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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에는 가을이 가고 있었다.

곰배령에는 가을이 가고 있었다

 

1.

 

오랜만의 일탈이었다

 

우리는 탈영이라 부르며 찔리지만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2004년 10월 16일 토요일. 목적지는 강원도 인제군 곰배령.

 

우리 지구당의 대표적인 한량(나는 이 말을 존경의 의미로 쓴다)인 이준 위원장이 분위기를 띄웠고, 또 다른 대표 한량 산오리 곽장영 위원장이 받았다. 그렇게 해서 곰배령 단풍구경은 급물살을 탔다.

 

그런데 어쩐담. 난 자유주의자(?)지만 소심하기도 하고, 더욱이 내가 관여하는 운수연대 주최의 집회가 있고, 지역에서는 시의원 선거가 한참인 걸

 

꽁무니를 빼는 눈치를 알아차린 이준 위원장은 못을 박는다. “꼭 가야 돼요.” “안 가면 안 돼요”

“예”

대답은 하였으나 찜찜하다. 이준 위원장은 책임을 주어 못을 박는다. 차가 4명 탈 수 있으니 1명 더 섭외해요.

 

아니 더하여 짐까지. 이런. 평소 눈치 없다고 스스로 곰탱이란 아이디를 쓰는 양반이 이렇게 눈치가 빨라서야

곰배령으로 떠난 4 남자. 산오리 곽장영/곰탱 이준/최경순/배현철(왼쪽부터)

아내와 의논했다. 이래저래 해 여행을 가겠으니 경비를 달라고 했다. 기대와 달리 아내는 흔쾌히 응낙한다. 응원군을 얻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좋다. 탈영이다!

 

이준 위원장은 결코 곰탱이 아니었다. 여행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출발장소를 묻는 나에게 3명 집을 돌면서 차례로 싣고 가겠단다.

 

새벽 5시 기상. 모처럼 일찍 일어났다. 대충 준비를 마치고 전화를 기다렸다. 7시 30분 전화가 왔다. 불이 나게 달려갔다. 벌써 들떠 벌겋게 단풍물이 든 40대 세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

 

2.

출근시간이다. 하지만 토요일이라 그런지 자유로, 강변북로는 막힘이 없다. 5일제 많이들 하는군 부러워 중얼거린다.

 

워커힐을 지나면선 멀리 아파트가 보여도 이미 서울이 아니다. 강변에는 코스모스가 밭을 이루고, 강건너엔 버드나무 우거진 예쁜 섬이 안개사이로 번져있다.

 

팔당을 지나고, 두물머리를 지난다. 40대 네 남자 모두 저마다 추억이 서린 곳이다. (아니 모범생 배현철은 예외인 듯) 차는 물 위로 낮게 달리고, 눈높이의 강가에는 새벽안개가 피어오른다. 갈대가 우거진 강가에는 철일찍 날아온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경지정리하지 않은 앙증맞은 논에는 물기어린 갈색갈대 사이로 노란 벼들이 꽃밭처럼 펼쳐 있다.

8월의 곰배령/ 고개마루 넓은 초원은 꽃들로 가득차 "천상의 화원'으로 불린다. 출처 - daum 카페

물가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이다. 이준 위원장은 날씨가 좋지 않다고 연신 걱정이다. 좋기만 하구만 우리는 사실을 위로처럼 말한다.

홍천으로 접어들면서 타작이 끝난 빈 논이 늘어간다. 군데군데 서리 온 자국이 있다. 서리에 약한 호박덩굴 따위가 한쪽은 삶아놓은 듯하고, 한쪽은 여전히 윤기가 있다.



홍천을 지나 4차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차들이 밀린다. 역시 여행의 달인 이준 위원장은 계획을 수정 56번 국도 서석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약간 돌지만 밀리는 것보다 빠를 것이라면서 돈들 어쩌랴. 처음 와보는 길이 좋기만 한 걸

 

서석면 쪽 큰 개울은 경치가 그만이다. 동강의 조각을 떼어낸 듯 물결에 부딪친 산 기슭은 기암절벽이 아름답다.

