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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의 모험

닐스의 모험

 

1.
내 아침 출근길은 길다.
승용차로 10분도 안 걸릴 행주산성까지
화정, 행신지역을 답답하게 훑고 지나가는 버스로는
30분이나 걸린다.

 

그래도 나는 늘
인도 쪽으로 난 창가에 자리잡는다.
버스가 자유로를 지나기에
탁 트인 한강변을 보기 위해서다.
능곡을 지나 행주산성으로 접어들면
황량한 겨울에도 눈맛이 시원하다.

 

2.
월요일(2월 2일) 아침
나는 습관처럼 내 지정석(?)에 앉았다.
뒤편에서 둘째 또는 셋째 창가다.

 

행주산성 들머리에 들어서자
뭔가 하늘이 검어지는 듯하며,
어디선가 끼~욱 끼~욱 소리가 들린다.

 

기러기다.
그것도 한 마리도 아니고,
200-300 마리는 될 것 같은
커다란 몸집의 기러기 떼가
열 개 가까운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었다.
.
.
.
황홀했다.
.
.
.
시골 깡촌 강 근처에서 자란 나이지만
이렇게 많은 기러기 떼를 본 게 처음이다.
그것도 이렇게 낮게 날고 있다니....

 

3.
기러기.
흔하지 않은 이 새는
그러나 슬프게도 익숙하다.

 

반세기 전
새로운 희망에 불탔던 청년들,
양심적 지식인들,
3000만이 잘 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려 했던 사람들이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기러기 떼처럼 줄지어 날아갔다.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산허리를 수놓아둔 채 말이 없는 산하를 가르며....

 

그 후로도 반세기 동안
파리한 달빛에 어린 밤의 적막이
온 산하를 감쌌고,
의식이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반역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4.
이제 반세기의 어둠을 뚫고
진보세력이 권력의 핵심인 국회 앞에까지 와 있다.
기러기 떼는 그렇게 돌아왔다.

 

이제 세상은
돌아온 닐스처럼
모든 게 정상으로 그렇게 돌아오려나....

 

<2004.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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