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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영위원이 되었다.

'남편 어디 다니세요?'
'요즘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민주노총 있죠~ 거기 다녀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물으면 아내는 그렇게 능청스럽게 대답한다고 한다.
웃음이 나왔지만 뒤끝이 씁쓰레 슬프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라도 균형을 잡아가는 데는 민주노총이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민주노총이 능청스런 대답으로 넘어가야 할 정도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으니 말이다.

 

어제는 아이 학교 학부모운영위원 선출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권하기도 해 출마했다.
출마원서를 작성하면서 뭐라 쓸까 고민했다. 특히 경력란에는 뭐라 쓸까?

 

나는 두 줄을 썼다.
'민주노총 전국민주버스노동조합 사무차장'
'대중교통공공성강화를위한연대회의 집행위원'

 

요즈음 분위기로는 표를 잃을만한 경력사항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썼다. 달리 쓸 경력도 없지만 말이다.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떳떳해지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경력을 쓰면 최소한 학교에서 아이에게 부당한 대우는 하지 않겠지 하는 이기심도 숨어있었다.

 

원서를 접수하러 갔을 때에는 마침 학교 앞에서 아이들 등교 도우미를 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 세분이 오셔서 네 장의 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리고 그분들은 내가 있는 것에 아랑곳 않고 교장, 교감 선생님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이렇게 써내면 되죠?'
'예.'

 

이미 각본은 다 짜져 있는 것 같았다. 뭐 당연하겠지.

 

어제 학부모 총회가 있었고, 유세와 선거가 있었다. 유세를 하면서 나는 민주노총의 '오기'를 할 수 있는 한 가장 부드럽게 표현했다. 일종의 어르고 뺨치는 수법. 글쎄 효과가 있으려나.
교무실에서 유세를 하고, TV를 통해 아이들 반에 있는 부모님들이 보고 듣는 것이었는데, 카메라를 작동하는 아이가 서툴러서인지 중간에 화면이 나가기도 했다. 별게 다 눈에 들어온다. 어찌됐든 나는 하고자 했던 말을 90% 이상 했다.

 

그리고 투표. 학교에서는 학교가 지명(?)하지 않은 후보에게 커피 한잔 이외에 어떤 배려도 없었다.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언제 개표를 하는지. 당선자는 언제 발표하는지 도무지 안내가 없다.

 

나는 갈곳 없이 거리를 헤매는 초보실업자처럼 부자연스럽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교무실에 홀로 앉아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투표가 끝났다.
'지금 여기서 개표하나요?'
'예.'
'후보인데 여기 있어도 되나요?'
'아니요. 우리끼리 개표하고 당선통지는 나중에 해요.'

 

제길.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집에라도 가 쉬고 있었을 걸.
집에 와 함께 출마한 정경화 동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결과 나왔으면 전화 주세요.'

 

난 그때까지 당선자는 다시 학교로 가는 줄 알았다. 이 사람 저 사람 얘기가 엉켜 그런 판단을 했다. 그래서 노조에도 나가지 않고 집에 와 기다렸다.

 

'선배님, 된 것 같아요. 전 확실히 됐고요, 선배님은 80%는 된 것 같아요.'
'축하해요.'
'선배님도 축하해요.'
'그러면 학교로 가야되요?'
'아니요. 나중에 오는 거래요.'

 

4시 20분이다. 제길. 출근하면 퇴근시간이다.
저녁에 정경화 동지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축하해요. 선배님도 됐고요, 3분 나오신 전교조 선생님도 모두 됐어요.'

 

다행이다. 그래도 눈으로 확인을 해보지 않았으니...
오늘 교육으로 늦게 퇴근해보니 아이는 컴퓨터와 씨름이다.
스스로 게임을 깔겠다고 해 해롭다는 것보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앞서 '그래. 네 스스로 깔면 봐주지.' 하니 아이는 너무나 좋아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뭐 주던 것 없니?'
'응. 없어.'

 

이크 떨어졌나보다. 당선됐으면 당선 안내문을 보냈을 텐데.
그래도 하는 맘으로 아이 가방을 열어보니 당선 안내문이 보인다.

 

음~. 잘 해 봐야지. 남들이 다 민주노총인 거 알고 있으니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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