 

행치령을 넘으면 인제땅이다. 상남에서 길과 만난 내린천은 현리까지 따라간다. 단풍과 절벽, 강물과 바위가 절묘하다. 연이은 이국풍의 집들이 씁쓸하게도 외지인의 차지인 게 분명하지만 40대 풍상에 둥글어진 남자들은 저 집은 멋있다는 등 엉뚱한 말로 지난다.

 

이준 위원장 말대로 여기까지는 풍경도 아니다. 현리를 지나 곰배령이 있는 진동리로 향하는 방태천을 따라 난 길은 굽이를 지나면 지날수록 현란한 단풍은 점점 더 원색을 내뿜는 다. 조금이라도 원색으로 보려고 선팅한 창문을 내린다. 바람이 몹시 차다.(이곳은 서울과 10도 이상 차이가 난다.)

꽃님이네 집 입구에 선 이준 위원장/개울가 절벽에선 내 성정에 맞는 작은 폭포가 두 갈래로 떨어지고

이준 위원장의 정보에 의하면 곰배령 단풍은 절정일 것이다. 우리는 절정을 이뤘을 곰배령을 기대하며 탄성만 지르며 멈추지 않고 지나간다.

 

그러나 웬걸. 곰배령이 가까워 오자 불안하다. 단풍은 이미 지고 있었고, 갈수록 낙엽 떨군 앙상한 가지는 늘어갔다. 더욱이 터널공사에 양수발전소 공사장은 마음 마저 불편하게 한다.

 

차를 세웠다. 찻길로는 끝. 꽃님이네 집. www. sulpi. co. kr 예쁜 팻말 앞에 차를 세웠다. 어디서 왔는지 손님을 토해낸 빈 관광버스가 미리 와 있다. 마치 알을 잔뜩 쏟아낸 큰 배를 내려 깔고 헐떡이는 사마귀 같다. 알이 어미가 되고, 또 알을 낳고 그러면서 세상 끝이라는 이곳도 끝이라는 이유로 망가지겠지

꽃님이네 집 앞 개울가에서 먹는 점심/ 라면에 소주 한잔. 캬~

우리는 꽃님이네 집 쪽 예쁜 개울 옆에 자리잡았다. 코펠을 꺼내고, 버너를 꺼내고, 라면을 삶으면서 소주 한잔. 캬!

라면맛 좋고. 소주 좋고. 우리는 진보적 문화인(?)답게 주변을 이전보다 더 깨끗이 치우고 서둘러 곰배령으로 향한다.

 

3.

관광버스를 지나니 길 오른편에 제법 넓은 배추밭이다. 배추가 탐스럽게 크네 하고 감탄하는데 나무가지에 묵어놓은 간판이 보인다.

농작물 접근 금지 사법 조치

그래. 사는 게 산속이라고 뭐 특별할까. 여기서도 먹어야 사는 게지

 

몇 걸음 나가면 3거리. 허름한 컨테이너 앞에선 시커먼 사내 둘이 차와 효소, 약술 따위를 펼쳐놓고 자기들끼리 웃으며 대작한다. 수염 텁스그레한 이는 한눈에 봐도 추장이다. 이준 위원장에게 여러 번 들었다. 지난 여름 이준 위원장 가족은 추장네 집 앞에서 2박 3일 야영을 했단다. 그 추억을 못 잊는 듯 오는 길에도 여러 차레 얘기했던 사람이다.

 

이준 : 단풍이 한물 갔네요.

추장 : 지난 주가 절정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신발끈을 조였다.

곰배령 초입/ 우리는 그져 빨려들어갔다.

길은 의외로 넓었다. 차량통행 차단장치가 있지만 그것만 치우면 차도 다닐성싶다.

