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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변했다.

우리가 상상하던 세상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171일 동안 파업과 직장폐쇄를 끝내고, 노동조합 자주관리 기업 선포식을 갖는 버스노동자들의 표정에는 자신감과 기대가 어우러져 있다.

<선포식에 참가해 구호 외치는 노동자들>

 

일주일 전만 해도 폐허와 같았던 회사. 낡은 건물. 6개월 동안 운행을 하지 않아 차에 먼지가 잔뜩 껴 폐차장을 방불케하였던 주차장. 그러나 오늘은 이 모든 게 깔끔하게 변해있다. 차량도 이제 막 출고한 차들처럼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로 닦아놓았고.

 

버스 현장에서 흔히 보는 주눅들고 지친 노동자들, 거들먹거리는 관리자들, 기름때 절은 우중충한 풍경은 간데 없고 활짝 웃는 노동자들이 활달하게 오고가며 자기 할일을 하는 모습만 보인다.

 

"이제 사고 조심만 하면 될 겨~" 모두 되찾은 노동현장에 대해 자신감이 넘친다.

살맛나는 노동은 바로 이런 게 아닌가.

그런데 바뀐게 뭐지? 건물? 주차장? 버스? 아니면 날씨가 특별히 좋은가?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단지 회사 소유형태가 바뀌었을 뿐이고, 운영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선포식에서 축사하는 민주버스 황일남 위원장>

 

맞다. 우리가 나갈 세상은, 바로 이런 세상이다.

초과이윤을 한푼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우리 노동자를 단순히 돈버는 기계로 여기고, 억압과 핍박은 물론 온갖 굴종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윤논리에 길들여지기를 강요하는 자본이 사라진 현장은 참으로 다른 세상이었다.

<축사하는 김재수 신임 대표이사> 민주노총이 총파업 지침을 내리면 앞장서서

따르겠다고 한다.

 

"이제 사고 조심만 하면 되는 겨~~" 늙은 선배님이 느린 충청도 사투리로 후배에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 민주노동운동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온갖 구실을 붙이고, 없는 것도 만들어 징계 메기고 압박하는 자본의 사업주는 사라졌다. 정말 사고 조심만 하고, 시민들이 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행만 잘 하면 되는 것이다. 이게 노동자가 노동의 주인으로 , 노동의 가치를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도 쓰는 진정한 노동이 아닌가!

 

신임 대표이사를 맡은 김재수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은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은 노동자가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의 주인으로써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회사가 노동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대 시민 결의문을 발표하는 변정용 우진교통지부장> 노동자들이

시내버스공공성 강화를 위해 더욱 노력하고, 시민 중심의 시내버스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노동조합 지분 주식을 맡아 관리해주기로 하신 김정기 서원대 전 교장선생님(본인이 '총장'이라는 용어 대신에 '교장'이라는 용어를 써달라고 강력히 요구)의 당부말씀과 이영섭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장, 한대수 청주시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행사 후 고사를 지내고 막걸리를 드시는 김정기 교장선생님> 먹던 막걸리를

고사 차량에 고시래로 뿌려 이날을 위해 차량에 반짝반짝 빛을 내놨던 담당

조합원 동지는 울상이 되었고^^  고시래를 받았으니 10년 액운이 도망갔을

거라는 조합원들의 덕담와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한때 시장의 책임을 물으며 전경 바리케이트를 뚫고 시청앞 진격전을 벌였던 조합원들은 한대수 시장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맞다. 화합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한대수 시장도 조합원들의 환대에 "(우진교통) 정상화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겠다"고 화답했다.

 

<오색천 끊기 행사> 민주노총에서 언제 이런 것 해봤나. 모두들 쑥스럽고

서툴기만 하다. 그래도 왜 이리 좋을까~~

 

오색천 끊기 행사를 거쳐 고사를 지냈다, 모두들 즐겁기만 하다. 차량에 막걸리를 뿌리고, 카메라맨들은 연신 포즈 주문하고. 낯선 풍경,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즐겁기만 했다.

 

<단체로 고사지내는 조합원들> 이런 날이 오다니. 조합원들은 뿌듯하기만

하다. 지켜보는 가족들도 모두 후믓하기만 하고...

 


 이어 시승식이 있었다. 참으로 6개월 만에 차량에 시동을 건다. 참석자들 모두 덕담을 주고받는다. 정말 오늘만 같아라.


<시승식> 모두들 오늘 같은 마음으로만 한다면 우진교통을 넘어 대한민국이

희망있는 사회로 바뀌겠지..




청주 최대 시내버스업체인 우진교통은 2004년 7월 24일 회사의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맞서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 전 이사진은 회사를 인수한 이후 2년여 동안 단 1회를 빼놓고 월급을 제날짜에 준 적이 없이 체불해왔었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파업을 하자 이번에는 직장폐쇄로 맞섰다.

 

<노숙투쟁 중 저녁식사하는 조합원들> 비바람 몰아치는 날바닥에서

국수로 끼니를 때우며 함께 싸웠다. "풍찬노숙" 우리는 그날의 그 의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합원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일자리로 돌아갈 날을 기약할 수 없었음에도 길바닥 비바람 속에서 "풍찬노숙"도 마다않고 단결하여 투쟁하였다. 노동자들에 대한 가족들의 믿음고 동참, 그리고 헌신,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 시민 사회단체의 협조,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의 헌신적인 지도와 연대 천리길도 마다 않은 민주버스 조합원 동지들의 연대. 그 무엇하나 고맙지 않은 게 없다.

 

<투쟁에 참여한 지도부들> 민주노총, 민주버스 뿐만 아니라 시민들,

시민 사회단체들, 그리고 가족들. 이번 우진 싸움은 연대의 모범을

보인 싸움이기도 하였다.

 

이제 돌이켜 보면 지난 날이 꿈만 같다. 경찰의 모진 진압으로 전원이 연행되고. 가족들이, 특히 늙으신 어머님이 농성장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누워 "내 자식 자리는 내가 지킨다"고 버티며 끝내 버티며 사수했던 농성장이다.

 

 <조합원들 연행하는 모습> 경찰서로 끌려가고, 매맞아 쓰러져도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승리했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승리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껏 싸워 온 것이 우리 개인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지만 싸움을 통하여 우리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임을 알았다. 우리는 바닥에서 싸우기 시작했는데, 이제 우리 사회 민중의 싸움 맨 앞에 자리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모두 연행된 후 시청앞 농성장을 사수하는 가족들>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빠가 끌려간 이 자리 우리가 지킨다."

늙으신 노모, 아이 안은 아내, 어린 아이들. 가족들은 투쟁의

가장 큰 힘이었다.

 

우리가 모범을 세워야 한다. 기업과 대중교통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시민들에게 실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길이 옳음을, 우리 사회가 그길로 가야함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경찰의 폭압적 진압에 울음을 터뜨린 어린 딸>

우리는 잃어버린 일터를 되찾았다. 우진교통은 이제 우리의 것이다.

이제 우리가 주장해왔던 고용보장이 되는 회사, 시민을 위하는

시내버스, 기업과 대중교통의 공공성 강화! 바로 우리가 주장하던 구호를

 우리가 실천해야 한다. 그때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

그 쓰린 가슴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결의를 잊지 말자!

 

시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하며 겪었던 숱한 나날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필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진교통 노동조합 자주관리기업 출범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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