민의 삶을 쥐어짜는 공공요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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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경제, 불안한 앞날 - 이정구

지금 세계 경제는 달러 가치 급락이 몰고올 미국발 경제공황 악몽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2005년에도 달러 가치가 5∼10퍼센트 추가로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달러 가치 하락은 한국 기업의 수익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경제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세계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2004년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수출증가율이 급속히 둔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달러화 약세 때문에 기업 채산성이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2004년 중반까지 수출증가율이 40퍼센트에 육박하던 것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10퍼센트대로 추락했다.

 

이헌재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5퍼센트를 넘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실제로는 4.6퍼센트에 지나지 않을 전망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05년도 경제성장률을 낙관적으로 전망해도 4퍼센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국은행 총재 박승은 “우리 경제는 침체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고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자 노무현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뉴딜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연기금, 정부예산, 민간자본에서 모두 10조 원 안팎의 자금을 유치해 사회기반시설, 아동보육시설, 노인요양시설, 임대주택 등 대대적인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경기부양 정책이 빈사 상태에 있는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을 잠시 유예할 수는 있겠지만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경제를 회복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의 10년 동안 예닐곱 차례의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했지만 지금도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김중수는 2001년 경제성장률이 3퍼센트에 그쳤을 당시 김대중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이 낳은 기형적인 결과를 지적하며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해 이렇게 꼬집었다.
“가계대출 확대, 신용카드 규제완화, 부동산시장 부양 등으로 인해 이듬해인 2002년 7퍼센트의 성장률을 달성했으나 결과적으로 지난해 3퍼센트대로 다시 떨어졌고 부작용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경제성장률 둔화, 투자와 내수 위축, 경기 양극화 심화, 신용불량자 4백만 명, 수출증가율 하락, 인플레 우려, 청년 실업을 포함한 실업률 증가 ….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임에도 이런 요인들 때문에 내년 전망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잘 나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위기에 봉착하면 이해관계의 대립이 첨예하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성장론’과 ‘체질개선론’ 사이의 대립이 그 한 예다.
경제부총리 이헌재로 대표되는 성장론자들은 노무현 정부가 분배 중심의 개혁 정책보다는 불황 극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이정우는 구조적인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성장이 정체되고 실업이 늘어나는 등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1가구 3주택 중과세 부과 연기 파동은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부와 여당 내 대립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회주의형·인기영합형” 경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사회주의형이기는커녕 오히려 한나라당과 친기업 집단들의 바램을 따르는 식이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법인세를 2퍼센트 포인트 인하했다. 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을 뿐 아니라 부동산 취득세와 등록세를 인하했고 종합부동산세 부과 대상을 축소해 친시장 정책을 추진했다.
또, 노동자들의 파업에 직권중재나 경찰력 투입 등과 함께 ‘고연봉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배부른 투쟁’이라고 매도하는 이데올로기 공격도 함께 진행했다. 이제는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켜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던 성과를 없애려 하고 있다.  

 

2005년 세계 경제는 경기 둔화가 예상되고 있고 한국 경제는 올해보다 더 나빠질 전망이다. 경제위기가 심화하면 지배계급 내 갈등과 함께 계급 간 갈등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불황으로 접어들수록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이윤을 보전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극소수의 교섭력 높은 기업의 노동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이전의 성과들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투쟁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불황기에 노동자들은 장기간의 힘든 투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 있다. 이런 투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유지시키는 정치다.
회사가 어려운데 싸워서 얻어 낼 것이 있을까, 지금은 노사정이 단결해 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투쟁에 나선다면 얻어 낼 수 있는 것조차 얻기 힘들다.

 

사장이 양보하지 않는다면 이 체제를 뒤엎겠다는 각오로 노동자들이 실로 대규모로 투쟁해야만 사장들은 체제에 대한 도전에 위협을 느껴 양보를 하게 될 것이다.