단풍은 많이 져 있었다. 그래도 좋다. 간섭 없이 자란듯한 아름들이 나무들. 말랐다고는 하나 여전히 풍부한 수량의 개울. 아직도 불빛 머금은 듯 투명하게 새빨간 단풍잎. 사진을 찍고, 걷고, 우리는 느릿느릿 산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극상림을 이룬 곰배령 숲/ 인간의 간섭을 벗어나면 우리 산야는 이런 모습일 거라 한다. 옆 진동리 양수발전소는 이런 숲이 있는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들고 있다.

곰배령. 고개 이름이다. 그런데 고갯길이 평지나 다름없다. 폭포가 있고, 소(沼)가 있고. 시리도록 푸른 물이 든 깊은 소엔 열목어가 살겠지

 

한때는 화전을 하고도 남을 평지는 극상림을 이룬 숲으로 덮여있다. 조금 넓어지는가 싶더니 원시림을 뚫고 인공구조물이 나온다. 이곳이 강선리다. 이름 그대로 선녀가 내려온 마을이란다. 나뭇꾼 때문인가. 선녀는 신선과 달리 내겐 풍요로운 느낌이 없다.

선녀가 내려왔다고 하여 이름붙여진 강선리 입구 폭포/

두메 깊숙한 화전마을. 누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처음 터를 잡았을까.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아이를 낳고 그들은 행복했을까? 행복이란 뭘까. 불행하지 않다는 것인가

 

화전터를 지나면 늘 가슴이 짠하다. 인간 사회를 피해야 했던 절박함이 바위 자갈 솟은 비탈진 밭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것 같다. 행복에 대한 도회화 한 내 시야도 한몫 하겠지만

 

강선리에는 예쁜 아가씨가 차를 판다고 했는데, 오늘은 나들이를 갔는지 시집을 갔는지 밖에 세워둔 탁자에는 아무도 없다.

 

강선리를 뒤로 하고 곰배령을 오른다. 여기부터는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이다.

나이가 더 많은 이준 위원장과 곽장영 위원장 앞장서 간다. 배현철과 나는 뒤 처져 간다. 걷는 속도보다는 모처럼 도시에 온 촌사람처럼 구경(?)에 굶주린 촌(?)것들이라 볼게 더 많아서 일 게다.

가재 잡는 배현철과 산오리/ 그러나 가재는 이미 동면에 들고...

한동안 오르니 이, 곽 위원장이 물가에 쉬고 있다. 어릴 때 생각을 가재잡기 내기를 했다. 그러나 산속에는 이미 겨울이 오고 있었고, 가재는 깊이 동면에 들어갔나 보다. 가재 구경 못했으면 어떤가. 도시락 삼아 가져온 귤을 나눠먹고 길을 나선다.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 강선리에 내려왔다는 선녀의 나신이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추운지방에 잘 자라는 숲속의 귀족 자작나무가 흰 속살을 드러내고 쭉쭉 벋어 있고, 극상림 활엽수 사이로 우람하게 자란 전나무, 잣나무들이 자리를 비집고 있다. 습기 많은 바닥에는 화분에 담아도 관상용으로 빠지지 않을 듯 멋진 고사리류인 이국적인 관중이 지천이다. 온통 갈회색으로 변해가는 숲바닥에는 키작은 전나무들이 여기저기서 솟아난다. 저들이 저 높은 활엽수들 위까지 자랄 수 있을까.

 

냇물이 길을 가로지른다. 도움닫기로 한번에 건널 너비다. 냇물이 좁은만큼 정상도 멀지 않을 것이다.

