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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선운사는 꽤나 유명한 절이다.

갑오농민혁명군이 비기를 꺼냈다는 거대한 마애석불에, 노래도 있고, 동백도 유명하고, 욕을 먹는 미당과 관계가 있기도 하고,

한참 답사열풍을 일으킨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의 '완당과 백파선사와의 인연', 추사가 쓴 '백파선사비', 완당이 한 때 아주 싫어했던 '이광사가 쓴 편액'

거기다가 '풍천장어'와 '복분자주'까지...

 

그러나 이번 내 여행길에서 선운사는 곁들여 가는 여정일 뿐이었다.

 

선운사 부도밭/ 백파선사비는 어디로 옮긴 것 같다. 화려한 부도탑보다 난 이런 소박한 부도에 마음이 더 끌린다.

 

선운사는 내게도 늘 기억되는 절이다.

아주 옛날 여자친구랑 밤차를 타고 새벽에 정읍에 내려 버스를 여러 번 이어타며 선운사로, 마애석불을 지나 산을 넘어 해리로, 거기에서 다시 흥덕으로, 거기서 줄포로, 또 곰소로, 거기서 내소사로 하루 종일 다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때는 이월이라 아직도 살얼음이 지피는 계절이었지만, 잘 보호된 참나무 군락들은 봄물이 올라 부풀어오른 잎눈들로 엷은 희뿌연 안개를 덮고 있었지... 마치 새벽서리를 맞은 것처럼...

 

선운사 계곡 냇물/ 건너편은 차밭이고, 개울가에는 오래도록 자연상태로 자란 나무들이 빽빽하다. 긴 협곡을 따라 냇물과 나란히 난 산책길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은 후배 태하가 날 배려한 여행이다.

한미FTA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투쟁이 고조되고 있지만, 난 눈을 꾹 감고 미리 예정된 여행을 떠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떠날 때부터 황사가 가득한데,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급기야 선운사에 갔을 때는 호남지역에 황사경보까지 내렸다.

 

황사 때문인지 고속도로도 국도도 모두 한가하여 한적한 여행이 되나보다 했는데, 선운사 들머리부터 그런 기대가 깨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선운사 동백이 한창이구나.(아님 끝물인가?) 넓은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하고, 특히 중년 남녀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많았다.

 

선운사 입구 벗꽃 가로수/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주차장에서 선운사에 이르는 길은 말 그대로 난장이다. 막 터지려는 꽃몽우리 가득한 벗꽃길 양쪽으로는 복분자술, 막걸리 등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도 번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하도 많아 모래 대신 깔아놓은 잔 자갈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다.

 

근처 사람들은 선운사를 별로 쳐주지 않기도 하는데, 아마 사람들이 많아 시장 분위기가 나서 그러하리라. 찾는 사실 사람들이 별로 없다면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절이리라.

 

당당한 법당/ 고색창연하고, 뒷산 동백숲과 목백일홍, 단정한 축대까지 사람들만 많지 않으면 제법 운치있을 것이다.

 

난 이 절집에서 만세루라는 건물을 가장 좋아한다. 건축을 모르니 건축학적으로 말하는 건 아니고, 내게 와 닫는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법당을 마주보고 있는 만세루는 멀리서 보면 아주 크고 당당한 건물이다. 그러나 가까이 가 보면 기둥이며, 서까래, 들보 할 것 없이 빼뚤빼뚤 제멋대로다.

 

만세루는 절집을 짓고 남은 목재를 가지고 지은 집이라고 한다. 물론 전에 있던 목재를 재활용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목재를 가지고도 이런 번듯한 집을 지었으니 '재능이나 빈부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을 존중'하는 그런 종교관을 표현하는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만세루 기둥/ 삐뜰기는 기본이고, 이어 쓴 기등도 있다.

 

만세루 들보와 서까래

 

법당 뒤로는 동백이 한창이다. 선운사는 동백의 북한계에 해당한다고 한다. 물론 해안을 따라 더 북쪽에서도 피고, 온난화 때문에 더 내륙에서 피기도 하지만, 어쨌든 오랬동안 북한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선운사 동백은 수령이 5-600년 되었다고 하는데도 생각만큼 크지 않다. (물론 작다는 얘기는 아니다.)

 

선운사 동백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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