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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율배반

이율배반(二律背反)

 

며칠 전 박석삼 선배님의 지적으로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정형을 싫어했다. 뭔가 틀지어지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추구했다. 액체나 기체처럼 말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싫었고, 자기 관리 잘 하는 건 더더욱 밥맛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런데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지 참으로 의문스럽다. 사상이나 조직이나 실천으로 볼 때 고농도 이성적 조합을 필요로 하는 맑스레닌이스트가 되었는지 이상하다. 하긴, 몸에 맡지 않는 옷이었지. 그런데 자꾸 입으니 중독이 되었을 뿐.

 

전두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어쩌다 가투에 나가면 언제나 대열 뒤쪽에 자리잡았다. '나이도 있고 한데 뭘' 하며 소심함과 비겁함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고 전경들하고 대치하다보면 늘 내가 맨 앞줄에 있는 거다. 왜일까. 내가 흥분했나? 아니면 앞줄 녀석들이 다 도망갔나? 아무튼 찍어놓은 필름도 없으니 지금 와서 뭐라 확신할 수는 없다.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조직(?) 활동도 책임 역할을 후배들에게 맡기고 설렁설렁 했는데, 어쩌다보니 노동판에 남아 있는 게 나 하나다. 지금도 모이는 학교 후배들만 해도 70명이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도 꿈꾼다. 대열이탈을 말이다. 이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늘 도리질친다. 그래도 이탈은 쉽지 않다.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나와 거의 한몸이 된 '범생이 기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니면서 여러 조직의 문건을 보면 내겐 다 옳은 소리로 보였다. 그런데 후배들은 이상하게 차이를 명확히 지적했고, 더욱이 그 이면은 어쩠다는 등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보면 맞는 듯도 했다. 나는 매양 그런 식이다. 반역을 꿈꾸면서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범생기질.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학을 잘 하는 편이다. 내 두뇌 능력에 비해서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나의 범생이 기질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답이 있다. 그것도 숫자화 되는 명확한 답(모두 그렇지는 않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이 있다는 게 늘 안심이었고, 안심되는 순간 반은 푼 듯 했다.

 

머리는 반백인데도 답이 없다. '넌 뭐냐' 는 물음에도 답이 없다. 왜 이 모양일까 하고 스스로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범생이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정형성을 추구하고, 로맨티스트의 머리로 리얼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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