곰배령 오르는 길에 마지막 만난 냇물/ 냇물의 수량만큼 골짜기가 있고, 고개까지 거리가 있겠지만, 거꾸로 골짜기와 고개는 그 만큼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냇물을 지나 가파라지는 산길을 오다. 오를수록 나무들은 점점 작아진다. 밑둥은 아래와 다를 바 없어도 키는 덩치 큰 스모선수처럼 뚱뚱하게 느껴질 정도로 짤뚝하다. 이윽고 나무들이 바닥으로 점점 깔리면서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8월이면 온갖 꽃들로 가득차 천상의 화원이란 별칭을 얻은 넓은 풀밭이다.

늦가을 곰배령/ 꽃들은 간 데 없고 마른 풀들만 가득하다.

바람이 세 소가 날아갔다 하여 붙여진 쇠나드리라는 마을 이름이 보여주듯 넘어가는 센 골바람 때문에 이 고개마루는 키큰 나무가 자랄 수 없다. 덕분에 햇볕을 실컷 얻어 온갖 풀들과 꽃들이 자란다고 하는데, 이미 이곳은 밤이면 수시로 영하로 떨어지는 늦가을이라 꽃들은 간 데 없고 마른 풀들만 넓은 초원을 채우고 있다.

 

4.

곰배령은 설악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휴식년제로 막혀있고, 길 끝에 장승이 서 있다. 이곳을 지나 능선을 오르면 곧바로 점봉산이다.

곰배령은 진동리에서 귀둔리 곰배골로 이어지는 고갯길이다.

곰배령 늙은 팥배나무 아래에서 산오리와 이준/ 100살도 더 되 보이는 이 나무는 초원 가에 홀로 자라 있다.

이 나무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 어디 바람 뿐이랴. 고갯길 보다 힘겨운 삶을 헤쳐나갔을 이 고개를 넘다든 민초의 삶의 무수한 영상이 노목의 주름이 되어 엉겨있는 듯하다.

우리는 곰배골 쪽으로 조금 내려가 초원 가에 홀로 키크게 자란 나무 밑에 자리를 잡았다. 늙은 팥배나무다. 센 골바람을 맞으며 홀로 큰키로 자라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마 100살은 넘었을 것이다.

 

이 고개를 우리 같은 유람객이 아니라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만 사람들이 넘나들었을 때에도 거의 지금 크기일 성 싶게 나무는 주름진 연륜을 지니고 있다. 짚신을 신고 봇짐을 진 사람들이 오가는 걸 이 나무는 봤겠지. 그 때도 사람들은 이 나무 그늘에 앉아 흐르는 땀을 식혔겠지. 세월이 가고 이농의 바람이 산속 사람들을 모두 흩어 가면서 고개길은 풀섶으로 덮여 갔겠지 구름 낀 잿빛 하늘이 아련하다.

우리는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고, 사과도 깎고, 김통을 잔 삼아 맥주를 마셨다.

극상림 속에서 자라는 어린 전나무/ 저들도 하늘에 닿을 만큼 클 수 있는 행운이 있을까.

다시 내려가려 고개마루에 섰다. 고개마루는 여전히 바람이 센데 두 남자는 그냥 내려갈 수 없다고 한다. 바람이 좋으니 풍욕을 해야 한다고 우긴다. 원시에 가까운 자연 속이니 도회지 자욱한 매연 같은 옷일랑 모두 벗어 던지고 바람 세고 길 없는 숲속을 걷는다는 건 큰 유혹이리라. 하지만 나와 이준 위원장은 웃음으로 사양하며 먼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한가롭다. 풍욕을 하러 간 사람들은 최소한 30분은 더 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짧아진 해는 이미 기울고 있다. 해 안에 조침령 넘어 숙소가 있는 양양 미천골로 가야 하는데

조침령 정상에서 배현철/이준/곽장영 : 수직에 가까운 해발770미터로 새도 단번에 넘지 못하고 자고 넘는다고 한다. 고개는 백두대간을 가른다.