 

 

서민의 삶을 쥐어짜는 공공요금 인상 - 박종호

 

만나는 사람마다 ‘IMF 때보다 먹고 살기가 더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요즘, 노무현 정부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들이 각종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는 바람에 노동자·서민의 삶이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지난 7월, 서울시는 시내 교통체계를 바꾼답시고 버스와 전철의 기본요금을 23퍼센트나 올렸다. 그러자 부산 등 광역시들도 잇따라 버스요금을 올렸다.
이 때 고속버스와 시외버스 요금도 9∼12퍼센트 올랐다. 정부의 교통세율 인상으로 경유값도 7퍼센트, 엘피지값은 12퍼센트나 올랐다. 서울의 도시가스 요금도 6.2퍼센트가 올랐다.
각 도(道)들도 버스요금 20퍼센트 인상 계획을 밝혔다. 대도시 택시요금도 15∼28퍼센트 인상될 것 같다.

 

지자체들은 상하수도 요금 7∼15퍼센트 인상에 이어 쓰레기 봉투값과 정화조 청소비까지 경쟁적으로 인상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 등의 입장료도 올릴 계획이다. 문화재청도 서울시내 고궁과 능원의 입장료를 최대 세 배까지 인상할 예정이다. 돈 없는 서민들은 휴일에 집에서 TV나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수조 원의 순이익을 올린 한국전력은 뻔뻔하게도 전기요금 5∼6퍼센트 인상을 추진중이고, ‘공영방송’ KBS는 수신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공공요금 인상이 전반적인 물가 인상을 부추긴 탓에, 실상을 축소해서 보여 주는 공식 통계로도 이미 3.8퍼센트가 올랐다. (정부의 올해 소비자 물가 억제 목표선은 3퍼센트였다.)
올해 한국의 식료품 가격 상승률 6.6퍼센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인상률의 2.5배로 가장 높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18억 원짜리 아파트에 종합부동산세 60만 원 인상을 두고 열을 내면서도, 서민들이 생계형으로 애용하는 승합차 세금 60만 원 인상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경향신문> 12월 6일치 사설.)

 

최근 노동부는 비정규직이 지난해보다 80만 명이나 늘었다고 발표했다. 신용불량자는 3백70만 명에 이르고 차상위 빈곤층은 4백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퍼센트와 하위 20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7.3배로 더 벌어졌으며 네 집 중 한 집이 적자 가계부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실계측 연구 결과조차 무시하고 4인 가족 최저생계비로 고작 1백13만여 원을 책정했다.
지난 6월 말에는 물가인상률을 감안하면 동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64만여 원을 최저임금이랍시고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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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테러리스트는 미국뿐입니다”/ 파병연장안이 통과해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다함께 46 호

“이라크의 테러리스트는 미국뿐입니다” / 파병연장안이 통과해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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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테러리스트는 미국뿐입니다” - 김용욱

 

 

- <다함께> 기자 김용욱은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 민중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두 명의 이라크인인 하이셈과 살람을 만나 이라크 상황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하이셈은 1992년 바그다드의대를 졸업하고 현재 적신월사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이며, 살람은 ‘국경 없는 아동’의 책임자이다. 둘은 모두 바그다드에 거주하고 있다.

 


 

하이셈과 살람은 미국이 부과한 경제 제재가 살인적이었고 1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점령 하에서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말했다.

 


“전쟁 이전에 이라크인들은 경제 제재를 당했어요. 생활 필수품 중 많은 것들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의료 지원은 그런 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침략으로 모든 것이 악화했습니다. 대부분의 병원이 파괴되고, 사람들은 외부에서 약품을 사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품들은 유통기간이 지났거나, 보통 인체에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하이셈)

11월 팔루자 공격은 점령군이 저지른 야만 중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하이셈은 “2주 동안에 5천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미군의 공격을 피해 도피한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서 거지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고 분노했다.

