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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를 읽고 있다.

와우북 페스티발에 가서 얻은 단하나의 수확! 1,2권을 각 천원에 팔고 있어서 얼른 샀다. 하긴 99년에 출간되었으니 벌써 오래된 책이라 떨이로 팔아치우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보부아르는 미국의 작가 넬슨 앨그렌과 20여년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때 그녀는 이미 세계적으로 저명한 작가였고,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인 그녀의 면모와는 상당히 다른 언어와 넘쳐나는 사랑의 고백에 사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리고 절절한 사랑의 언어와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문단과 영화, 예술 등 문화예술, 지식인 세계에 대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읽는 재미는 있다.

서툰 영어로 써야했으니까 문장을 까다롭게 다듬지 못했을 것이라는 조건이 있다 해도 있는 그대로 사랑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써내려가는 보부아르의 모습은 경이롭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작가로서 살아가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절대적으로 지켜갔고, 넬슨이 결혼을 신청하려고 했던 시도에 대해 정확하게 거부를 했다.

보부아르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즐겁게 읽었다. 워낙 오래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분위기와 읽으면서 상상했던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책은 '타인의 피'이다. 연애편지를 읽다보니 사춘기때 읽어서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타인의 피'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결심.

 

흐흐...사실 페미니스트들의 교과서라는 제2의 성은 읽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서구의 백인 페미니즘에 대한 묘한 반감? 질투?

오히려 제 3세계의 현실을 아우르며 고찰한 페미니즘에 대해 더 흥미있었던 아시아 여성으로 살아가는 내 현실도 있겠고..

현실에서 30여년의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늘 나의 내면과 외면의 현상에 대해서 가장 질긴 고민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온 것이 이론서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자신만만해 한 것도 있다. 흐흐..(이 택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야!!)

버지니아 울프의 혼자만의 방도 작년에서야 읽었는데, 그녀가 한 얘기들은 내가 20대에 들어서 고민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던데..

앞서 살았던 페미니스트들이 열어 젖힌 사유들이 있어서 나도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 것이겠지만..

지금 뒤늦게 제 2의 성을 읽는다고 해도 별 새로운 고민을 던져줄 것 같지는 않다. 읽어보고 할 얘기여서 요즘은 제 2의 성도 읽어볼까 싶기도 하다.

 

다시 책얘기로 돌아오면 보부아르의 연애편지는 제 2의 성을 쓰면서 여성에 대해 고찰하던 그녀가 한편으로 모순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절절한 사랑의 언어를 구사하는 솔직함에 경외감을 갖게 한다.

이제 이런 것도 삐딱하게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20대의 뾰족함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일까? 언어에 당황하기는 했어도 그다지 반발심이 일지 않는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기도 하다. 긁적긁적..

 

오래전 내가 썼던 몇년동안의 연애편지들은 어찌 되었을까. 일주일에 2~3통씩 보냈던 그 편지들...아마 다 불태워졌겠지. 형이 편지만 한상자였다고 웃으면서 얘기했었는데..

사랑의 말과 나의 생활과 고민들이 없어진 그 편지들에 가장 상세하게 씌어져 있었을 텐데.

아, 물론 보부아르의 연애편지에 비견해서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녀처럼 훌륭한 작가도 아니고,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 요즘보다 더 형편없는 글쓰기를 했었으니까 뭐 얼굴이 붉어질 것이 뻔하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가장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 일기라는 것에 공감하는 것이다.

처음 운동에 입문하던 당시에 그와 사랑을 하게 되고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편지를 쓰면서 정리가 안되던 것들도 정리했던 기억도 나는구만.

답장을 내가 쓴만큼 안보낸다고 책망하곤 했는데, 보부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빠지면 비슷한가보다 싶어서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밤에 그런 책을 읽으면서 이런 독서일기를 쓰고 있으니 몹시 그가 그립다. 아, 정말 그립다.

 

누군가와 편지로 주고 받으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오래된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그것이 사랑이면 더 좋고, 친구라도 좋고...

21세기에 걸맞게 이메일이어도 상관없으리라..아날로그로 연필로 끄적거리면 더 정서적으로 좋겠지만..

 

초저녁 잠에서 깨어나 보부아르를 질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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