조침령을 넘을 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지리시간에 배웠듯이 남한 땅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이 솟고, 서쪽으로 서서히 기울은 경동지괴지형이다. 고원지대인 진동리에서 조침령 정상까지는 야트막한 고갯길이지만 정상부터 고개 밑까지는 그야말로 천길 만길이다. 새들도 한번에 넘지 못해 자고 넘는다 하여 조침(鳥寢)령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5.

이 조침령도 개발의 홍역을 겪고 있다. 길을 넓히고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 굽이굽이 비포장길은 길 공사, 양수발전소 발전기, 발전수로 공사로 마구 파헤쳐 있다. 개발과 보존의 조화는 어려운 일이겠지. 그래도

 

조침령을 내려오면 미천골은 지척이다. 하지만 우리는 양양읍내로 향했다. 먹거리를 사기 위해서다. 이미 어둠은 한밤중이다. 수퍼에 들러 고기와 술 따위를 샀다. 동해에 왔으니 제철 오징어회는 먹어야지 하고 주인에게 파는 곳을 물으니 읍내에는 없단다. 속초 쪽 물치항까지 가야 한단다.

단풍이 한창인 미천골/ 아쉽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출처 - 불바라기 펜션

읍내를 빠져 나와 물치로 가는 길은 왕복 4차로 넓은 길이지만 오늘따라 차들로 꽊 차있다. 길은 막히고, 지리는 모르니 답답들 한 모양이다

 

물치에 가기 전에 바다쪽으로 횟집들이 보였다. 우리는 무작정 그리로 갔다. 큰 운동장만한 주차장엔 차들이 가득차고, 방파제 옆으로 난 횟집들 앞길은 사람들로 미어진다.

바다에는 파도가 연실 소리내며 다가 와 흰 포말로 부서진다. 배현철은 파도를 보며 환호한다.

 

오징어 얼마에요.

2마리에 2만원이요.

? 얼마요?

2마리에 2만원. 여기가 서울보다 비싸요.

 

놀라워라. 우리는 귀를 의심하며 다음 집으로 갔다.

 

오징어만은 안 팔아요.

또 다음 집으로 갔다.

 

오늘은 파도가 높아 오징어가 없어요.

우리는 비로소 심각한 사태의 원인을 알았다. 알았으면 빨리 포기해야지.

 

6.

돌아오는 길은 수월하다. 미천골을 들어서니 한밤중이다. 곰배령과 달리 한참일 단풍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선림원지 풍경/서기 700년대 세워져 10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폐허가 된 절. 배현철은 예쁜 꽃들을 살피고, 이준 위원장은 한가로이 거닌다.

숙소는 방갈로 형태인데 4평형치고는 작아보였다. 그래도 다들 좋아한다.

코펠을 내놓고, 쌀을 씻고, 상치와 깻잎을 씻는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따르고. 각 1병을 외치며 한잔. 캬~~.

 

설거지를 하고 이준 위원장하고 별바라기를 위해 불빛이 없는 불바라기 쪽으로 향했다. 배현철은 산오리와 어항을 놓겠다고 절벽아래 계곡으로 향한다.

날씨가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별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그래도 이게 얼마 만인가. 적당히 찬 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고

돌아와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보일러를 튼 바닥이 뜨겁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밖을 내다보니 이곳은 단풍이 이제 시작이다. 숙소 주변에 난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았지만 빠른 걸음으로 5분이면 다 돌 짧은 길이라 성에 차지 않는다.

림원지 흥각국사비 귀부와 이수/ 조각이 매우 섬세하다. 그러나 정신은 신라 전성기에 못미침이 거북의 앞발에서 보여진다. 용맹정진, 힘차게 내딛어야 할 앞발이 그저 장식품처럼 정지해 있다. 아무리 솜씨 없는 목수라도 정교한 집을 짓는 꿀벌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미학적으로 승인한다면, 이 솜씨 좋은 조각품은 예술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불바라기 약수터로 향한다. 산오리는 여전히 잠자리에 있고, 배현철은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이준 위원장과 단둘이 나섰다.