 

조지 부시는 테러리스트를 척결하고 민주적 선거를 열기 위해서라며 이 학살을 정당화했다. 하이셈은 이러한 주장에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있는 유일한 테러리스트는 미국입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라크인들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모인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이라크의 해방을 바랍니다.
“우리는 갑자기 알자르카위라는 자가 있고, 그가 팔루자에서 테러를 저지르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황당하게도 미군은 알자르카위를 잡는다면서 팔루자에서 대학살을 저질러 놓고는 그가 다른 도시로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이제 미군은 다른 도시를 파괴하고 학살하고 있습니다.
“민주적 선거를 위해서라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팔루자 사람들은 민주적 선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 점령에 반대해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이라크가 해방되고 외부로부터의 감시없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에만 민주적 선거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살람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점령군의 총구가 우리를 겨누고 있는 한 선거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선거가 이라크에서 무언가 민주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세계에 보여 주고 싶어서 미국이 만든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많은 언론들이 수니파가 점령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시아파 정권을 두려워해서 선거를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한다고 말하자 그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시아파 정부를 두려워해서 선거를 보이콧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라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점령을 종식시키고 더 나은 이라크를 만들기를 바라는 진정한 이라크 정부가 들어선다면 수니파 정부건 시아파 정부건 상관하지 않습니다.”(하이셈)

 

시아파인 하이셈은 언론이 흔히 보도하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분열은 과장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습니다. 4월에 수니파 사람들이 팔루자에서 싸우고 있을 때 나자프의 시아파들도 팔루자의 투쟁을 지지하면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리고 8월에 나자프가 미군으로부터 공격당할 때 팔루자의 수니파 사람들은 나자프로 가서 함께 싸웠습니다.” 

 

살람은 “나는 수니파인데 내 아내는 시아파이며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잘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수니파지만 우리 어머니는 시아파입니다. … 진정한 논점은 시아파 정부냐 수니파 정부냐가 아니라 미군 점령을 어떤 방법으로 끝내고 자유를 얻을 것인가입니다.” 하고 지적했다.
“물론 시아파 조직들이 이번 선거를 지지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시아파 사람과 고위 성직자 들을 만나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들은 선거로부터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 정부가 미군을 떠나라고 요구하기를 바라며 그것이 선거를 지지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거에 반대하는 수니파의 입장을 존중합니다.”(하이셈)

 

하이셈과 살람은 대표적인 시아파 지도자인 알사드르가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반겼다.[최근에는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다.] 그는 선거 참가를 종용하는 시아파 고위 지도자와 미군과 직접적 투쟁을 원하는 일부 사드르 운동 지지자들로부터 동시에 압력을 받아 왔다.
“처음에 사람들은 사드르가 막나가고 있다고, 상황을 신중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그가 매우 훌륭한 저항조직을 이끌고 있고, 진정으로 이라크의 미래를 고민하고 점령을 끝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하이셈)

 

살람은 수니파 최대 정당이자 선거 보이콧을 이끌고 있는 무슬림성직자협회에 속해 있다. 그는 이 정당도 알사드르를 지지한다고 말해 줬다.
“이슬람성직자협회는 알사드르가 훌륭한 이라크인이며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 기회가 온다면 그를 이라크의 지도자로 선출하고 싶어합니다. 수니파인 내가 알사드르를 지지하는 것을 보면 수니파와 시아파 분열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살람)

 

하이셈과 살람은 과거 후세인 시절 망명자들이 이라크에 돌아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와 알다와당 등 사담 후세인 시절 탄압을 받고 이란으로 망명했던 시아파 지도자들과 현 꼭두각시 정부 총리인 알라위같은 자들을 구분했다. 

