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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특급열차

루이스 세풀베다..한언니의 소개로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 푹 빠져버린 작가이다. 이사람의 자전적 소설인 '파타고니아 특급열차'는 망명해서 돌아다니며 만난 남미 구석구석의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다. 슬프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괜히 가슴 뻐근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중에서 짧은 애피소드 몇개만 옮긴다. 한참 전에 읽으면서 배껴놓았나 본데 메일함 정리하다가 발견했다.

자극되어서 보시는 동지들이 계시다면 꼭 알려주시라..같이 얘기해보자고..

 

"<콜로노>호가 한 번 더 속도를 늦춘다. 배는 뭍에서 약 8킬로미터 이내의 거리로 들어와 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갑판으로 나온다. 나 역시 그들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남극의 고래들이나 돌고래들이 수면 위에서 펼치는 묘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고래 떼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올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는 한 척의 작은 배다.
그 배는 칠로에 선적의 작은 범선이다. 길이 8미터, 너비 3미터쯤 되는 작은 배는 돛을 부풀리는 가벼운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우리 쪽으로 다가서고 있다. 나 역시 그 배가 잘 보이는 갑판 쪽으로 다가간다. 그 작은 배가 지구의 남쪽 끝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 중의 하나임을 생각하면서.
칠로에 사람들은 말한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자가 먹을 것을 얻는다>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뱃사람은 선미에 앉아 능숙한 솜씨로 자기 몸의 일부나 다름없는 키를 잡고 있다. 그는 칠로에 사람이다. 나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떡갈나무, 낙엽송, 포플러, 유카리나무에 서로 다른 중량의 돌을 매달아 놓고서 그 나무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그들은 보다 신축적이고, 보다 탄력적인 돛을 구하기 위해서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윽고 뱃사람이 <콜로노>호를 향해 손을 흔든다. 파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춰 준<콜로노>호의 선장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시다. 나는 그 범선 역시 코르코바도를 향해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뱃사람은 무시무시한 페나스 만과 메시에르 협만이나 인디오 협만을 지나 열린 바다를 향해서 레이더도 없이, 무전기도 없이, 항해 도구도 없이, 보조 엔진도 없이 오로지 바다와 해풍에 대한 자신의 경험으로 항해하고 있다.
그 바다의 뱃사람은 나의 형제다. 그는 지금 나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환영하러 나온 것이다."

 
 
"나는 목장의 여인네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나눈다. 수의사인 마르타, 이냐키의 아내 에스날로아의 새로운 세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이사벨, 그리고 아구스틴의 아내 플로르가 그들이다. 그런데 아구스틴과 플로르는 파타고니아에서 전설적인 커플ㄹ로 알려져 있다.
결혼 전, 아르헨티나의 리오 마요에 있는 병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플로르에게 푹 빠져 있던 아구스틴은 한 해에 한 번쯤 대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감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플로르가 은행원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구스틴은 형들과 형수들에게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돌아올 터이니 신방을 단장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 채 기타를 챙겨 들고 뗏목에 올라탔다.
결혼식이 진행될 일요일 리오 마요의 성당에 도착한 아구스틴은 신부복을 입은 플로르가 부모들과 함께 성당에 들어선데 이어 신랑이 등장하기 직전, 하객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들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기타 줄을 퉁기기 시작했다. 8음절 10행 시, 감미로운 기타의 선율에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시구에는 죽음이 둘을 갈롢을 때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구구절절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연인에게 바치는 사랑의 연가는 하객들이 신랑을 제지하는 와중에 무려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플로르가 손을 내민 것은 아구스틴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괴로워하며 손에 든 기타를 막 내리치려던 순간이었다. 두사람-플로르는 웨딩드레스 차람이었다-은 손을 맞잡고 성당을 빠져나와 그 길로 목장을 내달았다. 그때부터아구스틴은 그 지방에서 사랑의 연가를 연주하는 최고의 가우초가 되었으며, 그는 자신의 신부를 <백색 뮤즈>로 불렀다."
 
 
"맨 먼저 차에서 내린 사람은 코이아이케의 학교 선생이자 고집불통인 파타고니아의 역사가 발도 아라야이다. 암울한 칠레 군사 독재 시절, 그는 독재 정권이 국에 덧붙인 후렴-그대 이름, 칠레를 떠받친 용감한 군인-을 거부했다. 학생과 선생들이 월요일마다 국가를 부르는 동안 혼자서 묵묵히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그 일로 군부는 그에게 가공할 많나 폭력을 행사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러 달의 구금 생활을 겪으면서까지 자신의 의지를 꺼지 않고 버티자 끝내는 그를 학교에서 퇴출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가. 다음날 아침에 바케다노 부대 정문에 경비견의 목이 매달렸는데, 그 짐승의 송곳니에 이런 글귀가 씌어져 있었다.
<우리를 잊고 있는 머저리 자식들에게 고한다. 너희는 부대 안에 있고, 우리는 밖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다시 경고한다. 아라야 선생님을 원상 복직시켜라.>
결국 군부는 선생을 쫓아내지 못하고 월급을 박탈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발도 아라야 선생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감과 아낌없는 온정 속에서 14년 동안 꿋꿋하게 세계사 수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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