 

숙소 단지를 벗어나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골이 깊은 만큼 산은 높다. 수직으로 솟은 높은 연봉들이 단풍으로 타오른다.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게 아쉽다.

깊은 계곡, 높은 절벽엔 폭포가 있게 마련. 조금 오르자 정자가 있고, 건너편에 높다란 폭포가 있다. 이름하여 상직폭포. 폭포가 너무 높아 물고기가 오르지 못하여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폭포는 가을이라 수량이 적어 외줄로 굽이굽이 내려오지만 스케일 작은 내 성정에 딱 맞는다.

3층 석탑에 돋을 새김된 팔부중상/ 팔부중상은 부처님을 사방에서 수호하거나 설법 듣는 청중을 상징하는 사천왕의 직속부하 여덟분으로 <법화경><관불삼매해경> 등의 불경에서 `아수라`, `가루라', `건달파' 등이 이분들이다. 하지만 조각상 각각의 이름은 고증할 수 없다.

미천골은 계곡으로 유명하다. 기암괴석 가득한 계곡과 오색 찬란한 절정의 단풍에 우리는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불바라기까지 가고 싶지만 두고 온 사람들에게 아침과 청소를 모두 맡기는 게 미안하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이 온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숙소에 돌아오니 아침이 다 준비되어 있다.

밥을 먹고는 곧장 하산이다. 다음 행선지 방태산까지는 먼길이고 방태산에도 단풍이 있을 테니까.

 

휴양림을 나오는 길도 예사롭지가 않다. 나오면 나올수록 단풍은 엷어지고 초록빛이 짙어지지만 계곡은 여전히 깊고 물은 괴석 사이를 시리게 흐른다.

 

선림원지에 들렸다. 서기 700년대에 세워진 절 터이니 1000년도 넘었다. 풀밭 넓은 폐사지에는 3층 석탑과 석등, 귀부와 이수만 남은 흥각국사 부도비, 돌축대가 군데군데 널려 있다.

폐사지에서의 이준/ 무슨 생각을 할까.

폐사지는 절이 무너진 빈터란 뜻이다. 빈 공간은 거꾸로 꽉 찬 상상과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배현철은 서리가 내리지 않아 들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싱싱한 풀밭을 헤매고, 산오리는 사진을 찍고, 이준 위원장은 뒷짐을 진 채 먼 하늘을 보며 홀로 거닌다.

 

7.

방태산으로 가는 길은 조침령을 거꾸로 넘어야 한다.

양양은 바닷가라 해발고도랄 것도 없다. 백두대간 조침령은 해발고도 770m. 그야말로 수직 절벽이다. 그러나 이준 위원장의 4륜구동 쏘렌토는 아흔아홉구비 비포장길을 거침없이 오른다.

조침령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연봉

정상에 올라 혹시 바다가 보이나 동해쪽을 바라보니 겹겹이 쌓인 산들만 보인다. 고개마루라 바람은 상쾌한데, 두 남자 또 풍욕타령이다.

 

방태산 입구에 방동약수가 있다.

약재로 유명한 엄나무 고목이 뿌리를 박고 있어 더욱 효험이 있을 것 같은 약수는 그러나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단맛 없는 사이다가 이 맛일까.

방태산 적가리골 지도/ 밥주발을 닮은 듯한 둥근 분지가 적가리골이다.

특이한 지형 때문에 양구 해안분지처럼 운석 충돌로 생긴 분화구라는 설이 있지만, 짧은 식견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본 결과 지형상 풍화에 약한 화강암지대로 차별침식에 의한 산간분지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은 가장 인기 있는 휴양림 중 하나란다. 경치도 좋지만 방태산 줄기의 높은 산들 등산도 할 수 있고, 다양한 산책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도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 난 이곳에 오기 전에 이곳의 상세한 지도를 봤다. 첩첩산중에 항아리처럼 형성된 분지다. 물론 분지라고 평지는 아니지만. 유달리 지리에 관심이 많던 나는 어디를 가나 색다른 지형을 보면 즐겁다.

