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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갯벌에서

풀소리[봄은 날 기다려 줄까?] 에 관련된 글.

 

1.

지난 일요일(4월 1일), 아침 8시 반쯤에 떠나서 밤 10시가 넘어 되돌아왔다.

나름 긴 여행이었다. 여행의 목적지는 새만금 갯벌이다.

 

계화도 갯벌/ 드넓은 갯벌은 죽음의 땅으로 변해있었다.

 

'새만금'하면 무엇보다도 '환경'이 곧바로 연상된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환경'이나 '환경파괴'에 대한 항의나 증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미 파괴된 환경, 죽어가는 것들, 황량함, 이런 것들을 보러 갔을 뿐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말이다.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어찌됐든 방해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이기적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나도 때로는 오로지 나만을 위로하고 싶을 때가 있고, 이번 여행은 말하자면 그런 것들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망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왜 변명모드로 변했는지 굳이 알고자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2.

이곳에 이르기 위해 우리(나와 태하)는 선운사로 해서, 줄포로, 곰소로, 내소사로, 해변도로를 타고, 채석강을 거쳐서 짧지 않은 길을 달렸다. 새만금만 달랑 다녀오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아 일정을 짰든데, 돌이켜보면 무리한 것 같기도 하다.

 

계화도 근처 항공사진, 가운데 산처럼 보이는 곳이 계화도다. 동진강을 사이에 두고 아래 오른쪽은 계화도보다 오래 전에 간척지가 된 말 그대로 '광활면'이다.

 

선운사에서 내소사로 가는 길인 흥덕과 줄포 사이길은 참으로 포근한 길이다. 산은 거의 산이라고 말할 수 없고, 들은 거의 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비산비야의 길은 겹쳐지고, 포개지는 구릉과 논밭과 마을이 주변을 보면 모든 게 감싸고 있는 듯 편안하다. 이곳을 지나는 기회가 있으면, 흥덕과 줄포 사이의 고속도로가 아니라 국도로 갈 것을 권한다. 이곳도 언제 4차선으로 도로를 넓힐지 모르지만 말이다.

 

여행 내내 우리를 괴롭힌 건 황사다. 출발할 때부터 끼었던 황사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해져, 선운사에서는 이미 재난문자가 뜰 지경으로 지나는 이들 절반 이상이 황사용 마스크를 쓴 상태었다.

 

내소사에서 새만금으로 가는 해변길은 변산반도의 국립공원지역을 지나는 길로, 날이 맑다면 바다와 언덕과 산이 참으로 잘 어울릴 것 같다. 그러나 짙은 황사 때문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르겠더라.

 

3.

채석강을 지나고, 드디어 멀리 긴 띠가 흐리게 나타났다. 새만금 방조제다.

방조제 입구에는 '농업기반공사'에서 운영하는 [새만금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전면에는 "친환경개발 새만금"이라는 녹색의 큰 글씨가 보인다.  허걱! 작명하나 죽인다!!

 

구멍의 형태나 다리 모양새로 보아 서해안에 흔한 칠게로 보인다. 칠게는 동작이 매우 민첩한데, 이녀석은 건드려도 움찔거리기만 할 뿐이다. 죽어가고 있는 이녀석에게 간절한 바닷물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전시관에 도대체 뭐가 있을까 궁금했지만, 시간이 없다. 새만금 지역 갯벌에 대한 사전공부를 하지 않고 왔기에 무작정 계화도로 향했다. 계화도 가는 길옆 바다 갯벌에는 누구나 한번쯤은 봤음직한 솟대들이 떼로 서있다. 떼로 있어도 마치 사람들이 모두 퇴거한 텅빈 개발지역 판자촌처럼 쓸쓸하게 보인다.

 

계화도는 새만금 방조제가 아니어도 이미 섬이 아니었다. 기억도 희미할 정도로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간척지 어쩌고 하였던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섬이다. 그래도 섬 안에는 한집 걸러 회나 조개를 파는 가게 간판이 있으니 새만금방조제가 생기기 이전에는 어업이 매우 발달했었나보다.

 

방조제 안에 있는 계화도 포구에는 고깃배들이 가득이다. 저 배들은 이제 어디로 갈까?

 

갯벌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일단 긴 방조제를 지나 계화도 끝으로 같다. 그러나 그곳에는 갯벌이 없었다. 갯벌 대신 여전히 출렁이는 넓은 바다(바다라고 할 수 있나?)와 포구 가득히 들어차 있는 어선들이 있었다.

 

4.

우리는 온 길을 다시 되집어 계화도 방조제가 시작하는 지점에서 옛날에는 계화도를 한바퀴 돌았음직한 오솔길로 길을 잡았다. 방조제 높이의 작은 언덕으로 넘으니 광활한 갯벌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갯벌로 들어섰다. 갯벌 입구에는 출입을 금하는 간판이 있었지만, 무슨 상관이랴. 넓은 갯벌에는 차량 바퀴자국이 길게 길게 나있었다. 갯벌이 단단하다는 증거다.

 

몇 개 보이는 죽은 맛조개/ 이미 일찍 죽은 놈들은 부식되어 사라졌는지 딱딱한 맨땅만 드넓다.

 

갯벌이 참 넓다. 물막이 공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은 이미 불모의 지역임에도 소금먼지 휘날리는 황량한 사막분위기는 아직 나지 않았다. 드넓은 갯벌은 사람 하나 없어 텅 비어 있었지만, 내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는 어렵다. 그래도 나는 여유만 있다면 갯벌 끝까지 가고 싶었다.

 

갯벌을 들어서니 이미 맛조개들이 주둥이를 내놓은채 죽어있는 모습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살아있는 갯벌이라면 게 구멍이 빼곡할 터인데,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난 무작정 갯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멀리 푸르게 자라는 새싹들이 바닷물이 다시는 들어오지 않아 이미 육지가 된 갯벌을 점령하기 시작하는 칠면초 군락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갯벌에 넓게 심어놓은 보리밭

 

싹을 틔우지 못한 보리들이 보인다. 이녀석들을 과연 수확할 수 있을까? 괜히 안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보니 푸른 싹들은 놀랍게도 보리싹이었다. 혹시 밀인지도 모르겠다. 놀라워라. 왜 여기에다 보리를 심었을까? 보리들은 바닷물이 들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짠물인 이곳에서 어떻게 자라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끝없이 길고 넓게 만들어 놓았던 고랑과 이랑이 보리를 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인가?

 

5.

새만금을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FTA 협상 막바지이고, 허세욱 동지가 분신하였다는 문자가 연이어 와서 마음은 불편하고 미안하였지만, 마치 미루던 꼭 해야할 큰일을 마친 것처럼 후련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언어와 언어가 채 되지 못한 또 많은 언어들이 냇물처럼, 바람처럼 스쳐지나갔다.

 

1973년에 만들어진 방조제/ 우리네 삶도 이 방조제처럼 언젠가 낡고 쓸모없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의지와 상관없이 말이다.

 

생각이 언어가 되든 언어가 되지 못하든, 그것은 어차피 내가 감수할 몫이다. 또한 내가 선택할 몫이다. 어떤 상황이 됐든, 어떤 선택이 됐든, 세월은 흐를 것이고, 나도 흘러갈 것이다. 그곳이 어딘지, 그때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ps : 여행을 함께 해준 후배 태하에게 감사하다. 태하가 차로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쩜 여행은 봄 내내 불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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