 

“알다와당과 많은 시아파 성직자들은 후세인 통치 아래 고문을 받거나 살해되거나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라크를 떠나 이란에서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이라크는 그들의 고국이며 그들은 돌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고통받았다고 지금 이라크를 통치할 권리가 자동으로 부여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이라크로부터 멀어져 있었고, 이라크를 더 잘 아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하이셈)
“불행히도 그들은 이라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살았던 사람들은 여기 살면서 고통받아 왔고,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압니다. 그들이 이라크를 통치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살람)
“알라위는 미국 점령을 위해 온갖 짓을 다 했습니다. 그는 팔루자 공격을 명령했고 수천 명을 죽인 것을 승인했습니다. 알라위와 아드난 파자치[꼭두각시 정부 대통령 후보였던 수니파 정치인] 등 다른 망명자들은 미국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영국에 있을 때 이들을 본 적이 있어요. 그들은 천국같은 삶을 살면서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어요. 그들이 하는 일은 가끔씩 텔레비전에 출현해 ‘우리는 후세인에게 고통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점령군과 돌아와 이라크를 통치하겠다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하이셈)  

 

하이셈과 살람은 한국에 머무르면서 국제반전운동의 일부인 한국의 반전·반파병운동과 접촉하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는 이라크에 돌아가서 이라크인들을 염려하고 우리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많은 단체들이 이라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기를 바랍니다.”(하이셈)

 

살람은 이라크인에게 직접 반전운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라크인들과 친구가 되세요. 당신은 이라크인들에게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령 반대 투쟁을 알릴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이러한 투쟁 소식이 이라크인들의 사기를 북돋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파병연장안이 통과해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 김용민

 

열린우리당이 파병연장동의안 처리에 조바심을 내고 있다. 급기야 지난 16일에는 파병연장동의안 처리를 위해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개최했다.
놀랍게도, 이 날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1백50명 전원이 본회의에 참가했다. 이른바 파병 반대 의원들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4대 개혁법안 문제에서 우왕좌왕하며 후퇴와 타협을 거듭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파병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라크 현지조사단’의 보고는 이번에도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
‘조사단’이 실제 조사 활동을 벌인 기간은 고작 하루뿐이었고, 그나마 만난 사람들이라고는 친미 부역세력인 쿠르드 자치정부의 바르자니 총리나 미군 관계자들뿐이었다.
‘현지조사단’의 희망 섞인 보고가 무색하게도 이라크 북부 지역의 치안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특히 팔루자 대공세 이후 아르빌 인근의 모술에 저항세력이 모여들고 있다.

 

지난 12월 4일에는 아르빌에서 모술로 이동중이던 페쉬메르가(쿠르드족 민병대) 대원들이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12일에는 아르빌에서 쿠르드민주당 간부를 겨냥한 차량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러한 공격은 쿠르드인들의 점령 부역 활동에 대한 이라크인들의 분노를 반영한다.
예컨대 미군은 팔루자 공세 동안 이라크 북부 지역의 치안 유지에 쿠르드인들로 구성된 방위군을 적극 활용했다.

 

당연히, 아르빌에 주둔하며 미군 부역 세력 ― 쿠르드 자치정부와 쿠르드 민병대 ― 을 지원하고 있는 자이툰 부대 역시 언제든 저항세력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총선 전후 시기가 저항세력과 점령군 모두에게 전환점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 11월 초 자이툰 부대에게 선거 감시 활동을 요청했다.
지금처럼 저항이 격렬한 상황에서 평화적인 선거 감시 활동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선거 감시 활동 자체가 저항세력 색출이나 진압 작전의 다른 이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미국은 팔루자 학살이 총선을 치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는 30일 열린우리당은 파병연장동의안 처리를 다시 시도할 것이다. 국보법 문제에서 타협이 이뤄지면 한나라당 역시 연장동의안 처리에 동의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에 파병연장동의안이 통과한다 해도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점령이 계속되는 한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계속될 것이고, 점령군이 빠진적 있는 수렁 역시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내년 3월 20일 국제 반전 운동은 다시 한 번 거대하게 기지개를 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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