방태산 적가리골 화전터/ 30년전 화전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면서 화전터에는 모두 낙역송을 심어놨다.

꼭꼭 숨어 있는 운둔의 땅, 이른바 3둔 4가리 중 하나인 적가리골이 이곳이다.

 

짧은(?) 코스를 택했다. 이곳도 곰배령처럼 단풍은 이미 기울고 있지만 계곡의 빨간 단풍나무잎은 여전히 짙다. 이곳은 경사가 별로 없는 화강암 지대라 계곡에는 북한산처럼 반석이 넓게 넓게 펼쳐져 있다. 계곡에 숨어 밥을 지어먹고, 소주를 한잔 곁 드린다. 행복하다.

단풍물이 곱게 든 작은 소/ 물빛은 산빛이기도 하고, 하늘빛이기도 하다.

적가리골에는 낙엽송이 많이 심어져 있다. 70년대 초반 화전민을 소개하면서 화전터마다 낙엽송을 심었다. 이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있지만 이 나무들이 있는 곳은 30년 전까지는 누군가 삶을 기대고 살았을 자리다. 이 깊은 산속에서

 

8.

어제와 달리 오늘은 서두른다.

서울을 도망 나온 우리들은 해방감에 들떴고, 한없이 여유로웠는데, 돌아갈 길이 멀어서인지 마음이 바쁘다.

그래도 웃으며 사진 한 장 찍을 여유야

방태산 포트포인트(?)에서 한장씩/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배현철, 이준, 최경순, 곽장영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멀기만 하다. 예상했던 대로 설악에서 홍천가는 44번 국도에 다다르니 차들이 꼬리를 물고 기어간다. 홍천을 거쳐 양평을 거쳐 서울로 가다가는 오늘 안으로 집에 가기 힘들 것 같다. 길을 잘 아는 이준 위원장이 어렵지 않게 결단을 내린다. 춘천-포천-전곡-문산-고양시.

 

길은 정해졌지만 낯선 길이어선지 배현철은 이 길이 정말 빠른 길일까 의심하는 눈치다.

굽이굽이 한적하고 작은 마을과 논밭이 아름다운 56번 국도를 타고 춘천에 다다르니 날이 저문다. 춘천호수 옆으로 난 14번 국도를 달릴 때에는 이미 밤이 되었다. 사창리를 지나 광덕산을 넘어 막걸리와 소갈비가 유명한 이동을 지나 전곡에 이르렀다. 배현철은 비로소 빠른 길이라는 게 실감나는 눈치다.

 

저녁은 어디에서 뭘 먹을까.

미천골과 방대천에서 물고기 잡기에 실패한 배현철은 매운탕을 먹자고 한다. 여행지면 여행지, 음식이면 음식, 전문 가이드 뺨치는 이준 위원장은 잘 아는 매운탕집으로 안내한다.

사공횟집에서 마지막(?) 만찬/ 행복감과 안도감과 함께 먹기도 전에 포만감이 물씬 배어나온다.

파주 장파리 건너 사공횟집. 이집 주인이 임진강에서 고기잡이 면허를 가지고 있어 직접 잡아다가 판다고 한다. 싼 가격에 맞춰달라고 했는데, 민물게까지 들어간 매운탕은 푸짐하고 맛있다.

좋다. 각 1병이다!

산오리는 호기롭게 외쳤지만 끝내 각 1병 실패.

 

그래도 너무나 행복하다. 여행의 여운과 배부름과 집에 다 왔다는 안도감.

고양시로 오는 길도 막힘이 없다.

각자 택시타고 들어가겠다는 데도 이준 위원장은 굳이 배달까지 하겠단다.

. 언제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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